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신의 눈 (2)
직원들이 우리의 기 싸움에 바짝 얼어붙어 있자 그들에게 최대한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검사하시죠.”
김규석의 얼굴이 점차 붉어졌다. 그래, 그렇게 흥분해야 한다.
“그러게, 왜 내 회사에 도청기를 설치한 겁니까?”
“그건 엄혁권 이사 단독으로…….”
웃기고 있네. 엄혁권의 제안에 옳다구나 했던 놈이.
비겁한 변명이 듣기 싫어 그의 말을 비집고 들어갔다.
“저는 말입니다. 내 직원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제 책임이라 생각하거든요. 누구처럼 꼬리 자르기 따위 못 해서요.”
그가 주먹을 쥐고 참는 게 보였다. 예전의 김규석이라면 당장 여길 뛰쳐나가거나 내게 위압을 쏘아붙이며 포악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곤경에 처한 일신. 재벌가의 자식이란 무게가 그의 격한 분노를 누르는 듯했다.
또한 계속해서 나를 만나자고 했으니 일신이 그만큼 위기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김동연도 깨어났을 테고. 김동연 등쌀에 못 이겨 김규석이 내게 찾아왔다고 봐야겠지.
말인즉 저 자식은 뭐라도 성과를 얻어 가야 할 것이다.
오늘 내가 줄 거라곤 네 멘탈 깨는 것뿐이지만.
며칠 전 OW에서 유럽 진출을 언론에 발표하자 한 차례 더 일신의 주식은 꼬꾸라졌다. 더불어 일신과의 JW 간의 관계 개선은 한 마디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일신과 우리, 그리고 엘리펀트가 경쟁을 시작하자 주식 장세는 개판 5분 전으로 널뛰기 중이다.
김동연은 한 주라도 더 사들이려고 혈안인 듯했다. 어떻게든 우리를 떨쳐내야 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여전히 엘리펀트가 어디와 손을 잡느냐에 달린 상황이다.
아니지. 난 손 잡을 일이 없다. 일신에 시기적절하게 우리가 보유한 전량을 일신에 비싸게 팔아 버릴 것이다.
마석 형태 변환기도 줄 것이다.
그것도 아주 골치 아픈 놈을 제작해서 일신이 개미지옥에 빠져들도록.
아직 OW에 내 뜻을 전달하진 않았다. 오늘 이 계획이 성과를 내면 김규석과 김동연은 움츠러든다.
그나저나 왕혜선이 엘리펀트를 상대로 시간을 잘 끌고 있어서 내 계획에 차질은 없을 듯하다.
그것들도 불방망이 맛을 좀 봐야겠구나.
검사가 끝나고 직원들이 나가자 김규석이 들어 올렸던 양팔을 내리고 의자에 앉았다. 그는 잠시 뜸들이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화해를 요청합니다.”
어이어이, 그러면 안 되지. 시작도 안 했는데 그딴 식으로 백기 투항이라니.
“실컷 때려 놓고 이제 맞을 것 같으니까 화해라고요?”
“우리가 잘못되면 JW가 사들인 주식도 다 소용없는 것 아닐까 싶은데요.”
“그래요? 우린 또 벌면 됩니다.”
김규석이 어이없는 눈으로 나를 봤다.
나라고 미치지 않고서야 조 단위 돈이 별거 아니겠냐. 그거 날아가면 눈뜨고 죽을 건데.
그렇다고, 아이고 앞으로 잘해 봅시다. 그럴 필요도 없다.
김규석이 내게 물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이미 소문으로 들었을 텐데 입 아프게 왜 묻는 겁니까?”
“정말 일신가를 경연 일선에서 내몰 수 있다 봅니까?”
“그럼 그 끝이 어떤지 확인해 보시죠.”
네놈은 내가 살려 준 기회를 이미 걷어찼다. 그 자린 원래대로면 널 죽인 김규현 것이었으니까.
네가 물러나지 않더라도 자릿값은 톡톡히 받아낼 생각이고.
그의 얼굴을 빤히 보며 물었다.
“뭐 하나 물어봅시다.”
“말하시죠.”
“마석 형태 변환기, 채수진, 미아 호라크 그리고 내 능력…….”
내가 말끝을 흐리고 그를 노려보자 그의 눈 밑 살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어째서 김규석 당신 건데?”
그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더니 나를 노려보며 거칠게 입을 털었다.
“너야말로 내 사무실을 도청했구나?!”
“내가? 도청? 그럼 가서 찾아보든지. 아, 교도소 간 엄혁권이 당시에 뒤졌는데 안 나왔었지, 아마?”
김규석의 관찰지에서 엄혁권이 그랬으니까.
그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아마도 엄혁권의 의견이 맞았다고 생각하겠지. 나도 솔직히 엄혁권의 촉에는 놀랐으니까.
손가락 깍지를 끼고 그를 강하게 노려봤다.
“당신, 내가 붙여 준 그 능력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앉아나 있을 거로 생각해?”
“뭐?”
“왜 모른 척할까? 김규현이 네놈을 죽이려 했던 것도 난 아는데.”
그가 분노하며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내리치는 찰나 달려가 주먹을 막으며 빠르게 중얼거렸다.
“컨트롤 딜리트 강탈, 백신.”
[김규석의 고유능력 강탈을 흑막이 막았습니다.]
[이지완이 붙여넣은 백신만 지웁니다.]
[완료.]
그가 손을 뿌리치며 외쳤다.
“놔!”
젠장, 백신만 되다니. 어째서 안 되는 거냐?!
망할 흑막! 저놈을 보호해 주고 있잖아…….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렸다.
“김규석. 앞으로 독 같은 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조금 전에 내 능력을 거둬들였거든.”
그가 잠시 자기 능력을 살피는 듯했다. 그러다 부들거리며.
“네놈. 관리국에 고발해 주마.”
“어이없네. 백신은 원래 내 것이었지. 그리고 날 고발하면 네 능력 강탈은?”
그가 사색이 돼서 나를 노려봤다.
“얼마 전 러시아도 그래서 다녀왔던 거 아닌가? 지금까지 일신 길드에서 능력이 사라졌던 헌터들도 다 네가 먹어 치웠고. 과연 누가 더 위험할까?”
그가 주먹을 움켜쥐자 또다시 말했다. 놈의 머리를 흔들 한 방.
“엄혁권의 능력과 각성자 힘까지 다 당신에게 강탈당했었지. 각성자 힘까지 집어삼킨 건 너무하지 않나?”
“네, 네가 그걸 어떻……?”
그는 놀랐는지 입을 뻐끔거렸다.
놈이 정신을 못 차리는 이때 시작해야 한다.
손을 들어 살살 돌리며 김규석을 내려다봤다.
“김규석 당신 강탈이 내 강탈보다 더 강할까? 조금 전 백신만 지운 건 경고거든.”
그가 뒤로 주춤거렸다.
“역시 네놈도 강탈이었구나.”
“누가 더 빨리 상대의 능력을 강탈할지 여기서 시험해 보던가?”
여기서 그가 치고 나오지 않는다면 내 계획대로 될 수 있다.
그가 주춤하더니 나를 경계했다.
“앞으로 조심해야 할 거다.”
그가 겁먹었다? 이러면 한미소와 작전을 밀고 갈 수 있다.
“조심?”
재빨리 한미소에게 사념으로 물었다.
-선배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준비됐어요.
-시작합니다, 선배. 김동연이 뭐 하는지 알려 주시죠.
이게 먹히는 순간 김규석의 멘탈은 너덜거리겠지.
-김동연 퍼팅 중이네요.
분노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김규석을 보며 예언하듯 입을 열었다.
“지금 회장님께서는 사무실에서 퍼팅 중이시네?”
“무, 뭐?”
“못 믿겠으면 너희 아버지 지금 뭐 하는지 확인해 보든지.”
그가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깜박였다.
“지금 내 눈에는 당신 아버지 행동이 다 보이거든?”
“새끼가 뭔 헛소리야?”
“내가 어떻게 도청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알려 주려고.”
“이지완. 세상에 그런 능력자는 없다.”
“세상에 나 외에 그런 능력자는 없다고 해야지. 내 말이 거짓인지 확인해 보든지.”
그가 나를 경계하며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뭐고?
“조금 전 뭐 하고 있으셨습니까?”
-이기 돌았나?
“말해 주시죠. 회장님.”
-내가 퍼팅 연습하는 거까지 네놈에게 보고해야 하나?
김규석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가 나를 보며 일그러졌다.
한미소가 사념으로 김동연이 하는 말을 전해 왔다. 이 정도까지 바라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놀랍게도 독순술이 가능한 듯했다.
나는 한미소에게 들은 대로 김동연의 말을 시차를 두고 김규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알려 줬다.
그녀가 또다시 사념을 보냈다.
-김동연이 물을 마시는군요. 아, 조금 전 사레들렸어요.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들은 대로 김규석에게 그대로 알려 줬다.
“회장님 물 드시네? 그런데 너무 급히 드셨나? 기침까지 하시고.”
“지, 지금 물 마셨습니까?”
-쿨럭쿨럭. 이기 귀신 들렸나? 뭐꼬!
김동연의 사레들리는 소리와 함께 통화가 종료됐다.
김규석의 표정을 살폈다. 놈은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올려봤다.
“이래도 내가 도청했다고?”
“……무슨 능력이냐?”
“왜. 알면 뺏으려고?”
“비겁한 새끼.”
“도청하다 걸린 놈 입에서 할 말은 아닐 텐데. 아, 맞다. 내가 도청한다 생각하고 너와 엄혁권이 가운만 입고 방음실에 들어갔었지?”
놈이 순간 망치로 맞은 것처럼 살짝 휘청거렸다.
다행히 이때까지의 놈에 대한 행동은 관찰지에 나와 있었으니까.
이제는 이 사기극이 진짜 능력으로 변할 시간이다.
“내 친히 능력 이름을 알려 주지.”
그가 멍하게 나를 봤다.
“혹시 ‘신의 눈’이라고 들어 봤나?”
“……신의 눈?”
손가락으로 내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누가 뭐 하는지 볼 수 있거든. 그러니까 나 엿 먹일 생각은 그만두는 게 좋을걸.”
“그래서 이도의 왕태평 상태도 알았었군?”
얼씨구. 제 입으로 자백까지? 이거 가져다 붙이면 다 속겠는데.
“이도뿐일까? 네놈 길드가 황혼의 틈새에서 뻘짓할 때도 난 보고 있었는데.”
김규석이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차리더니 어이없는 말을 꺼냈다.
“그만……. 휴전하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이 자식,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 건가?
하기야 여기서 소동을 피우면 모든 게 끝난다는 것을 알겠지.
일단은 돌려보내야겠다.
이미 충분히 놈의 머릿속에 각인됐고, 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저놈의 행동에 제약이 걸릴 것이다.
“됐고. 주총 때 봅시다. 김규석 부회장.”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이 정도면 우릴 이기지 않았나. 그만하지?”
회의실 문을 열며 말했다.
“돌아가시죠. 더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그쪽을 지켜볼 겁니다.”
그가 사색이 돼서 걸어 나가자 문을 닫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솔직히 속을까 반신반의했는데 결과는 대성공 같다.
잠시 후 회의실 문이 열리며 육지호와 민석 선배가 들어왔다.
한참 긴장을 털어내자 민석 선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너무 몰아붙인 건 아닐까?”
확실히 몰아붙이긴 했다. 하지만 김규석이 조금 전 겪은 일을 김동연 회장에게 보고하는 순간이 내게 필요하다.
요즘은 일신을 상대하느라 모든 업무가 버겁다.
육지호가 심하게 배를 문질러 댔다. 그저 내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 말이다.
“혹시 이대로 관리국에 가서 신고라도 하면 어찌합니까?”
“하하하. 김규석이 그럴 위인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 능력은 관리국에서 파악조차 못 하죠.”
“너 어쩌려고 이런 일을 벌인 거야?”
“계속 우릴 건드리는데 뻥카라도 쳐서 멈춰야죠. 물론 속아 넘어갈지는 미지수였지만 김규석 상태를 보니 완벽히 넘어갔네요.”
“보지도 않고 본인 가족이 뭐 하는지 실시간으로 줄줄 말하는데 나라도 속겠다.”
“한동안 일신은 조용할 겁니다.”
육지호가 피식 웃으며.
“조용한 게 아니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겠군요.”
“육 대표님이라면 어쩌겠습니까?”
그가 팔짱을 끼며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다 인상을 찡그렸다.
“상대가 제 수를 다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답이 안 나오네요.”
그렇지. 그게 내 노림수였으니까.
“햐, 신의 눈이라고? 내가 볼 땐 신의 혀다.”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죠. 자꾸 떠들면 놈이 속았다는 걸 깨달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