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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능력이 OS-205화 (205/334)

205화

-함정 (1)

“시뮬레이션.”

잠시 잠깐 텀을 두고 귓가로 OS의 음성이 타고 들었다.

[오른쪽 상대를 시계 방향으로 돈 후 둘 사이로 파고듭니다. 검으로 양쪽 마수의 가슴을 찌르세요.]

역시나 업데이트 덕분에 수동 모드도 가능해졌구나.

OS의 음성에 맞춰 오른쪽 벨로스 주변으로 돌았다. 사각지대가 만들어졌고 왼쪽의 벨로스는 내 움직임을 놓쳤다.

시뮬레이션이 통한다.

허리를 숙이고 둘 사이로 파고들어 놈들의 가슴에 동시에 검을 꽂아 넣었다.

끄아아아!

핵이 찔린 2명의 벨로스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역시나 놈들의 핵이 몇 개 줄어든 것을 머릿속으로 확인했다.

수동 모드도 훌륭하지만, 시뮬레이션 효율이 높아져 상대의 허를 찌르는구나.

또다시 OS 음성이 들렸는데…… 공교롭게도 썸머 또한 사념을 전달했다.

[왼쪽 상대의 허벅다리를 베며 오른쪽의 팔을 방어하세요.]

-얼음 창을 날려 놈들을 고정해라!

망할…….

한 대의 차에 2개의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하는 것 같다.

원한다면 둘 다 해 주마!

“다이어 스피어.”

빠르게 얼음 창 수십 개를 벨로스들에게 날렸다. 이번에는 OS 명령대로 왼쪽으로 뛰어들어 썸머를 크게 휘둘렀다.

촤아악!

그리고 왼쪽 벨로스의 허벅다리를 베려는 순간.

채앵!

내가 날린 얼음 창이 썸머와 부딪혔다.

-이 멍청한 주인아!

[시뮬레이션과 다릅니다. 다시 전투를 재구성합니다.]

썸머는 삐진 듯했고 OS는 경로를 벗어난 네비게이션처럼 로딩 상태가 되었다.

아우, 사공이 너무 많다!

꽈드득 꽈득.

벨로스들은 자신들을 뚫고 바닥에 박힌 얼음 창을 빼내기 시작했다.

또다시 OS와 썸머가 동시에 명령을 내리자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되고 말았다.

놈들이 얼음 창에 박혀 있으니 내가 알아서 한다!

“장미의 가시!”

쫘악 푹 푹 푸욱…….

얼음 창에 박힌 벨로스들에게 수천 개의 검 끝을 정교하게 그러면서 거침없이 날렸다. 오로지 놈들이 가진 핵에만 집중했다.

장미의 가시는 수천 개의 검 끝이 날아드는 기술. 이거면 저것들의 무수히 많은 핵을 부술 것이다.

계속해서 핵을 찔러 나갔다.

푹푹. 푹.

끼이아악 끼악!

놈들은 얼음 창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허둥지둥 내 검 끝을 손으로 막기 급급했다. 역시 처음 관찰했던 대로 벨로스는 재생력이 좋다 보니 방어에 취약하다.

생각해 보니 썸머가 제안한 방법이 시뮬레이션보다 훌륭했다.

시뮬레이션은 그저 행동 예측. 반면 썸머는 원천적 문제 해결이었으니까.

미친 듯이 썸머로 놈을 찌르고 또다시 찔러대자 어느새 오른쪽 놈의 마지막 핵이 보였다.

-자, 잠깐!!

오른쪽 벨로스가 겁을 집어먹었는지 내게 소리쳤다.

미친놈 적에게 잠깐이라니.

푹-!

핵이 소멸하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끼아아아악!!

퍼엉!

머릿속 퍼런 마력 덩어리 하나가 소실되었다. 고개를 돌려 왼쪽 놈의 마력을 느꼈다.

벨로스의 몸에 2개 남은 핵은 엄청난 속도로 옮겨 다녔고, 여전히 놈은 얼음 창에 박혀 있었다.

-숨통을 끊어라, 주인!

벨로스가 처음으로 육성을 내질렀다.

“인간이 감히 내 죽음을 관장하려 드는 것이냐!!”

놈의 왼팔로 들어선 핵을 빠르게 잘라냈다.

“일단 하나.”

“그, 그만둬라! 살려 달라!”

“넌 내 부캐가 그만두라 할 때 어떻게 했지?”

놈의 마지막 남은 핵이 엄청난 속도로 몸 안을 돌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른지 고무줄이 늘어난 듯 보였다.

썸머가 기고만장한 듯 벨로스에게 조소를 날렸다.

-벨로스, 개에게 사지가 잘려 죽어 가는 느낌이 어떠냐?

“옛 친우여, 그만두거라!”

-친우? 지랄하네. 주인. 오른팔을 잘라라.

녀석의 말대로 벨로스의 팔을 잘랐다.

촤아악!

끼이아악!

벨로스의 잘린 팔이 더는 재생되지 않았다.

아, 핵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렇구나.

-이번엔 왼쪽 다리다.

“그, 그만!”

“그놈의 그만이 통할 성싶으냐.”

촤아악 써걱!

썸머의 서슬 퍼런 칼날에 벨로스의 다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벨로스는 얼음 창에 꽂힌 채 절망스럽게 나를 봤다.

“아까 말했잖아. 네놈에게 잔인함의 끝을 보여 주겠다고. 그러니 하나하나 잘라내 줄게.”

놈의 목에 검날을 들이대자 놈이 악다구니 쳤다.

“차라리 소멸시켜라!”

“내 부캐가 네게 부탁했었지. 차라리 죽이라고. 근데 넌 그저 가지고 놀았었지. 아닌가?”

눈을 감고 놈의 마력을 느껴 보니 핵은 왼쪽 가슴에 멈춰 있었다.

눈을 뜨자 벨로스가 입을 찢어져라 벌렸다. 얼른 팔뚝을 놈의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총구를 막으면 총이 터지는 거 알려나? 네놈이 불이든 뭐든 쐈다간 네 머리가 터질지 몰라.”

놈이 분함에 떨자 팔뚝을 치우며 또다시 말을 이었다.

벨로스를 죽이기 전 김규석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으니까.

“이곳에 나보다 먼저 왔던 인간 놈이 네게 뭘 했던 거냐?”

“놈은 거짓 덩어리였다!”

지금껏 만난 마수들의 특징은 두루뭉술하게 말한다는 것.

벨로스를 빤히 보며 다시 물었다.

“네 말은 사기당했다, 그 말이냐.”

벨로스의 입에서 조금씩 퍼런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그놈이 내게 거짓 계약을 하고 도망쳤단 말이다! 감히 악신 벨로스에게!!”

“내 말은 어떤 능력을 네게서 빼앗아 갔는지…….”

-주인, 물러나라!

썸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빠르게 뒤로 빠지자 벨로스는 퍼런 연기로 변해 바닥에 가라앉아 사라졌다.

-벨로스는 계약자의 정체를 타인에게 수긍하는 것만으로도 소멸한다.

“그럼 계약자는?”

김규석이 타격을 받는다면 나로서는 좋다. 하지만 썸머의 말은 내 희망을 깨뜨렸다.

-무엇을 가져갔든 이젠 계약자의 것이다.

이런 망할!

김규석은 벨로스에게 무려 2개의 능력을 얻었다. 게다가 하나는 강탈당한 흔적 같았고.

한 마디로 김규석 좋은 일만 했다.

놈이 가져간 능력이 뭔지도 모르데. 어쩌지?

-능력 하나는 알겠구나.

“그게 뭔데?”

-흑막.

“어떤 능력이지?”

-예전의 벨로스라면 주인이 쏜 얼음 창을 무효화할 수 있었다.

“마력 무효?”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다만 놈의 힘이 약해 혹시나 하고 얼음 창을 쏘라 했는데 운 좋게 흑막 능력을 빼앗겼었나 보다.

만약 김규석이 가져간 ‘흑막’ 때문에 감정도 관찰지도 막힌 거라면, 말 그대로 흑막에 싸인 거네.

썸머도 나머지 한 개는 모른다고 했다. 다행히 벨로스의 능력 중 ‘영혼 도둑’이란 소문을 다른 마수에게 들은 적이 있단다.

잠깐, 여유림이 러시아에서 왔었다고 했는데, 그녀가 김규석을 이곳에 안내했겠구나.

설마 김규석이 그녀의 수인화를 벨로스의 ‘영혼 도둑’으로 취한 것일까?

이런저런 추측을 난무할 때.

보물 상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보물 상자.]

맞다. 벨로스도 던전 보스였지.

얼른 상자를 열어젖혔다.

[포인트 25,0000P가 정산됩니다.]

미쳤네. 여태 나온 중에 최고의 포인트다.

돌아가면 이번 포인트로 뭘 할지 천천히 고민해 봐야겠다. 지금은 일신과 김규석이 우선이니까.

던전을 나가다 부서진 석문을 봤다.

이곳이 파손된 걸 알면 러시아 관리국에서 난리가 나겠지.

그렇다면 숨겨 두면 그만이다.

“창조신의 축복.”

꽈드득 꽈득 후드득.

능력을 사용해 석문을 이전 모습으로 되돌렸다. 겉모습이 똑같으니 눈치채긴 힘들겠지.

슬슬 돌아가서 일신이나 다시 흔들어 보자.

* * *

키리바시에 세워진 포털 문을 통해 길상도가 들어서자 그 뒤로 헌터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뒤따라 포털 문을 통과한 훈련생이 감탄하고 말았다.

“와- 죽인다!”

“세상에 TV로 봤을 때 거짓말 같았는데. 한순간에 여길 왔다고?!”

불법으로 들어와서 불안한데 헌터 훈련생들이 웅성거리자 길상도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들었다.

그가 눈치를 주자 부하 직원이 훈련생들에게 경고를 날렸다.

“거기. 놀러 왔습니까?”

훈련생들은 무안한지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며 사과했다.

말대로 놀러 온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미래가 달렸으니 당연했다.

훈련생들 틈에 남자로 변장한 한미소가 상황을 예의 주시 했다.

그때, 옆에 걷던 여자가 나직이 물었다.

“여기 위험하지 않나요?”

한미소가 말이 없자 그녀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또다시 제 걱정을 털어놓았다.

“일신 길드에 입사 가능하대서 지원하긴 했는데……. 이게 잘한 건가 싶네요.”

이들 대부분은 황혼의 틈새에 그들이 들어서는 것 자체가 불법인 걸 아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길드에 들어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을 이들은 이길 순 없었다.

잠시 후 길상도의 뒤를 따라 훈련생들이 황혼의 틈새 던전에 멈춰 섰다.

황혼의 틈새 던전은 상상 초월의 거대한 입구와 그 주변으로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던전이 처음 출현했을 당시 이곳에 파견 나온 각 분야의 학자들은 문양에 뜻을 알아내기 위해 다방면으로 조사했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다만 몇몇 학자들이 황혼의 틈새가 다른 던전과 달리 마수의 숫자도 일정하고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지 않는 기묘한 던전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길상도 일행이 황혼의 틈새 1층에 들어서자 고대 울창한 밀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푸드득- 파닥파닥.

와이번 한 마리가 하늘로 높게 솟구쳐 오르자 누군가 중얼거렸다.

“단기 훈련이라더니 고블린도 아니고 와이번이 날아다녀?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그, 그래도 훈련 교감님들 계시니까 문제없겠죠.”

“그렇겠지……?”

길상도 옆에 있던 헌터가 커다란 방패로 몸을 보호했다. 그리고 한 손에 들린 칼로 우거진 나뭇가지와 풀을 쳐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쓔아악-!

“화살? 모두 방어!”

화살이 날아들자 헌터는 얼른 방패에 몸을 움츠렸다.

텅! 소리를 내며 그의 방패에 화살이 박히자 숲속에서 몇 마리의 검은 피부의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상도가 검을 빼 들며 헌터에게 거드름을 피웠다.

“어때, 직접 겪어 보니.”

“확실히 화살의 힘도 강하고. 여기 마수들이 다른 던전보다 월등히 등급이 높은데요.”

또다시 화살이 날아들자 길상도가 검으로 쳐 냈다. 그러고는 칼을 든 고블린 무리로 뛰어들었다.

그는 허리를 숙이더니 검을 반원을 그려 단번에 고블린 4마리의 몸통을 두 동강 냈다.

길상도는 또다시 손을 치켜올리더니.

나무 위에 숨어 있는 활을 든 고블린을 태우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훈련생과 길드원들을 둘러보며 자신의 우월함을 뽐냈다.

“다들 정신 차려야 할 거야.”

“저희는 몰라도, 훈련생들 정말 괜찮을까요?”

“저들이 훈련할 곳까지만 잘 인솔하면 되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앞장서.”

당연히 괜찮지 않았다.

조금 전 검은 고블린만 해도 훈련생들과 비슷한 전력일 테니까.

하지만 김규석의 명령인데 어쩌겠나. 윗사람이 까라면 어쩔 수 없는데.

이곳 황혼의 틈새는 신기하게도 길을 만들어도 며칠이 지나면 수풀로 채워진다.

그래서 이런 곳을 드나들 때는 탐색에 능한 헌터들이 앞을 터 나간다.

일신 길드원 3명이 검격을 날려 풀과 나무들을 베어 길을 만들었다.

푹-! 푹!

그 뒤로 길드원 2명이 돌아갈 길에 대비해 기다란 팩을 꽂았다. 그리고 마력을 부여해 언제든 찾기 쉽게 표식을 남겼다.

간간이 마주치는 검은 고블린은 석궁과 화살을 소지한 길드원들이 처리했다.

누가 봐도 황혼의 틈새 마수들의 생김새와 행동은 여타 던전과 달리 강해 보였다.

길드원 뒤를 따르던 훈련생들이 바짝 얼은 얼굴로 좌우를 살폈다.

후미에 있던 일신 길드원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암만 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아. 상상 이상으로 마수들 등급도 높고.”

“뭐라는 거야? 마수가 강해 봤자 우린 B급 이상…….”

웁! 억!

후미에 있던 교관 2명은 누군가에게 잡혀 쓰러졌다. 그리고 하나둘 훈련생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한참 후 남자 훈련생이 겁이 질린 듯 소리쳤다.

“뭐, 뭔가 있어요! 뒤에 오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고요-!!”

앞서가던 길상도가 검을 빼 들며 뒤를 돌아보자 그 많던 인원은 겨우 10명 남짓 남아 있었다.

그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며 검을 움켜쥐자 남자로 변장한 한미소가 길상도의 다리에 매달리더니.

“나, 나 좀 여기서 내보내 줘요!”

“정신 안 차려!”

길상도가 다리를 털어 한미소를 떨어내려 했다. 그녀는 피식 웃더니 나직이 중얼거렸다.

“홀.”

후드득.

두 사람을 중심으로 거대한 싱크홀이 생겼다. 둘은 꺼져 버린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어, 어-?!”

싱크홀에 빠진 길상도가 고개를 털어 정신을 차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위를 올려다보자 싱크홀 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신 길드 길상도 씨. 당신을 던전 불법 침입 및 사기죄로 체포합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각성자 관리국 윤호준 과장이었다.

길상도는 아차 싶었는지 재빨리 윤호준에게 검을 던지며 높이 솟구쳐 올랐다.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남아 있는 길드원들이 관리국 헌터들과 대치 중이었다. 그는 황급히 길드원들에게 외쳤다.

“흩어져!”

그의 말과 동시에 길드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름 현명한 도주법이었다.

하지만 일신 길드원 발아래로 보랏빛 마력 줄이 죽 그어지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윤호준은 싱크홀에서 뻗어 나온 여러 개의 보랏빛 선을 보며 구덩이를 내려다봤다.

한미소가 바닥에 손을 짚고 마력을 이용해 일신 길드원들을 쫓는 듯했다.

“한미소 씨! 괜찮으십니까?”

“놈들을 마킹했으니까 어서 쫓으세요.”

윤호준이 관리국 헌터들에게 외쳤다.

“어서 체포해!”

그의 말에 관리국 직원들이 단박에 선을 보며 추적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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