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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능력이 OS-201화 (201/334)

201화

-선전포고 (2)

형사가 엄혁권을 강제로 연행해 갔다. 김규석은 잠시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내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부회장에게 위임받은 사람이 파트너 회사를 도청했고, 살인 교사까지 공개석상에서 그 죄가 털렸으니까.

그만큼 사안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진 거다.

“이지완 이사님. 아니 JW 이지완 회장님. 이 일로 화가 많이 났군요. 그가 아마도 과잉 충성을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과드리죠. 그리고 앞으로 우리 일신은 전폭적으로 검암 단지에…….”

혼자 떠들라 하고 뒤를 보니 기자들이 엄혁권의 사건을 각 방송국에 연락하는 듯했다.

그래, 이쯤에서 예전 일을 다시 끌고 들어와야겠다.

난 신의를 지켰고 너흰 어겼다. 더는 내가 약속을 지킬 의리도 명목도 없으니까.

“김규석 부회장님. OW 공장에 처음 오셨을 때 기억나십니까?”

그의 얼굴이 굳었다.

“이지완 회장님! 그 건은 이미 불문으로 부치기로…….”

“저희 마석 형태 변환기를 처음 보러 오셨을 때도 일신전자 기술자가 도촬을 시도했죠.”

기자들이 술렁대자 손가락으로 경찰차를 가리켰다.

“그때도 엄혁권 씨가 함께했는데, 아닙니까? 아, 혹시 이 모든 일을 김규…….”

김동연이 허옇게 뜬 얼굴로 대화에 끼어들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알다시피 엄혁권 이사가 교도소에 갈 정도로 평소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는 얼른 김규석의 등을 툭툭 치며 또다시 아들이라도 지키려는 듯이 두둔했다

“우리 김 부회장이 정이 많아서 요직에 올려 뒀더니 또다시 가당치도 않은 일을 저질렀군요.”

그는 기자들을 향해 90도로 꾸벅 인사하더니.

“못난 저의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그 대기업에서 잘 쓴다는 ‘죄송합니다’ 스킬을 시전했다.

모든 사람이 김동연의 행동에 당혹스러웠다. 혼자 잘난 듯 안하무인이던 사람이 언론에 나서 처음으로 고개를 숙인 거니까.

그도 그럴 만한 게, 상황이 좋지 않단 것을 김동연이 직감한 거겠지.

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일신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마켓템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리 관계를 끊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지완 회장.”

자존심이고 뭐고 지금 상황을 수습하겠다?

그렇게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더 줄 것이다.

“저희는 이제 귀사를 믿을 수 없습니다.”

“이지완 회장. 이건 모두 엄혁권 이사가 벌인…….”

기자들을 보며 입을 털었다.

“여러분, 집에 도청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집안 대소사를 가족과 상의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건 좀…….”

기자들이 동조하자 얼른 불을 지폈다.

“하물며 회의실과 대표실은 최고 기밀이 오가는 자리입니다. 이걸 버젓이 일신이 듣고 있었다면, 두렵지 않겠습니까?”

김동연이 반박하려 하자 먼저 선수를 쳤다.

“해서 앞으로 일신과의 관계에 대해 전면 재검토할 계획입니다.”

“이지완 회장. 이 좋은 자리에서 꼭 이리해야겠나?”

왕태평이었다. 그는 헛기침까지 하며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따로 자리를 만들게. 자네 또한 실수하는 듯하네.”

젠장, 끝내 일신에게 손을 들어 주겠단 것인가? 내 명분은 확실하건만.

이때, 왕혜선이 말했다.

“추후 JW에서 앞으로 일신과의 관계에 대해 심사숙고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왕혜선까지?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이 정도로 물러나세요. 회장님.”

일신 패거리들이 급하게 차를 타고 자리를 떠나자 기자들 또한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모두 회의실에 들어가자 분위기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민석 선배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말했다.

“휴, 이제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할 수 있겠네.”

나만은 분을 삭일 수 없었다.

그간 들인 공이 얼만데, 그걸 믿었던 사람이 망쳐 놓는단 말인가.

화가 나지만, 생각을 들어 보자. 왕혜선이 고의로 재 뿌릴 위인은 아니니까.

“어째서 끼어든 겁니까?”

“뭐가 그렇게 급하시죠?”

“급하다고요?”

“악재가 한꺼번에 찾아오면 일신 주식이 급락이라도 할 줄 아세요?”

민석 선배가 중재하듯 끼어들었다.

“왕 전무 말도 일리가 있어. 큰 이슈도 모두 두들겨 맞고 나면 다음은 오를 일만 남을 때도 있으니까.”

“놈들의 숨통을 끊었어야 했습니다.”

“회장님. 착각한 것 같은데요. 일신과 이도가 구멍가게인 줄 아세요?”

참으려 했지만, 그녀의 다소 격양된 말에 나 또한 날이 서고 말았다.

“그걸 제가 왜 모릅니까?!”

육지호가 내게 일깨워 주려는 듯 왕혜선을 빤히 보며 입을 열었다.

“매는 맞는 순간보다 맞기 전이 더 두렵다. 이걸 말하는 거군요.”

“우리의 답변을 기다리는 일신. 그들의 주식을 들고 있는 주주. 시간이 갈수록 공포 지수가 극에 달하겠죠.”

왕혜선의 답변에 육지호가 내게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투로 말했다.

“이 회장님. 저희가 너무 앞만 봤던 모양입니다. 왕혜선 전무님 의견이 맞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일신 주식이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니 그녀 말이 맞다.

김동연이 분노할수록 내 쪽이 유리할 거라 생각했는데,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그가 저자세로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육지호가 배를 살살 문지르며 미소 지었다.

“그래도 오후 장에서 상당히 주워 담았습니다.”

“얼마나요?”

“3%입니다. 이미 일신가 지분보다 더 많을 겁니다.”

“누군지 알았으니 그들도 방어하겠군요.”

왕혜선이 예상 답안지를 꺼냈다.

“일신은 오히려 공격하겠죠. 처음부터 자신들을 물 먹이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보도할 거예요. 그리고 법정 공방으로 가자고 물고 늘어질 겁니다. 판결이 나기 전엔 양사의 계약이 그대로 이행돼야 한다고 하면서요. 그동안에 그들은 물밑으로 우리에게 협의를 요청하겠죠.”

그 말은 진흙탕 싸움을 하잔 건데.

“이 일은 왕 전무가 맡아 주시죠.”

“저는 기술직이 좋은데요.”

“좋은 것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면 좋죠. 왕 전무는 상황을 보는 눈이 남다릅니다.”

그녀를 어째서 왕태평이 데려가려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왕태평과 그녀는 데칼코마니라 생각될 정도로 그 자리에서 분위기를 읽고 있었고, 내 폭주를 막았다.

생각해 보니 왕태평도 내게 적의를 보였다기보단 보호하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사실 부캐와 연결이 끊어지면서부터 내 상태가 조금 불안정했다.

대체 그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 * *

와장창.

김동연이 회장실 집기를 골프채로 내려치고 휘두르며 마구 부숴댔다.

김규석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다. 그 또한 수모와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나! 김동연이를! 그깟 핏덩이에게 고개 숙이게 해!!”

그가 김규석 발아래 골프채를 툭 내던졌다.

“엄혁권 그 미친놈 꺼내 달란 말 하지 마라! 그놈이 모두 짊어지고 가라 할 테니.”

“그렇게 하십시오.”

“대책은?!”

“검암은 손 떼겠습니다. 애초부터 득도 실도 없었으니까요.”

“그거 말고! OW와 휴대폰 어쩔 기고!!”

“휴대폰은 차기작 전에 관계 회복하겠습니다. 그들도 기존 모델에 대한 업데이트나 앱스토어 지원을…….”

“복잡한 건 됐고! 마석 형태…….”

와장창!

김동연이 책상 위에 있던 명패를 집어 던지며 고래고래 외쳤다.

“무슨 이름을 그따위로 지어서 짜증 나게 하노!”

김규석이 바닥에 깨진 명패를 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마석 형태 변환기 또한 내년 물량에 차질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만들 긴데!!”

“마석 형태 변환기에 들어가는 재료의 출처가 불분명합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이고?”

“엄혁권 이사가 조사한 거니 확실합니다.”

“그놈이?”

“엄혁권이 파고들자 이지완이 손을 쓴 겁니다.”

“그 중한 걸 왜 이제야 말하는 기고!”

“엄혁권은 마석 형태 변환기에 들어가는 광석을 선점해서 OW의 목을 죄어 보려 한 겁니다. 그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거고요.”

“그러니까 그것들이 불법으로 광물을 채취라도 하고 있다, 이 말이가?”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오호라! 이것들 봐라.”

김동연은 마법 휴대폰 상태창에 통화 버튼을 누르며 중얼거렸다.

“이기, 확실히 좋긴 좋네……. 그 지랄 같은 놈이 만든 것만 아니면 딱인데.”

-네, 회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배 안 고픕니까? 윤 총리.”

-허허. 고파도 참아야지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내 밥 한번 거하게 대접하리다.”

-그러시지요.

통화를 종료하고 김규석에게 두 눈을 부릅떴다.

“준비 철저히 해라. 알겠나!”

“…….”

“왜 말이 없노?”

“그보다 더 큰 일이 있습니다.”

“뜸 들이지 말고 말해라.”

“이지완이 ㈜일신 주식을 3% 매수했습니다.”

“……뭐? 아이고.”

풀썩-

김동연이 다리에 힘이 풀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괜찮으십니까?”

“그, 그놈이 주워 담는 동안 뭐 했노?”

“…….”

“뭐 했냐고!!”

김동연은 순간 부들부들 떨더니 거칠게 숨을 들이쉬다 결국 의자에 기댄 채 기절했다.

“회장님? 아버지! 밖에 누구 없어!!”

* * *

내부가 어디서 본 듯하다. 벽돌로 이루어진 통로, 갈수록 넓어지는 천장 그리고 커다란 석문.

고개를 들어 문 위를 보자, 여자와 남자가 섞인 듯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한천 마탑 미노타우로스……?”

석문은 살짝 열려 있어 성인이 들어가긴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누군가 강제로 연 듯이 석문 일부가 살짝 부서져 있었다.

손으로 부서진 곳을 대보았다.

나보다 키가 작은 사람. 김규석이 대략 180 남짓. 놈이 열었구나.

이곳에 들어온 이후 본캐와 사념 전달이 안 되고 있다.

여길 들어가도 될까?

그러다 미아의 말이 떠올랐다.

보스의 문이 부서진다면 문제없다.

“초인.”

주먹을 움켜쥐고 힘껏 문을 때렸다.

터엉!

끄떡도 하지 않는다.

당연하겠지, 나는 부캐니까.

하지만 김규석이 문을 강제로 열었다면 본캐도 가능하겠지.

그래, 어차피 나는 죽는 게 아니다. 소멸하면 본캐에게 경험치가 전달되지 않을 뿐. 마석도 흡수하지 않았으니 경험치도 없겠네.

조심스럽게 내부로 들어갔다.

한천 마탑과 달리 내부가 어두웠다. 그래도 나이트 비전으로 볼 수 있으니 상관없다.

“인벤토리.”

창이 열리자 일반 검을 꺼냈다. 혹시나 내가 소멸한다면, 썸머를 여기서 사용해선 안 된다.

젠장, 내부가 한천 마탑과 너무 흡사하다. 중앙에는 미노타우로스가 앉았던 돌 의자 대신 제단과 흡사한 관이 보였다.

김규석이 여기서 무슨 짓을 벌인 거지?

“감정.”

[벨로스의 도둑질]

제단 이름이 도둑질?

가까이 가서 제단을 살펴봤다.

머리카락? 아니다. 마치 동물의 털 같은데. 만약 이게 수인화 상태의 여유림의 흔적이라면, 김규석은 무언가를 얻은 거다.

보고가 우선이다. 돌아가자.

왠지 모를 스산한 기운이 온몸에 스며드는 듯했다. 솔직히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돌아서 문으로 향하자 등 뒤에서 예상치 못한 소리가 타고 들었다.

그그극.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보니 돌로 된 제단이 살짝 밀려 있었다.

제단이 아니라 관이었던 건가? 뚜껑이 혼자 움직였다면 저 안에 마수가 있을 가능성 1,000%.

게다가 저 푸른 연기가 거슬린다.

나가자. 여기까진 본캐도 충분히 올 수 있다.

황급히 문으로 달리자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그그그극.

석문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이런 망할 것!

“음속!”

빠르게 석문의 틈으로 뛰어들었다.

쿵! 데구루루.

석문에 머리를 부딪히며 충격에 퉁겨졌다.

아, 망했다.

그그극 끼릭 그극.

젠장. 공포 영화도 아니고.

돌로 된 관 뚜껑이 옆으로 밀리며 방 안으로 푸른 냉기가 덮쳤다.

쏴아아아.

본캐보다 한참 약해도 나 또한 B급 정도는 된다.

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곱 후광.”

웅.

머리에 첫 번째 빛의 구가 생성됐다.

한 방에 끝낸다.

웅.

“진공의 돔.”

슈우웅.

빌어먹을 관을 돔으로 감쌌다.

시간을 끌어야 한다.

웅.

3개째 구가 생성됐다. 뭐든 나오기 전에 박살 낸다.

웅.

쩌적. 파아앙-!

돔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망할. 힘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

웅.

김규석 이 자식, 보스를 클리어한 게 아니었나?

웅.

“진공의 돔.”

쩌적 펑.

돔이 생성됨과 동시에 깨져 버렸다.

척.

흰머리에 온통 검푸른 오라가 감도는 마수가 돌 관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웅.

됐다!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뒈져라!”

삐-!

소리와 함께 내부가 새하얗게 변했다. 또다시 외쳤다.

“플라즈마 볼트.”

콰르릉

천둥소리가 들렸지만, 하얀빛에 삼켜진 번개는 확인할 수 없었다.

[배터리가 7% 남았습니다.]

본캐와 달리 난 너무 약하다.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마셨다.

빛이 사그라들기 전에 능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익스플로…….”

뚜벅뚜벅.

발소리와 함께 밝은 빛을 뚫은 푸른 냉기가 내 살갗에 와 닿았다.

우뚝.

놈이 내 앞에 멈춰서 내려다봤다.

아, 본캐야 미션 실패다.

콰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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