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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능력이 OS-220화 (220/334)

220화

-사념의 서적 (3)

그가 다시 나왔을 때 선택 감정을 통해 그의 몸을 살펴보니 책이 없었다. 살짝 당황하며 고개 돌려 건물을 보니 3층에서 책이 표기됐다.

만약 페르민이 연방정부와 연관 있다면 멜라니의 가짜 신분증을 만드는 데 일조했거나 혹은 브로커일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두 가지 가능성.

멜라니를 받아 준 어딘가의 조직.

혹은 그녀의 측근일 테지.

어디든 그녀가 숨겼다는 책을 아는 페르민을 신문할 필요가 있다. 저 건물에 누가 있는지도 알아야 할 테고.

선택 감정으로 각성자나 일반인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재빨리 건물 벽면을 밟고 달려 페르민의 반대편으로 착지했다. 그리고 행인으로 행동하며 그의 정면으로 걸어갔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몽환.”

제대로 걸렸는지 페르민이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얼른 물어보자.

“넌 멜라니와 무슨 관계지?”

“친구입니다.”

친구? 설마 최면이 풀린 그녀가 이 자식을 시켜 책을 옮겼단 건가? 어지간해서 그럴 일이 없을 텐데. 일단 차근차근 물어보자.

“연방정부 사무소와 무슨 관계냐.”

“저는 서류 담당입니다.”

서류? 신분증을 말하는 걸까? 그렇다면 정말 신분증 위조?

“멜라니의 신분증은 누가 만들어 줬지?”

“제가 신분증을 위조해 줬습니다.”

이 자식 제대로 미친놈이네. 우리나라로 따지면 주민등록증을 국가 승인 없이 본인이 발급했단 건데.

“멜라니가 책을 찾아오라거나 네게 무슨 연락을 했었냐?”

“그녀는 연락해 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최면은 문제없었구나. 그럼 이건 이놈 독단이라는 거다.

이놈은 공무원이다. 그런데 어째서 책을? 혹시 정부 관료와 연관된 건가? 그렇다면 더욱더 골치 아픈데…….

“멜라니의 책은 누구 손에 들어갔지? 너 외에 누가 또 관련돼 있고.”

“책은 제 책상 서랍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만 알고 있는 일입니다.”

응? 그게 뭐야? 조직도 정부도 아무런 상관없다고? 그나마 다행인 건가? 거대 조직이라도 엮여 있을 줄 알았는데.

“어째서 책을 가져간 거냐?”

“그 책으로 황혼의 틈새 던전 주인과 거래할 겁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내가 주인인데. 혹시 멜라니가 그전에 이놈에게 지시라도 내려놨었던 걸까?

그럴 리가. 그녀는 다급함에 내게 거래를 했었다. 그렇다면 이놈의 독단이다.

“왜 책을 훔친 거냐.”

“그녀가 상당한 값어치가 있다고 알려줬었거든요. 그래서 빼돌렸습니다.”

“그 책의 용도는 알고 있냐?”

“모릅니다.”

“얼마나 받을 생각이었지?”

“1000만 돌라레스입니다.”

118억 원? 미친놈. 간도 크다. 멜라니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네놈은 꽁꽁 얼어서 바스러졌을 거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가 있어서 그녀는 아르헨티나로 왔다는 거고, 이놈은 멜라니의 책을 훔쳐서 나와 거래하겠단 속셈이었구나.

가만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오늘 이딴 짓을 벌인 걸까?

“어째서 오늘 책을 훔친 거지?”

“그녀는 책이 잘 있는지 확인차 매일 제게 연락합니다. 그런데 연락도 없고, 사무실에서 기다리다 장난삼아 그녀의 휴대폰 위치 추적을 했더니 공항에서 사라졌더군요. 기회는 이때다 싶어 훔쳤습니다.”

듣는 순간 헛웃음치고 말았다.

말인즉 멜라니는 최면에 걸린 채 숨는답시고 아르헨티나를 떠났다.

만약 내가 하루만 늦게 서점에 방문했다면, 저 자식 때문에 새될 뻔했단 뜻이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왔었구나.

“책 당장 가져와.”

잠시 후 그는 건물로 들어가 ‘사념의 서적’을 들고 나와 내게 건넸다.

휴, 큰 조직이 엮였을 줄 알고 걱정했더니 이런 잡범일 줄은.

책을 인벤토리에 넣고 페르미를 빤히 봤다.

“각성자 증명서 꺼내 봐.”

“각성자 신고를 안 했습니다.”

이 자식, 가지가지 하네.

하기야 이놈의 능력이면 못된 일에 쓰기 딱 좋긴 하다. 괜스레 관리국에 신고하면 능력을 쓰기도 전에 의심부터 받을 테고.

나름 괜찮은 능력인데 아쉽게도 지금의 나는 복사할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두면 허튼짓거리나 하고 다니겠지.

놈의 손을 낚아챘다.

“컨트롤 딜리트 고유능력.”

[페르민 가르시아의 고유능력을 지웁니다.]

[완료]

“리셋.”

[각성자의 능력이 F등급으로 초기화됩니다.]

“오늘 관리국 가서 각성자 검사받아라.”

“네, 알겠습니다.”

친구란 놈이 이따위로 배신하다니. 멜라니도 어찌 보면 안됐긴 하다.

이제 모두 끝났으니…….

부캐를 괴롭힐 시간이다.

나는 모울을 통해 한국에 돌아갔다. 그리고 부캐는 공식적인 출국을 위장하기 위해 다음 날 부에노스 공항으로 향했다.

녀석이 투덜거렸지만 내가 그래도 편도는 갔다 왔으니 고통 분담인 셈이다.

모울 테이블에 앉아서 사념의 서적을 살펴봤다.

여기에 문을 열 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로렐라이가 가진 ‘그의 피조물’처럼 책을 펼친다고 머리에 뭐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감정이나 도움말을 사용해 봐도 서쪽 문을 열기 위한 수단 정도로만 설명되어 있다.

문제는 이 책이 전부 백지라는 거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물에 넣으면 나오나 싶어 살짝 물을 묻혀도 봤고, 라이터 불에 살살 달궈 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그건 영화일 뿐이었다.

책을 들고 황혼의 틈새 1층 서쪽 문으로 가 보는 수밖에.

황혼의 틈새는 모울을 통해 들어갈 수 없다. 로렐라이에게 부탁해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그녀 역시 안 된다고 했다.

아마 황혼의 틈새는 기존 던전과 다르든가 아니면 너무 층이 많아서 로렐라이로서도 방법이 없는 게 아닐까 싶다.

하기야 그게 통했다면 1층 서쪽 문도 쉽게 들어가 봤겠지.

* * *

황혼의 틈새 1층 서쪽 철문에 도착해 책을 꺼낸 후 문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혹시나 끼워 넣는 건가 싶었지만.

딱히 책이 들어갈 틈새는 없다.

미친 척하고 이쪽저쪽 문에 책을 문질러 대며 반응을 살폈다.

휴, 돌아 버리겠네.

크로노스 길드는 대체 이걸 어떻게 이용해서 열었던 걸까?

와, 돌겠네……. 방법이 없는데?

그런데 크로노스에서 유일하게 제임스 칸의 능력을 제대로 본 적이 없던 거 같은데.

놈은 최면 빼고 뭐가 있던 거지? 혹시 놈의 능력이 단서인가?

인벤토리에서 안나 하트의 관찰지를 꺼내 펼쳐봤다.

그는 마력 폭탄을 만들어 러시아에서 활동했다. 그 후 크로노스 길드에서 최면의 달인으로 활동하다가 CIA에 근무했던 지미 고든에게 밀려 2인자로 전락했다.

그런데 더 강한 정신계 능력이 있는데도 길드 2인자로 제임스를 잡아 뒀다는 건, 그를 붙잡아 둬야 하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거다.

조금 더 그녀의 관찰지를 살펴봤다. 잠시 후 안나와 제임스의 대화가 머릿속에 보였다.

안나가 제임스에게 물었다.

“그 박스에 뭘 하는 거지?”

“궁금하면 열어 보든지.”

그녀가 열려고 하자 그가 비릿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걸 여는 순간 네년 손모가진 날아가고 없을걸?”

그녀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폭탄?”

“절대 걸리지 않는 폭탄이지. 공항 검열대에서도 알 수 없고.”

“뭐로 만들었길래?”

“마력을 이 안에 가득 압축시켜 뒀지. 그래서 여는 동시에 응축된 마력이 순간 풀리면서 펑!”

안나의 시선으로 제임스 칸의 비릿한 미소가 보였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여러 임무를 겸한 듯했다. 테러범이니까 CAI에서 암살했던 인물 리스트도 잘 알고 나와 거래하려 했던 거겠지.

안나의 관찰지를 덮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마력을 압축해서 폭탄으로 만들 수 있다. 듣도 보도 못한 능력이긴 하다.

사념의 서적을 내려다봤다.

회귀 전 대로면 결국 미아 호라크는 문을 열 수 없다. 대신 크로노스 길드에서 1년 후 이곳을 열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처리하면서 이제 제임스 혼자 남은 상황.

마력을 압축해서 담는다?

썸머도 마력을 넣어서 사용하긴 하는데.

혹시 제임스 그 자식이 책에다가 마력을 넣었더니 백지에서 글이 나왔다면?

마력 압축은 못 해도 나 또한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럼 가능하지 않을까?

책을 철문 앞 계단에 내려놓고 손을 얹었다.

“콜 스피릿, 마력 감지.”

우웅!

소리가 들리고 순간 책 겉표지 테두리로 금박이 보이기 시작했다.

된다! 역시 정답은 마력이었구나.

하지만 책에서 손을 떼자 곧바로 겉표지가 검게 변했다. 또다시 시도 했지만,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었다.

마력을 주입하면 변화가 생기는 것까지 알아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이래서는 그림의 떡이다.

제길 문 하나 여는 데 뭐가 이렇게 까다로운 건지. 미아의 최고 힘으로 깨지지 않는 문을 내가 부술 리 없고.

크로노스 길드가 열었다면 분명 크게 위험도는 없단 말인데…….

결국 제임스 칸의 능력 혹은 그와 유사한 능력자가 내게 필요하다.

망할, 능력을 복사하려 해도 용량이 꽉 차서 이도저도 아닌 상황.

게다가 언제 던전을 클리어해서 포인트를 쌓고 업데이트까지 할지도 미지수다.

틈날 때마다 외부 던전을 모울을 사용해 꾸준히 돌았지만, 포인트를 얻기란 그리 쉽지 않고.

문제는 안나 하트의 관찰지에도 제임스 칸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

CIA에 이미 암살당한 걸까?

아무튼 유사 능력자라도 찾아봐야겠다.

인사동 모울 5번째 방 OW 연구실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커크는 뭐가 좋은지 연신 휘파람까지 불며 광석을 늘렸다 줄였다 하며 작업 중이었다.

자식이 혼자 기분 좋으니 괜스레 훼방 놓고 싶다.

지금까지 복사한 능력을 지우면 분명 용량은 늘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지워진 능력은 그걸로 끝이다.

내가 컴퓨터라면 외장 하드에 능력을 저장해 뒀다가 나중에 설치하면 되는데.

참나, OS만 고민하면 내가 진짜 컴퓨터라도 된 것 같네.

저장, 붙여넣기. 다시 복사?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리다가 커크의 가방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아이템 지팡이를 봤다.

처음 만든 아이템이구나. 저때 정말 짜릿했는데. 그 덕분에 마켓템도 성장…….

이런 망할! 아이템에다가 내 능력을 복사해 두면 되잖아!

* * *

크로노스 연합 길드를 만들 때만 해도 각 나라 최고라 칭할 만한 SS에서 SSS등급 리천까지 거느렸었다.

부러울 게 없었고, 그 잘나가던 연합 길드 일인자는 이 남자 제임스 칸이었다.

제임스는 비행기에서 내려 인천공항 수화물 대에서 옛 추억에 잠시 젖었다. 그는 캐리어를 집어 들며 짜증이 밀려들었다.

“지미 고든이 없었다면 내가 이 모양으로 되진 않았지…….”

공항 직원이 깜짝거리며 물었다.

“네? 뭐라고 했나요?”

제임스는 여자 직원을 보다가 하얗고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더니 손가락으로 수화물 컨베이어를 가리켰다.

“저기 올라가서 스트립 춤이나 춰라.”

제임스가 가방을 챙겨 움직이자 뒤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그가 돌아보니 공항 여직원은 수화물 컨베이어에 올라서서 미친 듯이 춤을 추다가 하나둘 옷을 벗어 던지며 깔깔거렸다.

남자들은 멋도 모르고 웬 떡이냐 싶어 휴대폰을 들어 찍어대고 아이 엄마는 아이의 눈을 황급히 가렸다.

제임스는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한 듯 또다시 중얼거렸다.

“이지완. 너도 곧 내 손아귀 위에서 춤추게 해 주마. 크크큭.”

그는 공항에서 나와 곧바로 택시에 탔다.

“가까운 경찰서로 가지.”

“네? 경찰서요?”

그가 또다시 이빨을 드러냈다.

“가자고, 경찰서. 최고 속도로.”

제임스의 말에 운전기사는 순식간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

끼이이익-!

타이어의 마찰음이 크게 울리자 공항 밖 여행객들이 화들짝하며 미친 듯이 멀어지는 택시 뒤를 멍하게 바라봤다.

제임스는 의자에 기댄 채 빠르게 지나가는 차창 밖 풍경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진작 내가 나서서 이지완을 정리해야 했다. 멍청이들과 어울리다 나까지 병신이 될 줄은…….”

끼이이익.

브레이크를 밟은 택시가 경찰서 앞에 멈춰 서자 제임스는 차에서 내리며 운전기사에게 명령했다.

“넌, 여기서 기다려.”

“네. 주인님.”

영어가 통하는 택시 운전사는 한국에서 구하기 어렵다. 당연하지만 그런 이유로 운전사를 보낼 이유가 없었다.

브레이크 소리에 헐레벌떡 뛰어나온 경찰들을 보며 제임스가 최면을 걸었다.

“모두 멈춰.”

순경 둘이 자리에 선 채 제임스를 멍청하게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영어 가능자 손들어.”

젊은 순경이 손을 들자.

“넌 날 따라 들어와라.”

그는 경찰서 문을 열고 유유히 들어섰다. 그러자 나이 든 순경이 제임스를 보며 한국어로 더듬거렸다.

“어, 어떻게 오셨나요?”

그리고 뒤따라 들어온 순경을 보며 나이 든 순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박 순경이 안내하는군. 외국인만 보면 머릿속이 하얘진단 말이지.”

제임스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 박 순경에게 건넸다.

“여기 있는 리스트 사람들 모두 신원 조회해서 프린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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