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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능력이 OS-167화 (167/334)

167화

-늦게 피는 꽃 (2)

우리가 카페 화장실에서 우르르 나오자 여점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내게 손가락까지 치켜들며 소리쳤다.

“이지완이다!”

응? 내가 무슨 마수냐?!

그녀는 허둥대며 종이와 팬을 들고 내게 달려오더니.

“사인! 사인, 부탁하면 실례일까요?”

“연예인도 아닌데 괜찮으세요?”

“어머? 연예인보다 더 핫하신 분이잖아요! 꺄아! 어쩜 좋아!”

깜짝이야. 텐션이 상당이 높은 분이시네.

그녀에게 사인해 주고 덤으로 사진까지 찍었다. 그리고 카페 입구를 나오자 민석 선배가 투덜거렸다.

“좋겠다? 조만간 애인도 생기겠어?”

“왜 또 그러십니까?”

“인기남은 내 적이다.”

“저 인기 없습니다.”

반면 육지호는 휴대폰으로 위치 정보를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내게 핀잔을 줬다.

“이 능력은 겪을수록 반칙이군요. 각성자가 처음으로 부러워지네요.”

뭐,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하는 바다. 사실 생각해 보면 ‘공간의 지배자’를 사용하면서 마켓템과 OW가 미친 듯이 성장할 수 있었다.

반칙이라기보다 치트키에 가깝다.

조금 걷자 민석 선배가 말했던 주택 현장이 나왔다. 건축 현장 뒤편에는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이 한참 입주 중이었다.

다시 앞을 보자 목재로 된 주택골조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탕 탕 탕 탕!

깜짝 놀라 보니 몇 명의 남자들이 골조에 못총을 쏘고 때론 탁탁탁거리며 딱따구리처럼 망치로 쳐 댔다.

누가 봐도 일반인들의 피지컬이 아니었고, 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현장에 능숙한 숙련자로 보였다.

감정 능력으로 작업자들을 살핀 결과, 등급은 F에서 E인데 한 명만 상당히 높네. 이런 현장에서 B+급이라니.

그때, 육지호가 안경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나무로 집 지으면 괜찮을까요?”

나 또한 불안했다.

살아 보지도 않았고, 잠시 머물러 본 거라곤 내 인벤토리 안에 있는 이동식 주택이 다였으니까.

민석 선배가 말하려던 순간 현장 일꾼이 다가오며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멋도 모르면서 누가 함부로 지껄이는 거야?!”

이런, 육지호의 말이 들렸나 보네.

내가 나서려 하자 민석 선배가 씩 웃으며 그에게 얼른 말을 꺼냈다.

“크크, 몰라서 그러는 거죠.”

이름: 주정석

등급: B+

고유능력: 성주신의 보살핌.

HP: 3610

MP: 4520

성주신? 집 지키는 신 아닌가?

되게 독특한 능력이네.

주정석이 민석 선배에게 대뜸 물었다.

“네가 소개한다는 사람이 얘들이냐?”

“에이 왜 또 그러세요?”

응? 가만. 주정석, 주민석?

“혹시 두 분, 친척입니까?”

“만나서 이야기해 보니 먼 친척이더라고. 크크크.”

하기야 우리나라에 성씨로 따지다 보면 사돈의 팔촌도 다 친척이지.

주정석이 목재를 가져오더니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우릴 봤다.

“나무가 활활 타는지 한번 봐 봐.”

아마도 우리의 말에 발끈한 것 같은데, 육지호가 또다시 기름을 들이부었다.

“그런데 나무면 물에 괜찮나요?”

텅!

주정석이 나무토막을 바닥에 던지며 짧게 말을 던졌다.

“꺼져.”

내가 봐도 육지호의 질문은 조금 심했지만 그런다고 이런 식으로 대응할 줄은.

그러자 민석 선배가 그를 달랬다.

“에이, 몰라서 그러는 건데 왜 또 화를 내십니까?”

“모르면 다른 걸로 짓든지. 왜 남의 현장에 와서 지랄이야?”

육지호가 얼굴을 붉히며 주정석에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말이 좀 심하군요.”

“내가 댁들한테 일 받았어?”

“그건 아니지만, 잠재적 고객에게 이렇게 막말하십니까?”

“댁 같은 잠재적 고객 필요 없으니까 가라고.”

그는 상당히 기분이 상했는지 돌아서 현장으로 걸어갔다.

육지호가 고개를 절레 저으며 돌아서려 하자 민석 선배가 진중하게 우리를 보더니.

“온 김에 보고 가시죠.”

“일 잘하면 뭐 합니까? 태도에 문제가 있는데.”

웬만해서 화를 안 내는 육지호가 단단히 뿔이 났구나.

민석 선배가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우리를 보며 말을 꺼냈다.

“저분하고 술 한잔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목조 주택에 관한 잘못된 인식이 많더라고. 그래서 도급도 안 주면서 늘 저런 질문만 받다 보니 상당히 자존심도 상하고 스트레스도 꽤 받는 것 같고.”

“그렇다면 더더욱 설득하고 상대가 이해 되게 설명해야죠. 어디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함부로 말합니까?”

육지호의 말도 맞고 민석 선배가 말한 저분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중소기업 기술 설명회에서 대기업 사장들에게 굽신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거만했고, 내 아버지는 기술 설명회가 있던 날은 특히나 술을 진탕 마시며 속을 풀었다.

그땐, 아버지 속도 모르고 왜 저렇게 사시나 싶었지만…….

주정석 씨도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의 눈에는 우리가 자신을 조롱하러 온 젊은 졸부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고.

표정이 굳어 있는 육지호를 봤다.

“돌아가는 건 금방이니까 주 이사님 말대로 지켜보죠.”

육지호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내 아까운 거금을 들여 조금 전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사 왔다.

우린 커피를 마시며 1시간 남짓 집 짓는 과정을 앉아 구경했다.

고개 돌려보니 육지호가 진중하게 마법 휴대폰 상태창으로 목조 주택 정보를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었다.

육지호는 늘 자신이 모르는 분야는 찾아보고 빠르게 습득하는 좋은 습관을 지녔다.

그가 공사 현장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나게 빠르군요. 골조가 올라가고 나무판을 치는 데 보통 며칠 걸린다는데, 벌써 거의 다했네요.”

역시 모르는 분야를 오목조목 잘 찾아봤구나.

육지호 덕분에 나 또한 곁눈질로 자료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장에 있는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다.

민석 선배가 우리를 보며 빙긋 웃었다.

“지붕 시공까지 끝나면 내일 바로 방통 친다고 하더라.”

“방통이 뭐죠?”

“바닥에 난방 깔고 시멘트 몰탈 치는 거.”

그때 주정석이 외침이 들렸다.

“내가 2인치 하프라고 했잖아!”

뭔가 궁금해서 현장에 살짝 다가가 지켜봤다.

살짝 모자란 것 같긴 해도, 저게 문제가 되나?

그가 바닥에 나무판을 집어 던지며 상대에게 격하게 화를 냈다.

“야, 네가 건축주면 이렇게 개판으로 자질한 데서 살고 싶겠냐? 어!”

민석 선배가 내게 설명했다.

“자질이 자로 잰단 말이야.”

“많이 아시네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너 여기 일하는 분들, 뭐라고 부르는지 아냐?”

“인부 아닙니까.”

“휴, 저분들은 빌더라고 불러.”

“저야 모르죠. 그러고 보니 센티가 아니라 인치를 쓰더군요.”

“목조 주택 자재가 해외에서 들어와서 그렇더라고.”

“선배는 저들이 마음에 드는 겁니까? 우린 집만 짓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닌데요.”

우린 단지를 형성하고 전기며 물이며 모든 인프라를 형성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도와 일신 건설을 생각했던 거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자랑스럽게 보였다.

누가 보면 여기 현장 사장인줄 알겠네.

“봐 봐, 목조 주택 단지야. 32채.”

휴대폰 영상을 보니 주변까지 잘 정비된 깔끔하고 멋들어지는 주택 단지였다.

그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더니.

“얼마 걸렸을 거 같냐? 토목부터 마무리까지.”

어느새 육지호가 다가와 답했다.

“일반 목조 주택 한 채가 한 달 반 걸리더군요. 그것도 빠른 거죠.”

“역시 육 대표님은 잘 찾아보셨군요. 그럼 제가 보인 이 주택 단지는 얼마나 걸렸을까요?”

“얼마나 걸렸길래 그럽니까?”

“2달 반.”

결국 육지호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후유, 기적 같은 속도군요. 성격이 지랄 같아서 그렇지.”

민석 선배는 뜻밖의 아이디어를 내게 꺼냈다.

“만약, 네 능력 ‘공간의 지배자’를 사용하면 더 빠르지 않을까?”

“포털은 고작 이동하는 것뿐인데요.”

“생각해 봐, 자재 이동이 빠르면 어떻게 되겠냐?”

아! 그렇구나.

물류 이동이 빠르면 엄청나게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때 빗방울이 살짝 떨어지자 외부 벽체를 치던 주정석이 외쳤다.

“갑바 치고 철수! 아시바 내려올 땐 조심하고.”

민석 선배는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문제는 비가 오면 일을 못 해. 그래서 저렇게 전체를 방수 천막으로 덮는 거야.”

하기야, 모든 공사장은 비가 오면 일을 멈춘다. 안전을 생각하면 당연한 행동이다.

그렇다면 내 능력을 사용하면?

진공의 돔, 파생 능력을 써 볼 기회다.

“에어 돔.”

우우웅!

거대한 투명 돔이 현장을 살포시 감쌌다.

에어돔은 사람이 드나들 수 있지만, 신기하게도 물, 불, 바람 속성을 막는 효과가 있었다. 한마디로 물리적 속성은 막아낼 수 없다.

주정석이 놀라 우릴 쳐다보자 그에게 빙긋 웃으며 외쳤다.

“이러면 일할 수 있습니까?!”

그는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순간, 씩 웃더니 빌더들을 보며 외쳤다.

“빨리 끝내자, 오늘 회식이다!”

우산을 쓰고 지나가던 행인들이 집 짓는 모습을 지켜봤다.

당연히 신기할 수밖에 없다. 빗속에 쾌적하게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은 진귀할 테니까.

육지호가 선배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분들 스케줄이 어떻게 됩니까?”

“그거야 협의를 해 봐야죠.”

육지호는 이미 계산이 섰는지 빠르게 제 생각을 펼쳐 보였다.

“60채로 시작하죠. 주변 인프라는 당분간 포털로 왕래하는 거로 하고요. 설계사를 정해 5채를 기본형으로 정하고 계약자가 원하면 살짝 바레이션 치는 형태로 나머지 55채를 정리하면 됩니다. 광역시장과 약속 잡고 제가 주변 인프라 정리하겠습니다.”

이 인간은 어떻게 한결같이 머리 회전이 빠를까? 가끔 보면 놀랍기까지 하다.

하지만 일신 건설이 끼어 있는데…….

“일신과 협의해야 합니다.”

“그들 속도에 맞추면 최대로 빨리 짓는다 해도 1년입니다. 그러다 보면 날림이 발생하고요. 그러니 일신은 주변에 쇼핑센터를 먼저 건설하고 아파트는 그 후에 지어도 되죠.”

민석 선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주정석 씨, 토목도 직접 하더라. 아는 건설사도 있는 것 같고.”

“암만 해도 이번 일은 선배에게 맡겨야겠군요.”

민석 선배가 육지호에게 주먹을 치켜들었다.

“제가 이겼습니다?”

“아직은 모르죠. 시작보단 마무리가 더 중요한 법이니까요.”

휴, 이 사람들 아직도 경쟁 중이구나.

* * *

왕성한이 회의실 TV에 자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해외에서 많은 헌터들이 유입되면 한국에 들어오고 싶은 외국인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왕태평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의 손자 왕성한의 브리핑을 들었다. 그러다 탐탁지 않은지 왕성한의 말을 끊었다.

“왕 상무. 무슨 말인지 잘 알겠네. 그런데 말일세, 자네의 장밋빛 계획에 우리 이도의 이익은 보이지 않는구먼?”

왕성한이 긴장한 듯 왕태평을 봤다. 그리고 임원들은 왕태평의 말에 헛기침만 해댔다.

누구보다 넓은 혜안으로 이도를 꾸려 온 왕태평의 말에 토 달 임원은 없었다.

“내 말 틀렸는가? 왕 상무.”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마켓템에서 포털을 중심으로 단지를 짓는다 해도, 이도나 일신이 얻을 이익이 그다지 크게 보이진 않습니다.”

“그걸 알고도 내게 보인다는 건, 날 설득할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왕성한은 잠시 눈을 감았다.

‘여기서 꺾이면 이지완 말처럼 난 할아버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두 포털에 휩쓸렸지만…….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봤다. 그것도 우리 이도에 큰 도움이 되는.’

그는 눈을 번쩍 뜨고 고개 돌려 왕태평의 눈을 똑바로 주시했다.

“마켓템 이지완 이사에게 한 가지 제안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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