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원래대로 (5)
이거 참. 내 능력이 너무 많아져서 이제 헷갈리는구나. 언제 대대적인 정리가 필요할 것 같네.
영혼석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 살고 싶지 않냐?”
“날 되돌려 놓겠다는 거냐?”
“내가 미쳤어?”
“비열한 놈. 당장 나를 되돌려…….”
탁!
로렐라이가 손을 쫙 펴더니 영혼석을 때렸다.
“이 저급한 요정 년아!”
탁!
“이, 이. 크아아아악!”
탁!
“…….”
놈이 한마디 할 때마다 영혼석을 때리는 모습에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로렐라이가 빙긋 웃으며.
“부수고 그냥 닫아.”
“그럴까? 어차피 하나 더 있고.”
“……. 내가 어떻게 하면 살려 줄 거냐?”
“불의 성 주인 자리, 내게 넘겨.”
“그, 그럼 나는?”
“뭘 ‘너는’이야! 안 죽었으면 되지.”
“…….”
“싫어? 그럼 할 수 없고.”
“그, 그렇게 하겠다.”
내가 영혼석에 손을 가져다 대자 놈이 말했다.
“대신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매개체를 달라.”
응? 이놈 다른 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 놈이 다시 말했다.
“아쉬운 대로, 저 요정 년도 상관없다.”
로렐라이가 주먹을 쥐더니 영혼석을 내려쳤다.
쾅!
“취, 취소다! 뭐라도 상관없다.”
나 또한 간담이 서늘했다. 하마터면 소중한 영혼석 하나를 잃는 줄 알았다.
로렐라이가 은근히 성깔 있구나.
영혼석에 손을 얹고 말했다.
“맹주의 대리인.”
[불의 성 던전 보스직을 수락하겠습니까? Y / N.]
“예스.”
[불의 성 던전 보스가 이지완으로 변경됐습니다.]
우린 2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곡괭이를 로렐라이에게 건네며 말했다.
“던전 보스 사임.”
[던전 보스직을 사임하시겠습니까? Y / N.]
“예스”
[불의 성 던전이 주인 없는 던전으로 바뀝니다.]
그 순간 라우렐라 던전 때처럼 내 앞에 보물 상자가 나타났다. 상자를 열자 포인트가 적립되긴 했는데, 초월의 마탑보다 포인트가 별로였다.
“로렐라이. 이제 닫아.”
그녀가 다가가 구멍에 곡괭이를 찌르자 구멍이 꽈득꽈득 소리를 내며 메꿔졌다.
휴, 끝났다.
우리가 베를린 모울 2번째 문에서 나오자 채수진이 잠옷 차림에 앉아 있었다.
이 여자는 여기가 자기 집 안방인 줄 아나?
채수진은 신기한 표정을 짓더니 테이블 위 영혼석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내게 물었다.
“이거 대체 뭐예요?”
“영혼석입니다.”
“아!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하는 거군요.”
그녀가 영혼석을 만지자 놈이 말했다.
“오, 오. 여왕이시여.”
에엥? 저놈이 미쳤나.
“이거, 마치 AI 같네요. 그런데 뭐라고 하는 거예요? 아까부터 뭔가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네요.”
채수진은 알아듣지 못하는구나.
어째서인지 나와 로렐라이는 지성을 가진 마수와 의사소통이 통했다.
로렐라이는 원래 마수였으니까 이해되는데 어째서 나는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는 것일까? 고블린 언어를 설치했다 지운 게 오류라도 남겼나?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고 영혼석을 구했으니 ‘마켓템’ 이벤트를 준비해야겠다.
아마 세상이 발칵 뒤집히겠지.
그때 영혼석이 말했다.
“난 어디로 옮겨 줄 것이냐? 인간.”
그렇지, 저놈부터 옮겨야 경매든 뭐든 하겠지. 그런데 어디다 옮기지?
이제 스킬도 없을 테니 해를 끼칠 수 없을 테지만 그래도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만한 것이 필요했다.
계속 영혼석을 건드리고 있는 채수진에게 물었다.
“혹시, 인형 같은 거 있습니까?”
“네? 있긴 한데요. 왜요?”
풋!
터지는 웃음을 억지로 삼켰다. 채수진 씨 취향 이상한 거 같은데.
그녀가 가져온 인형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프랑켄슈타인을 닮은 인형이었다.
그녀가 자랑스럽게 인형을 보이며.
“이거 코바늘 인형이에요.”
“코바늘 인형이 뭔가요?”
“뜨개질로 만든 거라고요.”
“와! 직접 만드셨나요?”
“네, 취미로요.”
말랑말랑한 게 아주 딱이었다.
“야, 너 여기로 들어가라.”
“그 안엔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안 들어가겠다고? 네놈이 여왕님이라 했던 여자가 직접 만든 건데?”
“오오, 그런 것이냐? 그럼, 그걸로 하겠다.”
저놈도 취향이 이상한데. 놈이 들뜬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영혼석 위에 그것을 올려다오!”
녀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으니 그가 다시 물었다.
“왜 그러느냐?”
“올려 주세요. 해 봐.”
“뭣이라! 이놈! 내가 누군지…….”
탁!
로렐라이가 영혼석을 때리자.
“……오, 올려 주시오.”
“아니, 올려 주세요.”
“오, 올려 주세요…….”
영혼석 위에 채수진의 코바늘 인형을 올렸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놈을 재촉했다.
“시간 없어. 빨리 해.”
“…….”
“야, 날 새울 거야?”
“내 능력이 사라졌다. 인간.”
아, 맞다. 내가 놈의 능력을 잘랐지.
놈에게 빼앗은 능력을 떠올렸다. 아하, ‘영혼의 탐구자’가 이런 능력도 쓸 수 있구나?
영혼석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영혼의 탐구자.”
[덧씌울 대상을 선택하세요.]
“코바늘 인형.”
[3, 2, 1. 덮어쓰기 완료.]
[영혼의 탐구자 이름을 바꾸시겠습니까? Y / N.]
“예스. ‘덧씌워라.’”
[영혼의 탐구자 이름이 ‘덧씌워라’로 바뀌었습니다.]
채수진이 화들짝하며 소리쳤다.
“어머! 귀여워라!”
놈이 아장아장 걷더니 순간 내 뺨을 향해 돌진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탁!
끄윽!
내가 손바닥으로 놈을 내리치자 놈이 바닥에 데구루루 굴렀다.
“이런 젠장! 감히 내게 이따위 짓거리를!”
바닥에서 도망치는 녀석을 집어 들며 말했다.
“너 죽고 싶냐?”
“이렇게 약한 몸일 줄이야! 교활한 인간 놈아!”
“태워 버리는 수가 있어.”
“……. 앞으론 그러지 않겠다.”
그때 채수진이 내게서 놈을 낚아채 갔다.
“오, 여왕님.”
저거 대체 채수진을 왜 여왕이라 하는 거지? 혹시, 채수진의 능력 ‘여왕의 권능’이 느껴지는 건가?
그녀가 내게 물었다.
“이 아이가 뭐라 하는 거예요?”
“궁금합니까?”
“네.”
“그럼, 줘 보세요.”
그녀에게 놈을 건네받아.
“너, 앞으로 반항하면 죽는다.”
“알겠다.”
“네. 라고 말해야지.”
“……네.”
그럼, 테스트해 보자.
“컨트롤 C, 한국어 V. 코바늘 인형.”
[한국어를 복사해 코바늘 인형에게 붙입니다.]
[설치 완료.]
그녀에게 놈을 건네며 말했다.
“이제 알아들을 겁니다.”
그녀가 양손으로 배로스를 잡고 빤히 보며 물었다.
“너 이름이 뭐니?”
“배로스 백작이오. 나의 여왕님.”
“배로스 백작?”
“그렇소.”
그녀가 빙긋 웃으며.
“그냥, 프랑켄이라 부를게.”
풋!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다. 놈은 어떻게 받아 드리려나?
“아주 마음에 드오. 여왕.”
저놈도 채수진도 잘 모르겠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제가 ‘프랑켄’ 가져도 될까요?”
“그래도 상관없지만 여기 두는 게 좋겠네요.”
“그렇네요. 프랑켄을 관리국에 보였다간 난리 나겠죠.”
그저 끄덕였다.
휴, 힘든 고비를 넘겼다.
아이템 가방에 영혼석 하나를 집어넣었다. 이제 대대적인 홍보를 해야 한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어쩌지?
또 다른 영혼석을 들어 로렐라이를 봤다. 모울 식구도 모르게 하려면 로렐라이가 적임자다.
* * *
마켓템 회의실에 정적과 긴장감이 가득 감돌았다.
남자 한 명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 가며 자개장 상자에 놓여 있는 영혼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관리국에 한 가지 의뢰를 맡겼다. 지금 영혼석을 보고 있는 남자는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아이템 감정사, 박창민이었다.
사실, 감정은 필요 없다. 명백히 진짜니까. 박창민의 감정 평가서가 필요할 뿐이다. 그거 때문에 아까운 내 돈 천만 원을 들여 관리국에 의뢰를 요청했다.
박창민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육지호 대표가 바짝 긴장하며 그에게 물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영혼석은 세계에 딱 2개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민석 선배가 실망하듯 말했다.
“역시 이건 가품이란 말이네?”
박창민이 이마에 땀을 닦으며.
“이제 세계에 영혼석은 총 3개입니다. 미국, 중국 그리고 한국.”
그의 말과 함께 회의실 직원들이 들뜬 분위기가 됐다.
박창민을 보며 말했다.
“세계에 영혼석이 3개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두 기뻐하는 자리에 찬물을 끼얹자 민석 선배가 내게 말했다.
“이지완 이사.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왜 그래?”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박창민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한국이라 말했던 이유는 정부에서 가져가겠단 말로 들리는데요. 아닙니까?”
그가 다시 한번 땀을 닦으며 답했다.
“그게, 이런 귀한 건 개인이 소장하면…….”
육지호가 그의 말을 끊고 버럭 소리쳤다.
“뭔 개소리야!”
그와 지내며 이렇게 분노한 모습은 처음 봤다.
“죽은 사람 살릴 수 있다니까 정부에서 가져오랍디까?”
“육 대표님. 말 가려서 하세요. 내 집 내 땅에서 뭔가 나왔다고 다 자신들 거란 건 착각이니까요.”
육지호가 금방이라도 박창민을 잡아먹을 듯이 말하자 박창민은 비릿하게 미소 지으며 화답했다.
나는 박창민을 보며 빙긋 웃었다.
“박창민 씨 말이 맞기도 합니다.”
민석 선배가 당황하며 내게 소리쳤다.
“너 지금 뭐라는 거야! 영혼석을 빼앗겠다는 거잖아!”
“이거, 이지완 이사님은 말이 통하는군요. 역시 유명인은 다르십니다.”
“말이 통한다니, 다행이네요.”
“허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밀며 말했다.
“거기 던전 관련법 형광펜으로 표기한 부분 읽어 보세요.”
“네?”
“읽어 보시라고요. 박창민 감정사님.”
그는 내 위압에 놀라 글을 읽었다.
“1조 7항. 더,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은 어떠한 것을 불문하고 던전 매입인의 소유이다?”
그가 반박하듯 내게 말했다.
“그, 그건 맞지만 이건 상황이 다른…….”
“이 영혼석은 제가 소유한 초월의 마탑에서 나왔습니다. 정 의심스러우면 그날 관리국 직원에게 확인해 보시죠.”
내가 호구냐? 팔아먹으려고 구한 건데 그런 것 하나 사전에 준비 안 하게?
“자,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혼석의 실주인은 이지완 이사님이 맞습니다.”
그에게 봉투 하나를 꺼내 건네자 박창민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저, 저는 공무원입니다. 이런 걸 받았다가는…….”
“그게 왜요? 아! 혹시 돈으로 착각하신 겁니까?”
그제야 박창민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봉투에서 내용물을 꺼내 봤다.
“이, 이건?”
“이번 마켓템 이벤트 경매는 나라에서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단, 초대권을 받지 못했을 경우. 참관조차 안 되고요.”
“그, 그럼?”
또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대한민국 정부도 원한다면 돌아가셔서 내부 회의라도 하시란 뜻입니다.”
박창민은 코가 석 자나 빠진 사람처럼 회의실에서 물러났다. 아마도 박창민은 돌아가면 윗사람에게 한 소리 듣겠지.
민석 선배가 심드렁하게 내게 물었다.
“넌 대체 얼마큼을 벌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돈에 끝이 있습니까?”
“쩝, 그렇긴 하지.”
육지호가 속이 후련한 듯 신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마켓템도 이번 경매 수수료를 충분히 챙길 것 같네요. 그런데, 시작가는 얼마로 생각하시나요?”
“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린다면 얼마를 책정해야 할까요?”
민석 선배가 팔짱을 끼며.
“부자들이야 돈이 문제가 아니지. 진시황도 불로초에 미쳤었으니까.”
“그겁니다.”
“그거?”
“시작가는 그들이 정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