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능력이 OS-190화 (190/334)

190화

-랜섬웨어 (2)

* * *

랜섬웨어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모든 데이터를 볼 수 없게 되는 건데…….

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데 OS는 내가 유일무이할 텐데 어째서 랜섬웨어가? 거인 놈 외에 내 OS에 끼어들 만큼의 존재가 또 있단 말인가?

꼬리를 무는 질문 중에 차가운 돌 감촉이 느껴졌다.

바닥에 누워 있는 것 같은데. 설마 그의 몸에 빙의된 건가?

눈을 떠 보니 벽돌로 된 천장이 보였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 어두컴컴한데……. 가만, 몸이 움직인다?!

얼른 몸을 만지고 손을 봤다.

이럴 수가, 이건 저번 버전 업 때와 비슷한 상황인데?

혹시 던전 보스라도 튀어나오는 걸까? 젠장 미치겠네.

“허허, 제대로 됐나 보군.”

늙은 노인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이 목소리, 분명 어디선가 들어 보았다.

또다시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도둑놈아. 그간 잘 지냈느냐.”

그는 다름 아닌 던전 너머에서 만났던 관찰자 드라이어드 영감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그렇구나! 이제야 알겠다.

“랜섬웨어. 영감 짓이군?”

“됐고, 내놔라. 이 도둑놈아.”

“뭘 말이지?”

“관찰지하고 내 솥 말이다!”

“아, 그거. 이제 내 건데?”

저 영감이 내 OS를 간섭할 수 있었다니……. 혹시 저 영감을 처리해야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걸까?

그가 흥분하며 삿대질해 댔다.

“이, 이 뻔뻔한 놈! 어디서 남의 것을 훔치고도 실실 웃어 대는 것이냐!”

“말은 바로 하시지? 영감도 날 속였잖아. 1회용 마법 스크롤로. 그러니 비긴 것 같은데 그만 꿈에서 꺼내 주시지.”

이때, 저편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남자의 묵직한 음성이 들렸다.

“하하하. 자네 말대로 당돌한 놈이군.”

영감이 그에게 분통을 터트렸다.

“오죽했으면 유리드 님께 부탁했겠습니까?”

유리드? 저 어둠 속 놈의 이름이구나. 드라이어드 영감이 굽신대는 것 보니 그는 영감보다 계급이 높단 말이구나. 그리고 날 이곳에 불러들인 장본인이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감정.”

[메모장입니다.]

뭐냐, 왜 메모장이 열려?

“감정.”

[메모장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당황스러운 내게 또다시 묵직한 음성. 가소롭다는 어투였다.

“뜻대로 안 되나 보군?”

아, 그렇게 된 거구나. 드라이어드 영감 짓이 아니다. 저놈이 내 OS에 간섭한 거구나.

“어이. 유리드인지 유리창인지 어둠 속에 짱박혀 있지 말고 나오지?”

“놈! 이분이 누군지 알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이냐!”

“알지, 왜 몰라.”

“호, 나를 안다?”

“날 여기로 끌어들인 음흉한 놈. 영감은 네놈의 꼬봉.”

“꼬, 꼬봉? 이 쳐 죽일 놈! 뚫린 입이라고!”

영감이 미쳐 날뛰자 유리드 놈의 호쾌한 웃음이 어둠에서 흘러나왔다.

“하하하! 그가 재밌는 인간을 선택했군.”

저놈은 ‘그’라고 칭하고 동년배처럼 말했다. 동급이란 건가?

그럼 저놈도 거인? 내 OS와 꿈속 거인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걸까?

이때, 영감의 버럭거림이 들렸다.

“관찰지를 내놓거라! 네놈이 함부로 들여다볼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내가 왜? 오히려 기회만 되면 나머지도 관찰지도 싹 쓸어 오고 싶은데.”

“이 찢어 죽일 인간 놈!”

어둠 속을 노려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 꿈속에 들어서기 전에 상태창에 경고라고 떴다.

영감이 관찰지가 필요해서 저 유리드란 놈에게 청탁. 결국 날 이곳에서 꺼내 줄 수 있는 주체는 저 유리드라는 말인데…….

가만, 영감은 그쪽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했는데, 어째서 저 어둠 속 놈에게 굽신거리는 거지?

잠깐의 고민 끝에 영감의 말이 떠올랐다.

‘이곳과 비슷하면서 다른 세상이 7곳 존재한다네.’

영감의 말대로면, 저놈은…….

“어이 유리드. 넌 7세계 중 어디를 관리하지?”

“…….”

내 말에 어둠 속이 잠잠해졌다.

정곡을 찔렀구나.

그럼 저놈들을 떠 보자. 영감은 강한데도 불구하고 꿈속 거인이 두려워 나를 해코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OS에 경고가 떴단 건 놈들도 불법적으로 내게 접근한 것일 수도 있다. 특히나 떳떳하면 저렇게 어둠 속에 있을 이유도 없고.

다시 찔러 보자.

“그도 이 사실을 알고 있냐고? 댁들이 나를 꿈속으로 끌어들인 거 말이다.”

한참 후 어둠 속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상당히 영특하구나.”

내 예상이 맞구나. 그럼 놈들은 절대 나를 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그들은 우리 세계에 직접 찾아올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나를 끌어들였던 것이겠지.

그렇다면.

“좋은 말로 할 때 원래대로 돌려놔라.”

내 말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유리드가 걸어 나왔다.

그는 치렁치렁한 검은 수염에 옛 그리스인의 복장을 한 중년의 남자였다.

그가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자 주변이 새하얗게 변했다. 마치 버전 업 때와 같은 환경이었다. 저 자식, 꿈속을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건가?

“뭐 하자는 거지? 빨리 되돌리지 않고.”

“돌려보낼 테니 드라이어드에게 가져간 물건을 내놓아라.”

“못 주겠다면?”

그가 여유를 부리듯 빙긋 웃어 보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놈이군. 그럼, 할 수 없지.”

유리드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자 내 주변 바닥이 마구 흔들리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큭! 어떻게 이런 능력을……?

잠시 후 나는 거대한 절벽에 서 있었다.

힐긋.

절벽 아래를 보니 빛조차 빨아들일 듯한 끝없는 벼랑이 생성되었다.

내 당황한 표정을 살피던 유리드가 입을 열었다.

“기회를 주겠다.”

“어차피 꿈이다.”

“꿈? 누가 정했지? 이게 꿈속이라고.”

“그가 알면 가만두지 않을 텐데?”

“그가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지구도 만든 그가 이걸 모르려고?”

꿈속 거인이 지구를 만드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으니 그가 모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유리드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네놈은 키우던 개가 하루 종일 뭘 했는지 아는가?”

말인즉, 꿈속 거인도 내 세세한 행동을 알 수는 없다? 말하자면 이곳은 사각지대란 말인데…….

그는 나를 빤히 보다가 휙 돌아서더니.

딱!

손가락 소리가 들렸고 그의 앞에 또다시 어두운 공간이 펼쳐졌다.

유리드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차가운 음성을 흘렸다.

“어디 알아서 해 보거라.”

딱!

또다시 어둠 속에서 손가락 마주치는 소리가 들리자.

끼이이아!

괴성이 내 머리 위에서 맴돌았고,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드래곤? 아니다. 저놈은 다리가 2개 앞발은 날개……. 와이번이다.

어둠 속에서 딱! 소리가 들리더니 유리드의 다소 분노한 음성이 들렸다.

“시작해라!”

슈아아악!

허공을 가르는 소리.

와이번이 내게 날아들었다.

이깟 와이번 한 마리 정도는 해볼 수…….

끼이이!

내 예상을 깨듯 뒤에서 또 다른 와이번의 비명이 귓가로 타고 들더니.

촤아악!

살이 찢기는 고통이 등에서 밀려들었다.

내 후미를 공격한 와이번은 여유롭게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고, 2마리의 와이번은 허공을 맴돌며 나를 내려다봤다.

크윽, 고통이 장난 아니다.

한 마리 와이번이 시선에서 사라지자 얼른 몸을 틀었는데.

좁아터진 벼랑 끝에 발을 헛디뎌 중심을 잃었다.

젠장! 바닥이 이렇게 좁을 줄은.

벼랑으로 떨어지려는 순간 급하게 손을 내밀어 튀어나온 돌을 움켜쥐었다.

끄으으아아악!

다, 다리가 얼 것 같다!

벼랑 아래에서 살갗을 파고드는 한기가 밀려들었고, 손가락 끝에 온 힘을 쏟아부어 가까스로 벼랑 위로 기어올랐다.

맙소사, 꿈이라 생각했는데 이거 까닥하다 죽는 건가?

내 당황스러운 표정을 비웃듯이 어둠 속에서 유리드의 말이 들렸다.

“허허, 약해 빠졌군. 이제 시작인데 어쩌려고 그러는 것이냐?”

젠장, 이것들 작정했구나…….

그러다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생각은.

꿈이라도 바깥세상과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그렇다면 놈들이 무한히 나를 괴롭힐 수 있을까?

* * *

벌컥!

이지완의 여동생 이지민이 문을 열고 머리를 빼꼼히 넣더니.

“오빠, 밥 먹어.”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이지완에게 다가와 흔들어 깨웠다.

“오빠, 엄마가 내려오래.”

하지만 이지완은 곤히 잠든 듯 미동조차 없었다.

“오빠 일어나. 오빠……?”

쿡쿡.

일어나지 않자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찌르며 간지럼을 태웠다. 하지만 이지완은 그저 누워만 있을 뿐.

“오빠……?”

섬뜩한 느낌.

그녀는 이지완을 세차게 흔들어 깨우다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엄마! 오빠가! 오빠가 이상해!!”

그녀의 엄마 박나희가 계단에 올라와 파르르 떨고 있는 이지민을 보며 핀잔을 줬다.

“니 오빠 또 장난치나 보네.”

박나희는 아들에게 스리슬쩍 다가서서 대뜸 겨드랑이를 간지럼을 태우며.

“아들, 이래도 안 일어나나 보자.”

반응은 싸늘했다.

그녀는 숨이 멎듯 얼굴이 굳었다.

손을 덜덜거리며 손가락 끝을 이지완의 코에 가져다 댔다.

불안했지만 다행히 숨을 쉬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불길한 생각을 떨치듯 입을 열었다.

“얘가 요즘 많이 피곤했나? 아들! 일어나! 얼른 밥 먹고 설거지하게.”

하지만 이지민은 울먹거렸다.

“오, 오빠가 이상해……. 아무리 깨워도 움직이지 않는단 말야.”

박나희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무리 찰싹찰싹 때리고 꼬집어 봐도 이지완은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그녀는 사색된 얼굴로 계단을 달려 내려가더니 식탁에 놓아 뒀던 휴대폰을 들어 다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119입니다.

“내 아들, 내 아들 좀 살려 주세요!!

* * *

드르륵!

병실 문을 열고 이지완의 아버지 이상수와 한명국이 뛰어 들어왔다.

그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이지완에게 달려가 부인을 다그쳤다.

“지완이가 왜?!”

“여, 여보. 어떡해요?”

“일단, 진정하고. 후- 의사가 뭐라는데.”

“모르겠데요.”

“뭐……?”

“뇌파도 정상이고 다 정상인데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그녀의 목이 메어 들자 이상수는 잠깐 휘청거리다가 소리 질렀다.

“그게 말이 돼!!”

그는 무너질 듯 아들을 보다가 미친 듯이 흔들며 소리쳤다.

“아들! 일어나! 뭐 하는 거야! 일어나라고! 아들!!”

복도까지 소리가 울려 퍼지고 간호사가 달려오자 한명국이 다급하게 이상수를 잡아끌었다.

“자네답지 않게 왜 이래?!”

하지만 이상수는 이성이 마비된 듯 울대가 찢어질 듯 외쳤다.

“이지완! 뭐 하는 거야! 당장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

이상수는 한명국의 손을 뿌리치고 또다시 이지완을 흔들어 댔다.

당연히 말릴 법도 한 간호사는 스리슬쩍 병실을 나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복도로 울리는 이상수의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던 그때, 휴대폰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뭡니까? 윤미숙 헌터.

“이지완, 잘못된 거 같군요.”

-같군요?

“의사 말론 정상인데 깨어나질 않는다네요.”

-오늘만 지켜봅니다.

“그동안 계속 겉돌기만 했습니다. 만약 이게 기회라면요?”

-…….

“여보세요?”

-정말,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놈은 독도 안 통할 겁니다.

“의식이 없다면 오히려 처리하기 쉽습니다만?”

-……확실히 숨통을 끊으세요.

윤미숙은 눈웃음을 지었다.

“믿고 맡기세요. 깔끔히 처리할 테니.”

그녀가 통화를 종료하려던 그때, 남자의 말이 음성이 들렸다.

-만약, 걸리더라도 나는 이 일과…….

그녀는 병실로 뛰어 들어가는 주민석과 육지호를 지켜보며 미간을 좁혔다.

“우린 프로입니다. 엄혁권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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