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같을 필요는 없다 (4)
켄타우로스가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술이 어디 있다는 것이냐?”
“성격 급하시네.”
그가 앞다리를 높게 치켜들었다. 뒤로 물러서자 놈이 앞다리로 지면을 내리쳤다.
쾅!
먼지와 함께 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요동쳤다.
놈이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거짓말에 능한 놈이구나.”
“인벤토리.”
[인벤토리입니다.]
와르르르. 깡. 데구르르.
내 뒤로 소주병이 산처럼 쌓이자 병 하나를 들어 놈에게 던졌다.
턱!
놈이 병을 한 손으로 낚아채더니 이리저리 소주병을 살펴봤다.
“이 물병은 무엇이냐?”
“한국인의 소주다.”
“소주?”
“그 꼭지를 돌려서 열어 봐.”
따르르륵.
난 저 소주병 따는 소리가 참 좋다. 일 끝나고 힘겨울 때 편의점에서 까 마셨던 그 소리.
맥주보다 도수가 높아 한 병을 사다가 잠들기 전에 한잔 마시면 딱 좋았다.
놈이 뚜껑을 열고 코끝으로 병을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는 듯했다.
자기가 감별사도 아니고. 그냥 마시면 될 것을.
놈은 쪼잔하게 손가락에 살짝 묻혀 맛을 보더니 이내 병나발을 불었다.
미친, 그렇다고 원샷을 하다니.
역시 인터뷰에서 본대로 술을 엄청나게 잘 마시고 좋아하는 게 사실이구나. 그것보다 마수가 술 마시는 것도 신기하다.
크아아아-!
놈의 시원스러운 탄성에 숲속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참나, 어이가 없네. 놈의 기분을 숲이 대신 표현해 주다니.
놈은 기분이 좋은지 소주 품평을 시전했다.
“크으! 쓰다가 뒷맛이 살짝 단맛이 도는구나. 생긴 건 마치 샘물같이 맑은 게, 깨끗한 술이구나.”
“그래서 마음에 드는 거냐?”
크하하하하!
놈이 호탕하게 웃다가 창으로 소주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걸 다 주는 것이냐?”
“아니.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다고.”
영상 속 헌터가 그랬었다. 우연히 건넨 소주를 그가 좋아했었다고.
결국 해당 영상은 방영되지 못하고 관리국에서 전면 수거해 갔다.
헌터가 마수와 교감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마수는 인간의 적인데, 말이 통하고 그것도 모자라 헌터가 능력을 받았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게다가 그는 관리국에서 모셔 갔다. 그의 예언이 상당히 적중률이 높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던전을 양도받을 때 이곳을 지목했다. 이제 그 예언 능력은 내 것이다.
“나는 이지완이다.”
“이지완…….”
“넌 이름이 뭐지?”
“놈! 감히 인간 따위가 이름을 묻는 것이냐!”
그가 앞발을 치켜들더니 또다시 땅을 크게 짚었다. 역시나 땅울림이 심하게 들렸다.
휴, 이놈이나 프랑켄이나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소주 한 병을 집어 들어 뚜껑을 땄다. 그리고 병을 뒤집어 바닥에 쏟아 버리자 놈이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냐!”
또다시 소주를 들어 바닥에 쏟아 버리자 놈이 내게 창을 겨눴다.
내가 인벤토리에 소주를 모조리 집어넣자 놈이 뒷발로 몇 차례 발질해 댔다.
상당히 소주가 마음에 들었나 보군. 그래도 오고 가는 게 있어야지.
내가 이 술을 한꺼번에 사느라고 얼마나 눈치를 봤는데.
각성자라 많이 마시냐? 알코올 중독이냐? 돈 벌더니 막사는구나.
아주 지들 멋대로 떠드는데……. 휴, 갑자기 화가 나네.
그의 상태창을 보며 물었다.
“케이론, 이게 이름인가?”
놈이 흠칫거리며 발길질을 멈췄다.
세상은 가진 놈이 유리하다. 협상해야 하는 자리라면 특히나 더.
놈은 술을 원하고 난 가진 자다.
의문이 드는 건 고유능력에 능력 하나가 ‘사라짐’이라 되어 있다. ‘잘림’은 봤어도 이런 건 처음 보는데…….
혹시 그게 예언인가 싶기도 했지만 불행한 생각은 일단 접어 두자.
케이론이 바닥에 창을 꽂더니.
“무엇을 원하느냐?”
됐다!
케이론을 올려보며 당당히 요구했다.
“예언.”
그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건 힘들다. 다른 거로 대신하는 건 어떤가?”
어렵다고? 미친 거 아냐? 아, 씨. 저놈 처치하고 술을 반납해야 하나? 어쨌든 뿔 토끼만 해도 난 대박이긴 한데…….
일단 찔러 보자.
“그럼 협상 결렬인데.”
“예언은 네놈 것이 아니다.”
“마치 주인이 정해져 있단 듯 말하는군.”
“아니, 이미 건넸기 때문에 줄 수 없다는 거지.”
이 던전 주인이 난데 대체 누가 가로채? 가만, 정보창에 보였던 ‘사라짐’이 예언 능력?
아. 씨. 뭔가 불길하더라니!
어떤 미친놈이 나 몰래 받아 간 거지? 망할 놈의 관리국. 던전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열받아 별별 생각을 할 때 이론이 말을 이었다
“예언은 1년 후 그 남자에게 주었다.”
저놈 취했나? 무슨 말이야?
1년 후 줬다니? 저거 혹시 알코올성 치매인가?
“1년 후에 어떻게 주냐고!”
“분명 그에게 줬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우, 머리야. 마수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는 것이냐!
……잠깐.
이미 줬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그럼 회귀가 맞잖아. 그렇다면 그 남자는 능력을 받은 거야, 아님 받지 않은 거야?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보다 놈이 회귀를 인식한다면…….
“이 세계가 회귀 후란 것을 말하는 것이냐?”
“그런 건 모른다. 이미 미래에 줬다. 내 기억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망할, 어찌 되었든 지금 저놈은 개털이다.
아, 소줏값 어쩌냐……?
눈물이 찔끔 나려 한다.
그 능력을 받았던 헌터 이름도 모르는데. 아우, 난 어떻게 하는 일마다 늘 꼬이는 거지?
놈은 미래에 줬다는 헛소리……. 가만, 여기 보스는 어째서 다른 놈들과 확연히 다른 거지?
회귀는 모르는데 자기 능력을 줬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말도 통하고, 다짜고짜 공격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마수가 자기 능력을 인간에게 주나? 그냥 술을 뺏어 먹어도 되는데.
협상하려 든다. 자부심도 있고.
놈이 입맛을 다시며 또다시 협상을 시도했다.
“다른 것으로 대신하는 건 어떻겠는가?”
소주 한 병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그에게 던졌다.
“그럼, 질문을 하지.”
놈이 소주 한 병을 단박에 마시고 말했다.
“질문은 받지 않는다.”
이 자식, 뭔가 아는 건가?
그보다 먹기 전에 말하라고! 확 그냥 나머지 능력이라도 복사해 버려?
놈이 화들짝하며 뒤로 조금 물러서더니.
“내게서 능력을 훔치려 들지 말라.”
훔치지 말라고? 나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아니 그보다 내 생각이 어째서 들리는 것이냐?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저놈, 내 생각을 엿보고 있다. 놈의 고유능력에 그런 건 없는데.
그나저나 상황이 이러면 시간 낭비일 뿐이다.
“나보다 약한 네게서 얻을 게 뭐가 있지?”
“내가 약하다?”
“지금껏 만난 던전 보스에 비하면.”
“그럼 겨뤄 보겠느냐?”
자존심이 상했나 본데.
사실이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지금의 내가 볼 때 놈은 나보다 약하다.
대답 대신 놈을 보며 단검을 고쳐 잡았다.
케이론의 손에서 창이 사라지고 양손에 칼이 생성됐다.
칼만 쥐었다는 건 오로지 공격 중심이란 거겠지.
일단, 탐색전이다.
“신체우월, 음속.”
퓻!
몸을 숙여 놈의 다리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놈이 앞발을 치켜들자 나는 잽싸게 옆으로 돌았다. 그 순간 놈이 칼을 휘둘렀다. 곧바로 뒤로 물러나며.
후미를 잡자.
재빨리 놈의 뒤로 돌자 강하게 흙먼지가 일었다.
이런, 뒷발질로 먼지를 일으키다니.
눈이 보이지 않으니 뒤로 물러나야 한다!
슈아악!
칼 소리가 들리자 더욱 뒷걸음치며 거리를 벌렸다.
눈을 빠르게 깜박이며 시야를 확인하는 순간, 놈의 칼끝은 이미 내 목에 살짝 닿아 있었다.
케이론이 지긋이 나를 내려다봤다.
“이래도 계속하겠느냐?”
억지인 건 알지만 놈에게 승복하긴 왠지 억울했다.
“이건 비겁하지 않나?”
“비겁? 전투엔 죽음과 삶, 두 가지만 존재한다.”
놈이 칼끝을 거두었다.
“일반 켄타우로스라면 쉽게 당했겠지만 난 다르다.”
확실히 놈은 강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싸움에 능하다. 가진 힘은 내가 강하지만, 녀석은 기술이 뛰어났다.
놈이 뒤로 조금씩 물러나 양손에 든 칼을 휭휭 자유자재로 돌렸다.
내가 더 빨리 움직이면?
“무게 반감.”
방아쇠를 당기듯 허벅지를 폭발시켜 놈의 품으로 파고들어 곧바로 케이론의 발목을 향해 발길질했다.
상대적으로 얇은 말 발목이 강할 리 없다.
터어엉!
이럴 수가! 마치 쇠몽둥이 같다. 황당해서 위를 보자 놈과 눈이 마주쳤다.
“약점이라 생각한 모양이군?”
황급히 뒤로 물러나 단검을 고쳐 잡았다.
“그랬는데, 아닌가 보네.”
말의 또 다른 약점은 배 밑이다.
“그림자밟기.”
순식간에 놈의 배 아래로…….
이럴 수가?
놈의 그림자에서 불쑥 튀어 올라 단검을 휘두르자 허공만 갈랐다.
케이론은 어느새 태양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의 그림자는 길게 숲을 향해 늘어져 있었다.
그는 마치 내 얄팍한 수를 꿰뚫어 보는 듯, 한 수 앞섰다.
놈의 길게 늘어난 그림자에서 나와 양손을 들었다.
그의 양손에는 칼이 사라졌고 이미 활을 내게 겨누고 있었다. 놈이 손만 놓으면 내 미간이 꿰뚫릴 것이다.
“확실히 빨라졌지만 그게 다다.”
실전이었다면 벌써 두 번이나 놈의 손에 죽었다.
놈은 나를 조준한 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 번 더 해보겠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더 빠르게 공격하면……!
“초음속.”
현재 내 최고 속도……. 놈의 능력을 넘어서면 화살 따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놈에게 달려들기도 전에 무수히 많은 화살 다발이 광범위로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이런 망할! 피해야 한다.
퓨슛!
화살의 궤적을 보며 단검을 정신없이 휘둘러 쳐 내자 그 뒤로 끝없이 화살이 날아들었다.
탁탁탁 탁 턱 탁…….
챙창창 챙챙…….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활이 어째서 끝도 없이 날아드는 거지?
그렇다면…….
하늘을 보며 외쳤다.
“비행.”
[쿨타임이 필요합니다.]
아차, 조금 전 사용했구나.
놈이 계속 활시위를 당기며 내게 말했다.
“어떻게, 더 해볼 것이냐?”
인정한다. 나보다 등급은 낮지만, 전투 능력은 놈이 위다.
경험이 남다르다.
“어이, 케이론. 어째서 넌 다른 마수들과 다른 거지?”
“다 같을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은가?”
끊임없이 날아오던 화살이 멈추자 앞을 봤다.
케이론의 손에서 활이 옅은 빛을 내며 사라졌다. 그리고 내게 희미하게 미소를 띠었다.
“그대가 졌다. 소주를 다오.”
뭔가 맥이 빠졌다. 이놈은 인간보다 더 인간 같구나.
“인벤토리.”
와르르르 챙, 깡.
모든 소주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케이론이 소주 더미에 다가왔다.
“이것들을 마시고 사라져 주마.”
“사라진다니, 어디로?”
“알려고 애쓸 필요 없다.”
“너무하네. 그래도 술까지 대접했는데.”
그가 사슴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미 큰 것을 얻지 않았느냐?”
“내가 예상한 건 이게 아니었거든.”
그가 지그시 나를 봤다.
뭐지? 진짜 싸우자는 건가, 혹시.
그가 손을 펴자 포션 병이 생성됐다.
저거 어디서 봤던 건데? 은색의 은은한 빛깔…….
“요르문간드의 눈물?”
내 중얼거림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걸 아는군?”
“아주 잘 알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다 무심한 표정으로 포션을 던졌다.
이런 미친!
급히 달려가 포션을 겨우 잡았다.
놈이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민첩하구나.”
“장난이 좀 심한 거 같은데? 이거 상당히 귀한 거로 아는데.”
그가 포션을 가리키며 말했다.
“귀하지만 내겐 필요 없는 것이다.”
그의 상태창을 보며 물었다.
“‘불사의 고통’ 때문인가?”
그는 소주병을 또 하나 까마셨다.
“고통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니까.”
그러더니 소주병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저것들을 들이켰더니 고통이 누그러드는구나.”
술이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란 말같이 들리네.
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댔다.
“어떻게든 감추더니, 어째서 호기심 많은 인간을 고른 걸까?”
무슨 뜻이지?
내가 호기심이 좀 많기는 하지.
“그도 그걸 알 텐데…….”
순간, 케이론을 멍하게 봤다.
그. 또다시 ‘그’가 거론됐다.
케이론은 또다시 소주 한 병을 입 안에 털어 넣더니.
“보답으로 한 가지만 알려 주겠다.”
순간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얼굴을 봤다.
가만 보니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를 닮았네. 말 다리만 아니면 우리 쪽에서 상당히 인기남이었을 거 같다.
놈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꺼냈다.
“너는 그의 노여움을 샀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상하게도 말이 통하는 마수들은 하나같이 내용을 알아듣기 힘들게 말한단 말이지.
혹시 ‘그’라는 놈의 눈치를 보는 것일까? 드라이어드 영감도 그가 두려운지 벌벌 떨었었다.
그는 나를 뚫어져라 보다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가지를 빠뜨린 것인가?”
휴, 뭘 빠뜨렸다고 그러는 거지? 참 답답한 말만 하네.
“수수께끼는 스스로 맞춰야 재밌는 것이다.”
얼른 그의 말을 되받아쳤다.
“미래를 아는 게 얼마나 유용한지 모르나 보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 가장 궁금한 걸 물어보자.
“그와 나는 무슨 관계지?”
케이온은 묵묵히 소주 한 병을 들이켜고 숲을 바라봤다.
“가야 할 때군.”
소주를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
“술은 여기 두면 되냐?”
“가져가거라. 더는 필요 없으니.”
또각또각.
왠지 말발굽 소리가 처량했다.
케이론이 멈춰 서며 말했다.
“넌 충분히 마석을 섭취했다. 물론 빠뜨린 마석이 있지만…….”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수수께끼의 답이지.”
“그럼 그의 미움을 샀다는 건?”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중얼거렸다.
“고통스러운 삶을 끝낼 때인가?”
고통스러운 삶? 뭘 끝내?
“얼마 전 그의 눈을 가리지 않았느냐”
“눈을 가려? 관찰지? 그걸 말하는 거냐?”
그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콰르르릉-!
순간 하늘을 올려다봤다.
두꺼운 먹구름과 함께 여기저기서 번개가 튀고 있었다.
그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하하. 나도 여기까지인가 보군.”
케이론이 미묘하게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여기까지라니?
그때 눈앞에 섬광이 일었다.
번쩍
그리고 거대한 푸른빛이 그에게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앙-!
뭐? 어째서?
케이온이 빛 속에 삼켜지며 소리쳤다.
“그도, 그의 형제도 결국 똑같다! 조심하거라, 인간이여! 소주를 줘서 감사했다…….”
데구루루.
케이온이 사라진 자리에 보라색 마석이 바닥에 굴렀다.
너무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어째서 그가 죽은 거지? 이게 ‘그’라는 놈의 힘인가?
뭔데, 이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네놈 정체가 뭐냐!”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잠시 후 상태창이 떴다.
[보물 상자입니다.]
클리어라고? 내가 케이론을 죽이지도 않았는데 무슨…….
주먹을 움켜쥐고 보물 상자를 힘껏 내리치며 외쳤다.
“개소리 작작 해!”
콰아앙!
난 놈을 죽이지 않았다고…….
그때였다.
먹구름의 천둥소리와 함께 놈의 사념이 머릿속에 들렸다.
[Uø:é¡êÕ´â]
이건, 꿈에서 들었던 목소리다.
“알아듣게 말해라!”
[Uø:. 거스르지…… ßg¹î]
거스르지? 처음으로 놈의 말이 살짝 들렸다.
“내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먹구름도 걷혀 있었다.
산산이 부서진 보물 상자에는 황금색 열쇠 하나가 놓여 있었다.
멍하게 열쇠를 보다 머리를 쓸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감정.”
[40의 시련]
크크큭. 이제 대놓고 엿 먹이겠다?
열쇠를 움켜쥐며 맹세했다.
언젠가 네놈 턱주가리를 날려 주마.
케이론이 사라진 자리로 걸어가 마석을 주워 들었다.
이건, 흡수하고 싶지 않다.
파아아-!
어? 뭐냐?
순간 케이론의 마석이 모래알처럼 잘게 부서져 손에서 흘러내렸다.
마지막 그의 미소가 떠올랐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가 마음에 들었다. 인간이나 마수나 윗놈들은 제멋대로구나.
그때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OS 패치가 있습니다.]
[시작하시겠습니까? Y /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