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능력이 OS-54화 (53/334)

54화

-망연자실(茫然自失) (3)

이름: 소영삼

등급: S-

고유능력: 통솔의 일침, 진공의 돔, 에어 블레이드, 위저드 아이.

HP: 152330

MP: 103780

보인다! 놈이 내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역시나 나도 S급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험해 보자.

“그림자밟기.”

나는 소영삼의 그림자로 숨어들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가 놀라며 발밑을 내려다봤다.

나는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사고정지.”

이번 버전 업으로 몽환의 파생 기능, ‘사고정지’가 생겼다.

능력은 뇌 기능 일시 정지다.

그는 마네킹처럼 주차장에 서 있었다.

“컨트롤 C, V 이지완.”

[소영삼의 고유능력을 복사해 이지완에게 붙입니다.]

[3, 2, 1. 설치 완료.]

[다수의 정보가 입력됩니다.]

“컨트롤 C 뇌격, V 소영삼.”

[뇌격을 복사했습니다. 소영삼에게 붙여넣습니다.]

할 일을 마치고 주차된 차 옆에 숨어 있는 승현이의 그림자로 빠져나왔다.

승현이는 가만히 서 있는 소영삼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소영삼을 보며 말했다.

“사고정지 해제.”

우와악!

소영삼이 소리쳤다. 그러다 아무것도 없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몸이 허해졌나? 보약이라도 지어 먹든지 해야지.”

소영삼은 아무것도 모른 채 아파트 내부로 들어갔다.

“대체 뭘 한 거야?”

“말했잖아. 씨뿌리기.”

“말을 말자. 그런데 너 닌자야?”

“흐흐흐. 그렇게 보였냐?”

“내가 알기론 그림자 능력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던데.”

“최고 희소 능력이 뭐가 있지?”

“당연히 수인화지.”

“아, 김태우.”

“김, 태우?”

아차, 이놈의 입이 또. 내가 말이 없자 승현이가 농담을 던졌다.

“너 점점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업데이트 중에 꾼 꿈이 생각났다. 녀석에게 물었다.

“승현아, 각성자가 사람이긴 할까?”

만약 그 꿈이 사실이라면.

내 OS가 어쩌면…….

녀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먹고 싸니까 일단 동물. 우린 이성도 있으니 인간이고.”

승현이를 멀뚱멀뚱 보다가 피식 웃었다. 녀석의 말이 내겐 단순 명쾌했다.

일단, 재료 손질은 어느 정도 됐다.

모울로 가자.

* * *

노주혁이 내게 말했다.

“지완 사장, 아버님이 큰일 치르셨던데.”

노주혁은 모울에 다시 돌아온 후로 내게 지완 사장이라 불렀다.

휴, 지완 사장이 뭐냐 민망하게.

나는 찡그리며 그에게 말했다.

“평소대로 부르세요.”

“그래도 호칭 정리는 해야지.”

“휴, 알아서 하세요. 그런데 제 아버지가 왜요?”

“오늘 테러당하셨더라. 몰랐어?”

“네? 테러……?”

아버지가 겪은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분노보다 의문이 앞섰다.

최태원의 부인, 엄주연의 돌발적인 행동. 그에 맞춰 나타난 기자들.

당연히 냄새가 난다.

“샬롯, 대호하고 엄주연 뒤를 캐 줘. 누구를 만나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금전 문제는 어떤지.”

그녀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내가 흥신소야?”

“좋은 말 있잖아. 탐정.”

탐정이란 말에 대호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형! 맡겨만 주세요.”

대호가 적극적이니 왠지 망할 것 같은데.

나는 샬롯을 보며 말했다.

“부탁할게.”

그녀는 새초롬하게 눈을 흘겼다.

“뭐, 그렇게까지 애원하는데 해 볼게.”

모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진중하게 부탁했다.

“한 방에 끝낼 생각입니다. 부족한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모울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이런, 너무 무거웠나?

나는 웃으며 다시 말했다.

“이번 일 마무리되면 인센티브 두둑하게 지급하겠습니다.”

인센티브란 말에 노주혁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해 보자고!”

한마음까진 필요 없는데…….

* * *

딸각.

병실로 가기 전 민석 선배 방에 들렸다. 그가 보이지 않았다.

노트북이 켜진 거로 봐선 화장실이라도 갔나?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띠, 띠, 띠, 띠리리!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민석 선배가 들어왔다. 그가 화들짝 놀라며 내게 소리쳤다.

“야! 자꾸 이상하게 들어올래?”

“이게 습관이 돼서 그럽니다.”

“내가 여자랑 있으면 어쩌려고!”

“그러게요. 어떻게 여자 흔적이 이렇게 없을 수 있어요?”

“젠장. 잘나가는 회사 이사가 됐는데도 여복은 계속 가난하네.”

그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봤다. 이 인간, 편의점하고 결혼했나?

그가 비닐봉지를 들며 물었다.

“만두하고 피자인데, 같이 먹을래?”

민석 선배가 만두를 씹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양쪽인데…….”

“만두를 먹든 말을 하든지 둘 중 하나만 합시다.”

그가 만두를 삼키고 내게 말했다.

“김 씨 두 놈이 싸우더라.”

“네?”

“김규현, 김규석. 쌍끌이로 자사주를 매입 중이야.”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아주 김칫국을 사발로 퍼마시는구나.

가만, 이거 잘만 하면 김규석 자리를 김규현으로 바꿀 수도 있겠는데. 그놈이 그놈이지만.

“선배, 김규현하고 직통 하나 뚫으시죠.”

“뭐 하려고?”

“김규석을 물 먹일 때 김규현이 필요합니다. 일단 제가 신호를 주면 김규현이 사들이는 주식, 던지라고 말해 주세요. 신호는 제가 관리국에 검사받기 전날입니다.”

“그걸로 신뢰를 얻겠다?”

“김규석이 부회장직에서 물러나면 아직 일신에 납품 전인 마석 형태 변환기 4기를 김규현에게 준다고 전해 주세요.”

그가 끄덕였다.

잠시 후 민석 선배가 뜻밖의 말을 했다.

“일신의 MOU 제의와 너의 살인 사건. 애초에 연관이 없어.”

“저도 압니다.”

처음부터 기묘한 일이었다.

문창표의 말대로면 부정 등록자와 불법 던전 레이드는 형량 대신 벌금으로 무마된다.

내가 살인을 저질렀다 해도 일신과는 무관하다. 그런데 놈들은 이 건을 협상 카드로 들이밀었다.

민석 선배가 방에서 노트북을 가져왔다.

“노트북은 왜요?”

“전에 김규석의 휴대폰에 깔아 둔 해킹 프로그램 살펴봤거든.”

“그 휴대폰을 아직 쓰고 있다고요?”

“나도 의외였어.”

해킹된 휴대폰 내용을 선배가 열었다. 그리고 두 가지를 알게 됐다.

나는 선배를 끌어안을 뻔했다.

첫 번째는 김규석의 방에 도청 장치가 설치됐다는 것.

두 번째는 나와 일신의 말도 안 되는 연결 고리에 대한 답이었다.

민석 선배는 노트북으로 한 남자의 이력을 찾았다. 나는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그의 이름과 직함을 중얼거렸다.

“이인화 차장 검사?”

“김규석의 약혼녀 이혜미의 이복 남매더라.”

“뭐 이렇게 족보가 복잡합니까?”

“그걸 왜 나한테 따져?”

나는 노트북을 노려보다 중얼거렸다.

“이것들 봐라.”

“이인화 이 양반이 영장을 치겠지.”

“그 신호가 여론에 나를 올린 거군요.”

“그렇지, 일단 시끄러우면 잡아넣고 족치겠단 거겠지.”

“증거는 만들면 그만이고.”

선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대체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왜들 이렇게 더 벌겠다는 건지.”

“그럼 선배는 마켓템에서 딱 먹고살 만큼만 받으시죠?”

“미쳤냐?”

빙긋 웃으며 선배를 봤다. 그는 깨달은 듯 말했다.

“그렇구나. 다 똑같구나.”

“다릅니다. 저들은 약탈자니까요.”

* * *

병원 침실에 환자복을 올려 뒀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문창표가 병실로 들어왔다.

“이제 마음을 다잡은 거냐?”

“네.”

“그런데 고작 재검사받는 데 기자며 일신 길드를 왜 부른 거냐?”

“만천하에 S급 이지완을 알리려고요.”

“휴, 지완아……. 아니다.”

문창표의 표정을 보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아저씨, 감사했습니다.”

“녀석아. 기분 나쁘게 왜 떠날 사람처럼 말해!”

“그럴 거면 진작 도망쳤겠죠. 흐흐.”

관리국 직원이 들어와 내게 수갑을 꺼냈다. 내가 손을 내밀자 문창표가 직원에게 말했다.

“그냥 가지?”

“그래도 절차가…….”

그가 인상을 구미며 직원을 노려봤다. 나는 수갑을 직접 차며 말했다.

“그냥 절차대로 따르겠습니다.”

문창표가 자신의 윗옷을 벗어 내 손을 덮어 주었다.

병원 입구에 나서자 카메라 플래시가 이리저리 터지더니 기자들이 득달같이 몰려들었다.

나는 문창표의 손에 이끌려 관리국 호송차에 몸을 실었다.

죄가 없다 해도 이때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다. 부모님과 내 동생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문창표가 내게 덤덤히 말했다.

“시간을 너무 끌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검사를 받으면 일신에게 휘둘리기만 할 테니까.

“검사가 끝나면 곧바로 검찰에 송치될 거다.”

“이인화 차장 검사입니까?”

문창표가 놀란 듯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하늘빛이 차갑게 느껴졌다.

* * *

경찰서 입구에서 서 있던 의경이 서성거리는 남자를 봤다.

남자의 차림새가 너무나 허름해 의경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의경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십니까?”

남자는 말이 없었다. 의경이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남자가 말했다.

“자수하러 왔소.”

의경은 긴장하며 남자를 봤다.

남자가 물었다.

“어느 과로 가야 하는지 알고 싶소.”

의경은 무전기를 들어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 * *

내가 관리국 입구로 가는 동안 여러 명의 기자가 질문을 퍼부었다. 하지만 묵묵히 입구로 향했다.

기자 한 명이 소리치듯 물었다.

“일반인을 죽였을 때 흥분되던가요?”

내가 걸음을 멈추자 관리국 직원 두 명이 나를 잡아끌었다. 하지만 내가 전혀 움직이지 않자 두 사람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이때다 싶어 기자가 내게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또 누구를 죽였습니까!”

기자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일반인입니까?”

“네? 다, 당연하죠!”

내 질문에 기자는 잠시 당황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비릿하게 미소 지으며 또다시 물었다.

“왜요? 일반인만 보면 죽이고 싶은가요? 그런가요?”

문창표가 내게 다가와 나직이 말했다.

“뭐 하는 거야. 얼른 가지 않고. 이러면 상황만 더 복잡해져.”

나는 문창표를 보다가 주변에 들리게 말했다.

“제 능력 중 감정이 있습니다.”

모두 내 말에 귀 기울였다. 내게 질문한 기자를 보며 말했다.

이름: 고영훈

등급: F

고유능력: 탐욕의 세 치 혀.

MP: 30

HP: 70

“고영훈 씨. F급 각성자군요. 고유능력은 구라쟁이고요?”

고영훈이 놀란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다 잽싸게 도망치려 했지만 불발로 끝났다.

“억! 이거 놔!!”

고개를 돌려보니 샬롯이 고영훈의 팔을 제압하고 있었다. 관리국 입구에 있던 경비들이 고영훈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기자들이 나를 보며 웅성거렸다.

누군가의 말소리가 내게 들렸다.

“세상에, 감정으로 사람 이름까지 맞춘다고?”

나는 관리국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 * *

방 안을 둘러봤다.

회귀 전과 후. 합쳐서 7년 만이구나.

처음 각성자가 되고 6년 동안 들락거렸던 등급 검사실.

그때와 다르다면 내 앞에 감정사들이 여럿 서 있다는 거였다. 그중에는 일신 길드 소속도 보였다.

감정사들의 역할은 등급을 보는 게 아니다. 각성자의 능력이 어떤 계열인지 판별하기 위함이다.

각성자가 수정 기둥에 손을 대고 힘을 쏟아 넣으면 감정사들은 수정 기둥과 동조되는 듯했다.

등급은 내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수정 기둥이 하게 된다.

처음 검사를 받았을 때 수정 기둥의 빛은 연한 노란빛이었다.

F등급은 주황색이고.

나는 F등급에도 못 들었던 거다. 그런데 S급은 무슨 색상일까?

이때 관리국 소속 직원이 말했다.

“이지완 씨. 긴장 푸시고 등급기에 다가서세요.”

아아, 매번 했던 건데. 늘 똑같은 멘트구나. 레퍼토리 좀 바꿔라.

“자, 손을 가져다 대시면 됩니다.”

나도 모르게 손끝이 떨려 왔다. 손을 펴고 수정 기둥에 손바닥을 대며 눈을 감았다.

“그대로 힘을 주입하면 됩니다.”

우웅.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수정 기둥은 일단 각성자가 만지면 이런 반응은 기본이다.

등급기가 서서히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어디쯤일까?

혹시, S급이 아니라 SS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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