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잃었더니 S급 여친이 너무 많음-85화 (84/216)

〈 85화 〉 류예린과 성씨세가(1)

* * *

­ [단독] 청부업자 김한나 사망?

­ ‘언랭커 김한나의 죽음!’ 그에 관한 진실은?

­ D랭크 헌터 류예린, 김한나를 잡았나?

­ 새로운 신예의 등장? 류예린, 그녀는 대체 누구인가.

­ [속보] ‘백염의 김한나’ 죽음에 대한 의혹 확산. “류예린이 잡은 게 맞나?”

어느 날.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다.

경천동지한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왜냐하면 김한나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기 말하자면 김한나는 살해당했다.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웬 D랭크 헌터에게.

김한나의 사망 소식은 대한민국을 넘어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일본의 NHK, 영국의 BBC, 러시아 NTV, 미국의 CNN등등. 공영방송사, 민영방송사 할 것 없이 김한나에 관한 소식을 되풀이 했다.

그녀의 유명세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김한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자였다.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실력 그리고 헌터를 사냥하는 청부업자로서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

흉흉한 풍설과 함께 수많은 인물과 조직을 괴멸시킨 김한나는 뒷세계에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굴림하고 있었다.

바바 야가(Baba Yaga), 백염마녀(白???)라는 별칭으로 일컬어지며 김한나의 표적이 되어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살인 청부업자로 활동하면서 언론에 그 모습이 노출되어 일본 정부에서 9,500만 달러의 현상금까지 걸었지만 김한나는 전혀 괘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김한나는 S랭크 헌터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김한나는 이미 두 명의 S랭크 헌터들을 살해한 전적이 있었다.

세계랭킹 81위 일본의 대표 헌터 육검(??) 구로다 코헤이.

세계랭킹 93위 러시아의 대마법사 백상아리(Белая акула) 올가 보야르스카야.

그 두 헌터는 오랫동안 인류의 안녕을 굳건하게 지켜낸 걸물(?物)들이었다.

세계헌터랭킹 100위권 안에 들어가는 탑 랭커였고 한명 한명이 전술 병기로 취급되는 괴물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과 같은 인물이었으며, 그 존재만으로 전쟁 억제력이 되었다.

또 숱한 괴수 침공 속에서 당당히 국가를 수호한 영웅이었다.

하지만 김한나의 손길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 두 사람이 죽은 자리에는 새하얗게 타오르고 있는 불꽃과 새까맣게 타버린 고깃덩어리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김한나는 비공식적으로 세계랭킹 70위권 안에 속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능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심기체(心??)를 갈고 닦은 무인이었다.

무(?)를 중요시 생각했으며 일도성검을 연마한 달인이었다. 그리고 착용하고 있는 장비 역시 매우 훌륭했다. 값비싼 국보, 성유물, 법구 등등으로 무장한 김한나는 명실상부 최강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김한나가 정상적으로 헌터로 성장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필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능력자들 중 한 명으로 위상을 널리 떨쳤을 것이다. 어쩌면 10강으로 명성 높은 이지현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현재의 김한나는 대한민국 최악의 범죄자가 되어 악명을 떨치고 있을 뿐이었다.

김한나가 대한민국 출신이었기 때문일까?

심심치 않게 대한민국 헌터들과 비교되는 경우가 많았다.

헌터 갤러리에서는 ‘김한나 vs 대한민국 S랭크 헌터’ 라는 떡밥이 불탄 적이 있었다.

가장 많이 비교대상이 되었던 것은 바로 4대클랜의 후계자들이었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4대클랜의 후계자들.

황혼세대 이상의 포텐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이 집중 되었다.

세피로트의 정세연.

일성그룹의 최서윤.

흑산그룹의 강화련.

성씨세가의 성수현.

이십대 초중반의 나이에 불과하지만 전원 S랭크 능력자가 된 인재들이었다.

물론 클랜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막대한 양의 영약과 영물을 섭취하고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훈련과 함께 마력연단법을 습득하였으나 약관의 나이에 S랭크 능력자가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장인이 오랜 시간을 걸쳐서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공예품이라고 할까?

훗날 4대 클랜을 대표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4대 클랜의 후계자들과 김한나를 비교하자면 아직까지는 김한나를 윗선으로 보는 것이 중론이었다.

당연한 소리였다. 김한나는 프로 암살자니까. 세계랭킹 100위권의 S랭크 능력자들을 살해한 김한나와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한 4대 클랜의 후계자들을 같은 선상으로 놓기에는 손색이 많았다.

그런데 웬 D랭크 헌터 나부랭이가 김한나를 죽였다고?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만큼 얼토당토 없었다.

일곱 살 배기 꼬맹이가 현역 UFC 선수를 쓰러뜨렸다고 말하는 게 더 신빙성 있을 정도.

듣도 보도 못한 D랭크 헌터 따위가 S랭크 헌터 이상으로 평가받는 김한나를 쓰러뜨릴 확률은 로또 당첨 확률보다 더 낮았으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김한나의 죽음에 관하여 설왕설래 할 수 이유는 바로 류예린이 김한나의 시체를 가지고 와서 당당히 말했기 때문이다.

내가 김한나를 죽였노라, 라고.

글쓴이: novel***

제목: ㅅㅂ김한나 뒤진 거 실화?

└ ㅇㅇ. 시체 나옴. 반갈죽 당했던데?

└ 그 씹년 드뎌 뒤지네.

└ 어케죽였노 시발련ㄴ앜ㅋㅋㅋㅋ

└ 현상금 9,500만 달러 달달허다. ㅅㅂ 인생폈네.

└ 헤으응. 예린이 눈나…… 나 주거…….

글쓴이: munp***

제목: 류예린이 누구냐?

└ 몰?루

└ 와 ㅅㅂ 개듣보잡인데?

└ 걔가 잡은 거 맞냐?

└ 류예린이 시체들고 왔다는데?

└ 아ㅋ 사실 류예린은 능력 숨긴 힘숨찐이었다고 ㅋㅋㅋ

└ 힘숨찐 ㅇㅈㄹ ㅋㅋㅋ

└ 진짜 류예린이 잡은 거면 ㄹㅇ 이지현 급 아니냐?

글쓴이: joa***

제목: 병신들아 D랭크 헌터 나부랭이가 ㅅㅂ 김한나를 어떻게 잡냐?

└ 류예린도 사실 이지현처럼 쌉재능충 아니었을까?

└ 진짜 능력 숨긴 거 아님? 은거고수 ㅇㅈ?

└ 김한나가 ㅈ으로 보이냐? ㅋㅋㅋㅋ

└ 늅이 어떻게 김한나 잡누? 우리 게이 생각이 없누?

└ 딴 놈이 죽인 거 류예린이 시체파밍한 거 아니냐? ㅋ

└ 합리적 갓심 ㅇㅈ

응당 사람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속을 살살 긁으며 코웃음을 치는 것이 대부분.

그도 그럴 것이 류예린이 김한나를 쓰러뜨렸다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증거고 나발이고 애당초 D랭크 헌터 따위가 김한나를 쓰러뜨릴 만한 무력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말이 안 되는 허무맹랑한 헛소리였다.

열 사람에게 물어보든 백 사람에게 물어보든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비웃을 것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죽인 김한나의 시체를 류예린이 가지고 왔다는 것이 더 현실성이 있을 지경이니까.

그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수많은 의혹이 난무했다.

혹자는 류예린이 지금껏 힘을 숨겼다 말하고, 다른 혹자는 류예린과 이지현의 연관성을 의혹을 제시했으며, 또 다른 혹자는 음모론에 힘을 실었다.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이지현이 새롭게 클랜을 만들고 있었고 그 클랜에 가입이 예정된 인물이 바로 류예린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반쯤 우스갯소리로 말하길 ‘이지현이 김한나 쓰러뜨리고 류예린에게 건넨 거 아니냐?’ 라는 풍문이 돌고 있었다.

창설하게 될 이지현 클랜의 노이즈 마케팅의 일부라며, 새롭게 발굴한 인재를 띄워주는 퍼포머스라며, 사람들은 농지거리를 던졌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김한나가 죽은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므로 그 연결과정에 관하여 수많은 억측과 추론이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었다.

근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갖가지 의구심이 판을 칠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람들은 진심으로 류예린이 김한나를 쓰러뜨렸다고 생각하지 않다는 것.

반쯤 장난삼아 류예린이 쓰러뜨린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지만 진심으로 믿는 것은 아니었다.

설령 류예린이 힘을 숨겼다고 한들 김한나를 쓰러뜨리는 것은 정말 요원한 일이었으므로.

낭중지추라고 하여 그만한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껏 드러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류예린은 아카데미 시절부터 평범하게 활동해왔고 얼마 전에 D랭크에 도달한, 조금 재능 있는 헌터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운이 좋아 새로운 능력에 각성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갈고 닦지 않은 능력은 원석에 불과했다.

이미 아름답게 가공이 끝난 김한나를 단순한 원석 따위가 꺾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김한나 한낱 시정잡배도 아니고.

김한나 정도의 수준의 능력자를 큰 피해 없이 쓰러뜨리려면 대표 클랜 단위의 조직력을 동원하든가 국가 단위의 무력이 필요했다.

S랭크 능력자들의 무력은 그야말로 하늘에 닿아있었으니까.

그 중 개념 구현화 능력이라는 상당히 희귀하고 강력한 각성 능력을 보유한 김한나가 이렇게 덧없이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요 근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온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김한나의 죽음은 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문이었다.

그렇게 일말의 시간이 흘렀다.

김한나와 류예린의 관한 떡밥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지금껏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던 류예린이 입술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나싶었더니 뜬금없이 기자 회견을 열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논란의 중심이었던 류예린이 항간에 떠돌고 있는 풍문을 해소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자못 궁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과연 류예린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류예린은 클랜에 소속되지 않고, 고정 파티조차 없는, D랭크 헌터이다.

능력 또한 별 볼일 없다. 절삭력 강화 능력. 이른바 커팅이다. 강력한 수준도 아니다. 기껏 해봐야 바위를 가를 정도?

그러한 류예린이 어찌하여 김한나의 시체를 들고 올 수 있었을까?

의혹과 의구심이 한껏 뒤섞이는 가운데 류예린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류예린이 기자 회견장으로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카메라가 동시다발적으로 불빛을 뿜어냈다. 번쩍! 수십, 수백 대의 카메라에서 불빛이 터져 나오자 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류예린은 태연한 얼굴과 함께 종종걸음으로 발길을 옮길 뿐이었다.

기자 회견장이 처음이라면 다소 긴장할법하지만 류예린의 얼굴에는 그 어떤 긴장감과 초조함을 찾을 수 없었다.

류예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의자에 착석했다.

제 안방인 것마냥 안온한 행동에 기자들은 찬찬히 류예린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무심코 감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인터넷으로 유출된 사진을 몇 장 보았지만 실물로 직접 마주하니 그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은가루를 흩뿌린 듯 은은하게 발광하는 머리카락과 핏방울을 연상케 하는 눈동자. 풋내가 가시지 않은 싱둥함이 한껏 느껴졌지만 알 수 없는 위화감을 풍기고 있었다. 겉모습은 예쁘장한 인형을 머릿속에 떠오르게 만들었지만 으슬으슬한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눈빛과 시릴 듯 가라앉은 얼굴은 흡사 북부의 한파와 비견될만했다.

무덤덤한 얼굴과 무료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면면을 쓰윽 훑어보는 류예린.

왠지 모르겠지만 류예린과 눈이 마주치자 알 수 없는 긴장감과 불안감에 두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

양 팔의 솜털이 빳빳하게 곤두섰으며 터럭은 부산스럽게 흔들거렸다.

등골이 오싹하고 마른침이 꼴깍 넘어가는 이 느낌은 낯설지 않았다.

종종 S랭크 헌터들에게서나 느껴지는 위압감이었다.

그 고유의 분위기 혹은 존재감이라고 할까.

단순히 눈만 마주했을 뿐이지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이 느낌.

속된 말로 카리스마라고도 부른다.

눈빛만으로 대중을 압도하는 저 모습은 한낱 D랭크 헌터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기자들은 카메라를 터뜨리며 류예린의 얼굴을 한 컷이라도 더 사진 속에 담아내려고 애를 썼다.

일말의 시간이 흐른 후 류예린은 마침내 그 무거운 입술을 열었다.

“……류예린입니다.”

짧지만 간결하게 이름을 밝힌 류예린은 마이크를 한 번 툭 치더니 이윽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무덤덤하게 읊조리고 있었지만 단조가 끝난 명검처럼 첨예하고 날카로운 느낌이 살갗을 에었다. 자못 평탄한 목소리 속에는 겨울밤의 한파처럼 차가운 냉기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거두절미하고 간결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류예린은 갭직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제가 김한나를 쓰러뜨린 것이 맞습니다.”

“증명할 방법이 있습니까?”

한 기자가 갑작스레 운을 띄웠다.

미리 짜놓았던, 예정된 질문이었다.

류예린은 테이블 위로 검지로 툭툭 쳤다.

“아니요. 없습니다.”

당연히 증명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S랭크 능력자로 취급 받는 김한나를 쓰러뜨릴 만큼의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습니다.”

류예린은 천천히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금 별개의 이야기지만, 이것으로 증명하고 싶습니다.”

손을 조금 더 위로 뻗자 허공에서 툭 하고 검 한 자루가 떨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뜬금없이 검 한 자루가 떨어졌으니 놀라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또한 미리 이야기 되지 않은 행동이었기 때문에 몇몇 기자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였지만 그때 한 기자가 의아한 눈빛으로 질문을 건넸다.

“그…… 검은?”

“저희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보입니다.”

붉은 검신의 검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류예린은 평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검은 성씨세가의 후계자에게만 주어지는 증표와 같은 것이지요.”

핏물처럼 진득진득한 색감으로 덧씌워진 저 붉은 장검은 성씨세가의 가보 중 하나로서 직계 후계자만이 사용을 허락받은 귀물이었다.

저것이 진품이든 가품이든 알 수 없었지만 불길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이 예사 물건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듯 알 수 없는 마성을 흩뿌리는 붉은 검이 요요히 반짝였다.

기자들을 붉은 장검을 멍청히 쳐다보고 있다가 별안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성씨세가?”

“예.”

류예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저는 성씨세가의 적법한 후계자거든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어안이 벙벙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뜬금없이 성씨세가가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뭐, 후계자?

몇 달 전 성씨세가 내부에서 후계자 계승식을 치렀다는 이야기는 어깨너머로 들었지만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 그 결과를 외부로 발표하지 않았는데…….

“물론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류예린은 흐릿한 표정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왜냐하면 저는 성씨세가의 사생아거든요.”

“네?”

“집안의 치부라고 할까요? 그래서 성씨세가에서 쫓겨났죠.”

사생아? 버림을 받아?

“버림받은 사생아 주제에 어떻게 후계자가 되었는지에 관해서 말하자면 성씨세가의 특이성을 생각하면 또 불가능한 문제가 아닙니다.”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아시다시피 성씨세가의 전통은 매우 특이하니까요. 일단 저 역시 직계 혈족이기 때문에 후계자 계승식에 참가할 수는 있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류예린 씨! 그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류예린은 기자의 말을 싹뚝 잘라냈다.

“질문은 받지 않도록 할게요.”

그렇다면 기자 회견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믿든 안 믿든 상관은 없지만…….”

류예린은 흘끗 카메라 너머를 바라보았다.

“……가족들에게는 좋은 메시지가 될 것 같네요.”

그 말과 함께 류예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볼일이 전부 끝났다는 양 거침이 없었다.

제 멋대로 행동하는 류예린의 행동을 만류해보려고 하였지만 류예린은 이미 바람처럼 사라진 후였다.

“이게 대체 무슨…….”

너무나도 어이없게 종료가 된 기자 회견이었지만, 그 여파는 남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성씨세가의 스캔들이 아닌가?

성씨세가는 4대클랜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폐쇄적인 무투집단이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무투 집단인 만큼 무(?)를 중시하는 기조가 강하다.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해온 만큼 유구의 전통과 역사를 품고 있는 성씨세가의 치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발에 치이도록 많았다.

지금껏 꽁꽁 감쳐져있었던 뒷사정 중 하나가 이렇게 뜬금없이 빵 터지고 말았는데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물론 류예린의 발언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없다.

단순한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하지만 사실이든 거짓이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그 때문일까?

류예린의 새로운 발언으로 인하여 몇 가지 사실이 재해석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류예린이 왜 김한나의 시체를 가지고 올 수 있었는가?’와 관련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류예린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사생아 출신이었던 류예린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 성씨세가에서 김한나에게 암살 의뢰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김한나에게 암살을 의뢰할 정도라면 류예린 역시 상당한 실력자라고 보는 것이 맞을 테니까.

S랭크 헌터조차 사냥할 실력을 가지고 있는 김한나를 한낱 D랭크 헌터를 죽이는데 사용하지는 않았겠지.

……뭐, 단순한 음모론에 지나지 않았지만, 충분히 관심이 갈만한 추론이었다.

진실성 있는 추론보다는 재밌는 음모론에 더욱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었으므로.

­ [속보] 류예린, 사실 성씨세가의 숨겨진 사생아?

­ “저 성씨세가 후계자예요.” 류예린의 깜짝 발언. 성씨세가의 반응은?

­ 류예린의 말을 신뢰할 수 있나?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류예린의 깜짝 발언 이후.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수많은 기사가 올라왔다.

헌터 갤러리 또한 ‘류예린 펀치! 류예린 펀치! 라며 난리가 났다.

실시간 검색어에 끝임 없이 성씨세가와 류예린의 이름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미 김한나에게서 성씨세가로 넘어간 후였다.

출생의 비밀, 사생아, 성씨세가 스캔들.

한국 드라마처럼 자극적인 소재가 한가득 아니겠는가?

제3자 입장에서는 다소 흥미진진했다. 요컨대 강 너머 불구경이라고 할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류예린이 그러한 발언을 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저 멀리서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썩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물론 성씨세가에서는 류예린의 발언을 적극 부인했다.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아니었지만 성씨세가의 장남이자 사실상 후계자 취급을 받고 있었던 성수현은 소셜 네트워크에다가 “터무니없는 헛소리” 라며 강도 높은 비난을 하였고, 일각에서는 “악의적은 발언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 며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이 발언이 모두 성씨세가의 공식적인 성명으로 보기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성백현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씨세가의 가주, 검백령의 클랜장, 반도제일의 검 등등으로 일컬어지는 성백현이야 말로 성씨세가에서 유일무일 하게 공식적인 입장표명이 가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말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여론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지금까지 성씨세가의 식솔들이 조잘조잘 떠들어봐야 성백현의 한마디 말보다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 귀를 쫑긋 세우며 성백현의 입장표명을 기다렸다.

요 몇 달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성백현이었지만 이 정도 스캔들이라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며칠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

성백현이 입장을 밝히는 일은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성백현의 모습에 의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불현듯 성백현이 모습을 감춘 시기와 후계자 계승식이 비슷한 때 일어났다는 것을 주목했다.

어쩌면 후계자 승계식 때 무슨 일이 있었게 아닐까?

또 그일 때문에 지금껏 성백현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었고, 더 나아가 류예린과 관련돼 있는 게 아닐까?

지금 류예린과 성씨세가를 둘러싸고 있는 스캔들에 관한 진실을 정확히 알 도리가 없었지만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류예린은 과연 이 대한민국에서 발을 뻗고 잘 수 있을지 궁금증이 앞섰다.

왜냐하면 류예린의 발언은 성씨세가를 향한 선전포고임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류예린의 발언이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치 않다.

공식석상에서 성씨세가의 치부를 언급한 것 자체만으로 류예린은 성씨세가를 적으로 돌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에서 성씨세가를 적으로 돌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모르지는 않을 터.

유구의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기둥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던 성씨가문은 최강의 문파이자 최대의 무투 집단이었다.

성씨세가와 관련된 인물들은 대한민국 곳곳에 뿌리를 뻗어있었으며 사회전반에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정계, 재계, 연예계 등등 각층의 인사들과 유착관계를 형성한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감히 성씨세가를 건들 수 있는 집단과 인물은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집단을 고르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일성그룹과 성씨세가가 꼽힐 정도였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성씨세가의 눈 바깥에 난다는 것은 사망선고와 일맥상통했다.

설령 류예린이 정말로 성씨세가의 사생아 출신이고 후계자 계승식에서 승리했다고 한들 내부 파벌도 없고 외부 지지 세력도 없는 일개 헌터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았다.

성씨세가의 전통 덕분에 후계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허울뿐인 후계자였다.

본인의 세력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후계자라고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얼마 가지 않아 성씨세가의 형제, 자매들에 의하여 축출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류예린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공식석상에서 대놓고 성씨세가를 향해 칼을 빼든 것일까?

숨죽이고 조용히 살아도 모자랄 판에.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둥실둥실 띄우고 있던 찰나였다.

그런데 그때.

“저 새롭게 클랜을 창설했습니다.”

뜬금없이 이지현이 클랜 창설을 성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그리고 예린이 제 클랜원이니까 건들지 마세요.”

그것도 정말 뜻밖의 소리와 함께.

이지현과 류예린의 연관성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물론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지만 대외적으로 직접 언급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도 그럴게 류예린은 현재 성씨세가에게 밉보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지현이라고 할지라도 성씨세가에게서 류예린을 보호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제 아무리 S랭크 능력자라고 해봐야 결국 개인에 불과하니까.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성씨세가에게 선전포고를 한 류예린을 버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본인도 모르지는 않을 터.

대체 이지현이 무슨 생각으로 류예린을 저렇게 보호하려는 건지 사람들은 의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지현이 명분 삼아 성씨세가의 파벌 싸움에 개입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었다.

현재 류예린은 낙동강 오리 신세와 다름이 없었지만 성씨세가의 핏줄을 잇고 있는 이상 차세대 가주가 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세력만 있다면 다른 형제들과의 파벌 싸움을 해볼 만했다.

애당초 류예린은 정정당당히 후계자 자리를 계승한 인물이 아닌가?

명분과 정통성은 류예린에게 있었다.

성씨세가 전체와 싸우는 거라면 정말 가망이 없었겠지만 지금 상황을 정확히 말하자면 훗날 성씨세가의 가주를 위한 후계자 쟁탈전에 지나지 않았다.

후계자가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른 형제자매들이 짖어댈 수 있었던 것은 류예린이 사생아 출신인 것과 파벌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씨세가의 가주가 이 상황을 묵인하고 있었고.

류예린에게 있어서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이지현의 도움과 함께 이지현과 밀접한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일성그룹의 S랭크 헌터 최서윤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떨까?

최서윤 역시 이지현의 클랜과 나름의 제휴를 맺었기 때문에 클랜원이 공격을 받는다면 어느 정도 간섭할 명분이 있었다.

이지현과 최서윤이 성씨세가의 후계자 다툼에 관하여 류예린을 밀어준다면…… 꽤 재밌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류예린을 지지해주는 세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그녀를 도와 가주의 자리에 앉게 해준다면 되돌아오는 보상이 많을 터.

그것을 노리고 이지현이 류예린을 두둔하는 게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진실이 어찌되었든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새로운 돌풍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성씨세가의 파벌 싸움에 대놓고 출사표를 던진 류예린과 그녀들은 과연 어떠한 행보를 보여줄 것인지 참으로 궁금할 따름이었다.

***

“미쳤네.”

나는 집안 소파에 앉아 멍청히 헌터 갤러리를 기웃거렸다.

요즘 류예린, 이지현, 최서윤, 성씨세가에 관한 소식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들썩 들썩 거리고 있었다.

그녀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 역시 궁금하였지만 그네들에게 연락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요즘 상당히 바쁜 모양인지 제대로 연락이 닿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현이의 클랜 하우스에 몇 번 찾아갔지만 바쁘다는 말을 핑계로 만나주지를 않았다.

지현이가 계속 나를 피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것과 조금 결이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정말 바빠보인다고 할까?

뭐, 요즘 대한민국 돌아가는 꼴을 보면 당연히 바쁠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그나저나 이거 일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닌가?”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지현이와 예린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고 있을 무렵.

­ 띠링. 띠링.

갑작스레 예린이에게 연락이 왔다.

“얘는 지금까지 전화 한통 없더니.”

나는 툴툴 거리며 핸드폰 대기화면을 내려다보며 전송된 메시지를 읽었다.

­ 선생님 혹시 시간 되시면 내일 한 번 만나주실 수 있나요?

……일주일간 감감무소식이었던 예린이가 뜬금없이 만남을 요청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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