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탑을 오르다(2)
* * *
마포구 게이트는 수많은 헌터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파티원들을 구하는 헌터, 클랜원들과 잡담을 나누는 헌터, 창구를 이용하는 헌터 등등.
여러 종류의 헌터들이 제각기 목적을 가지고 게이트에 모여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멀뚱히 앉아 지켜봤다.
예린이와 일행들의 약속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찰나였다.
“저 녀석 한서준 아니야?”
“한빛 공원 사건의?”
숙덕숙덕.
몇몇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사람들의 소곤거림이 귓전에 맴돌았다.
잘 들리지 않도록 작게 속삭이고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나에게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려올 뿐.
“3레벨 촉귀를 쓰러뜨렸다던?”
“얼굴 보니까 맞는 것 같은데. 와 시발. 개쩌네.”
“쟤 얼마 전에 E랭크로 승급하지 않았나?”
“몰라. 아, 그러고 보니 짐꾼으로 왔다 갔다 했던 걸 가끔 봤었지, 참.”
주로 마포구 게이트에서 짐꾼으로 활동했던 만큼 익숙한 얼굴이 조금은 있었다.
‘공원에서 촉귀를 토벌한 이후로 내 이야기가 간간히 들려오긴 하네.’
한낱 짐꾼이었던 시절에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지금도 E랭크 헌터이자 짐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인지와 유명도가 다르다.
한빛 공원에 출현한 3레벨 촉귀를 토벌하자 그 사건이 언론을 타고 흘러 인지도가 부쩍 늘었다.
동네를 걸어 다니다보면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을 한두 명을 만날 정도였다.
물론 호기심과 궁금증이 가득한 눈으로 슬쩍슬쩍 질문을 던지는 이 상황이 나로서는 상당히 난감할 따름이다.
‘별로 달갑지 않은 관심이지.’
그도 그럴 것이 생면부지 타인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다.
더군다나 좋은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나쁜 뜻으로 말하는 거라면 더더욱.
“한서준? 걔가 3레벨 촉귀를 쓰러트리기는 무슨.”
봐봐.
저렇게.
“곁에 있었던 D랭크 헌터가 딸피 만들어 놓은 걸 킬딸 한 게 뻔하구만.”
조금 떨어진 자리.
껄렁해 보이는 한 남자가 조소를 흘렸다.
대놓고 들으라는 듯 조금 큰 소리로 지껄이고 있었다.
저 새끼는 또 누구일까.
조용히 귀를 기울었다.
“애초에 촉귀는 3레벨 중에서도 좆밥인데 뭘. 그거 좀 잡았다고 호들갑은. 오히려 공원 사람들 다 죽을 때까지 토벌 못한 게 이상한 거 아니야?”
피식 웃음을 자아내며 옆에 있었던 파티원들과 농지거리를 주고 받았다.
파티원들도 대충 맞장구를 치면서 웃었다.
새끼들. 말을 참 예쁘게 하고 있네.
“그 새끼. 혹시 공원에 있던 사람들을 방패막이로 삼은 거 아닌가 몰라.”
낄낄거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슬쩍 고개를 쳐들자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계속 나의 신경을 살살 긁고 있는 저 남자의 얼굴이 약간 익숙해보였다.
‘뻔한 도발이지만 짜증나긴 하네.’
세 명의 팀원들과 함께 의자에 앉아 반쯤 대놓고 뒷담화를 하고 있는 저 남자의 이름은 박서혁.
D랭크 베레탕 헌터이다.
헌터 갤러리에서 몇 번 얼굴을 봤다.
신입 헌터들을 괴롭히는 걸로 꽤 유명했다.
막 싹이 트는 씨앗을 짓밟는 걸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분류라는 것.
왜 저렇게 쓸모없는 짓을 하냐고 의아해할 수 있었지만, 병신 보존의 법칙이라고 해서 몇 사람 이상이 모이면 반드시 병신 한 놈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저런 병신에게 찍힐 만큼 유명해졌단 건가?’
나는 마음속으로 어이없다는 듯 조소했다.
유명해진다는 것은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저렇게 쓸데없는 놈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니까.
‘박서혁 저 놈은 몇 년 동안 D랭크에 머물고 있지 아마?’
저 녀석에 대한 인적사항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박서혁은 지금껏 C랭크 헌터 승급 시험에 도전하였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왜냐하면 C랭크부터는 재능의 영역.
재능이 부족한 자는 결코 C랭크에 다다를 수 없다.
박서혁은 범재에 불과했고 아마 그 사실을 본인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재능을 보이는 신입 헌터를 괴롭힘으로서 본인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채우는 병신 같은 새끼로 전락한 것이겠지.
‘이렇게 대놓고 지랄할 수 있는 것도 게이트 내부이기 때문이려나?’
수많은 헌터가 모이는 게이트.
잦은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싸움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만약 규칙을 어기고 싸움을 일으킨다면 최악의 경우 헌터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저쪽은 4명. 어지간하면 시비가 걸려도 맞상대할 수 없겠지.’
박서혁을 제외하고 잘 모르는 얼굴이지만, 베테랑 D랭크 헌터와 파티를 맺을 정도라면 아마 D~C랭크로 추정된다.
‘박서혁은 중소 클랜에 가입한 상태니까 같은 클랜원이려나?“
내가 얼굴을 모르는 것으로 미뤄 짐작했을 때 네임드는 아닐 가능성은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베레탕 헌터일 테니까.
‘그런데 신입 헌터들에게 시비를 걸면서 원한을 쌓아봐야 좋을 게 없을 텐데.’
박서혁은 주로 배경이 없는 파릇파릇한 신입을 괴롭히고 다녔지만 그렇다고 한들 훗날을 생각하면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나중에 박서혁이 괴롭힌 신입 헌터들 중 한 명이 승승장구할지 누가 알아?
‘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나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이렇게 대놓고 시비를 걸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쓰게 웃었다.
옛날의 나였다면 싸움을 피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약했으니까.
싸움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꿈속에서 수많은 사투를 목격해서 그런 걸까?
알게 모르게 싸움에 대한 저항감이 많이 낮아진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싸움을 조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
벌써부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현이와 말을 주고받은 것도 있고 어쨌든 이 기회에 한 번 해볼…….
“한서준 그 새끼 사실 킬딸충 아…….”
“한서준이 뭐가 어쨌다고?”
창졸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변에 있었던 헌터들이 딱딱 하게 굳은 얼굴로 훔쳐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박서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날카롭게 질문을 건넸다.
박서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의 출처를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가 사탕을 짓씹으며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 흑, 흑사회의……?”
짙은 핏물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머리스타일.
정장과 비슷하게 생긴 방호복을 대충 어깨에 걸친 모습.
한 마리의 짐승을 연상케 하듯 날카로운 눈매와 눈빛.
“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어?”
“아, 죄송…….”
바로 강화련이었다.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대놓고 욕지거리를 하다니…… 배짱도 참 좋아.”
“아, 아니, 그…….”
“여기가 네 안방이야? 아니잖아. 안 그래?”
“으…….”
박서혁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뿐이었다.
그의 곁에 있었던 몇몇 클랜원들도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더니 강화련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 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강화련의 곁에는 몇 명의 흑산 클랜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검은 정장을 착용한 근육질의 떡대들이었다.
아마 B~A랭크의 헌터들로 추정됐다.
“그쪽네들은 한산(?山) 클랜이지?”
“네, 네.”
“별 좆소 클랜이 왜 게이트 내부에서 씨발 그렇게 떠들고 있어. 좆같게.”
“죄송, 죄송합니다.”
강화련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박서혁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쪽네들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렇지?”
“네, 네!”
박서혁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 채 좌불안석하였다.
눈깔을 이리저리 굴리며 식은땀을 주륵주륵 흘렸다.
상당히 긴장하고 겁먹은 모습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그 심정이 십분 이해갔다.
흑산회 소속의 강화련에게 잘못 보였다가는 속된 말로 좆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화련이 한마디를 하면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였다.
물론 이 정도의 일로 강화련이 그렇게까지 할 리는 만무하였지만, 깡패집단의 후계자라는 이미지와 S랭크 헌터라는 사실은 박서혁에게 있어서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조용히 해줄 거지?”
“윽……?!”
그 순간 박서혁은 짧은 신음을 터뜨리며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 아닙니, 다.”
박서혁은 고통을 참으려는 듯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땀을 뻘뻘 흘렸다.
아무래도 강화련이 주무르던 어깨 한쪽이 망가진 모양이었다.
오른쪽 팔이 쭉 늘어져있는 모습이 초라해보였다.
상당히 아플 것 같은데 잘도 참고 있었다.
“그래, 그러면 이만 가봐. 너희들도.”
“감, 감사, 감사합니다.”
박서혁 및 클랜원들은 고개를 조아린 재빠르게 자리를 이탈했다.
허둥지둥 도망치는 꼴이 우습다.
강화련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이내 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조금 놀랍네.
강화련의 출현은 예상치 못했는데.
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전혀 없다.
평소처럼 침착하게 대응하자.
“뭐야, 한서준. 너 또 바보처럼 욕먹고 있었냐?”
“내가 알아서 하려고 했는데.”
“어이쿠. 그러세요?”
피식 웃으며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너스레를 떠는 모양새였다.
“야 진짜. 듣는 내가 다 쪽팔리더라. 어떻게 저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냐?”
“내가 알아서 해결하려고 했다니까 그러네.”
“실컷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고?”
강화련은 한 번 혀를 차더니 이내 흑산회 클랜원들을 향해 말을 건넸다.
“삼촌들, 나 잠시 얘랑 대화 좀 하다 갈게요.”
“네, 아가씨.”
“걱정 말아요. 약속 시간까지는 어련히 갈 테니까.”
“그러면 저희 이만.”
강화련의 삼촌들은 고개를 한 번 꾸벅이더니 성큼성큼 자리를 피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다 만나네. 게이트에서 만난 건 별로 없었잖아?”
“그러네.”
“왜 이렇게 반응이 싱거워? 아, 그런데 너 요즘 공원 안 나오냐? 어째 얼굴을 한 번 못 보겠다?”
“꽤 바빴거든.”
“그래 바쁘시겠지. 이지현 클랜에 들어갔으니까.”
나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아직 공식적으로 클랜을 설립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강화련이 지현이가 클랜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지?
“하, 참나. 그 눈빛은 뭐야. 내가 귀머거리로 보여? 이 위치에 있으면 그 정도 정보는 당연하게 들어오거든?”
생각해보면 강화련은 흑산그룹의 실질적인 후계자다.
그녀가 알고 있다고 한들 크게 이상하지 않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지현의 탈퇴에 다들 귀추가 주목되어있었어. 세피로트 클랜을 탈퇴한 후 어떻게 행동할까, 하고 말이지.”
강화련은 사탕을 아그닥거리며 간단히 설명을 시작했다.
“이지현에게 쏠린 눈이 몇 개인데. 걔가 요즘 빌딩을 구입하고, 클랜 설비를 갖춘 거 알 사람은 다 알거든?”
“아, 그러겠네.”
나는 뺨을 살살 긁적였다.
“그래서 이지현이 클랜을 만드는 게 아니냐, 라는 풍문이 돌고 있는 마당에 요즘 걔랑 네가 자주 만나고 있잖아? 그리고 또 이지현이 구입한 빌딩에도 자주 들락날락하고.”
“아니, 그거까지 알아?”
“그 정도는 기본이야, 기본.”
손가락을 까딱까딱 거리면서 한숨을 내쉰다.
“그나저나 너 진짜 조심해라.”
강화련은 사탕 막대 부분을 잡고 뺐다.
“이지현 곁에 있으면 넌 많은 사람들에게 좋든 싫든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지현이가 워낙 인기가 많잖아.”
사생팬들도 득실대는 마당이다.
“야, 가볍게 듣지 말고 잘 들어.”
“뭘.”
“이지현을 좋아하는 놈들과 싫어하는 놈들. 둘 다 조심하라고.”
지현이를 좋아하는 놈들과 싫어하는 놈들이라…….
“일단 이지현에게 적이 많아. 그건 알고 있지?”
“뭐, 그렇지.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적잖은 분쟁을 겪었을 테니까.”
“개인적인 원한을 가진 놈들도 있겠고, 그냥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고, 아니면 이지현의 이름값을 노리는 놈들도 있겠지. 어찌 됐든 지금까지는 별 다른 일이 없었을 거야. 왜인 줄 알아?”
“세피로트 클랜이라는 배경이 있었으니까?”
“그래 맞아. 4대클랜 중 하나인 세피로트가 이지현의 든든한 배경이자 울타리가 되어줬지.”
세피로트 클랜원이 타인에게 공격당할 경우 철저하게 보복이 가해진다.
그래야만 쓸데없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지현은 지금 세피로트 클랜을 나왔잖아? 보호할 울타리가 사라진 거야.”
“그래도 요즘 지현이 일성그룹하고 제휴하고 그러던데?”
“제휴잖아, 제휴. 직접적인 일성그룹 밑으로 들어간 게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일성그룹에게 어느 정도 보호를 받겠지만, 말 그래도 어느 정도의 보호일 뿐이다.
“지금껏 가만히 있었던 별의 별 놈들이 깝칠 수 있어. 예부터 이지현에 대한 강함은 의문이 많았거든.”
“열 두 개의 눈을 토벌했을 때 가라앉은 거 아니었어?”
“현장에 있었던 헌터들은 그랬겠지만 현장에 없었던 헌터들은 아직까지 좀 의심하는 경향이 있어. 이지현 거품이 아닌가 하고.”
“와, 어이가 없네.”
“원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못 믿는 인간들이 많거든.”
나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사실 이십대 중반의 나이로 한 나라의 대표가 된 것도 굉장한데 10강이라는 칭호까지 하사받았으니까 여러모로 논란이 계속 되고 있지.”
“그래?”
“그러니까 이지현을 싫어하는 놈들이 괜스레 시비를 걸 수 있어. 방금 그놈들처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놈들도 딴 곳에서 오더를 받았을 거야. 널 긁어보면서 반응을 보려고 한 거겠지.”
“그리고 일이 잘못 되면 꼬리 자르기?”
“뭐, 그러지 않겠어?”
강화련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여하튼 좀 조심하라고.”
“알고 있어. 나름 대비도 했으니까.”
“그래. 너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기억을 잃었다고 한들 너는 강하니까.”
“강하다라…….”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현이의 능력과 버프 너프 능력만으로 충분히 강자의 반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이지현을 좋아하는 놈들도 문제야.”
붉은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잠시 매만진 강화련은 싱겁게 입을 쩝쩝 거리며 말을 잇는다.
“생각해봐. 그토록 좋아하는 이지현의 곁에 웬 남정네 한 명이 곁에 붙어 있다? 옛날은 좀 잠잠했는데 요즘 너희 둘 함께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잖아. 너네들이 소꿉친구인 건 알지만 너무 붙어 다니는 거 아니야?”
강화련은 조금 불만 섞인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여하튼 이지현 사생팬 놈들에 입에 거품 물고 지랄할 수 있으니까 몸 조심해라.”
“사생팬은 좀 무섭긴 하지.”
나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방금 말했다시피 이미 어느 정도 대비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현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정도 고난은 상관이 없었다.
“어쨌든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 뭐, 그렇게 걱정한 건 아니고…… 그냥 만난 김에 겸사겸사 말한 것뿐이야.”
강화련은 고개를 획 돌리더니 별 것 아니라는 태도로 대답했다.
하지만 목에 걸려있는 초커를 만지작거리며 흘끗흘끗 나를 흘겨보는 것이 조금 낯간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 그런데 웬 초커?
조금 낯이 익는데.
“초커네?”
“아, 응. 뭐.”
조금 더 강하게 초커를 매만지고 있다.
“넌 기억을 잃어서 잘 모르겠지만, 네가 선물로 준 거야.”
“아, 그래?”
그러고 보니 확실히 낯에 익네.
아니, 잠깐만.
저거 묘하게 꿈속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 꿈속에서 강화련에게 초커를 채우고 나는…… 어?
“아! 선생님, 벌써 와 계셨…….”
익숙한 예린이의 목소리가 허공으로 솟구치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어요?”
“……넌?”
강화련과 류예린이 서로 시선을 마주보았다.
“…….”
“…….“
어쩐지 알 수 없는 기류가 두 사람의 곁을 훑고 지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