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선택받은 자
채수진이 여성의 배에 손을 얹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의 손에서 주홍빛이 감돌았다. 곧이어 빛이 서서히 배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녀는 여성의 배에서 손을 떼며 차분하게 말했다.
“다 되셨습니다.”
여성은 자신의 배를 조심스럽게 감싸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여성이 신발을 신으려 하자 채수진이 쪼그리고 앉아 신발을 신겨 줬다.
여성은 그런 채수진을 보며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채수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성녀님, 저 감동했어요. 남편도 이런 적 없는데.”
“그, 성녀란 말은 빼 주시면…….”
“혹시 딸이면 성녀님 이름으로 지어도 될까요?”
“제 이름 흔한데요.”
“남편이 최씨라서. 호호호.”
“그, 그러세요. 그럼.”
여성은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치료실을 나갔다.
여성 힐러가 그녀에게 오더니.
“딸이면 채수진 힐러님 이름으로 짓겠다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조금 전 그분은 ‘최’와 ‘채’가 어감이 비슷해서 더 그랬나 보네요.”
“네? 제 이름, 흔하지 않나요?”
“흠, 그래도 그분들에게 성녀 채수진은 특별하니까요.”
여성 힐러가 손가락을 펴며 말했다.
“임신 100프로 ‘삼신할매의 재림’. 새로운 이명 아시죠?”
“아하하……. 하, 할매요? 처녀에게 할매…….”
그 말을 남기고 여성 힐러는 병상을 정리하러 갔다.
윙, 윙, 윙.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봤다.
“해외 전화?”
통화 버튼을 누르자 이지완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
-수진 씨, 짧게 부탁 하나 합니다.
“지완 씨? 해외에 있나 봐요?”
-지금 바로 로렐라이에게 ‘장난스러운 숲’ 던전에 구멍을 뚫어 달라 하세요.
“네? 장난스러운 숲? 구멍요?”
-그것만 전해 주시면 됩니다. 부탁합니다.
통화가 종료됐다.
채수진은 잠시 멍하게 있다가 치료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급히 복도를 달려 통로 끝 자신의 숙소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로 들어서 보니 청소부 아주머니가 흥얼거리며 부엌에서 컵을 씻고 있었다.
“우리 성녀님 벌써 퇴근했어요?”
“아, 네. 살짝 피곤해서요. 저, 잠시 쉴게요.”
그녀가 안방으로 얼른 들어가자 청소부 아주머니가 중얼거렸다.
“별일이네. 항상 늦게 퇴근하던 양반이. 약이라도 지어다 줄까?”
* * *
채수진은 베를린 모울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로렐라이. 지완 씨가…….”
커크와 왕혜선이 화들짝하며 자신들의 몸으로 로렐라이를 숨겼다.
“두, 두 분이 여길 어떻게…….”
왕혜선이 진정하고 채수진에게 물었다.
“채수진 씨, 혹시 로렐라이를 아세요?”
“네. 두 분도 알고 계셨어요?”
그제야 커크가 로렐라이에게서 비켜서며 말했다.
“뭐야. 지완이. 비밀이라고 하더니 수진도 알고 있었네.”
그때 프랑켄이 인형의 집에서 나와 테이블에서 폴짝 뛰어내리자 채수진이 장난감 집을 보더니.
“로렐라이, 저 장난감 집. 지완 씨가 사다 놓은 거야?”
“응.”
“내게 말했으면 더 예쁜……. 아차, 내 정신 봐.”
프랑켄이 채수진에게 달려오며.
“오! 여왕이시여. 기다렸…….”
채수진은 프랑켄을 무시한 채 급하게 로렐라이에게 말했다.
“로렐라이. 지완 씨가 ‘장난감 숲’에 구멍을 뚫어 달래.”
로렐라이가 갸우뚱거리자 채수진이 물었다.
“왜 그래?”
“그런 던전 몰라.”
“모른다고?”
“응, 그런 던전 없어.”
* * *
‘장난스러운 숲’ 던전에 들어서자 붉게 물든 숲속 여기저기서 불씨가 나부끼고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달려가 남자의 코끝에 손을 가져다 댔다.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구리 보러 들어온 관광객인가? 아니구나, 허리에 칼집이 있으니 헌터다. 갑자기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서 여기서 죽었겠구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던전 브레이크가 이렇게까지 활성화된 상태에서 들어와 본 적이 없어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초월의 마탑’ 때에야 1차 웨이브가 시작되기도 전에 ‘후와와’를 처치해서 고작 한두 마리 튀어나간 걸로 그쳤는데 지금은 본격적으로 3차 웨이브가 시작될 것이니까.
그래도 걱정 없다.
채수진에게 이곳 구멍을 뚫어 달라 부탁했고, 언제든 도망칠 퇴로는 확보했으니까.
던전 보스가 구멍을 발견하면 구멍은 닫을 수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도망친 후 일본 헌터들이 구멍을 발견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모울은 내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으니까. 그리고 보스를 상대하는데 바닥의 구멍을 유심히 볼 정신 나간 헌터가 어디 있을까.
놈들이 보스를 잡으면 그때 구멍을 닫으면 모두 해결된다.
꾸워어어-!
괴성이 울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콰앙!
오니가 휘두른 쇠방망이가 바닥에 깊숙이 박히며 사방으로 붉은 흙이 튀어댔다.
아야카가 오니의 옆으로 재빨리 돌아서더니 풀쩍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
툭. 떼구루루.
오니의 머리가 바닥에 굴렀다.
생각보다 검을 잘 다루는구나. 그래도 비틀거리는 게, 확실히 그녀는 한계다.
파앙-!
목이 잘린 오니가 불씨를 날리며 사라졌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어깨가 들썩거렸다.
인벤토리를 열어 포션 숫자를 살폈다. 포션은 충분할 듯했다.
포션을 꺼내 그녀에게 외쳤다.
“그런 몸으로 뭐 하는 겁니까?!”
그녀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러자 바닥에서 보라색 빛이 기다랗게 그려졌다.
저게 뭐지?
앞으로 길게 뻗은 보랏빛을 보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하고 들썩이는 바닥을 보더니 얼른 달려갔다.
후드득.
거대한 너구리 머리가 먼지를 일으키며 땅에서 솟구쳐 오르자.
촤아아악!
아야카는 팔을 크게 저어 거침없이 너구리 머리를 검으로 베었다.
그녀는 보랏빛 선을 따라 천천히 주변을 경계하듯 걸었다.
얼른 달려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지쳤습니다. 포션을…….”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고 바닥에서 생성되는 마수를 처리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아야카의 다리를 보니 더욱 비틀거림이 심해졌다.
“자살이라도 할 생각입니까!”
그녀는 말없이 바닥에 생성 중인 마수를 검으로 깊숙이 찔러 넣었다.
챙-!
결국 그녀의 검이 부러졌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호통을 치자 그제야 그녀가 멈춰 섰다.
“이지완 씨 갈 길 가세요. 난, 어차피 이러든 저러든 죽을 목숨이거든요.”
젠장,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검을 꺼내 그녀의 발아래에 던졌다.
캬아아아!
돌아보니 기다란 거미 다리가 빠르게 그녀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신체우월, 음속, 단칼.”
마른 땅을 박차고 조로구모 옆으로 달려들어 단검으로 놈의 다리 하나를 잘랐다.
끼야아아-!
놈의 입에서 거미줄이 뿜어져 나왔다.
아차! 실수다.
츄아아악-!
아야카의 검격에 조로구모가 반으로 쪼개지며 사라졌다.
“능력만 탁월하고 싸움 방식은 조잡하군요.”
몸에 붙은 거미줄을 잡아 뜯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선배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아야카의 손을 잡아 포션을 쥐여 주며 말했다.
“숨이 거칩니다. 마셔요.”
그제야 그녀가 포션을 마셨다.
보랏빛 선을 보며 물었다.
“이게 뭔가요?”
“이걸 따라가면 보스가 나오죠.”
책에도 이런 건 없었는데. 이런 방법이 있다니. 이건 너무 효율적인 것 같은데…….
“이건 내 고유능력에 마력을 흘린 거예요.”
“선배만의 방식이군요.”
“난 당신 선배가 아니에요.”
“인생 선배 아닙니까.”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선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마수가 근처에 생성될 때면 거침없이 베어 버렸다.
그녀를 엄호하며 선택 감정과 썬더 스톰을 펼쳐 주변에 생성 중이던 마수를 단번에 처리했다.
A등급 마수가 이렇게 처리하기 쉬운 거였나?
“처치하기 쉽나 보죠?”
“네, 마수 처리가 이렇게 쉬운 적은 처음이네요.”
“마수는 처음 생성되는 순간이 제일 약합니다.”
“어째서 모두가 이 방식을 모르는 겁니까?”
“제 말을 무시하더군요.”
“이렇게 귀한 정보를요?”
“던전 연구가 윌리엄 라이트는 지독하게 저를 물고 뜯었죠. 던전 브레이크는 본 적도 없으면서…….”
여기서 반갑지 않은 이름이 나오다니. 그 자식, 이리저리 민폐 캐릭터네.
“그놈은 저도 싫습니다.”
땅속이 들썩이자 단검으로 가볍게 툭 찔러 넣었다.
끼야아악!
그녀 역시 검으로 조로구모를 반으로 가르며 말했다.
“이지완 씨는 없는 사람을 씹어대는 성격이군요.”
“아니, 조금 전 선배도 윌리엄을 뭐라 하지 않았습니까?”
“내 정보를 무시했다 했지, 그가 싫단 말은 안 했는데요.”
그게 그거 아닌가. 왠지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린 것 같네. 그녀 성격이 의외로 괴팍한 것 같기도 하다.
OS 능력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여기 들어온 지 벌써 30분이 흘렀군요.”
그녀가 멈춰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던전에서 시간을 알 수 있다고요?”
“네, 저만 가능한 능력입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신은 불공평하군요. 당신 같은 사람에게 다양한 능력을 부여한 것 보면.”
그냥 그러려니 하자. 성질 돋우는 데 일가견 있는 사람 같으니까.
“이렇게 가다간 3차 웨이브가 터지는 것 아닙니까?”
“내가 왜 마수를 처리하면서 가는지 묻지도 않는군요. 그리고 아까 입구에서 던전 브레이크에 관해 설명해 준 걸로 기억하는데요.”
순간 속이 뜨끔했다. 설명을 들었는데도 까먹었으니까.
넌지시 말을 던졌다.
“하나라도 숫자를 줄이는 것 아닌가요?”
“생성되던 마수가 줄어들면 3차 웨이브 시간이 지연되거든요.”
아, 맞다. 그 말을 했었지. 그녀는 대체 이런 정보를 어떻게 습득했을까? 마치 던전 브레이크만 처리하러 다닌 사람처럼.
푸욱!
바닥이 들썩거리자 단검을 내리꽂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런 정보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녀가 물끄러미 나를 봤다. 물어선 안 되는 거였나? 그녀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던전 너머에 갈 생각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어째서죠? 굳이 그럴 이유는 없을 텐데요.”
“궁금하니까요.”
“젊군요.”
“그러는 선배는 액면가만 보면 저와 동갑 같습니다.”
쿠우어어어!
쿵쿵쿵.
오니 두 놈이 달려오자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다이어 스피어.”
옆으로 새파란 얼음 창이 생성됐다.
퍼엉, 펑-!
쿠워어어!
얼음 창이 오니의 머리통을 거침없이 날려 버렸다.
“학습이 빠르군요.”
“놈이 불을 좋아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녀가 대뜸 말했다.
“나는 젊은 게 아니라 저주받은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동안이 저주라면 다들 환장하겠는데?
“내가 여기 있는 걸 들켰으니 날 잡아다 별의별 시험은 다 하겠죠. 이미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고요.”
“영화를 너무 봤군요.”
그녀가 윗옷을 올려 배를 보였다.
“과연 그럴까요?”
그녀의 배에 흉한 수술 자국이 보였다.
“이게 인간의 본성이에요. 난 아이를 가질 수 없죠. 그들이 자궁을 적출했으니까요.”
더는 질문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휴, 와타나베 그놈은 여기 들어올 생각을 안 하는군요.”
그녀가 깔깔대며 웃었다.
이 아줌마의 속을 모르겠다.
“던전 브레이크에 대한 내 경험을 받아들여 준 사람은 극히 소수예요.”
“그런데 저를 무식쟁이로 몰고 간 겁니까?”
“던전 너머를 알고 싶다면 다양한 정보를 빠짐없이 봐야겠죠? 아닌가요?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내가 적은 짤막한 글 하나쯤 발견했을 수도 있고요.”
그 말은 어딘가 그녀가 올려 둔 자료가 있단 뜻 같은데…….
“알겠습니다. 앞으론 그렇게 하죠.”
“저들은 끝끝내 안 들어올 겁니다.”
“설마 무식하게 12000마리나 되는 마수를 맞닥뜨리겠다고요?”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 낸 게 ‘사방의 진’입니다.”
멍청한 놈들. 효율 좋은 방식을 무시하다니.
따지고 보면 윌리엄 라이트 그놈이 문제네. 그딴 놈이 무슨 던전 전문가냐…….
그나저나 로렐라이는 어디쯤 구멍을 뚫어 둔 걸까?
* * *
채수진은 베를린 모울을 서성거렸다.
“분명, ‘장난감 숲’이라 했는데…….”
로렐라이는 책장에서 ‘만물의 책’을 꺼내 펼쳐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곳은 없어.”
채수진이 머리를 쥐어 잡자 왕혜선이 그녀에게 물었다.
“이지완 부대표님이 어디 있는지 알면 되지 않을까요?”
“해외. 해외였어요.”
커크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모울을 통해서 안 갔다면 행선지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채수진은 풀 죽은 표정으로 말했다.
“지완 씨가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 버려서…….”
채수진은 모울 문으로 힘없이 걸어가며 말했다.
“혹시 다시 전화 올지 모르니까 돌아가서 기다려 볼게요.”
* * *
“선택 감정.”
주변의 마수들이 감지됐다.
재빨리 놈들을 썬더 스톰으로 처리하고 아야카 곁으로 돌아왔다.
이거 진짜 대박이다. S급 베테랑 헌터와 함께하는 게 이렇게 유용하다니.
잠시 멈춰서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랜덤이라지만, 어째서 모울에서 뚫어 둔 구멍이 감정에 안 잡히지?
만약을 대비한 퇴로인데…….
그때, 아야카가 멈춰 섰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앞을 봤다.
이, 이게 뭐야?
종족: 요괴 대장(붉은 긴 코)
등급: S-
고유능력: #%%*&, #$$^&, #$%&&*, #$%$&, %^&&.
HP: ???????
MP: ???????
아, 지지리 복도 없다. 역시나 예상대로 S-등급 마수다. 각성자로 따지면 SS-이다.
저런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고?
놈은 붉은 얼굴에 피노키오처럼 기다란 코가 특징이었다. 몸은 인간과 비슷했지만, 상당히 덩치가 컸다. 대략 3미터는 족히 돼 보였다.
“지금껏 거인형 보스만 봤는데, 의외로 작군요.”
“인간에 가까운 마수가 더 위험해요.”
붉은 긴 코가 등 뒤에 있는 하얀 날개를 활짝 펴더니 허리춤에 찬 칼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아야카가 말했다.
“내가 상대하죠. 이지완 씨는 주변의 마수들을 계속 처리해 주세요.”
“자신 있으십니까?”
“솔직히 말할까요?”
그녀와 나는 동급 혹은 얼마 차이 나지 않을 거다. 그녀가 먼저 덤빈다면 나는 보조만 잘해도 될 것이다.
바닥이 꿀렁거리자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워터 커터.”
날카로운 물이 부메랑 모양으로 날아가 너구리 마수의 머리를 잘랐다.
붉은 긴 코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우릴 봤다.
철컥.
그녀가 검 손잡이를 고쳐 잡자 나는 뒤로 물러나며 땅에서 들썩이는 마수를 단검으로 처리했다.
또다시 던전 보스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저거 좀 멍청해 보이는데.
그녀가 발을 살짝살짝 놈에게 밀며 가자…….
짝짝!
놈이 박수를 2번 쳤다. 우린 순간 멍하게 놈을 봤다.
그러자…….
던전 보스가 팔을 들더니 기다란 손가락 하나를 툭 폈다.
놈의 기괴한 행동에 마른침을 삼키다가 곧이어 놈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놈은 서서히 손가락을 그녀에서 내게로 옮기는 듯했다.
야! 그러지 마. 저 여자가 싸운다잖아!
마음속으로 격하게 외쳤다.
하지만 보스의 손가락이 정확히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까닥거리며 내게 싸우자는 뜻을 펼쳤다.
그녀가 검을 거두며 내게 말했다.
“놈이 이지완 씨를 원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