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던전 오버랩 (5)
샬롯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지완은 어디 가고 댁들만 있는 거야?”
그녀의 뒤로 저스틴의 말이 들렸다.
“아이템과 마석은 우리 길드 소유군요.”
“아빠! 여기가 강남 맞아?”
“대호가 열어 준 곳이 여기니 맞을 텐데.”
“아우! 대호를 믿어?”
윤호준이 손목을 주무르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지완 길드장은 이 대로를 따라가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조금 전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샬롯은 윤호준의 말을 흘리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로를 봤다.
한서린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깊은 의문에 빠졌다.
“어째서, 그녀가 나보다 강한 거지? 얼마 전까지 B등급이었잖아…….”
전열을 가다듬던 직원이 던전 입구에 흘러나오는 마력을 감지하고 순간 흠칫거렸다.
“하, 한 놈 더 나옵니다!”
관리국 헌터들이 술렁거리며 다시 전투태세에 임하자 거대한 그렌델이 던전에서 어슬렁대며 나오더니 허공에 대고 크게 도끼를 휭휭 휘둘렀다.
도끼의 풍압이 어찌나 강한지 길 위에 승용차가 뒤로 밀려났다.
그때 누군가 마력 화살 2발을 그렌델의 눈을 향해 날리자 헌터들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렌델은 도끼로 화살을 막더니 팔을 휘둘러 전격을 막고, 또다시 날아든 불덩이를 도끼로 쳐 냈다.
헌터들은 포션을 입에 들이부으며 계속해서 공격을 쏟아부었지만 그렌델에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저스틴이 고개를 돌려 부드럽게 말했다.
“샬롯, 처리해 주면 어떨까?”
“싸우고 있는데 어떻게 끼어들어?”
“공격이 멈추는 순간 뛰어들면 될 것 같은데?”
그녀는 유심히 그들을 지켜보다가 헌터들의 공격이 뜸해지자 저스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촤아아아! 창창창…….
그녀가 헌터들의 간헐적 공격을 피해 허공에 검날을 곡선으로 그리자 그렌델의 온몸이 날카로운 송곳에 찔린 듯 여기저기 구멍이 송송 뚫려 나갔다.
헌터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공격을 멈추자 샬롯은 또다시 그렌델의 몸통에 검격을 긋고 휙 돌아서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불과 몇 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강한 헌터들은 그녀의 움직임에 경악스러웠다.
“대체 몇 번을 찔러 넣은 거지?”
“그것보다 저 움직임, 어디서 봤는데…….”
샬롯이 검을 검집에 넣자 온몸이 숭숭 구멍 뚫린 그렌델의 상반신이 반으로 잘린 채 천천히 흘러내리며 사라졌다.
저스틴이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더니 마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마석도 OW 길드 소유입니다.”
윤호준은 흠칫거리다가 누군가를 떠올렸다.
“이럴 수가, 에밀리 녹스 판박이잖아. 어떻게 저 여자가 똑같은 기술을 쓰는 거지?”
한서린은 마석을 줍는 샬롯을 보며 윤호준에게 말했다.
“영상 자료로 본 에밀리보다 샬롯 씨가 더 강하고 빨라요. 샬롯 씨가 사용한 ‘장미의 가시’가 검 끝이 더 촘촘했고요.”
샬롯이 빨리 가고 싶단 표정을 지으며 저스틴에게 삐죽거렸다.
“됐지! 이제 빨리 가자고!”
한서린이 재빨리 소리쳤다.
“잠깐만요!”
“아 또 왜! 뭐? 어쩌라고!”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 남아 주세요. 샬롯 씨.”
윤호준이 당황하며 한서린을 봤다.
“한 대리, 무슨 말이야?”
“과장님, 여기도 강한 전력이 필요해요.”
그녀는 던전 입구와 시계를 번갈아 보다가 말을 이었다.
“더는 마수가 나오지 않으니 1차 웨이브가 끝난 거잖아요. 지금까지 2마리. 2차 웨이브면 20마리라고요.”
“그건 맞는데 그녀가 자신의 길드에 합류하는 건 막을 수 없어.”
“그래! 난 우리 길드로 갈 거라고.”
저스틴은 관리국 헌터들을 물끄러미 봤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헌터들로는 2차 웨이브를 막긴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샬롯, 도와줘야겠구나.”
“아우! 그럼 아빠가 남든지.”
“약자를 외면하라고 에밀리가 가르치진 않았을 텐데?”
“그, 그렇지만 지완이가 있는 곳도 위험할 테고…….”
“대호 말로는 ‘환란의 마녀’ 미아 호라크가 같이 갔다던데? 마수가 더 위험하지 않을까?”
그의 말에 핑곗거리가 사라지자 그녀는 불만스럽게 볼을 부풀렸다.
저스틴이 진중하게 윤호준을 보며 말했다.
“관리국에서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건가요?”
“서류 정리는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그리고 2차 웨이브까지만 도와주신다면 3차 웨이브는 저희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때는 새로 투입될 길드도 있을 테니까요.”
샬롯이 갸우뚱하며 물었다.
“2차 웨이브? 그게 뭔데?”
한서린이 의아한 듯 그녀를 봤다.
“이지완 씨 길드원이 웨이브를 모르나요?”
“그러니까 파도가 어쨌다고.”
“샬롯은 한동안 뉴욕에 있어서 그간 일을 모릅니다. 사실, 한미소 씨와 미아 호라크도 샬롯은 모르고 있거든요.”
“아, 됐고. 마수들만 막으면 된다는 거잖아?”
“감사합니다. 이번 일 끝나면 관리국에서…….”
윤호준이 반기듯 얼른 말하자 샬롯은 대뜸 그의 말을 끊었다.
“맛집 안내해 줘.”
“……네?”
“맛집 몰라?”
저스틴이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미식가라서요. 하하.”
한서린이 얼른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가 안내하죠. 윤 과장님은 그런 거 관심 없거든요.”
* * *
허경철이 두 팔을 벌리며 김규석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안 됩니다. 부회장님.”
“비키시죠. 허경철 이사.”
“회의하다 말고 레이드라니요!”
“강남이면 코앞입니다. 일신 길드장이 안 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허경철이 고개를 돌려 묵묵히 둘을 지켜보는 김동연 회장에게 따지듯 물었다.
“회장님. 어째서 가만히 계시는 겁니까? 김 부회장님이 강한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이제는 일신 그룹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의 말에 김동연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지놈이 가겠다는데 어째서 막아야 하나?”
“회장님!”
“허허, 누가 보면 허 이사가 저놈 아비인 줄 알겠네.”
그 순간 김규석의 눈에서 살기가 서리자 허경철이 힘없이 팔을 내렸다.
김규석은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
“회장님은 안전하게 여기 계십시오. 길드원 몇 놈 붙여 놓겠습니다.”
김동연이 대뜸 물었다.
“SSS등급까진 얼마 남았지?”
“그동안 레이드에 참가 못 해서 시간이 걸릴 듯싶습니다.”
“그럼 이참에 마석도 챙기고, 니놈 등급도 올리면 되겠네?”
“노력하겠습니다.”
김동연이 회의실 테이블 탕 치며 말했다.
“노력 말고! 결과로 보여야지. 이지완 그놈처럼.”
“……네, 회장님.”
김동연이 이사들을 보며 말했다.
“저놈이 날 닮아서 패기 하나는 좋단 말이지. 안 그런가들?”
이사들이 얼른 김동연의 말에 한마디씩 덕담을 올렸다.
“딱 회장님 젊은 시절 판박이죠.”
“이번 마법 휴대폰도 김 부회장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죠.”
“회장님 선견지명을 빼닮았습니다. 허허허.”
허경철은 이사들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마수를 직접 본 적 없어도 괴물과 싸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란 것쯤 알고 있었다. 이사진의 아부성 말에 그는 어이가 없었다.
김동연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허경철을 보며 말했다.
“불도저 김동연이 씨가 어디 가겠어?”
그 말에 김규석은 살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 * *
승현이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새로 생긴 던전이 KGC 사옥 옆이라는데 어쩌지?”
그러자 한미소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거기까지 신경 쓸 수 없어요. 던전 2개도 솔직히 말이 안 돼요.”
“제가 분신을 사용하면요?”
미아 호라크가 내 어깨를 움켜쥐더니 꾹 누르며 살짝 위압을 가했다.
“애송이. 마수가 우스워?”
“그, 그럴 리가요.”
이 아줌마, 악력이 예전보다 더 강해진 거 같다.
“그럼 여기만 신경 써. 나도 이런 동시다발은 장담 못 하겠으니까.”
“승현아, 관리국에 못 도와준다고 말해.”
한미소가 던전을 물끄러미 봤다.
“이지완 길드장. 감정할 수 있죠? 두 던전 등급이 어떻게 되죠?”
이런,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얼른 강남역 대로에 솟아오른 던전을 봤다.
[지배자의 머릿결: A-]
고개를 돌려 신사 방향을 뚫어져라 봤다.
[땅의 아들: A+]
내가 생각해도 두 던전 모두 범상치 않다.
“강남역 던전은 A-급입니다. 그리고 신사역은 A+등급이네요.”
“그럼 신사가 더 위험하군요.”
이때 승현이가 휴대폰을 한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지완아, 3번째 던전은 관리국에서 맡기로 했단다.”
그들이 도착했구나, 천만다행이다.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엉뚱한 말을 꺼냈다.
“그런데 샬롯이 거기 있다는데?”
“샬롯? 샬롯이 거긴 왜?”
“윤호준 과장이 양해해 달래.”
뭐라는 거지?
얼른 승현이에게 달려가 휴대폰을 빼앗아 곧바로 말했다.
“OW 이지완입니다. 통화하는 분 누굽니까?”
-윤호준 과장입니다. 이지완 길드장님.
그는 던전 등급을 매긴다. 일단 그곳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야겠지.
“던전 등급이 어떻게 됩니까?”
“S급입니다.”
이런, 두 던전보다 터무니없이 강하다.
“샬롯은 안 됩니다.”
-이, 이지완 길드장님.
“당장 돌려보내세요. 아무리 손이 급하다고 S급 던전에 B급 헌터를 투입하다니요. 제정신입니까!”
-……외람되지만 샬롯 그린 씨는 저와 동급 혹은 그 이상입니다.
“지금 장난합니까?”
윤호준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꺼내는 거지?
-이지완 길드장님, 제가 장난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그때, 샬롯의 목소리가 휴대폰으로 들렸다.
-야, 이지완. 난 강하면 안 돼?
“샬롯?”
-내가 강하다니까 왜 못 믿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믿어.
얘가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러는 거지?
-이제 너보다 더 강할지도 몰라.
에밀리와 수련이 그 정도 효과였다는 건가……. 윤호준도 인정할 정도로?
-왜 말이 없어?
“……알았다. 다치지 마라.”
-너나 조심하라고.
윤호준이 허튼 사람은 아니니까 믿는 수밖에 없겠지.
휴대폰을 승현이에게 넘겼다.
녀석이 강해졌다니 반갑긴 한데, 그렇게 쉽게 등급이 올라가나?
그보다…….
건방이 하늘을 찌르네. 자기가 나보다 강하다고?
한미소가 휴대폰 시간을 확인했다.
“5분 지났군요. 마수가 더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 2차 웨이브가 곧 진행될 가능성이 크군요.”
미아 호라크가 갸웃거렸다.
“2차 웨이브라니?”
“마수가 3차례 나눠서 나오는 걸 말하는 거예요.”
“하, 그런 건 약한 애들이나 생각하는 거지. 안 그래, 애송이?”
“저도 많이 약합니다.”
“날 때려잡던 그놈은 어디 갔어?”
“그건, 어쩌다 보니…….”
휴, 말을 말자. 그때 그게 내 힘도 아니고. 지금도 그녀가 나보다 더 세다. 그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눈치지만.
“조를 나누죠.”
한미소의 말에 미아가 대뜸 공격적으로 나왔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애송이가 길드장 아냐?”
“미아 호라크 씨,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 애송이란 말부터 그만두는 게 어떨까요?”
“내 애칭인데?”
“역시 마녀다운 말이군요?”
“사악한 년보단 낫지 않을까?”
아악! 이 아줌마들이 진짜! 왜 갑자기 기 싸움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