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7 18 . 에드하임 체스터 =========================
"그럼 가볼게."
"벌써?"
"응. 여기 들려보려고."
어깨에 걸린 긴 크로스 백을 손바닥으로 한번 두드려보이자. 하영이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든다.
"직접 가는건 위험해. 그냥 전화로."
"아니. 이런건 직접 가야해. 전화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을테니까."
"위험을 굳이 감수할 필요는..!"
"해야 할 때도 있어."
하영이는 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다 한숨을 쉬었다. 더는 말리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조심해. 그런데는 눈 뒤집히면.."
"걱정하지 마. 이거 복사본은 없는거지?"
"응. 그런 위험한거 복사해서 여러개 가지고 있을 생각 없어."
"그럼 됐어."
조금은 낡은 느낌이 드는 베이지색의 3층 건물, 하영이도 참.. 이런데는 어떻게 알아낸거야. 나중에 물어봐야지.
분명 3층 이랬지.
낡은 유리문을 밀고 1층의 입구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듯, 청소가 거의 안된 더러운 느낌의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도 엄청나게 낡아서 곳곳의 칠도 벗겨지고, 바닥도 패여있었다.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서 난간을 잡고 올라가려 하자, 난간이 삐걱거린다. 그 삐걱거리는 소리가 더 무서워져서, 난간에서 손을 놓고, 벽을 짚고 올라섰다.
다함 흥신소. 음.. 여기다.
시트지가 붙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프링이 삐져나온 낡은 쇼파.. 세상에, 요즘에도 스프링이 들어간 쇼파가 있다니. 놀라운데.
"아, 손님. 어서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
조금은 더벅한 머리의 나랑 나잇대가 비슷해보이는 청년이 의자에 늘어지듯 누워서 책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에게 말했다.
"아, 좀!! 일어나라고!!"
"어, 엉.. 나 밤 샜다니까, 깨우지 말라고."
"손님이라고!! 이 늙은이야!!"
"늙은이라니, 이래뵈도 아직 창창한 30대.. 손님이라고?"
"엉!!"
"...사기치지마, 이 새키야. 지금 손님 끊긴지가 세달... 아, 어서옵쇼."
..수염은 남자의 로망인걸까. 도데체 누가 남자의 로망이라고 한건지.. 자르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 말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
돌고 도는 둘의 시선은 나에게 향했다.
"...야이 등신아!!"
"억!"
책상에 발을 올리고 자고 있던 남자는 보고있던 책을 자신을 깨운 이에게 집어던졌다.
"손님이 아니라, 애송이잖아!! 솜털도 보송보송한!! 아무나 들락거린다고 쳐 깨워? 뒤질래?!"
"아 뭐!!"
"돌려보내!!"
"손님이잖아!!"
"저런 애송이 의뢰까지 받아야.."
"면전에 대고 그런말을 하면 실례인거 같은데요, 아저씨."
내 말 한마디에 싸우던 둘이 조용해진다. 나를 보는 시선이 얼굴에 닿아서, 나는 조용히 웃어보였다.
"그거 미안하긴 한데. 우리쪽에서 솜털 보송보송한 아가한테 받을 의뢰는 없는거 같은데."
솜털 보송.. 내가 그렇게 어려보이나..?
"있을건데요."
"아니, 영감님, 일단 들어보는게.."
"애송이잖아. 얼핏 보기에도. 20대 티 못벗었는데."
"나도 그렇거든요."
"너는 너고. 여튼 돌려보내."
"아, 좀 일 좀 들어오나 했더니. 아가씨 그만.."
"무슨 일이든 해 준다고 들었어요."
"네네, 그렇긴 합니다만. 아가씨 일은 안 받."
"원하는대로 줄게요."
멈칫.
"내가 부탁하는거 하나만 들어줄래요?"
"....영감님."
의자에 앉아있던 그가 일어나서, 내 앞에 앉았다.
"아가씨 돈 많나? 우리가 10억, 100억, 1조 부르면 그렇게 줄 수 있나?"
"아뇨. 하지만 제 부탁을 들어주시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해요."
"...왜. 누굴 패 줘?"
"아뇨."
"고양이 찾기 같은거는 안 맏."
"사람도 죽여주실수 있나요?"
"....우린 그런 일 안맏아. 미안하지만 딴 데 알아."
"제 부탁 들어주는게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쾅!!
책상에 늘어져 자고있던, 이방수염을 기른 그 사내는 내 앞의 테이블에 발을 찍듯이 올리며 내 목을 틀어쥐었다. 하지만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겁만 주기 위한 용도.
"아까부터 말 자르는 솜씨가 예술인데, 아가씨."
"예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법이죠. 정 다함씨?"
"..내 이름, 어떻게."
"다 아는수가 있죠. 안그런가요?"
"..젠장, 똥 밟았네. 어떻게 알아낸거야?!"
"셋 중 두명을 죽여야 비밀이라는게 유지되는것과 같은 원리로요."
사실 나도 방법은 모르지만 비슷한 원리 아니겠어?
"그래도 우리는 사람 죽이는 일은 맏지 않아. 이제는."
"죄를 뒤집어 써 줄 사람도 준비해 둘게요."
"뭐?"
"당신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내 말에 조금 싸늘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수염을 다함의 옆에 서 있던, 내 또래의 청년이 나와, 사내의 눈치를 살핀다. 나는 힐끗. 그 시선을 보다가 내 목을 잡은 그 사람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 아가씨가 지금 뭐라는거야. 그런 깔끔한 얼굴로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늙은이. 이거 괜찮은거야?"
"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들이 이 일에 대해서 책임질 일은 없어요, 성공만 한다면."
내 목을 쥐듯이 잡고있던 이는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놓고 물러서서, 내 맞은편의 자리에 앉았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지."
"네."
내 또래의 청년. 신 하현이라는 사내는 입을 틀어막았다.
"....확실히 간단하긴 한데. 얼마를 줄거지?"
나는 조용히 가방 안에서 하영이에게 건네받은 서류를 건넸다.
"이걸 드리죠."
"이건?"
"당신들의 치명적인 비밀이 담긴?"
"....애송이. 열어서 확인해봐."
하현이 내가 내민 봉투를 빼았듯 낚아채고 그것을 열어보았다.
"영감님."
"마약 브로커. 무기 밀수. 살인도 하셨던데. 한번 더럽혔다고 두번 더럽히지 못할 건 없죠."
"..지금 이걸 태우면 우리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가씨 뿐일것 같은데?"
나는 조용히 웃으면서 핸드폰을 보였다.
"저는 신중한 사람이라서요. 제가 한시간 안에 친구에게 연락을 주지 않는다면 저의 소중한 친구가 손이 미끄러져서 이 서류의 복사본이 인터넷에 쫙 뿌려지게 될지도 몰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가보는건 어떨까요?"
물론 복사본 따위 없다. 하지만 저들이 그걸 알 리 없지.
"유명인이 되는 기분도 나쁘지 않거든요."
'저기 전교 왕따 지나간다!'
'던져, 던져!!'
'명중!!'
'아, 피하고 지랄이야.'
지우개, 펜. 먹다 남은 유우. 내 몸에 맞는 느낌이 들 때마다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프리마 돈나도 이런 찬사를 받은 적 없을거야. 그 소리가 나를 부수었지.
"...선금은?"
목에 잡힌 손에서 힘이 풀어지자, 직접 그 손목을 잡고 내 목에서 손을 치워내며 말했다.
"없어요."
"뭐?"
"그러게 제가 부탁할 때 들어주시지, 그럼 이것도 조용히 없애줬을건데. 대신."
"대신?"
"당신들의 비밀은 제가 무덤 아래까지 가져갈게요."
"아가씨의 친구는?"
"그 얘는 내용까지는 몰라요."
"우리가 그걸 어떻게 믿지?"
"제 목숨이요. 사람을 죽여달라는 부탁도 했으니 신용 없는건 아는데.. 아저씨들 한테는 이 선택지밖에 없는거 아시죠?"
"젠장. 좋아. 아가씨 부탁 들어주지."
"네. 그럼 제가 나중에 다시 한번 연락드릴게요."
"진짜,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이는지 모르겠는데. 아가씨 무슨 지옥에서 올라온 마귀같은건가?"
"글쎄요. 최소한 그렇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지적 당하고 싶지는 않네요."
"이름도 약점도 알면, 이미 신상 명세는 다 안다고 봐도 될 것 같은데?"
"그건 저구요, 아저씨가 저에 대해 아는건 아니죠."
"...아가씨, 이름은?"
나는 옷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키득키득 웃으며 대답했다.
"마귀요."
지옥에서 올라온 마귀.
============================ 작품 후기 ============================
역시 연재를 하면 왠지 글을 쓰는 속도가 올라갑니다 :)
/ 사실 쉬는동안 비축분을 한 여덟개정도 만들었는데, 속도가 상당히 느린편이었죠(시무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