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122)

00026 11 . 하이랜더 증후군. =========================

 드물게 치마정장에, 검은 구두까지 신은 나는 법원 앞에서 기지개를 켰다. 내 뒤에는 구가 서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보통 법적 처벌은 소송 순간부처터 재판까지 몇개월이 걸리는 귀찮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내 뒤에 선 녀석의 변호사에 판사까지. 원래대로라면 항소까지 거쳐서 아주 길어졌겠지만.

 증거를 제외한 모든것이 조작된 법정으로 인해, 정말 빠르게 모든 일이 끝났다. 다만 죄는 구형되었으나, 형은 구형되지 않았기에 아직 교도소를 간 것은 아니었다.

 오빠에게 인정된 죄목은 강제추행과, 폭행, 살인미수.

 거기다 내가 법정에서 눈물까지 뚝뚝 흘려가면서 판사님에게 애원하며, 제발 처벌해달라고 하자, 법정은 더 술렁거렸다. 유일하게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고있는 오빠만이 가증스러운 눈물을 보는 표정을 지었지만.

 가증스러워도 어쩌겠니. 죄인은 내가 아니라 너였어.

 이제 처벌은 내 손을 떠났다. 죄는 인정되었으니, 형량의 구형만 남은것이다.

"아! 상쾌하다."

 구, 그리고 구의 뒤에 선 변호사까지. 나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왜?"

"....너. 눈물..."

"아 눈 따가워. 눈물 너무 많이 흘렸나?"

 모르는 척,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고 눈가를 비쳐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눈 주변의 화장이 조금 지워져 있다.

"너.. 가짜 눈물이었어?"

"반은."

 탁 타닥. 핸드폰이 떨어졌다. 왼손으로만 어깨에 걸린 가방에 핸드폰을 집어넣으려다, 떨어트린 것이다.

 내가 주우려고 다가갔지만, 구가 먼저 그것을 주워 나에게 건넸다.

"아 고마워."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던 구의 얼굴을 보다가 등을 돌렸다. 처음에 내 핸드폰을 손댈 때와 다른 반응에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을 한번 닦고 다시 가방에 넣었다.

"...아. 그럼 가보겠습니다. 윤구 도련님."

"수고하셨습니다, 백 변호사님."

 검은 승용차를 타던 변호사가 나를 한번 흘끔거리고 사라졌다. 나는 나대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기다려!"

 또 뭐.

"바래다 줄게."

"싫어. 어디로 샐 지 알고, 내가 니 차를 타겠니?"

"안 새!"

".....좋아."

"대신 점심 정도는 같이 먹자."

"......"

"...뭐, 뭐!! 왜!! 저 안에서 쳐박힌 시간이 자그마치 한시간이야! 너도 밥 안먹었을거 아냐!"

"좋아. 단 한시간."

"너무 짜!"

"이동시간은 안 쳐주는거야. 싫으면 말고."

 집에 가서 먹을 요량으로 등돌리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가자. 얼른 다가와서 내 가방의 끈을 잡는다.

"아, 진짜.. 알았어 한시간.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어물어물 무언가를 말하려던 구는 발 끝으로 바닥을 한번 차고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글고 나는 두발 떨어진 거리에서 천천히 그를 따라 걸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안전벨트를 매고 핸드폰을 들어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모서리에 흠집이 나 있다. 케이스 예쁜걸로 씌워서 마음에 들었었는데.. 뭐 액정은 깨지지 않았으니까. 그것만으로 만족할까.

"뭐 먹고싶은거 있어?"

 음, 있지.

"있긴 한데 너는 절대 못사주는거."

"하?! 너 지금 나를 너무 무시한다?"

"이탈리아 본고장의 갓 만든 치즈. 한시간 안에 가능해?"

"...마음껏 무시해라."

 뭐 농담이지만.

"그럼 삼겹살."

"갑자기 팍 소박해졌는데."

"원래 좋은날에는 삼겹살을 먹어서 기분을 돋우는거야."

"그럼 슬픈날에는?"

"당연히 삼겹살을 먹어서 기분을 좋게 해야지."

"그럼 아무것도 아닌 날에는?"

"삼겹살을 먹어서 특별한 날로 만들어야지."

"......"

 앗차. 나도 모르게 들떠서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부러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탓에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아서 혐오감이 덜했기 때문일까.

 확실히 익숙함이라는건 무섭다. 혐오감이 옅어진 느낌마저 드니까. 하지만 그건 느낌일 뿐, 진짜는 아니었다.

 나는 확실히 놈을 혐오한다. 나를 향하는 그 눈에 소름이 끼칠만큼.

 입술을 한번 씹고, 조수석의 사이드미러 쪽을 빤히 본 나는 천천히 물었다.

"너 이름이 강 '윤구'야? 강윤 '구' 가 아니라?"

"응.

"...나는 성이 강윤인줄 알았는데. 성이 강이었던거야?"

"응. 증조할아버지 때 부터, 이름 가운데에 윤자를 집어넣었거든. 그래서 다들 우리 집안 성씨가 '강윤' 인 줄 알아. 아마 회사 이름도 그래서 그렇다고 생각할걸?"

 그것도 그러네.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 이거."

 당연하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관심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건 자의식 과잉이야.

 일단 당장 제일 가까이 있는 나를 봐라. 너한테 관심이 있나 없나.

 니가 세상을 본다고 해서, 세상이 너를 보고 있는건 아니야. 이렇게 쉬운걸 모르니?

 나는 16살에 깨달았는데 말이야.

 괜찮아, 너도 곧 알게 될거야. 내가 알려줄게.

 자글자글 불판 위에서 삼겹살이 맛있게 익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시간에도 삼겹살을 파는곳이 있는게 더 신기한데."

"너 대학 안다녔어? 대학로에 이런거 많아."

"...난 이런데서 안 먹었어."

 흐음.

 중학교를 나와 같은 학교를 나와서 익숙하겠지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너 중학생 때, 나에 대해서 기억 안나?"

"으음..."

 익는 삼겹살의 불판 앞에서, 구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지만 결국엔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떠오르는건 없는 모양이다, 결국에는 고개를 가로젓는걸 보면.

"뒷조사는 안된다고 하면서 물어는 보네, 조금 치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난 그래도 된다. 난 너한테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거든.

"난 그래도 된단다, 아가야."

"아가라니. 동갑이거든?"

"....너 평소에 술먹고 클럽 자주 가지?"

"제집처럼 드나들지!"

 자랑스럽게 말하는걸 보고 고개를 젓고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너한테는 클럽보다 더 잘 어울리는곳이 있거든."

"어디?"

"놀이터. 니 멘탈로는 놀이터정도가 딱이야."

"뭐?!"

 생각을 해 봐. 니가 하는 짓이나. 생각을 보면, 너는 놀이터정도가 아주 잘 어울린단 말이야.

 이 말은 생략했더. 더 말했다간 관계에 불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눈치와, 본능이 하는 경고였다. 나는 사람이었지만 5년 가까이 짐승처럼 다루어 졌으니, 어찌 보면 이게 맞는걸지도 모르지.

"아 다 익었다."

"잠깐, 놀이터가 어울린다니!"

"...."

 거 집요하네.

"네 머릿속이 꽃밭이라고."

"...내가 좀 꽃밭이긴 하지. 천진난만 해."

 내 앞에 염치없이 나타나고, 그런짓을 저지르고, 잊어버릴 정도로. 나는 아직도 네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진짜 .....어.'

 쌈을 싸던 손을 멈추고, 손에 들고 있던 깻잎을 떨어트렸다.

"서유성?"

 옆에 놓인 작은 거울 속의 내 얼굴을 하얗다 못해 창백하다.

 식도가 쓰린 느낌이 들었다. 혀 옆에 신물이 고였다. 당장에라도 토할것 같았다.

 의식적으로 저 어두운 구석으로 던져둔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말이 기어올라왔다.

 깻잎에 있던 물기가 묻은 손으로 입을 막고 화장실쪽으로 뛰어갔다.

"서유성? 야!!"

 놀란 녀석이 뛰어서 따라왔다. 남자 여자 나눠진 화장실이 아닌 공용인 화장실엔 마침 아무도 없었고, 나는 얼른 변기를 잡고 토했다.

"웨엑!! 케헥!!"

 꿀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죽을것같았다.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에, 말간 위액이 나왔지만 내 눈에는 다른게 흐릿하게 지나갔다. 누군가의 고운 턱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느낌의 턱선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비슷한 느낌의 아이돌을 보고 조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적도 있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안 돼, 안.. 돼.. 떠올리면 안 돼..!

'나를 볼 때 마다, 설레 죽겠다는 그 표정을 볼때마다 얼마나 역겨웠는지 알아?"

 낄낄거리는 조롱이 들려왔다. 발믿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사형당하는 죄수의 발판이 꺼진 느낌이었다.

"괜찮아?"

누군가 내 등을 두드리면서 안부를 물어온다. 따뜻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는 왠지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역겨운데. 역겨운데 말이야..'

낄낄거리면서, 누군가가 말하는 머릿속의 목소리가. 현실의 목소리와 겹쳐진다.

'진짜 웃겼어, 서유성.'

"정말 괜찮아? 유성아?"

 내 등을 두드리는 녀석을 밀치고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몸을 웅크렸다.

 가장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그 말이. 마지막으로 말 했던 그 말이. 저 아래에서 기어올라왔다.

 내가 너에게 준 감정은, 사랑은. 비웃음이 되어, 경멸이 되어서 나에게 돌아왔구나.

"아, 아아.. 아아아악!!!!"

 유성은 전신에 벌레가 기어가는 감각이 느껴져 몸을 더 웅크렸다. 등이 벽에 닿은 윤구는 유성에게 손을 뻗었지만 그 손은 유성에게 닿기도 전에, 유성이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경멸과, 비웃음의 낭떠러지로 밀어넣어졌다. 계속해서 나를 밀어넣고 있어. 너의 말. 너의 웃음. 그 모든것이 나를. 그 아래는 질척한 진창.  멀어지는 의식 너머로 윤구의 옷자락을 잡았다. 나 혼자 떨어질순 없어.

 같이 가자, 응?

 멀어지는 의식 너머로 무언가의 도화선에 불이 붇는 느낌이 들었다. 그 도화선은 내가 잃어버린 행복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시는 찾을 수 없게 재로 만들어져, 바람에 날려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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