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버전 업 (3)
* * *
“애송이가 어떻다고?”
미아 호라크의 물음에 한미소가 다급히 외쳤다.
“심장이 몇 번이나 멈췄다가 다시 뛴다고요!”
미아 호라크는 이지완의 코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런, 숨을 안 쉬는데?”
그녀가 황급히 이지완의 가슴에 양손을 얹고 심폐 소생술을 시도하자 한미소는 이지완의 얼굴을 살폈다.
“다시 혈색이, 돌아왔어요.”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그 순간 이지완의 몸이 뭔가에 가격당한 듯 튕겨 올랐다.
“……뭐?”
한미소가 얼른 그의 몸을 손으로 눌러 진정시키고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댔다.
“심장이 또다시 멈췄어요…….”
“미치겠네. 이유가 뭐냐고.”
“마석을 흡수하더니, 이렇게 됐어요.”
“마석을? 어떻게 마석을 흡수해?”
“그는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레벨 업을 했던 것 같아요.”
한미소가 땀을 흘리며 한참을 심폐 소생술을 펼쳤다. 미아 호라크가 그녀의 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멈춰 봐.”
“뭐 하는 거예요?!”
“잠시만 지켜보자고.”
“그러다 죽으면요? 난 그럴 수 없어요.”
“물러나 보라고!”
미아는 한미소를 밀어 버렸다. 한미소는 잠깐 멍하게 있다가 살기를 뿜으며 미아를 노려봤다.
“설마, 이지완 길드장이 죽길 바라나요?”
그녀는 미아 호라크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미아 호라크를 상대로 이지완을 지켜낼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또다시 이지완의 몸이 튕겼고, 미아는 한미소와 이지완을 번갈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잘 봐. 애송이 마치 누구와 싸우는 것 같지 않아?”
“무슨 그런 황당무계한 소릴…….”
“보라고, 아까보다 숨 쉬는 시간이 늘었어.”
한미소는 진정하고 이지완을 봤다. 그는 주먹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다가, 곧 숨이 멈췄다.
미아는 이지완을 관찰하듯 보더니.
“3, 2, 1. 잘 봐. 애송이가 마치 다시 살아난 것처럼 또다시 숨을 쉬잖아.”
잠시 둘이 조용히 지켜보자 심장이 뛰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이게, 대체 어찌 된 거죠?”
미아가 이지완을 보며 추측했다.
“애송이. 뭐 하고 싸우고 있는 거냐?”
계속된 이지완의 기묘한 행동을 지켜보던 한미소는 소름이 돋았다.
“당신 말대로면 그는 지금껏 이런 식으로 레벨 업을 해 왔단 거네요.”
“레벨 업을 이런 식으로?”
“그는 마석을 매개로 레벨 업을 한 듯해요.”
“……그건 아닐 거야.”
“아니라고요?”
“애송이는 얼마 전까지도 레벨을 올리려고 던전을 돌며 전전긍긍했으니까. 세상에 마석으로 레벨을 올리는 각성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제 앞에서 마석을 흡수하고 이렇게 됐다니까요?!”
또다시 이지완의 몸이 튀어 오르자 미아가 한 손으로 그의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힘줘서 말했다.
“뭔지 몰라도 이겨내라. 보스.”
* * *
벌써 몇 번을 죽은 거지?
솔직히 어이가 없다. 죽는 고통이 무뎌질 줄은.
계속해서 죽고 또다시 살아나며 한 가지 깨달았다.
내 모든 능력이 또다시 막혔다.
이번 2차 시련은 기본 신체 조건으로만 싸우라고 OS가 강요하는 것 같다.
부우웅!
놈의 폭풍과도 같은 주먹이 연타로 날아들자 손으로 받아 내며 옆으로 돌았다.
또다시 주먹이 날아들자 최대한 타격을 상쇄하며 백 덤블링 하며 뒤로 빠졌다.
꿈이라 그런 건지 내가 지금껏 깨닫지 못한 건지 명확지는 않지만.
거듭된 업데이트와 버전 업으로 내 신체 능력 또한 상당히 올랐단 것을 알게 됐다.
그래도…….
놈을 힘으로 누를 순 없다. 그러기엔 저 거인이 너무 강하다. 단 한 번 기회를 잡아 숨을 끊어야 한다.
그 순간 놈이 육중한 몸을 무기 삼아 뛰어들더니 왼손을 높이 치켜들어 내 머리통을 찍어 누르듯 내리쳤다.
재빨리 무릎을 굽혀 자리에 주저앉으며 놈의 힘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놈은 몸을 크게 뒤로 젖히며 내게 주먹을 내리꽂으려 했다.
큰 동작은 허점이 생긴다.
예상대로 거인이 주춤거렸다.
지금이다!
놈의 옆으로 빠르게 굴러 빠져나왔다. 놈의 후미를 잡은 나는 놈의 넓은 등을 밟고 두꺼운 목을 팔로 휘감았다.
크게 숨을 들이켜며 뱀처럼 놈의 단단한 목을 조였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자 팔뚝에서 뻑뻑 근육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놈은 컥컥대며 뒷걸음치다 다시금 앞으로 숙였다. 또다시 거인이 크게 몸부림치다가 뒤로 넘어져 나를 때어내려 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끝까지 잡고 늘어졌다. 놈의 두꺼운 목을 조이던 팔뚝이 저리다 못해 찢어질 듯 고통스러워 입술을 짓씹어 댔다.
제발 그만하자! 죽으라고!
꽈드드득.
거인의 목뼈가 바스러지며 놈의 팔다리도 축 늘어지자 나 또한 새하얀 허공을 보며 연신 거친 숨을 내몰아 쉬었다.
헉헉헉.
[버전 업 완료.]
이제, 마지막 놈이다.
젠장, 이번 보스는 아마 내가 맡았던 강남 던전 보스겠지.
문제는 이놈은 아무 정보가 없다. 애초에 보질 못했으니까.
이번에는 어떤 능력이 막힐지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실험실 쥐도 아니고 미치겠네.
누가 됐든 빨리 나와라.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으니까.
지친 몸을 일으키자 예상대로 상태창이 내 앞에 펼쳐졌다.
[3차 시련이 시작됩니다.]
스르륵.
바닥을 쓸리는 기묘한 소리에 고개를 쭉 빼고 봤다.
이건 또 뭐냐? 마치 저건 뱀 꼬리 같은데.
시선을 천천히 몸통으로 옮기자 알몸의 여성 상체가 보였다.
그리고…….
레게머리인가? 머리통에 뭔 뱀들을 주렁주렁 달고?
쩌적!
머릿속이 암흑으로 변했다가 정신을 차리며 숨을 거칠게 들이마셨다.
커어억!
[3차 시련이 다시 시작됩니다.]
이미 죽었었다고? 어떻게?
뱀 대가리가 그렇게 빠르다고?
고통이라고는 심장이 돌처럼 굳는 것 같았는데…….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걸 깨닫고 크게 뒤로 뛰어 놈을 봤다.
석상? 어, 뭐야. 저건 나잖아. 어째서 내 석상이 생겨난 거지?
그때 저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스르륵.
하체는 뱀. 상체는 여자 그리고 머리에 뱀?
맙소사, 메두사다!
놈의 눈과 마주친 그 순간 사고가 정지됐다. 그리고 정신이 들자 또다시 조금 전 내 모습이 석상으로 세워져 있었다.
말인즉. 이번 보스는 절대 봐선 안 된다.
돌로 변해 죽으니까.
첫 번째는 검술, 두 번째는 격투술, 세 번째는 대체 뭐지? 어떤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거냐?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던 중 등에서 소름이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만약, 메두사가 강남에서 활보했다면 그야말로 지옥의 시작이었고, 당시 채수진이 없었다면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었을 거다.
망할! 그야말로 천운이다.
헉헉헉.
대체 얼마나 죽은 거지?
메두사를 피해 조금 전 석상으로 변한 내 뒤로 몸을 숨겼다.
숨을 고르며 둘러보니 엄청난 수의 석상이 이곳저곳에 서 있거나 바닥에 뒹굴었고, 어떤 것은 놈의 꼬리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있다니…….
스르륵. 스륵.
놈의 긴 몸통이 미끄러지듯 내 석상 옆을 지나쳤다. 그나마 놈의 옆모습은 문제없이 볼 수 있구나.
다행히 인벤토리는 작동하는지 썸머는 꺼낼 수 있었다.
썸머를 통해 마력 사용은 가능한데 그것 외에 ‘일곱 후광’ 같은 강력한 능력은 사용 불가란 상태창이 떴다.
보는 순간 돌이 돼서 ‘끈질긴 생명’도 소용없고. 젠장, 이번 시련에서 OS가 원하는 게 대체 뭐지?
신화와 똑같다면 거울로 메두사의 능력을 되받아치면 되는데.
나름대로 적응하고 몇 번이나 놈의 후미만 쫓아다녔다. 이 방법 외에 달리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메두사의 뒷모습이 보이자 재빨리 달려 놈의 후미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놈이 뒤돌아봤고, 내 두근거리던 심장이 뚝 멈추는 감각을 느꼈다.
아, 망했다.
꽈드득. 꽈득.
정신을 차리자 조금 전 돌로 변한 내가 바닥에 부서져 있었다.
어떻게 싸우란 거지?
썸머의 손잡이를 감아쥐고 메두사 꼬리를 향해 검격을 날렸다.
쒜에에엑!
터엉!
놈의 감각이 뛰어난 건지 손쉽게 내 검격을 꼬리로 튕겨냈다.
비늘 때문일까? 터무니없이 단단하다.
놈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자 시선을 피해 얼른 석상 뒤로 몸을 숨겼다.
마주치면 끝이다. 그 뜻은 눈만 마주치지 않으면 된다는 건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내 바보 같은 본능이, 놈의 얼굴을 보고 마니까.
놈은 상체를 숙여 빠르게 석상들 사이를 활보하며 나를 찾아다녔다.
계속해서 테이밍이며, 빙설의 실타래, 파이어 레인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능력을 읊조렸지만, OS가 원하는 답이 아닌지 사용 불가란 말이 하염없이 떴다.
적어도 싸우기 전에 힌트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 안 보고 싸울 수 있을까?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면 시험해 볼 만하다. 이대로 싸워 봤자 시간 낭비다.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찌이익!
윗옷을 찢어 눈을 가린 후 숨죽이고 놈의 기척을 기다렸다.
스르륵.
거기냐?
크게 단검을 휘둘러 검격을 뿌리자 ‘촹!’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만에 놈의 위치를 간파했구나!
스윽 스르륵.
이런 놈이 다가온다. 아차, 다음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거지?
터엉!
끄아아악!
놈의 꼬리에 내 몸이 강타당한 듯했다.
무협지에서 기척을 느끼고 상대와 합을 겨루는 건 다 구라다…….
꽈드득.
나는 놈의 꼬리에 감긴 채 온몸의 뼈 바스러지고 내장이 밀려 터지는 고통을 받으며 죽었다.
[3차 시련이 다시 시작됩니다.]
똑같은 상태창. 이젠 신물 난다.
눈을 가린 채 수십 번 죽다 보니 소리에 민감해지긴 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석상마저 수십 개나 늘어나 동선까지 헷갈려 죽을 맛이다.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 같은데……. 결론은 보지 말고 감각으로 싸우란 OS의 의도 같은데.
어떤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거지? 눈이 없어도 되는 게 뭐가 있지?
“위저드 아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력 지도!”
[사용할 수…….]
젠장! 대체 뭐냐고!!
‘몇 번을 말해야 하나, 아둔한 인간!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이으란 말이다.’
그 순간 프랑켄의 말이 떠올랐다.
……뿜어져 나오는 마력?
그때는 눈을 감아도 내 머릿속에 마력 실이 보였다. 그걸 이어 붙이기도 했고 손으로 잡을 수도 있었다.
아! 그렇구나.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마력 감지.”
제발 돼라!
눈을 감고 숨을 죽이며 집중했다.
미약하지만 저쪽 바닥에 붉은 기운이 넘실거린다.
머릿속에 붉은 마력이 서서히 메두사의 형태로 보이는 듯했다.
툴툴거리던 녀석의 말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은…….
프랑켄 고맙다.
눈을 감은 채 마력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섰다. 메두사가 빠르게 내게로 다가왔다.
문제는 눈을 감아서인지 놈의 마력을 느끼는 것 외에 딛고 있는 바닥마저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이다.
이마저도 적응해야 한다.
양손에 썸머를 고쳐 잡았다.
“뇌검.”
그리고 여러 번 단검을 휘둘러 겹겹이 뇌검을 날리며 앞을 향해 달렸다.
놈은 이리저리 상체를 틀어 뇌검을 피하다 꼬리로 마지막 뇌검을 쳐 냈다. 뇌검 역시 마력이라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이미 놈의 옆까지 치고 들어온 나는 또다시 놈의 목을 향해 썸머를 크게 그었다.
놈이 방향을 틀어 낮은 자세로 미끄러지듯 내 다리를 노렸다. 다리를 옆으로 비키면…….
텅! 꽈당!
끄윽, 갑자기 뭐지?!
얼른 눈을 떠 보니 석상이 바닥에 쓰러져 부서져 있었다.
내 석상이 방해될 줄이야!
석상부터 처리해야겠다.
얼른 일어나 눈을 뜬 채 메두사를 등지고 미친 듯이 팔을 휘둘러 사방으로 검격을 날려 댔다.
쾅 꽈작 텅!
주변의 모든 석상을 부숴야 한다.
눈을 떴지만, 놈의 마력을 느끼고 도망 다니며 계속해서 검격을 날려 수많은 석상을 부쉈다.
어느새 놈이 정면에 서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무수히 많은 석상이 널브러진 채 부서져 있었다.
마력이 느껴지는 지금, 네놈이 더는 무섭지 않다. 얼굴만 안 보면 그만이다.
3차 시련은 육감 같은 건가?
눈꺼풀을 스르륵 감고 머릿속 놈의 마력을 오롯이 느꼈다.
놈이 먼저 달려들자 나 또한 놈을 향해 달렸다. 달릴 때마다 사그락사그락 돌가루 밟히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네놈을 죽이고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빠져나간다!
기다란 작은 마력들이 나를 덮쳤다.
메두사 놈의 뱀 머리카락이구나.
사정없이 잘라내 주마.
챙창 챙챙.
내게 파고드는 수십 마리 뱀의 공격을 피하며 날카로운 검날로 하나둘 잘라냈다.
쉬이익!
굵고 긴 마력? 놈의 꼬리구나.
거대한 꼬리가 나를 내려치려는 듯했다.
이 또한 피하면 그만이다.
높이 뛰어 놈의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팔을 힘껏 뻗자 손바닥에 묵직한 느낌을 받았다.
메두사 목에 검 끝이 닿았구나.
“끝이다!”
푸우욱! 촤아아악 촤악!
놈의 목을 깊숙이 찔러 빠르게 돌려 빼고 또다시 좌우로 검날을 휘둘렀다.
텅 텅텅.
바닥에 무언가 떨어짐이 들렸다.
머릿속에서 보이던 놈의 붉은 마력이 미약하게 꺼져 갔다.
쿠우웅!
묵직하게 쓰러지는 굉음에 조심스럽게 눈을 떠 보니 목이 베인 놈의 기다란 몸통이 축 늘어진 채 쓰러져 있었다.
[버전 업 완료.]
아, 드디어 끝났다…….
이제 곧 잠에서 깨어나겠지.
“…….”
왜지? 분명 버전 업을 모두 마쳤다. 어째서 이 허연 공간에 서 있는 걸까?
주변에 나뒹굴던 내 석성은 사라졌는데, 메두사의 시신은 어째서 그대로일까?
버전 업, 버전 업…….
잠들기 전 버전 업 숫자가 총 몇 번이었지?
불길하다…….
생각해 보니 켈피의 마석을 흡수하고 버전 업 창이 총 4번 떴는데?
이곳에서 깨어났을 때 상태창은 분명 3번의 시련이라 했었다.
마지막 버전 업은 잘못된 걸까?
어째서 이렇게 불안한 거냐.
스스스스스.
묘한 소리에 고개 돌려보니 메두사의 몸통에서 흘러나온 파란 피가 서서히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옷을 입은 남성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시련의 끝. 보너스 스테이지.]
염병도 가지가지 한다…….
이딴 보너스 필요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