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칼날 파괴신 부르스티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 그래도 두 번째 청인데 좀 받아줄 수 없는 건가? 정말로 맛있는 곳인데.”
이미 앞서 식사 제안을 거절했던 진우다.
제안한 이는 평범한 인물도 아니고 무려 러시아의 대통령.
세간에서는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독재국가의 독재자라 불리는 인물.
게다가 진우는 요정 찻집의 정보를 통해서 블라트 나자르프가 마피아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 중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 않은가?
호의도 계속해서 거절당하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법이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꿀리는 게 있는 ‘을’의 입장에 속할 경우에나 해당하는 경우다.
“크흠, 아실지 모르겠지만 레이드 직후라서 피곤하네요. 휴식을 취해 둬야 다른 곳도 정화하러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그건 그렇겠군. 실례했네. 내가 너무 내 입장만 생각했어. 자, 어서 타게나.”
정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해도 결국 정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현재 블라트가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서 써먹고 있는 정화.
그걸 진우라고 해서 써먹지 않을 이유는 없다.
아니, 오히려 더욱 잘 써먹을 수 있는 게 진우다.
생방송으로 보여 주었던 것처럼 정화는 오로지 유진이에게 힘을 빌릴 수 있는 자신만이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블라트는 죽어도 날 못 건드린다는 거지.’
생방송에서 보여 준 샐리온의 압도적인 화력이 없더라도 정화가 급한 러시아에서 진우를 건드릴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되려 그 반대로 신변에 위험이 생기면 지켜 주려고 하는 쪽일 터였다.
적어도 러시아에 정화 작업이 모두 다 끝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정화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게이트의 발생과 폭주는 현재 이 시간에도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서 그나마 예방책이 있다면 정화가 가능한 진우인데, 이러한 고급 인력을 생각 없이 건드릴 인물은 세상에 없다.
‘여섯 마리의 뱀들만 제외하면 말이지.’
언제 진우의 목을 노릴지 모를 니드호그의 하수인들.
그런 의미에서 지금처럼 레이드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전리품뿐만 아니라, 농사 활동으로는 얻을 수 없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막대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러시아가 유독 영토가 넓어서 몬스터 웨이브와 그에 따른 환경 동화의 오염이 심해서 그렇지.
다른 나라라고 해서 정화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당장에 한국만 하더라도 북한의 경계에 있는 인근에 헌터를 보낼 수 없어서 난리가 난 곳이 있으니까.
사람은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법.
이번 생방송에서 직접 정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대놓고 공개했으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세계 각지에서 진우에게 의뢰를 요청해 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완전히 포기한 영토를 되찾는 것만으로도 얻게 될 이득과 지지율은 상상 이상일 테니 말이다.
“지지율이 상당히 많이 오른 것 같던데요?”
“모두 다 자네 덕분이지 않겠나?”
“과찬이십니다.”
“그럴 리가 있겠나. 겸손이 미덕일 때도 있겠지만 이건 세계의 수십억 인구 중에서 자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만?”
“그렇다면야, 뭐.”
실제로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인물이 눈앞에 있기도 하고.
솔직한 말로 드루이드.
정확히는 농부가 된 입장으로 이런 장시간 원정은 경험치를 제외하면 그다지 원치 않았을 의뢰였지만, 이제는 조금 경우가 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특성, ‘정화자’를 획득합니다.]
이번 사할린을 ‘직접’ 정화하면서 획득하게 된 새로운 특성.
* 정화자 : 정화한 지역과 게이트를 자신의 소유로 삼습니다.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존재의 경우 입장이 제한되거나, 능력치에 패널티가 부여됩니다. 정화시킨 지역의 숫자에 따라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 사할린의 용암지대(마력+5)
‘숲의 주인’과 비슷하면서도 더욱 효과적일 수 있을 특성.
남들이 간섭할 수 없는 게이트와 실질적인 땅의 주인이 된다니?
‘땅 부자는 못 참지.’
자고로 욕심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 그대여, 속내가 다 보인다.
-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좀 다른 것 같은데?
- 태초의 선배님들. 저 인간. 원래 저런 놈입니다.
-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인간이죠.
- …….
그리고 진우는 욕심이 아주 많은 인간이었다.
* * *
사할린에서의 일을 끝마치고 다시금 복귀한 러시아.
당연한 말이지만 그곳에는 이미 진우를 기다리고 진을 치고 있는 이들이 한 트럭이었으며 모두 대기 중인 상태였다.
“김진우다!”
“대체 정화는 어떻게 하신 건가요?”
“러시아의 오염된 영토를 전부 다 구해 주시는 겁니까?”
“정화에 따른 보답으로 유석의 파편을 요구하셨는데, 국보를 가져가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다만 그다지 반가운 손님들은 아닌 기자 무리들.
초상권이나 사생활을 모조리 무시해 버리는 기자들이 밉상인 것은 세계 어딜 가나 똑같은 법칙인 것일까?
심지어 진우는 솔로 레이드로 전투까지 치르고 온 직후였다.
……물론 ‘굳건한 체력’과 물의 정령왕인 엘라인의 치유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이미 피로는 해소한 상태긴 했지만, 상대하기는 영 골치 아프단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무시하자니 인성 논란으로 기삿거리를 던져 주는 셈이 된다.
허나 해결법이 전혀 없진 않았다.
“공항에서 했던 경고가 우습게 여겨진 모양이로군?”
“히익!”
……데자뷰인 건가?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대통령의 직속 경호원인 카리브가 으르렁대자 하나둘 물러서는 기자들.
뭐, 진우로서는 이미지를 지킬 수 있으니 나쁠 것은 없을 터.
“이건 러시아의 모든 국민이 궁금해하는 사항입니다!”
“카리브 벨랴코프.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국민의 알권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공항 때의 기자들보단 나름 급이 상승한 기자들이라고 해야 할까?
카리브의 경고에도 물러서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미는 기자들.
하지만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기자들도 한 인물이 나서니 모두 해결된다.
“다들 무슨 일인가?”
“대, 대통령님!?”
“대통령님께서 왜 여기에…….”
“직접 데려온 구국의 영웅을 데리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아, 아뇨. 그, 그건 아니죠.”
독재 국가인 러시아.
그것도 최대 독재자가 앞에 있는데 카메라를 들이밀 정도로 멍청한 기자는 러시아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직업의식이 투철하다고는 해도 쥐도 새도 모르게 숨진 채 발견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날 이런 식으로 사용한 건 자네가 처음일 거야.”
“칭찬 감사합니다.”
“크하핫. 자네는 이걸 칭찬이라고 생각하나?”
“그럼요. 당연하죠.”
헬기에서 내렸음에도 굳이 블라트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약속한 대로 유석의 파편은 받아 가도 되겠죠?”
“물론일세. 그런데 일이 전부 다 끝나고 가져가는 건 안 되겠나?”
“다른 곳도 빼먹는 곳 없이 정화해 드릴 테니 걱정 마시죠. 제가 설마 도망치기야 하겠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나. 당연히 자네의 신용과 실력을 믿고 있다네.”
러시아와의 거래.
일말의 감정 없이 서로 간에 이득만이 존재하는 비즈니스가 이루어졌다.
한 가지 약속을 이행했으니 이제는 그 보답을 받을 차례라는 거다.
* * *
“이곳에서 쉬시면 됩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러시아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단은 러시아의 직접적인 의뢰를 받고 찾아온 입장인 덕분일까?
굳이 호텔을 구할 필요 없이 진우는 나라의 장관들이나 쉴 법한 공간에서 혼자 쉴 수 있게끔 배려를 받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순수한 호의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계약자의 말대로 수상한 시선이 있긴 하더군. 파괴하진 않고 가볍게 시야를 흐트려 놓았다.
“고마워요, 미네르바.”
- 이 정도쯤이야. 가볍게 바람을 내쉬었을 뿐이야.
솔로 레이드.
그것도 웬만한 헌터들은 쉽게 접근하기도 힘든 사할린의 네임드 몬스터를 단 한 방에 처리해 버린 진우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폭탄이나 매한가지인 셈.
뭐,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약점이라던가 약간의 정보라도 얻을 수 있다면야 진우 또한 똑같은 방법을 취했을 터.
그렇다고 해서 CCTV로 정보를 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독재자의 덕을 좀 보긴 했네.”
진우 또한 대한민국의 법에 의해 군대를 만기 전역한 군인이다.
한국의 병역 의무가 징병제로서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 북한 덕분에 독재자를 결코 좋아할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이런 일에 있어선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이게 유석의 파편이라 이거지?”
진우의 손에 쥐여진 파란빛깔의 자그마한 구.
얼핏 보면 보석처럼 보이는 물건은 바로 유석의 파편이다.
한국이나 미국이었더라면 정치인들의 방해로 얻는 것에 상당한 기간이 소모되었을 테지만, 러시아는 그냥 블라트 나자르프의 한마디로 게임이 오버됐다.
하긴, 이러니 독재자라고 불리는 거겠지만 말이다.
[유석의 파편(측정 불가)]
* 분류 : 재료
- 유석의 힘이 깃든 파편입니다. 내부에 신화적인 힘을 품고 있으나 올바른 제작법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훼손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측정 불가 등급의 재료.
신화적인 힘을 품고 있다는 설명대로 제대로 녹여 낼 수만 있다면야 현재 진우가 사용하는 무기인 천둥석 건틀렛이나 기타 다른 무구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장비를 제작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그 ’방법’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냥 박물관에 국보로서 장식품 정도로 여겼지만, 진우가 누구던가?
요정 찻집의 정보력은 물론이요,
그룩 토르산과 만트 데름이라는 믿음직스러운 두 명의 드워프를 농장의 동료로서 두고 있는 몸.
제작법과 장인, 그리고 재료까지.
모두 다 갖춰졌으니 망설일 이유가 있겠는가?
“그럼 보는 눈이 없을 때 후딱 다녀와 보실까.”
모름지기 무구 제작이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법.
이곳이 러시아라고는 해도 진우에게는 단박에 한국까지 이동이 가능한 방법이 존재했으니,
“숲의 주인, 칼날엄니 숲으로.”
스르르르-
‘숲의 주인’을 통한 게이트로의 이동.
러시아에서 한국에 위치한 게이트까지의 이동은 상당한 마나를 요구했으나 챠카를 사냥하면서 오른 레벨.
거기서 얻은 능력치 포인트를 전부 다 마력에 투자한 진우였다.
게다가 아무래도 샐리온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 생명력까지 끌어 쓰던 때에 비하면 이 정도 마나 소모쯤이야 이제는 껌이란 말씀.
그나저나 오랜만에 찾은 칼날엄니 숲인 탓일까?
아니면 진우의 입장을 단박에 눈치챈 것일까?
쿠구구구-
어느 쪽이든 간에 진우를 확인이라도 한 듯.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사나운 발걸음 소리.
이어서 그 원인은 진우를 향해 폴짝 뛰어서 달려든다.
“꾸위이이잉!(엄마다!)”
과거 할짝이가 칼날엄니 숲의 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섭취함으로서 탄생하게 된 칼날 파괴신 부르스티.
분명 그때 당시에만 하더라도 뽀송뽀송한 살결이 귀여운 멧돼지였는데, 세월이 흐르긴 한 탓일까?
“……어?”
이제는 진우보다도 거대해진 크기의 부르스티.
그러한 녀석이 포옹해 달라고 달려드는 것은 사실상 살의만 없다 뿐이지.
흉흉한 몸통 박치기나 다름없을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