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원래대로 (1)
승현이가 놀란 듯 나를 멍하게 봤다. 또다시 소리쳤다.
“차석재 씨 어딨냐고!”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내게 물었다.
“넌 그 사람을 어떻게 아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해.”
“뭐?”
녀석이 모울 중앙 홀로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이 자식이. 빨리 말이나 하지, 왜 뜸을 들여!
나도 모르게 분노가 솟구쳤다. 승현이는 대호를 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대호야, 형 물 좀 주라.”
녀석의 말에 버럭 소리쳤다.
“왜 말을 돌려! 빨리 대답해!”
녀석은 대호가 가져다준 물을 마시고 내 표정을 살폈다.
“야! 최승현!!”
“대호야, 가서 찬물 가져와라.”
“찬물요?”
잠시 후 대호가 찬물을 컵에 담아 왔다. 녀석은 내 표정을 살피는 듯했다.
얘가 진짜 왜 이래! 사람 미치는 꼴 보고 싶어!?
“말 안 할 거야!?”
그 순간 승현이가 내게 찬물을 끼얹었다.
“이 새끼가……. 미쳤어!?”
그때, 저스틴이 끼어들며 물었다.
“둘 다 대체 뭐 하는 거지?”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를 봤다.
어? 이런, 모울 사람들이 언제 여기 다 모여 있는 거야?
승현이가 그제야 내게 말했다.
“너답지 않게 왜 그렇게 흥분한 거야?”
처음으로 모든 시야가 좁아졌다. 차석재는 내게 있어 헌터를 알려 준 스승과 같았다. 그런 사람이 나 때문에 죽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저히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평소였다면 내가 몇 번 뜸 들이면 넌 당연하다는 듯이 이성을 찾았어.”
맞는 말이다. 회귀하고 지금까지 이 정도로 흥분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대체 상황이 얼마나 안 좋길래 내가 이성을 찾길 기다렸던 거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승현이를 봤다. 녀석은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요양원에 계셔. 그날, 대타를 못 구했다고 해서 석재 아저씨한테 부탁했었거든.”
그때 승현이의 등급은 D. 그런 곳에서 차석재가 다쳤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거기가, 등급이 높은 던전이었어?”
“D등급.”
뭐? 차석재가 겨우 D등급 던전에서 그렇게 됐다고?
그럴 리가 없다. 그는 온 힘을 다했을 때 C등급을 한참 넘어서 있었다.
녀석에게 또다시 물었다.
“혹시 던전 브레이크?”
승현이는 고개를 젓더니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이제 괜찮아. 말해.”
“‘레이드 원’이라는 파티, 들어 봤어?”
“나야 모르지. 난 던전에 들어갈 수도 없었는데.”
“그놈들 소행이야.”
“그게 무슨……?”
노주혁이 뭔가 알겠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거 혹시 알바 뛰는 놈들 희생시키는 파티 아냐?”
뒤통수라도 맞았다고? 그러면 더 말이 안 된다. 차석재 씨 능력은…….
승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녀석의 말에 반박했다.
“차석재 씨가 이용당했을 리 없어.”
“너, 석재 아저씨 능력 알아?”
“어. 타인의 생각을 읽잖아.”
저스틴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지간히 친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능력이군.”
나는 승현이를 보며 다시 말했다.
“절대 차석재 씨가 그런 놈들한테 당할 리 없어.”
“네 말대로야. 그런데 당했어.”
“좀 시원하게 말해 봐!”
“너 또 흥분하는 거냐?”
“휴, 그냥 답답해서 그런다.”
“던전이 문제였어.”
“뭐?”
저스틴이 뭔가 짚이는 듯 물었다.
“현혹의 던전, 뭐 그런 종류였나?”
“네. 그 비슷한 곳이었나 봐요.”
“그럼 문제가 달라지지. 아무리 생각을 읽을 수 있어도.”
“그게 무슨 말인데요?”
샬롯이 끼어들며 아는 척 읊어 댔다.
“던전 자체가 사념 덩어리라 서로의 생각이 왜곡돼서 들리거든. 만약 타인의 생각이 들리는 사람이었다면 머릿속이 엉망이었을 거야.”
샬롯의 말대로면 차석재는 정말 재수 없는 상황이었구나.
승현이가 내게 말했다.
“놈들에게 당하고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천운이었어.”
“대체 그놈들이 왜 그런 짓을? 관리국은 어째서 가만히 있었던 거지?”
“지완아, 관리국 직원도 한패였어. 그래서 이 사실을…….”
저스틴이 승현이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이거 생각보다 큰 사건 같군. 그들은 아직도 건재한가?”
“네. 아마 지금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을 거예요.”
……이것들. 내가 안 이상 이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한 놈 한 놈 잘근잘근 씹어 주마.
사악하게 미소를 지으며 승현이를 보자 샬롯이 대뜸 내게 말했다.
“너, 하지 마.”
“응? 내가 뭘?”
“너 그런 표정, 사고 칠 때마다 짓잖아.”
샬롯한테 표정을 읽히다니. 조심해야겠다.
“나 당분간 휴가 쓸게.”
“야!”
나는 버럭 소리 지르는 샬롯을 무시하고 승현이를 보며 말했다.
“승현아, 차석재 씨 요양원 위치 알려 줘.”
“같이 가자. 나도 한 달에 한 번 갔다 오거든.”
“너 그럼 휴가 쓸 때마다 차석재 씨 만나러 갔던 거야?”
“어. 나 때문에 그렇게 되셨으니까.”
나 또한 마음이 무거웠다.
진작 알았다면…….
“그런데 넌 석재 아저씨 어떻게 아는 거야?”
“예전에 한천 마탑…….”
“한천 마탑?”
아. 나밖에 모르지. 나는 대충 둘러댔다.
“방송국 일할 때 ‘헌터의 시간’ 담당했었거든.”
“너 방송국 합격하고 바로 그만뒀잖아.”
“아, 그랬나? 야! 뭘 그렇게 남의 사생활을 자꾸 따져!”
샬롯이 새초롬하게 나를 보며.
“나도 휴가나 낼까?”
그러자 노주혁이 대뜸 그녀에게 아이템 하나를 들어 보이며.
“그럼 일은 누가 하고?”
“대호하고 우리 아빠가 하면 되겠네.”
이숙자가 끼어들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대호가 오거를 어떻게 잡는다고.”
“엄마, 걱정 마! 오거 안 잡고 아빠처럼 마석만 관리국에 보여 주면 돼.”
노주혁이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으흐흐. 우리 아들, 누굴 닮아서 이렇게 똑똑할까?”
결국 이숙자가 활화산처럼 소리쳤다.
“애한테 그딴 꼼수나 가르치고 잘하는 짓이다!”
에휴, 그나마 이숙자는 정상이라 다행이네.
* * *
나와 승현이는 인천에 있는 한 요양 시설 앞에 도착했다.
“내가 돈이 여의치 않아서 서울에는 모시기…….”
손을 들어 녀석의 말을 가로막았다. 내 친구지만 대단한 책임감이다. 나라면 녀석처럼 할 수 있었을까?
승현이의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
“너 들어가라.”
“넌?”
“나 할 일이 생겼다.”
“뭐라고? 여기까지 와서?”
“지금부터 굉장히 바쁠 것 같거든.”
“너, 혹시 복수 그런 거…….”
“천억 모아야 돼.”
“천억? 너 설마?”
“회삿돈을 쓸 수는 없고, 지금부터 천억을 어떻게 벌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거든.”
“야, 천억이 애 이름이야?”
“그러니까 바쁘다고.”
나는 녀석을 뒤로하고 모울로 돌아왔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차석재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의 팔다리를 재생하려면 채수진이 필요하다. 내가 말하면 그녀는 차석재를 고쳐 줄 것이다.
하지만……. 형평성이 어긋난다.
그럼, 어떻게 돈을 마련해야 할까?
회삿돈도 안 된다. 내 개인 돈은 턱없이 부족하다.
젠장. 그때 그런 룰을 왜 정해서…….
가만, 일단 그 거지 같은 레이드 원 파티와 관리국 직원 놈 돈을 압수해야겠네. 그래도 천억은 한참 부족할 테지만.
오롯이 천억을 만들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그때 커크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승현이 언제 돌아와?”
“녀석 휴가 냈는데.”
“그렇구나.”
“뭐가 필요한데?”
“미스릴이 부족해서.”
그러고 보니 나도 한 달에 한 번 만드는 아이템이 필요…….
그거다!
팔짱을 끼고 있는 커크를 보며 물었다.
“혹시 신의 파편 들어왔어?”
“신성석?”
“그래, 그거.”
“나 한 번도 못 봤는데. 언젠가 그거 한번 만져 보고 싶긴 하네.”
“커크, 만약 내가 그걸로 아이템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부르는 게 값이겠지? 지금껏 그런 아이템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신성석 있어?”
“아니.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그거 찾으면 나도 쓸 수 있을까?”
“찾으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커크를 뒤로하고 베를린 모울로 향했다.
* * *
문을 벌컥 열며 소리쳤다.
“로렐라이!”
그녀는 이다의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로렐라이가 책을 덮고 나를 보더니 로렐라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 다급하게 물었다.
“혹시, 신의 파편이 있는 던전 알고 있어?”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봤다.
뭐지? 문제 있나?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신의 파편은 안 돼.”
“왜?”
“드래곤이 화낼 거야.”
아놔! 또 드래곤인가? 대체 드래곤은 얼마나 강한 거야?
“드래곤 몰래 어떻게 안 될까? 그 왜, 오리하르콘은 승현이가 가져오잖아.”
“레드 드래곤하고 젬 드래곤은 달라.”
“젬 드래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으로 갔다. 그리고 책 한 권을 빼 들어서 내게 건네며 말했다.
“책을 펼치면 돼.”
나는 책 표지를 봤다. 이런 책이 있었나? 응? 읽을 수가 없는데? 이게 무슨 언어지?
“로렐라이. 미안한데 이게 무슨 언어야?”
“언어?”
“혹시 읽어 줄 수 있어?”
“그건 읽는 게 아니고 보는 거야.”
휴, 대체 그게 무슨 말이지? 쟤는 책만 읽으면서 왜 제대로 설명을 못 하는 거야? 책만 읽어서 그런가.
나는 일단 그녀가 말한 대로 페이지를 열었다.
뭐? 이게 뭐야!
그녀 말대로였다.
페이지를 열어 보자 글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림도 없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 젬 드래곤이 보였다.
내 OS가 내게 능력 정보를 알려 주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이었다.
너무 놀라 책을 보며 중얼거렸다.
“감정.”
[그의 피조물.]
이름 한번 이상하네. 혹시 이것도 복사할 수 있을까?
“컨트롤 C, V 이지완.”
[에러.]
휴, 아쉽네.
한데, 젬 드레곤 정말 아름답네. 이 녀석 둥지가 신성석이구나.
“젬 드래곤은 종류 다양해.”
“그런데 내가 이길 수 있는 젬 드래곤이 있을까?”
“없어.”
너무하네! 생각이라도 좀 하고 말하지. 이러면 신성석은 포기해야 하나?
그걸 대체할 만한 게 없으려나?
아, 맞다!
로렐라이가 줬던 포션의 정체가 뭔지 물어봐야겠다. 그것만 있으면 젬 드래곤도 할 만하지 않을까?
“로렐라이. 저번에 나한테 줬던 포션. 그거 어디서 구한 거야?”
“고대 뱀의 눈물.”
“고대 뱀……? 뭐! 요르문간드?”
기억났다. 망치 신의 휴식처. 그곳에 있던 괴물 이름이다.
그놈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눈물 마시고 내가 미쳐 날뛴 거냐?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거 또 있어?”
“아니. 기다려야 해.”
귀한 건 줄 알았다면 아껴 마실걸.
로렐라이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게 물었다.
“그거 다 마셨어?”
“응.”
“대단해.”
“왜?”
“로렐라이도 다 마시면 죽을지 몰라.”
악! 그런 건 줄 때 말했어야지! 어쩐지 미치듯이 아프더라.
요르문간드는 머릿속에서 지우자. 그게 세상에 나타나면 그냥 끝이다.
그나저나 이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천억을 어떻게 모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그녀가 해답을 주었다.
“신성석 말고 영혼석은 구할 수 있어.”
“영혼석?”
그녀는 다시 책장으로 가서 책을 꺼내 내게 건넸다. 이번에는 책의 사용법을 알 것 같았다.
역시나 책을 펼치자 머릿속에 영혼석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대박이다! 이런 게 세상에 있다고?
단 한 번 죽은 사람을 바로 살릴 수 있다니……. 현장에서 죽은 사람을 바로 살릴 수 있다면 이건 초대박이다.
팔 만한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경매에 올린다면?
만약 구할 수 있다면 마켓템 최고의 홍보를 해야 한다.
흥행몰이로 최고의 수집가들을 모아 둔 자리에서 경매에 부친다면?
“로렐라이 영혼석 몇 개나 구할 수 있을까?”
“흠, 2개.”
미친! 하나는 보관하고 또 다른 하나를 경매로 팔면 된다. 그럼, 차석재를 치료할 수 있다!
“로렐라이, 거기가 무슨 던전이야?”
그녀는 곡괭이를 들고 두 번째 문으로 들어가 벽에다 곡괭이를 찔러넣었다.
푹! 으르륵.
벽이 허물어지며 구멍이 열리자 뭔지 모를 열기가 후끈거렸다. 내가 들어가 보려 하자 그녀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타죽어.”
“던전 이름이 뭔데?”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불의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