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탑을 오르다(3)
* * *
“…….”
강화련은 예린이의 얼굴을 천천히 훑는다.
맹금류의 눈동자를 연상케 하는 동공이 예린이의 온몸을 이모저모 뜯어본다.
예린이는 살짝 당혹스러운 듯 두 눈동자를 껌뻑껌뻑 거리더니 이내 실실 웃는 얼굴로 마주보며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건넨다.
“강화련 헌터 맞으시죠? 우리 선생님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우리 선생님?”
조금 의아하듯 되묻자 예린이는 ‘아차’ 한 얼굴로 수줍게 볼을 긁적였다.
“서준 오빠가 옛날에 과외를 맡아주신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강화련은 다 먹은 막대사탕의 막대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주머니 속에서 새로운 막대사탕을 꺼냈다.
비닐포장을 아무렇게나 벗긴 후 입에 쏙 하고 집어넣었다.
혓바닥으로 사탕을 굴리며 심드렁하게 입술을 달싹 거렸다.
“그러고 보니 네 이야기 몇 번 들은 적 있어. 류예린 맞지?”
“네. 맞아요.”
“아 미안. 내가 계속 반말 쓰고 있었네.”
“괜찮아요. 선생님 친구 분이잖아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전 상관없어요.”
예린이는 구변 좋게 받아넘겼다.
강화련은 잠시 뺨을 긁적거리다가 내 얼굴을 한 번 흘끗 곁눈질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예린이에게로 향했다.
“한서준하고 꽤 친한 것 같네.”
“옛날부터 알고 지내서요. 그렇죠 선생님?”
예린이는 쑥스럽게 웃으며 친밀함을 과시하듯 내 팔뚝을 꼭 붙잡았다.
타인에게 함부로 연인관계임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견제를 하는 것 같았다.
강화련은 예린이를 멀뚱히 바라보며 불퉁스럽게 사탕을 짓씹었다.
예린이의 모습이 조금 못마땅해 보였지만 가볍게 혀를 차는 것을 끝으로 불만을 잠재웠다.
“보아하니 한서준과 함께 게이트를 이용하려는 것 같은데. 맞아?”
“네. 오늘 선생님과 함께 파티를 짰거든요. 함께 4층에서 괴수를 사냥하기로 했어요.”
예린이는 선선히 답변하였다.
보통 강화련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태연자약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예린이는 대수롭지 않게 담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어렸을 적 성씨가문에서 자라서 그런가.
얘가 참 강심장이다.
“슬슬 저 말고 딴 파티원들도 올 거예요. 주미나라고 제 친구가 있는데 걔가 지금 화장실 갔거든요. 아, 마침 저기 오네요.”
“예린아! 너는 조금 기다려달라니까 오빠 보고 싶다면서 날 버리고 그냥 가는……?”
주미나는 나와 예린이를 발견하고는 한 걸음에 달려왔지만, 급작스럽게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창졸간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강화련 헌터님?”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강화련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미나의 얼굴이 석고상마냥 굳어있었다.
나와 예린이를 번갈아보며 안절부절 못한 눈빛을 짓는다.
“그, 강화련 헌터님이 왜 여기에?”
허둥지둥 못하고 있는 미나의 모습이 살짝 안쓰럽다.
아무래도 강화련에 대한 악명을 꽤 전해들은 것 같았다.
나와 예린이가 강화련에게 무슨 꼬투리라도 잡힌 게 아닌지 조마조마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미나야 왔어?”
일단 미나를 진정시킬 요량으로 재빨리 말을 걸었다.
미나는 오래된 톱니바퀴마냥 삐거덕거리는 목을 억지로 움직여 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아, 네. 오빠. 그런데…….”
미나는 말 꼬리를 흘리며 흘끔흘끔 강화련의 눈치를 보았다. 분홍 머리카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꽤 겁먹은 눈치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 동창이거든.”
“오빠 친구분이라고요?”
“응.”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확답을 주자 미나는 상당히 놀란 눈초리로 강화련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S랭크 헌터와 친구사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나 같아도 E랭크 헌터 나부랭이가 당당하게 S랭크 헌터이자 흑산회 후계자와 친구 사이라고 지껄인다면 꽤 놀랄 것이다.
그런데 이미 S랭크 헌터인 지현이와 친구 사이라는 걸 미나는 알고 있었을 텐데 강화련이 나와 친구 사이라고 하자 유독 놀라하는 것 같네.
“왜 그렇게 놀래?”
“아니, 그…… 강화련 헌터님이잖아요.”
미나는 슬쩍슬쩍 강화련을 흘겨보며 조심스럽게 다가와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미나야.”
나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미나를 슬쩍 쳐다보며 괜찮다는 듯 어깨를 두드렸다.
“화련이가 S랭크 헌터이고 흑산회 출신이기는 한데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어.”
“그, 그런가요.”
미나의 반응이 조금 과한 구석이 있었지만, 두려워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바닥에서 흑산그룹에 대해 모르는 헌터는 없으니까.
아까 꽁지 빠지게 도망간 박서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흑산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주변에 잔뜩 모여 있었던 수많은 헌터들조차 강화련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 저 멀찍이 서서 흘끗흘끗 이쪽을 훔쳐보고 있는 처지였다.
그만큼 흑산회의 네임드 밸류는 상상 이상으로 대단하다는 것.
더군다나 강화련은 차기 회장으로 추대 받는 S랭크 헌터이다.
강화련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학창 시절에는 꽤 강화련을 무서워했었지.’
강화련이 학교에서 깽판을 친 후 그녀를 건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낯잠을 쿨쿨 자고 있노라면 교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뭐, 나중에는 강화련이 아무에게나 물어뜯는 성격이 아닌 걸 알고 그냥저냥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나는 옛날의 추억을 한 번 되짚다가 별안간 정신을 차린 후 슬쩍 강화련에게 눈짓을 줬다.
멀뚱히 서서 사탕만 쭉쭉 빨고 있었던 강화련은 이내 픽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아, 네, 네. 안녕하세요, 강화련 헌터님.”
상당히 긴장한 눈치로 인사를 받은 미나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나가 이렇게까지 긴장한 것은 처음 봤다.
10강이자 S랭크 헌터인 지현이를 만났을 때는 이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겁먹지 말고, 편하게 말해 편하게.”
“그, 그럴 게요. 강화련 헌터님.”
“그놈의 ‘님’ 자 좀 빼지 그래.”
“죄송, 죄송해요.”
강화련은 짓궂게 웃었고 미나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마냥 땀을 뻘뻘 흘리며 사과를 건넸다.
쟤. 일부러 저러는 거 같은데.
미나 숨통을 풀어줘야겠다.
“그렇게 말하면 미나가 잘도 편하게 말하겠다. 그치?”
“내가 왜?”
“너 때문에 겁나 불편해하는 거 안 보여? 얘 얼굴 좀 봐. 새하얗게 질려서.”
“와…… 내가 뭘 어쨌다고.”
강화련은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나도 강화련과 그렇게 친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대담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일단은 나와 강화련은 친구 사이니까.
그리고 뭐, 거짓 약혼도 했었고.
“맞아요. 화련 언니. 우리 미나 너무 괴롭히는 거 아니에요?”
“아, 진짜. 알았다니까. 에휴. 내 편은 아무도 없네.”
예린이는 적절하게 지원 사격을 해주었다.
눈곱만큼도 강화련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지현이와 살벌하게 말싸움을 했었지, 참. 깜빡 잊고 있었네. 지현이와 말대꾸 할 정도이면 뭐…….
“아무튼 이름이 미나? 맞나? 성이 뭐야?”
“주…… 미나라고 해요.”
“주미나라…… 아, 그러네. 너 촉귀 사건 당사자야?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네. 맞아요.”
“흐음. 그렇구나.”
강화련은 잠시 입맛을 다시며 녹색 눈동자를 굴렸다.
“촉귀가 출현하기 전에 말이야. 꽤 늦은 시각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둘이 공원에서 뭐하고 있었어?”
“예?”
“아니. 그냥 뭐. 해본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강화련은 잠깐 시선을 피하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날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 내가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그, 그렇죠. 아하하, 하.”
미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 어색한 웃음은 미나가 곤란하거나 당혹스러울 때 자주 보였다.
“그런데 화련아.”
“응? 왜?”
“너 약속 시간 괜찮아?”
“웬 약속 시간?”
“아까 너네 클랜원들과 약속시간 어쩌구하지 않았어? 계속 여기 있어도 돼?”
“뭐야? 날 그렇게 보내고 싶어?”
미나가 너무 불편해하니까.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내가 가지 뭐.”
강화련은 사탕을 살짝 할짝였다.
“그나저나 이거 또 기사 나오겠네.”
“귀찮게 말이야.”
내가 혼잣말을 하자 강화련이 옳다구나, 하면서 반응했다.
“인터넷에서 E랭크 헌터 한서준 S랭크 강화련과 친구 사이?! 이라면서 기사 나오는 거 아니냐?”
강화련이 별 시답지 않는 말을 내뱉으며 킬킬 거렸다.
“내가 뭔 연예인도 아니고. 파파라치 새끼들이 별의 별 기사를 다 쓴단 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아주 확 그냥.”
“네가 그렇게 말하면 농담 같지 않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리들의 말을 엿듣고 있었던 몇몇 헌터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강화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씨익 입 꼬리를 들어 올렸다.
“아무튼 나는 이만 가 볼게. 그런데 너 진짜 공원 안 나올 거냐?”
“거기가면 촉귀 트라우마 돋아서 안 돼.”
“트라우마는 지랄.”
픽 하고 싱겁게 웃는 강화련은 이내 예린이와 미나를 한 번 훑어보았다.
“너희들도 안녕.”
“네, 언니. 다음에 봬요.”
“들어가세요, 강화련 언니.”
예린이는 대연하게 손을 흔들었고, 미나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숙였다.
“아 맞다. 참. 깜빡할 뻔했네.”
“응?”
그때 갑자기 강화련이 발걸음을 멈췄다.
“야, 나 너한테 몇 가지 할 말이 있거든? 나중에 시간 좀 내라.”
“잘됐네.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래? 뭐, 아무튼 다음에 시간 날 때 연락할 테니까 전화 받아라. 안 받으면 진짜 죽는다?”
“네가 말하면 농담으로 안 들린다니까 몇 번을 말 하냐.”
“농담 아닌데?”
살벌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암튼 나 진짜 간다. 나중에 봐.”
강화련은 초커를 한 번 매만지고는 자리를 떴다.
나는 강화련의 뒷모습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변에 있었던 헌터들이 슬쩍슬쩍 자리를 피하면서 눈치를 보았다.
어느새 강화련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헌터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요즘 강화련이 숙청하고 다닌다는 소문 때문인가? 더 주변 사람들 반응이 너무 과하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예린이가 내 옷 소매를 붙잡았다.
“선생님, 선생님.”
“어, 응? 왜 그래 예린아.”
“화련 언니랑 되게 친해 보이시네요.”
“일단은 동창이잖아. 몇 번 만나기도 했고.”
“흐음. 그러시구나.”
예린이는 붉은 눈동자를 죽이며 대답했다.
얘 또 눈이 왜 이러냐.
눈동자에 불 좀 켜.
“화련 언니 되게 예쁘네요. 그렇죠?”
“왜. 질투해?”
“안 해요, 선생님. 제가 선생님 친구 분을 왜 질투하겠어요?”
살짝 칭얼거리며 시선을 흘겼다.
“……그냥 뭐.”
예린이는 목소리를 낮추며 조용히 속삭였다.
“화련 언니가 선생님께 꽤 많이 호의적인 것 같아서요.”
강화련이 떠나간 뒷모습을 한 번 쳐다보는 예린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