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능력이 OS-121화 (121/334)

121화

-개척자 (1)

문창표가 한숨을 내쉬고 윤호준에게 말했다.

“윤 과장, 다음 달 의제로 올리게.”

“부장님. 아무리 그래도…….”

“난 올리라고만 했네.”

윤호준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잘 알겠습니다.”

문창표가 내게 말했다.

“서류는 넣어 보마. 이미 알아봤다면…….”

“알고 있습니다. 아저씨가 해 줄 수 있는 게 거기까진걸요. 심사에서 떨어진다면 더는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북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공화국에는 ‘황혼의 틈새’ 던전이 있다.

강한 헌터들이라면 한 번쯤 꿈은 꾸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서 선발된 사례는 없다.

이유라면 크로노스 연합 길드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연합이지, 그들은 SS와 SSS등급으로 이루어진 여러 나라의 몇몇 강자로 구성된 길드다.

그리고 그곳의 수장은 이미 김규석의 손에 죽임을 당한 지미 고든이다. 현재 그들은 구심점을 잃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황혼의 틈새’는 일반 던전과 달리 수십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거대 마탑이라 보면 된다.

다른 사람이야 그곳이 메리트가 있어도 교통편이 힘들겠지만 내겐 모울이 있다. 한 번만 방문하면 그곳에 출퇴근도 가능하다.

그런 장점을 내가 포기할 이유는 없다.

문창표가 빙긋 웃으며 화제를 바꿨다.

“넌 마켓템 행사 준비 안 하냐?”

한숨을 내쉬자 의외라는 듯 윤호준이 물었다.

“좋은 일에 왜 한숨입니까?”

“3부 행사 발표자가 접니다.”

문창표가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이 아저씨,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오! 드디어 많은 사람 앞에서 사기 치겠구나.”

“제가 언제 사기 쳤습니까?!”

“흠, 난 언제나 사기당한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와! 진짜 사기가 뭔지 보여 줄까 보다. 아, 그러다 거짓 식별에 당하겠구나.

가만, 그러고 보니 거짓 식별 종류에 백신 능력이 뚫리는 건 묘한 일이다. 일본의 이시이 나나도 비슷한 능력이었는데 백신이 말을 안 들었다.

백신 자체가 능력을 가리나?

이때, 윤호준이 내게 물었다.

“프레젠테이션 준비 안 합니까?”

“사실, 말이 안 되는데.”

문창표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이 안 된다고? 뭐가?”

“스티브 잡스도 프레젠테이션은 몇 개월 전부터 준비했어요. 그걸, 고작 10일 만에 해내라네요.”

“정해졌으면 해야지.”

“남 일이라고 툭툭 말하네요.”

“시간도 없는데 얼른 가서 준비해라. 던전 그만 돌고.”

허참, 이 아저씨가 던전이 무슨 놀이터 가는 건 줄 아나? 나도 나름 강해지려고 발버둥 치는 건데.

품에서 초대장 2개를 꺼내며 말했다.

“저 혀 꼬이는 것 보고 싶으면 행사에 오십시오.”

“하하, 실수라 판단되면 차라리 호탕하게 저질러 버려라.”

문창표의 저질러 버리라는 말이 때론 먹힐 때가 있다.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술술 풀리는 경우도 꽤 있으니까.

* * *

“여러분도 세계에 새로운 눈을…….”

육지호가 내 말을 끊더니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A4용지 내용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여러분! 새로운 세계로 초대합니다! 이렇게 말해야죠.”

와! 진짜 미치겠네. 어떻게 문단 자체를 통짜로 외우냐고.

그는 현재 내 발표를 체크 중이다. 뒤에서 지켜보던 민석 선배가 빈정댔다.

“번지르르하게 말하던 이지완이 가출했냐? 아니면 영혼이 빠져나갔어?”

잠시 쉬기 위해 소파로 가서 앉으며 그에게 투정 부리듯 말했다.

“그럼, 선배가 해 보시든지요.”

육지호가 질린다는 표정을 짓다가 민석 선배를 힐긋 보더니.

“주 이사님이 하면 기술 설명회 같이 될 겁니다.”

“들었지? 그래서 난 탈락!”

“자랑입니다.”

그러다 육지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가 말한 대로 무대는 준비됐습니까?”

“꽤 까다로웠지만 나름 완벽합니다.”

이번에 준비한 무대 장치는 상당히 충격이 클 것이다. 무대에서 비가 내릴 예정이니까.

그 마지막 장면에 선택될 사람은 이미 내 마음속에 정해져 있다. 물론 김규석이 김동연을 우리 마켓템 행사에 잘 끌고 왔을 때 얘기이긴 하지만.

그가 무대에 올라오면 난 비를 뿌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법 휴대폰의 능력을 맛보게 될 것이다.

또다시 육지호에게 물어봤다.

사실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궁금했다.

“그런데, 러스 밀러는 어째서 제가 피치 OS 발표하길 원한 겁니까? 본인이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사실 러스 밀러도 발표 정도는 잘할 수 있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말했다.

“세계 최초 U등급이 최초의 마법 OS를 발표하는 장면이 보고 싶어졌으니까요.”

문을 보니 피치 대표 ‘러스 밀러’였다.

육지호의 방을 둘러봤다.

“이 방, 방음이 엉망이군요?”

그러자 러스 밀러가 휴대폰을 꺼내 흔들어 보이며 내게 말했다.

“생각 이상으로 내부 소리가 잘 들리네요.”

그는 휴대폰을 내게 건넸다. 이게 우리의 첫 휴대폰인가?

“디자인은 매우 단순합니다.”

“저는 단순한 게 좋습니다. 그보다 무슨 능력을 썼길래 도청이 되는 겁니까?”

“바람 계열입니다. 아, 차후에 이런 기능은 막을 겁니다.”

“불법을 막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시는군요. 흐흐흐.”

“그렇죠. 하하하.”

이런 점은 마음에 든다. 검증은 어떻게든 해야 한다. 작은 허점으로도 IT 기술 회사는 큰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

그가 나를 물끄러미 봤다.

“왜 그러십니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휴, 기대하지 마십시오. 사실 망칠까 봐 걱정되니까요.”

육지호가 손뼉을 짝 치더니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자, 다시 해 보시죠. 이지완 이사님.”

아우! 프레젠테이션 너무 싫다!

* * *

쾅!

김규현 부회장이 책상을 내리치고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50대로 보이는 남자를 보며 닦달했다.

“조정철이. 그렇게밖에 일 처리 못 해?”

조정철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너, 일신 전자 사장 자리가 우스워?”

“당치 않습니다! 부회장님.”

“그런데 사장이나 되는 놈이 김규석한테 휘둘려?”

“그, 그게 갑자기 마석 가격을 2배로 올리겠다고 통보를 해 와서.”

김규현이 목을 뚜두둑거리며 말했다.

“햐, 그 새끼 어이없네.”

“이제 막 마석 휴대폰이 탄력받기 시작해서 난감한 상황입니다.”

“마석이 김규석이만 있어?!”

“다른 루트를 타진해 보고 있습니다만, 모든 길드가 일신 전자와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김규현이 숨을 들이켰다.

조정철은 말을 아꼈다. 자신에게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뻔히 알기 때문이었다.

김규현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 망할 새낀 내가 해결하지.”

조정철이 가슴을 쓸어내리자 김규현이 또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규석이 새끼가 전자를 기웃거릴까?”

조정철의 낯빛이 변했다.

일부러 보고조차 안 했던 일을 김규현이 들먹인 것이다. 그는 자신은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아! 저도 얼핏 들었습니다. 갑자기 방문했다고요.”

조정철은 마른침만 삼켰다. 제발 그냥 넘어갔으면 했다. 사실 김규현 부회장실에 오는 것만으로도 곤욕이고,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김규현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첩년의 자식이, 마수나 잡을 것이지. 어디 내 회사를 들락거리는 거야.”

김규현은 갑자기 재떨이를 집어 들어 조정철 다리 앞에 집어 던졌다.

쨍그랑!

“얼핏? 사장 새끼가 한단 말이 얼핏 들었다고? 너 이 새끼 미쳤어?”

결국 조정철의 희망 사항은 깨졌고, 포악한 김규현은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일단 급한 불을 꺼야 살 것 같아 그는 급하게 말을 던졌다.

“소, 소프트웨어 팀에 이것저것 물어봤답니다!”

“뭐? 거긴 왜?”

조정철이 또다시 말했다.

“특히, 개발자 구성도를 살폈다고…….”

“야 이 씨! 그러니까 왜! 왜! 어째서!”

조정철은 머리를 조아렸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김규현은 조정철을 보며 혀를 찼다. 자신의 불호령에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김규석이 방문했던 내용을 속속들이 말하는 조정철이 그저 한심했다. 그리고 내선 전화를 누르더니.

“함 비서 튀어오라 해!”

곧이어, 부회장실 문을 열고 함 비서가 뛰어 들어오자 김규현이 다짜고짜 물었다.

“내가 알아보란 건?”

“김규석 길드장님은 내일…….”

함 비서의 말을 바로 끊더니.

“야, 함 비서.”

“네, 부회장님.”

“우리끼리 있을 땐. 김규석 뒤에 직함 붙이지 마. 알았어?”

“네, 부회장님.”

“그래서 어쨌다고?”

“김규석이 내일 마켓템 행사에 참여한답니다. 그리고 회장님께서 동반하신답니다.”

“뭐? 아버지가 거길 왜?”

“비서실 말로는, 무슨 OS 발표가 있다고 했습니다.”

“OS? 그게 뭔데?”

“네?”

“OS가 뭐냐고?”

조정철이 얼른 눈치 보며 말했다.

“그,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돌리는 시스템을 말합…….”

김규현이 벌떡 일어나 조정철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조정철이 볼을 부여잡자 김규현이 손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내가 OS를 몰라 물어!?”

그가 고개를 돌려 함 비서에게 소리쳤다.

“그 OS를 어디에 사용하냔 말이야! 이것들이, 김규석 대가리는 좋고 난 병신으로 보여?!”

함 비서는 워낙 김규현을 많이 겪어 봤던지라 그냥 그러려니 하며 답했다.

“마법 OS라 했습니다.”

“마, 법?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조정철은 뭔가 생각났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김규현이 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조정철이. 너 짚이는 거 있었지?”

조정철은 김규현을 보며 생각했다.

‘독사 같은 새끼. 김규석은 그래도 종놈 부리듯 하진 않았는데……. 저건 그냥 깡패 새끼다.’

“너 이 새끼, 왜 말을 못 해!”

“히익! 그게 사실은…….”

* * *

김규현이 회장실 문을 벌컥 열며 다짜고짜 물었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김동연이 의자에 기댄 채 김규현을 보고 혀를 찼다. 첫째 아들놈의 망나니 같은 행동을 볼 때면 김규석이 백배는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치 김규현은 어린아이 생떼 쓰듯 따지기 시작했다.

“왜 제가 아니고 그놈과 거기에 간단 말입니까! 버젓이 부회장은 전데요. 왜 늘 그놈을 편애하냐고요!”

김동연이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자 김규현이 소리쳤다.

“아버지!”

김동연이 짧고 굵게 한 단어를 내뱉었다.

“회장님이라 불러라.”

그제야 김규현이 정신 차리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김 부회장.”

“네. 아버……. 회장님.”

“더도 덜도 말고 규석이 반만 따라가면 안 되겠나?”

“지금, 첩년 자식 편드는 겁니까?”

“뭐라?”

“내 자리 호시탐탐 노리는 놈과 비교를 왜 하냐고요.”

“너나 그놈이나 내 핏줄이다.”

“그놈 어미가 허경철이와 연인…….”

김규현은 순간 살기를 느끼고 말끝을 흐렸다. 너무 화가 나 입에 담아선 안 될 말까지 꺼냈다.

사실 김규석의 어머니 윤미연은 김동연이 탐하기 전까지 허경철 상무이사와 연인 사이였다.

김규현과 그의 형제들은 그것을 늘 김규석의 약점으로 흔들어 댔었다.

하지만 김동연조차 그 말은 듣기 싫었다. 자식 중 가장 훤칠하고 야망에 걸맞게 똑똑한 막내아들 김규석이었으니까.

그래서 부회장직까지 올라섰을 때 기대도 컸건만,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터지더니 망나니 큰아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다.

일신을 크게 키워 준다면 상관은 없건만, 하는 짓이 과거 자기 개망나니 기질만 닮았다. 그래서 더욱 불편하고 답답했다.

김동연은 안광에 살기가 흘리더니 김규현을 향해 강하고 묵직하게 경고를 날렸다.

“네 어미가 너처럼 주둥이 털다 소박맞았다.”

“죄, 죄송합니다.”

“그러고 마법 머시기, 원래 주인이 우리였다지.”

“네? 그게 무슨? 저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

“뭐라?”

김규현은 보고받았다. 하지만 얼토당토않다 싶어 알아서 하라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김동연의 표정이 구겨지자 김규현은 얼른 책임 면피를 시전했다.

“그, 그건. 아랫것들이 실수로 제게 보고 안 한 것 같습니다.”

“실수? 같습니다? 아랫놈에게 맡길 거면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거고?”

“바로 잡겠습니다! 그러니 내일 그 자리는 저와 함께 가시죠.”

김동연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제가 그룹 후계자 아닙니까? 그러니 내일 회장님 모시고 참석…….”

“네가 각성자가?”

“각성……? 아, 아닙니다.”

“마켓템이 뭐 하는 덴 줄은 아나?”

김규현은 버벅거렸다. 그러자 김동연이 또다시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김 부회장만 보면, 왜 머리가 지끈거릴까?”

김규현은 생각했다.

이게 다 그놈이 내 집에 오고부터다. 그놈만 없었다면…….

그러다 김규현은 김동연이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 첩년처럼 밀어 버려……?”

김동연이 또다시 혀를 차며 말했다.

“나가 봐라. 김 부회장.”

김규현은 미묘하게 히죽히죽 웃더니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숨기고 김동연을 보며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잘 다녀오십시오. 회장님. 규석이와 오붓하게 시간도 보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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