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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능력이 OS-283화 (283/334)

283화

-잘해 보자. 윈터

방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인벤토리를 열어 미아에게 받은 칼 두 자루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사파이어 드래곤의 송곳니]

감정창을 확인하자 어떤 젬드래곤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조금 더 살펴보자.

[도움말입니다.]

“사파이어 드래곤 송곳니.”

칼 두 자루 앞으로 녀석의 아이템 내용이 펼쳐졌다.

<사파이어 드래곤 송곳니>

등급: 유니크

용도: 공격

내구력: 870000/900000

공격력: 40%

방어율: +60%

스킬: 시공간 간섭, 군주의 충성, 마수 지식, 마력 버프.

내구력만 보면 썸머보다 높다. 공격력이나 방어율은 썸머와 정반대, 살짝 어이없네. 공격 무기인데 오히려 방어에 치중되어 있다니.

스킬은 마수 지식 하나 빼면 확실히 다르다. 그런데 저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시공간 간섭인데.

썸머와 비슷하다면 역시나 주인의 계약을 맺어야 하겠지.

날 없는 칼을 칼집에서 뽑아 보니 투명한 파란색이었다.

두근대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녀석의 칼손잡이를 쥐었다.

[마력 감지를 활성화됩니다!]

휴웅-

썸머와 달리 손바닥으로 한기가 타고 흘렀다. 확실히 나도 모르게 썸머와 비교하게 되는구나. 그만큼 녀석과 잘 지냈으니까.

투덜대면서도 내 입속 혀처럼 굴기도 했고.

……어째서 아무런 말이 없지?

혹시 방식이 다른 걸까? 아니면 썸머의 스킬 ‘교감’이 말하는 능력이었던 걸까?

이러니까 녀석이 더 그립네.

“넌 말 못 하는 거냐?”

-…….

뭐지? 칼 손잡이의 한기가 살짝 달라졌는데?

“넌 말 대신 한기로 표현하는 거냐?”

-…….

“휴, 이 자식은 글렀네.”

응? 손잡이가 살짝 떨린 것 같은데. 분명 내 말에 감흥하고 있다.

그 순간 머릿속에 놈의 냉소적인 음성이 혀를 차듯 울렸다.

-쯧, 감히 본좌를 글렀다고?

이 녀석도 말할 수 있구나!

뭔가 그리운 반응이네. 이 녀석도 그렇고, 젬 드래곤은 하나같이 자존심 강한 것들인가 보네.

-하찮은 인간이여. 무슨 볼일이 있어 본좌를 깨운 것이냐?

이놈 보소?

“넌 하찮은 인간에게 죽지 않았나?”

앗, 차가워!

깜짝 놀라 손잡이를 놓자 바닥에 녀석이 떨어졌다. 그리고 두 자루의 칼은 마치 드라이아이스 같은 냉기를 품은 아지랑이를 피워댔다.

-그 괴물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 맞는데?”

-…….

미아 호라크가 수인화로 변했어도 엄연히 인간인데 무슨 억지인지.

녀석은 분노를 표출하듯 내 방 기온을 급격히 떨어뜨렸고, 이내 내 코에서는 하얗게 콧김이 흘러나왔다.

이 자식,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네. 썸머는 이러진 않았는데.

[체온유지가 활성화됩니다!]

녀석은 상당 시간 내 방을 냉동고로 만들었다. 그저 녀석의 분풀이가 끝날 때까지 지켜봤다.

내가 말이 없자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상당히 건방진.

-큭큭큭. 하찮은 인간. 얼어 죽었군. 하하하하!

“이제 좀 기분 풀렸냐?”

-……이, 이이! 본좌의 힘이 이 정도인 줄 알았더냐-!!

휴, 가만 내버려 뒀다간 내 방이 얼음창고가 되겠다.

놈을 눌러 볼까?

[압제가 최고치로 활성화됩니다!]

-끄으으윽. 끄윽-!

“그만 까불고 슬슬 주인님이라 불러라. 시퍼런 놈아.”

압제를 나름 조심해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방 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녀석이 놀랐는지 냉기를 거둬들였다.

눈치가 영 어둡진 않나 보네.

저 녀석 같은 극성스러운 각성자가 있었는데……. 냉기를 사용했고, 여자였던 것 같은데.

아! 크로노스 길드의 멜라니 로즈가 딱 저랬었지.

외모 비하는 아닌데 갑자기 궁금하다. 이 녀석 예전 모습이 어떻게 생겼을까.

“너 혹시 살아생전 뚱뚱했냐?”

-뭐, 뭣이라? 나는 몸집이 종족에 비해 조금 더 컸을 뿐이다!! 내 두툼한 살집이 아니었다면 그 괴물로부터 진작 죽었을 것…….

놈은 아차 싶었는지 말끝을 흐리고 칼에서 기괴한 소리를 냈다.

끼이잉-

“맞네. 뚱뚱한 거.”

-이이익! 본좌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찮은 인간아!!

“네 주인이 돼야겠다.”

-사양하마. 아니, 절대 거부한다.

“어떻게 하면 나를 섬길래?”

-하찮은 인간아, 나만큼 훌륭한 칼을 본 적이 없어 탐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격이란 게 있는 법이다.

“아닌데.”

-뭐, 뭣이라!

“너보다 격조 높은 게 있다고.”

인벤토리에서 클라우 솔라리스를 꺼내 놈의 옆에 내려놓았다. 그것도 방어력만 치면 비교 불가이다.

“너보다 이 검이 더 훌륭하지. 안 그래?”

-…….

클라우 솔라리스를 얻었을 때 썸머도 풀이 죽었으니 저 녀석도 비슷하겠지.

예상했던 대로 놈은 기가 팍 꺾였는지 말이 없었다.

“왜 꿀 먹은 벙어리냐?”

-……이, 이름.

“이름이 뭐? 내 이름?”

-내, 내게 이름을 달라…….

그렇구나. 이 녀석들은 이름을 지어 주면 주인으로 섬기는 거구나.

썸머는 따듯했고 이 녀석은 냉랭한 녀석이니…….

“넌, 윈터. 윈터다.”

-윈터. 주군의 이름은 무엇이냐?

“이지완.”

-본좌……. 아니, 나 윈터는 주군 이지완을 따르겠다.

“잘해 보자, 윈터.”

윈터의 손잡이를 쥐며 다시금 물었다.

“넌 혹시 단검이 될 수 있냐?”

-나보고 작달막한 검이 되란 것이냐?

“정 싫으면 창고에 처박아 두고.”

츠츠츠츠측.

윈터는 냉기를 가득 내뿜으며 단검으로 변했다. 녀석은 한 번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성격 같았다.

윈터의 손잡이를 고쳐 잡고 이리저리 저어 봤다. 역시나 썸머만큼 손에 착 감겼다.

-마음에 드는 것이냐? 주군.

“어. 옛 친구가 떠오를 정도로.”

-옛 친우?

“아메시스트 드래곤.”

-이런, 그래서 본좌에게 말을 걸었었군. ……친우는 어떻게 되었나.

“소멸했거든…….”

내 감정이 윈터에게 전달됐는지 녀석은 다소 부드럽게 말했다.

-좋은 주군이군.

기분이 처진 것 같아 화제를 바꿨다.

“시공간 간섭은 어떤 스킬이지?”

-내게 마력을 넣고 힘껏 내지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주군.

윈터의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마력 감지를 활성화합니다!]

허공에 크게 내지르려던 순간 윈터가 다급히 외쳤다.

-이곳에서 사용할 스킬이 아니다!

“그럼, 처음부터 그걸 말했어야지.”

-듣자마자 바로 해 보는 주군이 이상한 것이다.

결국, 모울로 돌아가 ‘어리석은 자’ 던전에 들어섰다.

“여기면 문제없겠지? 윈터.”

-호오. 주군도 공간 능력자였군!

녀석의 음성이 한껏 들뜬 듯했다.

그렇단 뜻은 윈터의 스킬 또한 나와 비슷한 걸까?

윈터의 음성이 또다시 들렸다.

-공간과 시간을 찢고 입장할 수 있다. 단지 이 능력을 사용한 후 곧바로는 불가하다.

공간과 시간을 찢는다? 정확히 이해를 못 하겠는데. 게다가 쿨타임이 있다는 말인데…….

“얼마 후 다시 사용할 수 있지?”

-적어도 반나절은 기다려야 한다.

당장 사용할 일은 없으니 시험해 봐도 되겠구나.

단검을 움켜쥐자 녀석이 재빨리 정보를 꺼냈다.

-주군, 주군! 찢긴 공간에 들어섰다 다시 나오는 데 반나절은 걸린다.

“이런, 그런 정보는 미리 알려 줘야지. 큰일 날뻔했네.”

-주군은 성격이 급한 듯하군. 쯧.

하기야, 이것저것 묻지도 않고 바로 사용하려 한 내 잘못도 크지.

그런데 혀는 왜 차냐.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녀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윈터. 시간을 찢고 들어가면 반나절은 상관없지 않나? 그리고 어느 시간대, 어떤 공간에 들어가는 거지?”

-상대와 무한히 싸우길 원한다면 공간에 상대를 가두고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상대는 오직 한 명만 가능하다.

그 뜻은 단지 허상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단 것이고, 결투 장소를 따로 마련한단 개념인데.

“그럼, 시간을 찢는다는 말은?”

-그곳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군 없는 외부 세상 또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정리해 보면 결국 찰나의 시간에 나만 무한대로 해당 공간에서 활동한다는 거네.

흠,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유용할 수도, 쓸모없을 수도 있겠다.

난 또 시간여행이라도 가능한 줄 알고 깜짝 놀랐네. 그래도 혹시 되려나?

“시간여행은 안 되냐?”

-쯧. 주군은 탐욕 가득한 인간이군.

자식이, 뜬금없이 내 이명을 들먹이는 줄 알았네. 저거 말끝마다 심산이 뒤틀리면 혀를 차네.

썸머가 얼마나 예의 바른 녀석이었는지 알겠다.

* * *

다음 날 회의실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김규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 황당했던 건 내 연락조차 받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김규석의 관찰지를 봤더니.

낚시?!

날 까고 한다는 짓이 낚시라고? 그것도 몇백 조에 달하는 거래를 두고?

아무리 내게 진 게 억울하고 허탈하다지만, 한 그룹의 부회장이 할 짓인가?

적어도 양해는 구해야 하지 않나? 어처구니없네.

그 후로도 김규석은 연락조차 없었다. 그는 여전히 낚시터에 묵묵히 앉아 생각을 정리하는 건지 밥도 먹지 않고 술을 밥 삼아 그곳에 계속 앉아 있었다.

관찰지를 보던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책을 덮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이해해 보려 했다. 하지만 김규석의 지금 행동은 옳지 않다.

며칠 후 일신과 포털을 함께 할 의사가 없다고 언론에 띄웠다. 그리고 한달음에 일신 그룹 김동연 회장이 내 사무실까지 들이닥쳤다.

그 역시 상당히 놀라고 급했던 모양이다.

역시나 김규석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꼴도 보기 싫은 김규현이 따라붙었다.

가뜩이나 보기 싫은 놈이었는데, 기껏 한다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갑작스럽게 김규석이 사라졌고 자신들은 피해자란 말만 되풀이했다.

참으로 김규현다운 언행이고 처사였다. 동생이고 뭐고 일단 포털부터 챙기겠다니.

저놈에게 김규석은 동생이 아니다. 그저 언제고 밀어내야 하는 경쟁자일 뿐.

김규석은 현재 목포에서 똥폼 잡고 아직도 낚시질 중이다. 취하지도 않는 소주를 짝으로 마셔 가며.

휴, 참 골치 아픈 위인들이다.

소파에 앉아 사람 같지도 않은 김규현의 말을 듣던 도중 ‘마음의 울림’에 김동연의 생각이 들려왔다.

실로 의외였다.

그는 소파에 앉아 포털 수주보다 김규석의 묘연한 행방을 걱정하는 듯했다.

하지만 얼굴은 전처럼 냉정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사람의 생각이 들린다는 건 뭔가 씁쓸하네.

예전부터 들여다본 김규석의 관찰지에서 김동연의 모습은 강압적이고 천박했으며 자식조차 돈 버는 도구로 생각했기에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김동연은 단 한 번도 따뜻하게 김규석을 대하지 않았다.

그저 강해지라고 강요했고, 해내라, 밀어붙여라, 그것밖에 안 되냐, 최고의 칭찬이라면 ‘자신을 꼭 빼닮았다.’라는 말뿐이었다.

그런 김동연의 속마음이 들렸다.

-이놈의 자식이. 어찌 된 거고. 던전도 안 갔다 하고, 어디 가서 처맞고 죽을 놈도 아닌데. 휴, 설마 큰놈이 또 독이라도 먹인 건 아니겠지……. 무심한 놈. 어디서 뭘 하는 건지.

김동연도 아버지였구나.

망할, 사업은 감정이 아닌데…….

마음이 흔들렸다.

“김 회장님. 모울 지분 0.05%. 그리고 영국부터 포털을 맡기죠.”

내 말과 동시에 김규현이 껄껄 웃으며 답했다.

“이거 역시 사람은 얼굴 보고 협의해야…….”

“김규현 사장님이 회장입니까?”

“뭐, 뭐요? 이 회장, 말이 지나치군요.”

그리고 김규현의 생각이 거침없이 들렸다.

-고작 0.05%? 개새끼, 돈도 들지 않는 능력으로 온갖 생색이라니. 김규석 멍청한 새끼 때문에 내가 이 무슨 수모인지.

나도 모르게 김규현을 멍하게 봤다. 기가 차고 한심했다.

“왜 말이 없으십니까. 김 회장님.”

내 말에 그제야 김동연이 정신 차리고 입을 열었다.

“가, 감사하오. 이 회장.”

단지 감사하다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거렸다. 정말 내가 아는 김동연이 맞나 싶었다.

또다시 김규석을 생각하는 그에게 당혹감을 건넸다.

“단, 김규석 부회장님이 직접 와서 도장 찍고 포털 설치에 착수하는 조건입니다.”

“규석이 그놈은 행방이 묘연해서 말이죠. 대신 나 김규현이…….”

“김규현 사장. 사석에서 이놈 저놈 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타사 회장 앞에서 할 말은 아니죠. 그리고 당신이 뭔데 자꾸 끼어듭니까?”

김규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김동연이 포기하듯 입을 열었다.

“현재, 김 부회장이 후……. 그리 조건을 내건다면 해외 포털 수주는 포기하겠…….”

손을 들어 그의 뒷말을 막았다.

사업에 개인적 감정은 싫은데.

테이블에 놓인 메모지에 김규석의 위치를 적어 김동연에게 건넸다.

“이게 무엇이오……?”

“회장님은 잘 아시죠. 제 능력 ‘신의 눈’ 말입니다.”

그의 손에 들린 메모지가 파르르 떨렸다. 김규석 말대로 그는 내 있지도 않은 능력에 학을 뗀 듯했다.

김동연의 주름진 눈을 보자 그의 동공이 오갈 데를 잃고 흔들렸다. 어지간히도 불안한가 보구나.

애초에 죄짓지 말지.

차분하게 그에게 말을 꺼냈다.

“거기 적힌 장소는 김규석 부회장님이 머무는 곳입니다. 나로서는 엄청나게 양보한 겁니다. 김동연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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