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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후 먼치킨-132화 (132/154)

132화 베품의 미학

용혈 가방에 다 밀어 넣어도 이미 한계를 돌파해 버린 지 오래인 부산물의 양.

보는 것만으로도 답이 없어 보였으나, 전성이 오고 난 이후부터는 얘기가 달라졌다.

“너무 늦어서 죄송해요, 진우 씨.”

“아뇨, 나이스 타이밍입니다.”

몬스터로 인해 구조물이 박살 나고 피 칠갑을 한 탓에 더 이상 놀이동산으로 부를 수도 없는 곳으로 트럭의 대행렬이 밀려들어 왔다.

더군다나 해당 트럭들 전부가 평범한 트럭이 아니다.

몬스터 부산물이 부패되지 않게끔 신선도 유지 마법이 적용된, 그야말로 부산물을 수거하기 위한 트럭들.

어디 그뿐이겠는가?

“잘 안 잘리시나요?”

“끄응, 아닙니다. 조금 많이 질기고 딱딱하긴 하지만 손질 못 할 정도는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쇼, 부회장님.”

“힘들게 사냥한 것이고 드워프에게 맡길 재료들이니 잘 다듬어 주셔야 돼요.”

“걱정 마십쇼! 이쪽 업계에서는 다들 프로들이니 맡겨만 주시죠!”

누누이 말하지만 인맥만큼 든든한 게 또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어 주는 대기업의 파워였다.

예로부터 양보다는 질이라고 했던가?

14억 5천만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5천만 인구 가운데에서 등장한 베테랑급 손질의 실력자들.

“세상에. 지금까지 숱한 일을 많이 해 왔지만, 이 정도로 많은 양을 하는 건 처음이야.”

“이거 전부 다 김진우랑 저 소녀 둘이서 잡은 거라던데?”

“엑? 그게 말이 된다고?”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셨어요?”

“난 운전 중이었잖아 이것아! 어느 누구 씨가 무면허라서 말이야!”

“금방 딴다니까요. 거참 되게 꼽 주시네.”

뭐, 그 정도로 재능이 있기에 전성으로서도 다소 자유분방한 사람들을 모으긴 했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진우로서는 일 처리만 잘해 주면 그만일 뿐.

결국 과정보다도 결과가 모든 걸 말해 주는 게 기술인 법이니까.

“저랑 유진이는 조금 지치다 보니 먼저 들어가서 쉬도록 하겠습니다.”

“응? 아빠. 수아 언니랑 더 놀아도 돼! 나 하나도 안 힘든…….”

“게이트가 닫혔다는 말이 들리면 기자들도 들이닥칠 수도 있으니 실례하겠습니다.”

“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확실히 여기 더 있다가는 기자들도 와서 귀찮게 굴 테니까요. 그럼 푹 쉬도록 하세요. 손질된 부산물들은 추후 농장으로 문제없이 배송해 드리도록 진행할게요. 다만, 그때 저도 함께 동행해도 괜찮겠죠? 오랜만에 팜오리들도 보고 싶어서요.”

“예. 물론 환영이죠.”

그렇게 만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헤어지는 둘.

“흐으으, 기레기 놈들만 아니었어도 좀 더 대화할 수 있었을 텐데.”

어디까지나 전성.

비즈니스로 이어진 관계라지만 수아에게 있어서 진우는 생명의 은인.

아니, 그 이상이다.

실제로 진우가 없었더라면 자신의 정령은 중급인 운다이르가 아닌 여전히 운디네였을 터.

물론 이 나이에, 그것도 헌터 일이 아닌 회사 일에 집중하면서도 하급 정령사라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으나, 그녀가 이루고 있는 성취는 그것들과 비할 바가 되지 않았다.

대부분 주머니 사정이 빵빵한 각성자들을 겨냥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상승세를 타면서 3호점까지 낼 준비 체계까지 완벽하게 갖추어 둔 상태다.

거기에다가 이번에 이런 사건까지.

생방송으로 방영되고 있을 때는 혹시나 큰일이라도 날까 걱정도 되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미 진우의 힘을 어느 정도는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겪어 온 수아다.

“후우우, 이제부터 엄청 바빠지겠네.”

한숨을 내쉬는 행동과 달리 수아의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한가득 새겨져 있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헌터 협회에서 S등급으로 추정한 변종 게이트 몬스터 웨이브를 단신으로 막아낸 영웅…… 이 직접 키워서 수확해 낸 신선한 작물과 과일. 그리고 그것으로 만든 주스와 커피, 디저트를 판매하는 카페.

입소문이 무서운 법이라고.

수많은 각성자가 진우가 강해진 원인을 찾고자 카페에 불이 나도록 방문할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지 않겠는가?

대기업의 부회장으로서, 또 프랜차이즈의 동업자로서 앞으로 상승세의 길만 남았을 터.

다만,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수아에게도 한 가지 의문이 싹 틔었으니,

“……그나저나 유진이가 저렇게 컸었던가?”

하루가 지날 때마다 쑥쑥 크는 것이 어린아이라지만, 처음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유진이는 훌쩍 커 버린 모양새다.

사람인 이상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호기심.

그러나 머지않아 수아는 고개를 저어 보인다.

“뭐, 진우 씨도 다 이유가 있겠지.”

헌터가 지니고 있는 힘에 대한 것을 캐묻는 것만큼 사생활과 남의 가정사를 캐고 드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는 일.

이제부터 바빠질 몸.

수아는 잡념을 털어 냈다.

* * *

“히잉! 수아 언니랑 놀고 싶었는데”

“유진이는 수아 씨가 마음에 들었나 봐?”

“그러엄! 착하고 좋은 언니야! 많이 많이 농장에 찾아오면 좋겠어!”

“그래?”

“응!”

몸만 크고 정신연령은 그대로인 유진이.

그 모습을 보면 걱정도 되지만 아직까지는 정신적인 측면으로도 급성장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쩝.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이런 기분을 느껴 봤어야 알지.’

크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서도 늘 아이 같은 모습이 보고 싶은 아빠의 심정이랄까?

그렇기에 진우는 놀이동산에서 기회가 생기자마자 빠르게 벗어난 거다.

찾아올 기자들이 무서워서? 아니, 천만의 말씀!

한국보다 몇 배는 경제력으로 우세한 강대국인 미국이나 러시아 등.

지금 이 순간에도 진우를 향해 러브콜을 보내는 나라들은 널리고 널렸다.

한국에 있는 농장과 이장님.

그 밖의 마을 어르신들과 헤어지는 것은 조금 아쉽기는 해도 평생 못 보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는다면 마나를 소모하여 숲의 주인을 통해 이동하면 그만일 뿐.

결국 언제 떠나도 아쉬울 것 전혀 없는 진우가 압도적인 갑의 입장.

괜히 기자가 벌집 쑤시다가 진우가 ‘xx 언론사 때문에…….’라는 식으로 떠나 버리기라도 했다가는 그야말로 방송사는 문 닫아야 할 수도 있을 판이다. 이제 진우는 단순히 작물만 공급해 주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몰리 덕분에 달달하게 챙겼네.”

- 헤헤헤.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에요.

S등급 게이트의 몬스터 웨이브를 거의 단신으로 막아 낸 업적.

이것은 웬만한 대형 길드장의 S등급 헌터들도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다.

보통이라면 제 목숨이 우선이기에 도망치는데.

예로부터 선한 행동은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기 마련인 법이라고 했던가?

진우의 채널은 이전부터도 계속 빠른 성장세를 보였지만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구독자와 조회수.

그리고 좋아요까지 삼박자 고루 갖춘 채 지금도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상황.

물론 당연하게도 유명세에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쩝. 이제 더 귀찮아지겠지.”

당장에 미국의 또라이.

아니, 대통령인 테일 로렌트의 러브콜 공세가 더욱 강해질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일시적인 능력치 상승이 가능한 것부터 영구 능력치 상승까지.

거의 찍어 내는 수준으로 생산해 내는 생산직의 각성자가 전투 쪽으로도 S등급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다가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않은 개인의 신분으로?

이걸 보고도 참으면 국가가 아니다.

어떻게든 회유해서 오게끔 만들고도 남을 일.

물론 애국심이 아주 티끌만큼만 존재하는 진우로서도 이 부분은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조건에 해당된다.

‘체르 님께는 늘 감사하다니까.’

20대 중반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안목을 지니게끔 도와준 황금 거상 체르.

뭐니 뭐니 해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이 최고인 법이니까.

“유진아. 가는 길에 몸 좀 따뜻하게 씻고 갈까?”

“집에 가는 거 아니었어요?”

“놀이동산은 글렀지만, 사우나는 지금 시간에도 문이 열려 있으니까. 그리고 아침이 되면 그때 다시 놀이동산 가자.”

“우와앙! 진짜요!?”

“그럼.”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동안 어느덧 밤이 된 상황.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지 않겠나?

아침까지 시간을 보낼 장소를 구하면 그만일 뿐.

게다가 비록 같은 장소에서 씻을 수는 없겠으나, 사우나는 진우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추억을 나눈 몇 안 되는 좋은 장소 중 하나다.

이제는 아버지가 됨으로써 유진이에게 같은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 아, 안돼. 태초의 아버님이시여!

- 으으으! 놀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뭐, 인형이 된 두 늑대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실로 미안하게도 둘보다는 유진이가 더욱 우선순위에 있는 진우였다.

* * *

“그렇게 재밌었어?”

“네! 막 빙글빙글 돌고 무섭기도 했지만 재밌었었어요!”

“유진이가 좋으면 나도 좋지. 다음에 또 가자.”

“정말요? 기대해도 돼요?”

“그럼. 유진이가 말 잘 듣고 그러면 언제든지 가야지.”

“넹! 착한 아이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내일 또 가요!”

- 히이익!

- 제, 제발!

역시 에너자이저.

넘쳐 나는 에너지는 무시하지 못한다.

특성인 ‘굳건한 체력’을 넘어서는 어린아이의 행동력.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우도 기겁하는 늑대 인형들의 편이다.

“내일 바로는 힘들고 시간이 되면 말해 줄게. 알았지?”

“……네에.”

“대신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만 하렴.”

“우와앙! 그럼 딸기 주스요!”

그래도 결국 아이는 아이.

어른으로서 아이를 컨트롤 하는 것도 중요한 법.

누가 뭐라 해도 아버지로서 아이와 놀아 줄 때는 놀아 주고, 농부로서 작물을 돌볼 때는 밸런스 있게 돌봐 줘야 제대로 농장이 돌아가지 않겠는가?

헌데 농장에 들어서자 이미 선객이 들어와서 작물을 돌봐 주고 있었으니,

“빡빡이 아저씨다!”

“거 참. 유진아. 석우 오빠라고 해야지! 그리고 요즘은 머리 기르고 있거든? 이거 보렴. 자 길지!?”

“넹! 빡빡이 오빠!”

“…….”

이장님의 아들인 석우.

유진이에게 빡빡이로 불린 이후로 늘 고집스럽게 바리깡으로 밀던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으나 그래 봤자 겨우 며칠.

머리카락이 단시간에 빠르게 자랄 수는 없다.

결국 유진이의 빡빡이 공격에 충격을 받고 굳어 버린 석우의 모습.

이렇게 놓고 보면 그저 듣고 웃어넘긴 협회장 신승혁과는 다르다.

역시 누가 뭐라 해도 연륜은 무시할 수 없다니까.

“뭘, 빡빡이 맞으면서.”

“지, 진우 너마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너 대체 무슨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거야? 나랑 부모님이 얼마나 기겁했는지 알아?”

“뭐, 결과적으로 죽지는 않았잖아?”

“날 친구 없는 놈으로 만드는 줄 알았다고!”

“……그런 쪽의 걱정이었냐.”

소똥 냄새가 가득한 시골 깡촌이다.

제아무리 붙임성이 좋은 석우라고 해도 동년배 친구가 있어야 대화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래도 다음부터는 몸 좀 사려! 네가 죽기라도 하면 우리 부모님한테 불효하는 거야, 너!”

“흠흠, 미안하다. 확실히 효도하는 게 맞긴 하지. 나도 참. 돈만 벌 생각만 했지. 제대로 마을에 이바지를 못 했네.”

자식이 먼저 가는 불효라…….

피를 나눈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진우에게 있어서 이장님과 여사님은 제2의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이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각성한 이후 이장님께 제대로 된 보답을 해 드리지 못했다.

진우가 제법 쉽게 쉽게 귀농을 결정한 것에는 드루이드의 각성도 그렇지만 아버지의 농장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이장님이 없었더라면 허물어진 폐허가 되고도 남았을 농장.

헌데 받은 것과 달리 진우가 해 드린 것이라고는 거의 없다.

오히려 미국의 헬기부터 대통령, 여야 정치인들과 기자들로 인해서 마을을 시끄럽게만 만들었을 뿐.

“이제라도 알았으면……. 하아? 그건 또 뭔 소리야. 먼저 가는 불효를 저지르지 말라는 것뿐이지 우리 아버지랑 어머니한테 너는 효자나 다름없다고.”

“내가?”

“당연한 소리를! 지금 우리 마을이 누구 덕분에 부유해지고 있는데? 전부 다 네가 여기에 있는 덕분이잖아. 네가 온 덕분에 오늘내일하시던 어르신들도 건강해지시고 작물들은 또 얼마나 잘 자라? 거기에다가 전성에서는 알아서 비싼 값에 작물을 유통해 주기도 하고. 엣흠흠, 무엇보다도 날 각성시켜 주기도 했고.”

진우가 존재함으로 발생하는 이득이라고 해야 할까?

특성 ‘굳건한 체력’부터 ‘자연이 그대를 돌보리라’.

그 밖에도 진우가 농장에서 풀어놓은 보석 꿀벌과 시오가 다루는 나비들까지.

미국으로 귀화했다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마을에 돌아오는 이로운 효과들.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맙다. 그래도 내가 힘들 때 도와주셨던 분들이시니 이제는 내가 도와줘도 거절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물론! 공짜라면 양잿물도 기꺼이 환영이지!”

그렇다고는 해도 이제는 힘든 시절 이것저것 제공을 많이 받은 만큼 진우 또한 사정이 넉넉해졌겠다.

이제는 이미지를 위한 기부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도움을 어르신분들께 드릴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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