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능력이 OS-292화 (292/334)

292화

-정리

어이가 없어서…….

고작 4일 만에 미국의 S등급 이상의 헌터들이 우리 JW길드에 합류할 줄이야.

필리쁘가 잔뜩 인상을 쓰고 내게 어찌 된 건지 말하란 표정을 지었다.

나와 크리스 사이에 오갔던 약속을 듣더니 그는 손을 번쩍 들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크리스 리어를 중심으로 헌터들이 미국에 모울을 유치하기 위해 뭉쳤단 말이군요.”

“저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크리스는 몰라도 노아라면 SNS에 해당 소식을 전했을 테니까.

그러자 필리쁘가 마법 휴대폰으로 노아의 SNS를 내게 보이며 도끼눈을 떴다.

“이 회장님께서 노아 마틴이 이럴 거란 걸 예상 못 했을 리 없죠. 아닙니까?”

노아의 SNS에는.

‘모울 유치를 위해 힘을 보태라!’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미국의 각성자들은 크리스에게 자신들도 황혼의 틈새 7층 클리어에 참여하겠다며 길길이 날뛰었고.

독박을 쓴 건 다름 아닌 필리쁘다.

왜냐면 갑작스럽게 황혼의 틈새에 참가하겠다면서 헌터들의 신청서가 밀려들었고.

필리쁘는 이게 갑자기 왜? 라며 신청서를 확인해 가며 선별 중이었으니까.

물론 필리쁘의 일이기도 하지만 미국은 인구가 많은 만큼 헌터들 또한 넘쳐난다.

여전히 도끼눈 뜨고 있는 필리쁘에게 실실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래서 JW 법률팀을 붙여 드렸잖아요.”

“그럼 뭐 합니까! 길드 전문 변호사들도 아니라 그들 교육만 해도 눈코 뜰 새 없는데.”

“그게 아니라 미아 씨 볼 시간이 없어 그런 건 아니고요?”

“그게 그거 아닙니까?!”

그러다 필리쁘가 한숨을 푹 쉬더니 이내 빙긋 웃었다.

“어찌 됐든 미국에도 모울이 양성화된다니 반길 일이긴 하군요.”

“그래서 한시적으로 샌프란시스코 모울을 열기로 한 겁니다.”

“그게 의문이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하신 건지.”

내가 설명하려던 그때, 사무실 문 근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모울의 편안함을 몸소 체험해야 각성자들이 더 열심히 뛸 테니까요.”

고개 돌려보니 육지호가 문 옆에 기대서 있었다.

참나, 닌자도 아니고 아까부터 스리슬쩍 들어와서 인기척도 없이 듣고만 있더니.

“역시 육 대표님은 제 생각을 잘 아는군요. 그 말대로입니다.”

육지호가 소파에 앉더니 짜증스러운 얼굴로 투덜거렸다.

“미 정부가 또 태클이더군요. 어째서 워싱턴이나 뉴욕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냐고.”

그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웬만해선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육지호라 미 정부가 얼마나 괘씸했을지 짐작은 됐다.

“그거 크리스가 알아서 할 겁니다.”

“당연히 알아서 해야죠. 그런데 크리스 리어 길드에 샌프란시스코 모울과 연결된 포털을 설치해 두셨잖습니까. 혹시 뉴욕으로 모인 각성자들을 한 방에 모울에 들이겠단 말입니까.”

“그렇죠. 편리함의 극대화.”

내 말에 두 사람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협상 초기 미 정부는 모울을 여러 곳에 두길 원했고.

당연히 나는 거절했다.

포털을 미국 전체에 설치하고 모울로 연결하면 되는데 뭐 하러 그러겠나.

오히려 관리만 복잡할 뿐이다.

그러다 육지호에게 물어봤다.

“미 정부에서 기왕 이렇게 된 거 모울을 더 달란 말 안 하던가요?”

육지호가 내게 실눈을 뜨고 노려봤다. 다 알면서 뭘 물어보냐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거절했건만 여전히 생떼 쓰는 것 하고는.

사실, 크리스와 노아가 교대로 내게 전화해댔다.

미국 정부는 이때다 싶었는지 오히려 그들을 교섭 상대로 내게 접촉하려 했었고.

하도 질척대서 그들에게 정부가 끼어들면 전면 백지화하겠다 했더니 그걸 또 쪼르르 육지호에게 가서 따지듯 생떼를 부릴 줄은.

확 짜증 나는데 미국만 통행세를 천만 원으로 올려 버려?

참자, 넓은 아량으로.

그렇게 따지면 더욱 가관은 중국과 러시아였다.

나름 초강수라고 엄포를 놨는데…….

그들은 결국 모울을 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모울을 심하게 까고 매도했다.

중국 관영 매체에선 모울을 지속해서 사용할 시 마수의 표적이 된다, 신체에 이상 증상이 발생한다는 둥 어처구니없는 뉴스를 버젓이 내놓았고.

러시아는 모울은 정부 관리하에 놓여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억측만 계속 늘어놨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모울이 들어서자, 옛 소련 땅을 되찾겠단 헛소리까지 들먹였다.

그저 황당했고, 뭐 저런 것들이 다 있나 싶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제발 모울을 받아 주세요. 라고 빌고 싶지도 않고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다.

그들의 엿 같은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다만 훗날 마수의 피해가 생긴다면 그것 또한 두 국가에서 감당해야 할 몫일 테니까.

그러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잠시 모울에 들려 은고지 아디에게 포이보스의 팔찌를 건넸다.

아무리 생각해도 채수진보다는 길드원들과 레이드를 뛰는 은고지에게 더욱 필요하단 판단에서였다.

채수진은 원래 강력한 힐러라 저 팔찌가 아니라도 괜찮다.

은고지는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말 덕분에 칼루가 내게 질투할 줄은 몰랐지만…….

칼루 녀석, 마냥 겁보인 줄만 알았더니 엉뚱하게도 질투의 화신일 줄은.

사람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 * *

약속한 일주일이 지나 보름 만에 관리국에서 연락해 봤다. 다시 안 올 기회라 생각했는지 약속한 날짜까지 미뤄 가며 관리국 헌터들 능력을 나름 신중히 검토한 듯했다.

그리고 문창표를 따라 밀실에 들어왔는데…….

“아저씨, 이게 뭡니까?”

“뭐기는. 네 신변이 알려질까 봐 이렇게 한 거다.”

배려는 알겠는데 영화에서 봤던 고해성사실도 아니고 상대가 손만 넣게 만들어 뒀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거 제작한다고 우리 직원 몇 명이 고생 좀 했다. 그래서 약속한 날짜도 미뤘고. 네 정체가 드러나며 곤란하지 않냐.”

아우! 돈 아끼려고 그걸 또 직원들이 제작했다니. 관리국은 조 단위 돈을 아껴서 대체 뭘 하려는 건지.

게다가 능력 검토가 아니라 겨우 저거? 저거 때문에 그랬다고?

하, 어이없어 웃음만 나오네.

그때, 문창표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너희에게 받던 포션 말이다.”

“왜요? 설마 가격을 깎아 달란 말은 아니시죠?”

“지금의 5배를 사들일 테니 개당 10만 원 깎자.”

그의 말에 그저 웃음이 터졌다. 누가 보면 관리국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생각할 지경이다.

그런데 헌터들이 얼마나 혹사당하길래 포션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 걸까? 터무니없이 많은 양인데.

“그렇게 하시죠. 그런데 갑자기 포션 구매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요.”

“직원들 복지에 신경 더 쓰려 한다.”

문창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나 깨나 직원들 걱정만 하는구나.

그는 총장이 되고 나서 더욱 그런 부분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내가 그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올렸나 싶어질 정도다.

그때, 문이 열리고 특수과 첫 번째 합격자가 반대편에서 들어왔다.

서류를 살펴보다가 눈에 띄는 능력을 보는 순간 단번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마리오네트 능력은 한서린뿐이니까.

이름: 한서린

등급: A+

고유능력: 빙결, 압살, 마리오네트.

HP: 78452

MP: 65325

감정창과 그녀의 서류를 비교해서 봤다. 그녀는 그동안 등급에 진전이 없는 듯했지만 내가 처음 후와와를 클리어했던 그때보다 오르긴 했다.

게다가 손목이 잘려 나갔었고 어렵게 복귀전까지 치러 현장에 다시 나가는 걸로 알고 있다.

언젠가 한명국의 푸념을 들었다.

한서린이 위험한 관리국 일을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나 또한 매번 가족들에게 듣는 말이기도 하다.

한명국과 서린이 일이라 제삼자인 나는 말을 아꼈다.

다시, 한서린의 서류를 살펴봤다.

한계에 부딪혔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고, 고유능력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내가 처음 능력을 수정해 봤던 샬롯부터 우리 길드원들을 종합해 보면 한 능력에 특화될수록 등급을 올리긴 유리하다.

그것과 동시에 마수를 얼마나 많이 처리했냐 또한 중요하지만.

서류에는 얼음 계열 특화를 희망했고, 압살과 마리오네트를 소거하길 바랐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그녀의 현재 고유능력은 모두 훌륭하다.

빙결과 마리오네트는 마수를 묶어 둘 수 있다. 그만큼 함께하는 헌터들의 부담을 줄여준다.

하지만 개인으로 보면 손해다.

그녀가 묶어 둔 마수를 관리국 헌터들이 처리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가 마수를 죽일 기회는 줄어든다.

아마도 그녀와 함께했던 직원들은 빠르게 등급이 올랐을 것이고, 한서린은 제자리걸음.

한 마디로 한서린 옆에 딱 달라붙어 꿀 빤 거다.

당연히 억울하겠지.

능력을 떼어내고 싶을 만큼.

그런데 관리국에서 모두 공격만 하면? 방어는 누가 하란 말인가.

저번 합격 때와 달리 이번에는 나 또한 난관에 부딪혔다.

한서린은 나를 볼 수 없다. 봐서도 안 되고.

하지만 서린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한서린. 이야기 좀 하자.”

내 말함과 동시에 난리가 났다.

한서린은 나라는 사실에 질겁했고, 문창표는 난감함에 마른세수해댔다.

잠시 후 그녀가 다소 진정됐는지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설마 지완이 너였을 줄은…….”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녀 뒤로 32명이나 남아 있으니까.

그녀에게 딱딱하게 사무적으로 대했다.

“한서린 대리님. 서류에 적힌 대로 빙 속성을 부여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압살과 마리오네트를 없앨 생각은 접었으면 합니다.”

“어, 어째서? 총장님 이건 설명과 다르지 않나요?”

한서린의 물음에 문창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둘에게 입을 열었다.

“한미소 SS, 최승현 S, 나머지 길드원 또한 대부분 A등급. 그리고 샬롯 그린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최초의 SS급 검사가 됩니다. 지금도 최초 타이틀이지만.”

한서린이 진중하게 내게 질문을 던졌다.

“모두 이지완 길드장님이 능력을 정리했단 말로 들리는군요. 아닌가요?”

“한서린 대리님. 원하는 대로 능력을 부여해 드리죠. 다만…….”

그녀의 표정이 다소 기대에 차 보였다가 내 끝말이 신경 쓰이는 듯했다.

그런 그녀에게 못을 박았다.

“두 번은 없습니다. 등급이 오르지 않더라도.”

그녀는 바짝 긴장했는지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러자 문창표가 정적을 깨듯 내게 물었다.

“이지완 길드장의 뜻대로 한다면 더 나은 상황이 된단 말인데, 그렇습니까?”

샬롯도 검사의 능력으로 바꾸고 그 뒤에 그녀의 원래 능력을 다시 붙여넣었다. 효과는 훌륭했고, 지금도 그걸 증명 중이다.

익숙한 것을 떼어낼 필요 없다. 능력의 순서를 정리하고 붙여넣는 게 최적이다.

다시 생각해도 파티를 짜고 움직이는 레이드에서 그녀의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거렸다.

강제로 선택을 강요할 순 없다.

다만 기회가 한 번뿐이라고 했으니 많이 흔들릴 것이다.

일부러 다그치듯 말문을 열자.

“시간 없으니 바로 시작…….”

한서린은 결심을 굳히고 내 말을 가로막았다.

“이지완 길드장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모든 고유능력을 내게 붙이고 능력을 모두 지웠다. 그리고 내가 가진 능력을 살펴 붙여 넣기 시작했다.

이름: 한서린

고유능력: 빙결, 니플헤임, 아이스 레인, 프로스트 링, 압살, 마리오네트, 백신, 끈질긴 생명.

…….

휴, 능력을 정리해 두고 보니 이건 마치 차가운 여자 그 자체네.

한서린은 눈을 감고 능력을 살펴보며 입을 뻐금거렸다. 이미 붙여넣었는데도 믿기지 않는 듯했다.

관리국 특수과 33명에 한해서만 백신과 끈질긴 생명을 붙여넣을 생각이다.

일전에 한서린의 손목 재생 사건을 지켜봤고, 관리국 내부 방침이 너무 불합리했기 때문이다.

특수과에 배속될 헌터들은 마수와 가장 많이 레이드를 뛰게 될 것이고 부상도 잦을 테니까.

그래서 문창표 또한 포션을 더욱 많이 확보하려는 거겠지.

한서린을 시작으로 32명 모두의 능력은 이유 불문 내 뜻에 따르도록 문창표가 다시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17명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

살짝 한숨이 나오긴 했다.

특히 불 속성 각성자가 물 속성을 원할 때는 난감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모든 정리를 마치자 어처구니없게도 새벽이었다.

젠장, 새벽까지 일 시키고 고작 자장면 시켜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더 환장할 일은 문창표는 내 옆에서 빈속에 커피만 마셨다.

차라리 굶으라고 해라!

총장으로 승진했으면 월급도 많이 받을 텐데.

생각해 보니 승진 턱도 안 쐈구나.

그와의 약속은 모두 끝냈다. 아마도 33명은 죽어라 훈련받게 되겠지.

지금까지는 큰 탈 없이 잘 흘러가고 있어 다행이긴 한데.

이 행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