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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능력이 OS-109화 (109/334)

109화

-사방이 적 (1)

* * *

왕혜선과 커크 그리고 힘순이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물론 모울이 아니라 OW 사내에서.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영상을 파고들면 저 장소가 어디냐부터 별별 추측이 난무할 게 뻔하니까.

그리고 마켓템, 내 사무실로 와서 오랜만에 컴퓨터를 켜고 영상 편집을 시작했다.

곁눈질로 보니 옆에서 민석 선배가 실실거렸다.

뭐 하는 거냐, 남 일하는데.

“야, 손놀림 봐라. 날아다니네.”

그러자 육지호가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이거 잉여 인력이 놀고 있었네요.”

“불안하게 왜 그럽니까?”

“전공을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회귀 전까지 죽도록 이것만 했는데 무슨 그런 사악한 소릴.

가끔 일하는 건 재밌지만, 그 재밌는 취미가 일이 되는 순간 고통의 연속이다.

민석 선배가 또다시 실실거리더니 시비를 툭 걸었다.

“그런데 마켓템 회사에서 OW 일을 하는 건 뭐 하는 행동일까?”

“그렇게 보이십니까?”

육지호마저 민석 선배에 동조된 듯 짓궂게 말했다.

“뭐 어떻습니까? 감봉하면 되는데.”

와! 이 인간들 요즘 갈구는 데 재미 들였나. 아, 회사 오기 싫다.

……가만, 월급? 월급이라니?

둘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 월급을 받았어야 감봉하죠.”

두 사람이 경악하며 나를 봤다.

뭐지? 코믹으로 말했는데 어째서 다큐로 받아들이냐?

그러다 민석 선배가 또다시 돌려 까기를 시전하는 듯했다.

“예전에 모 건물주가 세입자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받았대.”

“갑자기 뭔 말입니까?”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물어본 게 가관이었거든. 그 건물이 자기 거냐고 했대. 역시 있는 사람은 푼돈은 신경 안 쓰는 거지.”

“와! 경우가 다르죠. 저는 월급 받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전에 계좌 물어봤잖아요.”

계좌? 아!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런데 어디 계좌를 준 걸까?

젠장, 선배가 저 말을 던져서인지 괜스레 나도 무심하고 돈 많은 건물주 느낌이 드네.

휴,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다. 안 그래도 돈 필요할 때마다 아쉬웠는데.

암튼 그건 그렇고.

아우! 이 인간들만 오면 이야기가 옆으로 빠지네. 암튼. 본론으로 들어가자.

모니터를 돌려 둘에게 영상을 보였다. 한참을 보더니 육지호가 물었다.

“언제 로봇까지 손댔습니까?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러운데요. 걷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이건 커크 씨와 협업하셨군요.”

“가만 보자. 센서는 어디에 달렸지? 저 눈이 카메라인가? 뭐지? 에너지 구동은 마석?”

둘 다 신기하게 보는 것만 해도 관심 끄는 데는 성공했고. 내 돈 한번 불려 볼까?

“이거 로봇 아닙니다. 마석으로 움직이는 오토마타 인형입니다.”

민석 선배가 머리를 박박 긁었다.

“오, 오토마타? 환장하겠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가만 그럼 OW에서 이번에 출시할 게 오토마타? 이거 출시하면 완전 대박이잖아!”

“요거 대량 생산 불가능합니다.”

“응? 어째서?”

그들에게 오토마타에 대한 설명을 마치자 곧바로 육지호가 물었다.

“그러니까 이 영상을 마켓템에 올리겠다고요?”

끄덕이자 민석 선배가 물었다.

“설마 이거 한 대만 경매에 내놓을 생각이야?”

“관심을 끌어보려고요.”

“어째서?”

“얼마 전 김규석 측 사람이 피치 OS 하드웨어를 캐고 다닌다는 정보를 들었거든요.”

사실 첫 번째 목적은 내가 보유한 푸른 마석의 값어치를 더욱더 올릴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이들에게 ‘제 마석 가치를 올리려고요.’라고 할 수 없지 않겠냐.

그러다 김규석의 관찰지를 보니 놈이 엄혁권이 말대로 휴대폰 부품 회사를 들쑤시고 있었다.

물론 아버지께 말해서 입단속해 뒀으니 별문제는 없다.

그저 딱 좋은 타이밍에 핑곗거리가 생긴 상황이라 이용하기로 했다.

사실 김규석을 이용해야 김동연이 움직일 거란 사실은 알고 있다.

김동연은 글렀으니까.

하지만 김규석이 다시 부회장이 되려는 거라 그 부분이 내게 득이 될지 고민 중이다. 그래서 그에게 계속 숨기는 거였다.

민석 선배가 곧바로 반응을 내비쳤다.

“김규석 자식은 시간이 남아도나, 왜 자꾸 기웃거리는 거야?”

육지호가 빙긋 웃으며 고마운 말을 해 줬다.

“이번 행사가 오토마타 발표회일지 모른다는 일종의 연막이군요.”

“네. 그렇게 관심을 끈 후 세상에 마법 OS를 내놓고 세상 사람들 머릿속을 뒤흔들 생각입니다.”

“재밌군요.”

“볼거리가 많은 건 좋죠. 그래서 말입니다.”

인벤토리에서 오토마타 한 대를 꺼내자 둘이 이리저리 살펴봤다. 민석 선배는 열어 보고 싶은 모양새라 살짝 불안했다.

“이걸 사내에 사용해 주십시오.”

“회사에서 돌아다니는 오토마타의 일상을 영상으로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그 말대로입니다. 제가 타이틀 시퀀스도 만들어 뒀으니 영상팀에서 보완해서 올려 주세요.”

며칠 후 SNS에 올려진 오토마타 영상을 살펴봤다.

추측성 댓글이 엄청나게 달려 있었다. O튜브 구독자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번 마켓템 행사가 벌써 기대되는구나.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전화벨이 울렸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크리스 리어의 흥분된 목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내 친구 지완!

“뭡니까? 크리스.”

-그 오토마타, 내게 준 마석으로 만들었다고?

“그런데요?”

-나, 나도 하나 안 될까?

그래, 이 인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역시나 격한 반응인데.

“행사 후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각이 아니라! 돈은 얼마든지…….

통화 종료를 눌러 버렸다.

흐흐. 크리스는 애가 탈수록 SNS에 무수히 많은 글을 올릴 게 뻔하다. 그럼 거기에 동조된 인간들 또한 2차 3차 미친 듯이 설전을 벌일 테고.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어라? 문창표가 어째서?

“왜요 아저씨.”

-지, 지완아. 영상 봤다.

“그래서요?”

-그, 저기……. 관리국이 보유한 마석과 산호로 가능하다고 하던데.

“네.”

-혹시 그 기술을 공개할 수…….

이 아저씨가 갑자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거지? 기술 회사에게 기술을 공개하라니.

“어렵습니다. 회사 기밀이라서요.”

-……그, 그렇지? 그게 맞지.

“그럼 끊습니다.”

-사실, 관리국에 요청이 왔었다.

“요청이라니요?”

-OW의 오타마타 기술을 열람하고 싶다고.

어떤 미친놈이. 혹시 김규석?

그럴 리 없다. 놈의 관찰지에 그런 내용은 없었으니까.

“누가 그런 경우 없는 요청을 한 겁니까?”

“미국 정부 요청이다…….”

“미 정부요?”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문창표 지금 제정신인가?

-일단 거절 의사를 보였으니 OW에 직접 연락 갈 거다.

“실컷 연락하라 하시죠.”

-놈들이 그럴 거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사안이라고.

이게 뭔 개소리지?

문창표의 황당한 말에 잠깐 멍하게 서 있었다.

잠시 후 문창표의 말소리가 들렸다.

-듣고 있는 거냐?

“……말하세요.”

-휴, 나도 이번 건 어쩔 수 없다. 위에서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해라 해서 말이다.

하기야 문창표가 내게 이럴 리 없다. 정치인이나 권력자 나부랭이가 미국에 아부 떠는 놀음에 그가 재수 없이 선택된 걸 테니까.

그에게 당연한 대답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물어봤다.

“그래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미국에서 OW와 마켓템 둘 다 퇴출당하겠지. 아니면 고객사들부터 시작해서 놈들이 요구하는 모든 걸 제출해야 할 수도 있고.

“그게 지금 말이 됩니까?!”

-지완아, 내 말 잘 들…….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 버렸다. 머릿속 피가 거꾸로 도는 느낌이었다.

뭐가 어째? 안보를 위협해? 차라리 돈이 돼서 탐난다고 말하지?

그 순간 김규석의 관찰지 내용이 떠올랐다.

‘말 돼. 국가도 함부로 못 하니까.’

이 말은 놈이 엄혁권에게 했던 말이었다. 김규석의 불순한 의도가 정말 싫었지만, 이번만큼은 공감이 됐다.

결국 종착역은 초월적 힘이란 건가? 그런데 소문만 따지면 미아 호라크도 때려잡은 나다.

물론 소문이지만.

공식적으로 SSS등급을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함부로 못 할 것 같은데.

진짜 힘으로 해결해야 하나? 그러려면 힘을 길러야 하고……. 얼마나 레이드를 뛰어야 할까?

버전 업은 어떻게 해야 하지?

다양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꼬리를 무는 생각을 멈추기 위해 몇 차례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 들이쉬었다.

휴, 침착하자. 당장에 버전 업 될 리도 없고. 일단 자초지종을 알고 대응해야 한다.

너무 화가 나서 문창표에게 무례했던 것도 마음에 걸린다.

* * *

문창표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그가 의자에서 일어서며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사무적으로 대했다.

“이지완 길드장님께서 어쩐 일입니까?”

“갑자기 어른 대접입니까? 어제 전화를 그렇게 끊었다고 삐지셨어요?”

그가 차가운 말투로 대했다.

“앉으시죠.”

그가 정색할 만하다. 어제 내가 좀 심하게 말했으니까.

그럼 내 쪽에서 풀어야겠지.

“제가 버릇없이 굴어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앉으시죠.”

“갑자기 왜 이러는 겁니까?”

그는 내 말을 무시하는 건지 수화기를 들며 말했다.

“괜찮다면 커피 두 잔 부탁하지.”

문창표의 180도 바뀐 태도에 순간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문창표가 커피 심부름을 시킨다고? 누구보다 그런 걸 혐오했는데 어째서?

직원이 나가자 그가 커피 한 모금을 머금었다.

믹스 커피 애호가가 원두를 음미하다니……. 살 만하다 이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이런 문창표의 모습, 너무 낯설다.

그가 탁자 위에 잔을 내려놓더니 무미건조한 말투로 물었다.

“이지완 길드장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마치 처음 보는 듯한 그의 말투.

서운하다 못해 가슴 한쪽이 시큰거린다. 그래, 잘 풀어 보자.

“어제는, 제가 심했습니다. 충분히 아저씨께서 화낼 만하죠. 인제 그만 푸시면 안 될까요?”

그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더욱 처음 보는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

“허허. 아저씨라니요. 이지완 길드장. 말 가려서 하시죠.”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내게 보였던 미소와 비슷했다.

그래, 대화하다 보면 풀리겠지.

“미국에서…….”

그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책상에서 서류를 집어 들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뭡니까?”

“살펴보시고 작성해서 절차대로 제출하면 됩니다. 물론 미 정부에 직접 전달하시고요.”

서류를 물끄러미 봤다.

OW 마석 형태 변환기 공급망 자료 제출? 다른 서류를 보니 마켓템 아이템 거래 리스트 제출이라 적혀 있었다.

고객과의 신뢰가 중요한 우리에게 모든 거래처를 까라고?

정말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문창표가 맞긴 한 건가? 이것 숫제 모르는 사람보다 더하잖아.

평소 문창표의 방식은 아니다. 그 정도로 이번 일이 부담스럽다는 걸까? 이번에는 관리국이 빠지겠다는 말 한 마디면 나도 이해할 텐데…….

탁 탁 탁.

그가 시계를 보며 손가락을 정확하게 3번 탁탁탁거리다 말했다.

“하실 말씀 없으면 일어나 주시죠.”

여기서 그냥 일어날 수는 없다. 미국이 뭐라 하는지 알아야 우리가 대비할 수 있다.

그에게 말부터 던지고 보자.

“뭐라도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 오토마타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건 억측입니다. 그건 아저씨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또다시 말했다.

“업무를 봐야 해서 사담 나눌 시간이 없군요.”

“아무리 그들 압박이 심해도 행동까지 바꾸실 필요는 없잖아요. 정말 이럴 겁니까? 네?”

내 말을 무시하듯 문창표가 또다시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지완 길드장, 공사 구분도 못 합니까? 아주 무례하군요.”

그가 또다시 시계를 보며 손가락을 3번 탁탁거렸다.

안 하던 버릇하며, 시계 보는 것도. 얼른 나가란 뜻인가?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그는 언제나 져 줬었는데…….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그를 봤다.

이건 불합리하다.

미국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나와 지낸 세월이 얼만데 이렇게 단칼에 끊는단 말인가?

발버둥 치자.

“앞으로 관리국에서 받던 검사……. 일절 거부하겠습니다.”

그가 말하려 들자 다시 말했다.

이젠 할 수 없다.

“저, 이지완. 던전 입구에 얼씬도 안 할 겁니다. 그러니 관리국이 제게 계약 위반 어쩌고 할 이유도 없죠.”

그의 눈을 봤다.

“알겠습니다. 정 뜻이 그렇다면.”

정말 이렇게 관계를 자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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