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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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화롭네.

 파티장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면서도, 구석쪽에 위치해 눈에 잘 띄지 않는 층계참의 난간에 기대서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듣는 사람이 없지만.

 연화호텔은 최상층 35층까지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손님을 받는 숙박은 30층까지만 하고, 나머지 다섯개 층의 공간은 말 그대로 파티룸으로 활용하는 엄청난...

"돈지랄."

"언니, 돈지랄이라뇨! 이래뵈도 제가 전부 디자인한 행사 라구요?"

 듣는 사람이 없는줄 알았더니, 아주 잘 듣고 있네. 그것보다 지금 저거 완전 돈지랄인데.

"부럽네."

"뭐가요? 돈지랄이라더니."

"나도 돈지랄 하고싶은데, 돈이 없어서 지랄밖에 못하네. 그래도 봐줄만 하네."

"그래요?"

 내 말에 뻐기는듯한 표정으로 긴 머리를 넘기는 연화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 어린 모습이 조금은 나이대의 사람과 비슷해 보여서. 나는 가지지 못하는데 그런 모습. 조금 부러운걸.

 제 머리카락을 넘기던 연화가 차분하게 늘어진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손으로 쓸며 말했다.

"그러고보니까,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네요?"

"음, 그러네."

"저랑 처음 만났을 때 길이로 되돌아 갔어요, 언니 머리카락 기르는 속도가 많이 느린편인가봐요."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느린편인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하영이보다는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상관 없나?

"연화야."

"네, 언니."

"넌 꿈이 있어?"

 내 뜬금없는 질문의 시선 끝에는 연화가 아니라 파티장에서 형의 옆에 서서 형의 사업 파트너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는 윤구가 있었다.

 너는 형을 미워한다더니 끝내는 그러지 못하는구나. 아니면 용서하겠다고 정하기라도 한 걸까?

 부럽네. 난 그런 여유도 없는데.

"꿈이요? 새삼 장래희망을 묻는것도 아닐테고..?"

"꿈이라는게 장래희망은 아니잖아. 그냥.. 가장 이상적인 모습 같은거 말이야."

"지금이 가장 이상적이에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패기도 없고, 뭣도 없어서 그냥 이대로 사는게 좋거든요."

"좋은 꿈이네."

"이런게요?"

"응. 현상유지라니, 좋잖아."

"그런거군요?"

"그런거지."

"그럼 언니는요?"

"내 꿈?"

 내 시선 끝에는 윤구가 있었고, 어느덧, 윤구의 시선의 끝에도 내가 있었다.

"멀지 않은곳에 있더라."

"그래요?"

 행복이라는 이름의 파랑새처럼.

 연화를 보내고 화장실로 향했다, 시간은 여덟시, 지금이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4시간 후에 효과가 나타난다지만, 장담할 수 없다. 그 무엇도.

 사람 몸이 기계처럼 그렇게 딱딱 맟추는것도 아니고. 다만 한가지 확실한것, 약효가 나타나는 시간은 최소 한시간에서부터 네시간 사이.

 살이 쪘다거나 덩치가 크면 그만큼 약이 더 느리게 돌기 때문에 내 이상적인 시간과 가장 맞아 떨어지겠지만, 나는 키가 조금 클 뿐 애석하게도 내가 원하는 시간까지 늘려줄 정도는 아니었다.

 지이익. 등의 지퍼를 내려 드레스를 벗자, 차가운 공기에 맨 살이 닿았다. 입술을 깨물고 집게손가락으로 배를 두텁게 쥐어 주사를 놓을 위치를 확인한 후, 가방 안에서 주사기를 꺼내 뚜껑을 벗겼다.

 이걸 놓는 순간부터는 모든것이 애드리브다. 계획이 있다고 해도 이건 돌이킬 수 없다.

 나는 당신들의 이기심과, 내 마음에 모든것을 걸었어. 그러니까..

 주사기의 피스톨을 살짝 밀어 공기를 빼 낸 다음 집게손가락으로 잡은 부분에 주사기를 수직으로 찔러넣고, 한숨을 쉬었다.

 내 원을 이루는건 '롱기누스의 창' 일까, '엘레나의 성정' 일까.

 주사를 놓고 옷을 추스르고 나오다 누군가와 마주쳤다.

"선, 배..?"

 선배가 여긴 어떻게. 옷도 매끈하게 잘 입고 있고, 마치 파티에 참가한 사람처럼.

"안녕, 후배님."

 선배의 모습은 평소와는 다르게 이질감이 든다. 옆에 있던 사람이 멀어진 느낌.

"...."

"후배님 예쁘네."

"아."

"다리도 다 드러내고.."

 선배가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쥐고 그 머리카락에 입술을 맞추었다.

"누구 보라고 그렇게 예쁘게 입고 다닌거야? 응?"

 선배의 표정이 부드럽다, 하지만.. 선배가 원래 이런 분위기였나?

"선... 배?"

 전혀 다른사람 같아서 당황스러웠다. 조금 무서운 느낌도 들었다.

"설마 그녀석?"

"....."

 내가 말이 없자 선배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렇게 무서워하지 마. 딱히 뭘 할것도 아닌데."

"뭐하는거야."

"으억."

 너무 놀라서 입에서 억 소리가 난 데다, 선배가 내 머리카락을 쥐고 있었기에 그것이 당겨져서 아팠다. 사실 그것보다는 내 뒤에서 나타나 내 목을 끌어안은 윤구에 시선이 닿았다.

"아파라.."

"미안 괜찮아?"

"안 다쳤어?"

"으.."

 두 남자들 사이에 낀 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좀. 놔줄래?"

"아, 미안."

 윤구가 내 말에 얼른 내 목에서 두른 팔을 풀어냈고, 선배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웃지 마시죠.

"선배도요, 언제까지 내 머리채 쥘건데요?"

"아, 응."

 조금 어색한 침묵이 흐르거나 말거나, 나는 가방을 잘 쥐었고, 선배는 윤구에게 나에게 보일때와는 다른 빈정거리는 미소로 물었다.

"얼굴 가죽이 두꺼운가봐요?"

"무슨 뜻일까?"

"아주 뻔뻔하게 그 고개를 우리 사랑스러운 후배님 앞에서 쳐들고 사는데. 나라면 그렇게는 못 살듯?"

"허. 우리 일에 제 삼자가 끼어들지 마시죠."

"우리라고 묶는게 더 불쾌할 것 같은데?"

"...당신이 뭘 안다고."

 아주 초딩이야 정말. 근데 이거 왠지 언젠가의 데자뷰? 아. 그때 그, 날의 데자뷰였군.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둘의 사이에서 벗어나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미리 쓰던 가방에서 GPS장치를 꺼내서 이 가방 안에 넣어두었다, 하지만 내가 이걸 끝까지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생각을 빠르게 정리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이건 때를 봐서 넘겨주자.

 소란스러운 앞을 보니 쓴 맛이 입 안에 돌았다. 인사를 하고 벗어날까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잡히는건 내키지 않는다.

 핸드폰을 들어 기본화면의 모든 어플을 치우고, GPS 어플을 눈에 띄게 둔 다음, 문자를 넣었다.

-어디 있습니까?

 웅, 짧은 진동이 울리고 빠르게 답신이 도착했다.

-옥상 정원, 얼어 뒤지겠거든?

 아하하, 죄송해라.

-그리 갈게요. 혼자 있나요?

-아니. 혼자는 아닌데.

-무리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나요?

-잠깐, 가능하면 연락 줄게. 그리고 여기 오지 않는게 좋을 것 같은데? 지금 아가씨를 어떻게든 잡으려고 혈안이거든.

-용케 그런 일을 하는 부분까지 올라갔네요.

-신분세탁의 힘이지.

 대단해. 돈. 나도 열심히 벌어서 갑질좀 하면서 살고싶었는데 말이야. 뭐 다른쪽으로 갑이 되어줘야지

 그것보다, 떨어져 나올수 없다면 알 수 없는데 정말.. 유감이야.

-그럼 제 물건 검사는 꼭 당신이 해 주세요.

-그건 어렵지 않겠지만.

 다음 문자를 보내려다가 어느새 다가온 윤구를 보고 얼른 핸드폰의 화면을 껐다.

 이런 더 보낼 내용이 남아있는데.

"뭐 해?"

"아니, 아무것도."

"너 우리 후배님한테 다가가지 마."

"허어? 지금 이 파티에는 내 파트너라는 자격으로 참석했거든요? 그러는 너는 뭔 자격으로 참가?"

 그건 나도 궁금했던 바 였기에, 조용히 선배를 봤다.

"자."

"어?"

 선배는 품 안에서 초대장을 내밀었다.

"할머니 덕분에 이런데 참가할 자격도 있고 말이야."

"할머니..?"

"좀 높으신분들하고 연이 많아서. 뭐 그 부분은 나중에. 후배님 궁금하면 나중에 알려줄게."

".....아 네."

 별로 궁금하지 않다, 선배의 집안에 대해서 약간의 흥미는 있지만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겠지. 선배가 지금 말 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알고싶지 않았다, 지금 말하기 싫은것일수도 있잖아?

"옥상에 정원 있던데 보러 갈래?"

 윤구가 난감한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 거긴.. 지금 뭣 때문인지 막혀있더라구. 가 보려고 했는데 말이야."

 나 하나때문에 옥상도 막아놓고 말이야. 음음.

"신경 쓰지 말아요, 이따 보러 가면 될 거 같은데요 뭘."

 내 말에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고, 윤구는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그런것보다는 내 신경은 온통 다른곳에 쏠려있었다.

 오늘이다.

 다섯, 아니. 네시간 안에 모든것이 끝난다. 복수의 끝을 내 눈으로 볼 수 없는게 아깝지만 그래도..

"선배."

"응 후배님."

"나중에 뵈요."

"뭐? 후배..!"

 나는 조용히 윤구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선배는 망연히 내 모습을 보고 있었고, 나는 윤구에게 최대한 예쁘게, 자연스럽게 웃어보였다.

 나는 남은 네시간동안 너에게 겪은 모든 일들을 떠올릴거야.

 너와 나에게는 불행하게도 말이야.

============================ 작품 후기 ============================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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