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노 페인 노 러브(No pain, No love: 4)
* * *
성씨세가는 무가(?家)이다.
무를 숭상하고 무를 숭배한다.
숱한 분쟁에서 살아남은 만큼 가장 득세한 문파라고 할 수 있다.
성씨세가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무술은 일도성검(一?成?).
‘하나의 길로 이뤄낸 검’ 이라는 뜻으로 검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검술이다.
심기체(心??)을 극한으로 단련하여 스스로를 검으로 벼려낸다는 일도성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검술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 초대 성씨세가의 가주가 고(古)일도성검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나 전수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검술이 많다.
하지만 현 당주를 맡고 있는 성백현이 유실된 검술을 복원하는데 성공한다.
또한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정립까지 하였으니 성백현은 역대 가주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성백현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성씨세가에서는 피붙이끼리 끝임 없이 경쟁을 시키니까.
열성인자는 자연스럽게 도태가 되고 우성인자는 살아남는다.
우성인자들 중 끝끝내 승리한 자가 성씨세가의 가주가 된다.
성씨세가의 가주는 피붙이들 중 가장 강력한 자를 뜻한다.
성백현은 승자독식의 정글에서 살아남은 승리자이자 현 성씨세가의 정상이다.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베어내고 권좌에 앉은 성백현은 역대 가주들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자식들에게 가혹한 생존경쟁을 종용했다.
직계, 방계, 몇몇의 문하생들…….
성씨세가의 피를 잇고 있든가 아니면 검백령으로 귀화해 검을 하사받은 몇몇 인재들은 어렸을 때부터 본가에 마련된 특수 훈련장에서 고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류예린 또한 마찬가지.
성씨세가의 가족이 된 이상 류예린 역시 생존경쟁에 발을 내딛어야했다.
하지만 류예린에게 있어서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성씨세가의 본가 훈련방식은 예부터 위험하고 고통스럽기로 정평 났다.
성인 남성들조차 견뎌내지 못한 채 백기를 살랑살랑 흔드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부터 차근차근 훈련을 받아온 성씨세가의 혈통들조차 혀를 내둘 정도였다.
초등학생에 불과한 류예린이 감내할 수 있을 만큼 녹록치 않다는 것.
그러나 성씨세가는 상냥한 곳이 아니다.
좋든 싫든 성씨세가의 직계혈족이라면 응당 훈련을 받아야했다.
훈련을 거부하거나 낙제되는 순간 집안에서 쫓겨날 수 있으므로 류예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본가에서 쫓겨나면 엄마가 상심할 테니까.
만약 낙제가 된다면 엄마까지 버림받을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던 류예린은 어떻게 해서든지 견뎌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어떻게 해서든지 버텨내야해.
성백현 곁에 머무는 것이 엄마의 소원이니까.
엄마의 행복을 위해 류예린은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악, 하악, 학, 학……!”
첫 날.
기초훈련이라는 명목아래에 하루 종일 연병장을 뛰었다.
드넓은 연병장을 끝임 없이 뛰고 또 뛰었다.
관절이 손상되지 않도록 영약을 섭취한 채 발목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착용하고 하염없이 뜀박질을 반복했다.
비슷한 또래의 형제들과 함께 달렸다.
직계, 방계, 몇몇 문하생들을 포함하면 족히 수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다.
그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아이들과 함께 달리는데도 불구하고 류예린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류예린은 학교 체육시간에 무엇을 하든 항상 순위권에 머물렀지만 다섯 살 때부터 훈련을 받아온 성씨세가의 식솔들과 경쟁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아니 경쟁은커녕 뜀박질하는 것조차 버겁다.
형제들은 연병장 수십 바퀴 따위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달렸지만 류예린은 아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본가의 훈련장에서 직접 훈련을 받는 아이들은 소싯적부터 재능과 소질을 인정받은 인재들이다.
이제껏 운동 한 번 해 본적 없는 류예린이 아이들을 따라잡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달리면 달릴수록 거리는 점점 벌어졌고 류예린은 가쁜 가슴을 들썩이며 더러운 흙바닥을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더, 더 이상 못 달리겠어.
류예린은 쓰러진 채 숨을 헐떡였다.
도대체 얼마나 뛰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오랫동안 달린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심장이 우레 소리처럼 요동쳤고 다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근육은 힘껏 아우성을 쳤으며 당장 숨이 넘어갈 듯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류예린은 낙오된 채 헉헉 숨을 몰아쉬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여기서 쓰러지면 죽도 밥도 되지 않으니까.
첫 날부터 이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버틸 건데?
낙오되면, 불합격을 받으면, 퇴출될 수도 있다.
성씨세가는 약자에게 관대하지 않잖아.
만약 퇴출이 된다면 엄마를 볼 면목이 없어.
그러니까 일어나야 돼.
조금 뛰었다고 퍼질러져 있을 생각이야?
류예린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술사이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온 몸의 힘을 쫘내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몸은 더 이상 달리는 것을 거부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일어나야 하는데.
어째서…….
‘빨리 일어나지 않으…… 커억?!’
부지불식의 순간이었다.
류예린의 작달막한 몸뚱어리가 허공으로 떴다.
짧은 단말마와 함께 땅바닥을 몇 바퀴 나뒹굴렀다.
낙법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채 떨어졌기 때문에 어깨가 탈구됐다.
어깨뼈가 이탈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근육과 인대가 비명을 내질렀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만지자 격통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욱씬욱씬한 격통에 표정이 한껏 이지러졌다.
하지만 어깨보다 복부가 더 아프다.
정확히 말하자면 늑골.
늑골이 너무, 끄윽.
“일어나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몸을 움츠리며 헐떡이고 있던 사이 교관이 다가와 무덤덤한 눈빛으로 일갈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일어나라.”
“하아, 하아, 하아…….”
류예린은 대답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지금껏 평범하게 살았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조금 괴롭힘을 당했지만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울면서 난리를 치지 않는 것만으로 용한 일이다.
보통 초등학생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버틸 수도 없다.
수십 바퀴는커녕 한두 바퀴 뛰고 헉헉 거리며 뻗었을 터.
그러나 류예린은 수십 바퀴를 달리는 동안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낙오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한계.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교관에게 얻어맞기까지 했다.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격통과 두려움에 류예린의 정신은 반쯤 피폐해져있었다.
그러나 교관은 그러든 말든 관심 없다는 듯 계속해서 훈련을 받을 것을 요구했다. 류예린의 정신과 부상 따위 알 바가 아닌 태도였다.
“으, 으끄, 으끅.”
류예린은 눈물을 머금은 채 파들파들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발버둥 쳤다.
몸 상태는 엉망이었고 이미 한계에 다다랐지만 류예린은 성씨세가의 직계혈통이다.
비범한 혈통을 잇는 자로서 평범한 신체와 그 궤를 달리 했다.
계속 일어서려고 노력하자 달달 떨리는 다리는 그녀의 재촉에 하는 수 없다는 듯 느릿느릿하지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다리의 근육은 눈물콧물을 다 흘리며 아우성을 내질렀지만 류예린은 멈추지 않았다.
일어서는 과정에서 두어 번은 털썩 주저앉았고 주저앉을 때마다 격통이 미친 듯이 뇌리를 쾅쾅 두드렸지만 류예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울음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끅끅 울음을 삼켜낸 류예린은 한쪽 팔을 부여잡은 채 교관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은 학교가 아니야.
코피만 흘려도 양호실로 갈 만큼 친절하지 않아.
바깥과 철저하게 분리가 된 별세계라고 생각해.
질질 짠다고 바뀌는 건 없어.
류예린은 성씨세가에 발을 들인지 며칠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본질을 어느 정도 꿰뚫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관의 말을 따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교관은 조용히 류예린의 몸 상태를 훑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계속 달려라.”
“흐끅, 우, 흑.”
류예린은 이를 악 물고 고개를 끄덕인 채 다시금 발을 내딛었다.
달릴 때마다 왼쪽 어깨는 달그닥 거렸고 늑골은 아릿하였지만 류예린이 견뎌내야만 하는 시련이자 고통이었다.
그날.
훈련이 끝난 류예린은 치료술사에게 찾아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성씨세가의 직속 치료술사인 만큼 실력은 매우 뛰어났다.
죽지만 않으면 살려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깨와 늑골에서 느껴졌던 고통은 흉터처럼 마음속에 새겨져 환상통마냥 류예린을 괴롭힐 뿐.
류예린은 쩔뚝쩔뚝 거리며 숙소로 발을 내딛었다.
훈련생들이 머무는 별채이자 휴식공간이었다.
류예린의 방은 매우 초라했다.
다 낡은 벽지와 곰팡이가 핀 방.
원룸보다 조금 더 작달막하다.
이곳저곳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다.
오랫동안 방치된 듯 처량한 방이다.
방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다.
다 쓰러져가는 책상과 의자만이 있을 뿐.
오래된 모포를 제외해면 침구류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쾌쾌한 냄새가 나는 모포만이 류예린을 반기고 있었다.
“…….”
류예린은 조용히 모포를 덮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성씨세가는 훈련생들에게 랭킹 제도를 부여했다.
성적이 좋으면 좋을수록 대우를 받았다.
그 반대로 성적이 나쁘면 대우받지 못한다.
류예린의 방처럼 낡고 초라한 방이 있는가하면 고급 호텔처럼 으리으리한 방도 있다.
단순히 숙소뿐만 아니라 먹는 것, 입는 것, 노는 것, 휴식 시간, 물품 등등.
모든 것에 차별을 둔다.
그 때문에 훈련생들은 랭킹에 따라 서로 다른 대우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경쟁하고 투쟁한다.
랭크가 높은 자는 지키기 위해 랭크가 낮은 자는 빼앗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
류예린은 또르르 눈물을 흘렸다.
모포를 덮고 흐느꼈다.
하루 밖에 되지 않았지만,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류예린에게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에서 뒤쳐진 류예린은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만했다.
마치 자대배치 전 훈련병처럼 교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 스케줄이었다.
하루 훈련일과가 다 끝나면 저녁이다.
랭킹이 낮은 류예린에게 개인정비 시간 따위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류성연과 만남을 가질 수 없다.
또한 류성연은 첩이라고 한들 성백현의 부인이다.
아무리 직계라고 해도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했다.
미리 예약을 받고 약속을 잡는 것은 지금으로서 불가능할 터.
엄마를 다시 만나기 위해 어떻게든 랭킹을 올려야했다.
류예린은 그렇게 하나 밖에 없는 엄마를 생각하며 잠에 빠졌다.
내일은 부디 오늘 보다 더 나은 날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
“안녕? 네 이름은…… 류예린, 맞지? 아참. 지금은 성예린인가?”
“…….”
어느덧 몇 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류예린은 말 그대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말 힘겹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의 반복이었다.
일과가 끝나면 초라한 모포를 끌어안고 엄마를 생각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잘 때면 엄마를 생각하며 힘낼 수 있으니까.
다른 형제자매들과는 교류하지 않았다.
전부 경쟁 상대였고 형제자매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류예린은 사생아 출신으로 바깥에서 뜬금없이 굴러 들어왔다.
직계혈족인 주제에 출처도 알 수 없는 일반 여자의 피를 잇고 있다는 사실에 형제들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그런데.
“반가워. 나는 성다현이야. 너랑 같은 나이니까 말 놔도 돼.”
“…….”
이 여자아이는 대체 뭘까.
류예린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여자아이의 모습을 찬찬 훑어보았다.
매혹적인 자줏빛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묶었다.
어린아이의 상큼 발랄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 나이대의 풋풋함이 묻어있었다.
그러나 여자아이의 눈빛은 짐승처럼 날카롭다.
작은 맹수를 연상케 하듯 눈동자가 세로로 찢어져 있다.
“혹시 옆에 앉아도 돼?”
“…….”
“그냥 대화 한 번 나눠보고 싶었거든.”
“…….”
지금 이곳은 식당.
훈련생들이 이용 가능한 전용 식당이다.
하지만 류예린이 앉아 있는 자리는 말석 중에 말석.
다른 자리에 비해 매우 초라하고 낡았다.
의자는 딱딱하고 식탁은 추레하다.
조금 떨어진 자리만 해도 고급 레스토랑처럼 푹신푹신한 의자와 아름다운 식탁 그리고 곁에 시중을 들어주는 사용인들이 있다.
류예린은 여자아이를 슬쩍 쳐다보았다.
저 여자아이는 랭킹이 꽤 높다.
정확한 랭킹은 알 수 없지만 지금 들고 있는 식판에 담겨진 음식만 봐도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스테이크와 샐러드 그리고 스프. 또 후식으로 먹을 빵과 푸딩까지.
반면 류예린은 어떠한가?
류예린의 식판에는 딱딱한 빵 쪼가리와 물 그리고 영양제 및 알약뿐이었다.
돌처럼 단단한 빵을 물에 불러 짓씹으며 알약을 먹는 것이 류예린의 식사였다.
“그러면 허락한 줄 알고, 일단 앉을게.”
성다현은 싱긋 웃으며 옆자리에 앉았다.
맛있는 음식이 한껏 담긴 식판을 내려놓고 류예린의 식판을 흘끗 쳐다본다.
그리고 말한다.
“뭐야. 예린이. 너 그런 걸로 되겠어? 내거 좀 먹을래?”
성다현은 스테이크 덩어리를 반으로 자른 뒤 류예린의 식판 위에 올려놓려고 하였지만, 류예린은 차가운 눈빛으로 거부했다.
“괜찮아.”
“아니,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빵 쪼가리만 먹어. 가끔은 고기도 씹어야지.”
“괜찮다니까. 본론이나 말해.”
류예린은 냉랭하게 대꾸하자 성다현은 난처한 표정을 볼을 살살 긁었다.
“그냥 대화 좀 해보고 싶었다니까 그러네.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마.”
“…….”
“그리고 넌…… 직계잖아. 직계.”
“……?”
직계라는 말에 성다현의 표정이 살짝 흐릿하게 변했다.
“그나저나 너 요즘 훈련생들 사이에서 꽤 이슈가 된 거 알아?”
“이슈?”
“응. 갑자기 직계출신인 애가 등장했으니까 이리저리 말이 많았는데 그래도 바깥에서 제대로 배운 게 하나도 없다길래 다들 안심했거든.”
성다현은 살짝 놀라운 듯 말했다.
“그래서 며칠 안 돼서 낙오될 줄 알았는데…… 어떻게든 쫓아오고 있잖아.”
“…….”
“여기 훈련은 정말 힘들거든. 우리들은 뭐 어렸을 교육을 받고 차근차근 발판을 마련해놨으니까 견뎌낼 수 있지만 넌 아니잖아?”
“…….”
류예린은 조용히 빵을 짓씹었다.
“바깥에서 운동 한 번 제대로 해 본적 없는 애가 이렇게까지 견딜 수 있다니. 다들 놀라고 있다고? 역시 직계의 핏줄은 다르다면서.”
“……너는?”
“응?”
“……그러는 너는 직계가 아니야?”
갑작스러운 류예린의 질문에 성다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어색하게 뒷목을 긁적이며 헤헤 웃는다.
“응. 안타깝지만 난 방계 출신이거든.”
성다현의 눈동자가 조금 가라앉는다.
“너나 그 분들처럼 직계가 아니…… 아, 호랑이도 제말 하면 온다더니 저기 좀 봐봐.”
보랏빛 소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어느 한 곳을 턱짓했다.
류예린은 성다연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십대 후반쯤 되어 있는 남자가 걸어가는 게 보였다.
주위 훈련생들은 침묵한 채 남자를 흘끗흘끗 훔쳐봤다.
남자의 등 뒤에 서너 명의 사용인들이 시종을 들고 있었다.
남자는 너무 자연스럽게 시종들을 데리고 식당 한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이 식당의 상석.
단 한 명만이 앉을 수 있는 전용 자리였다.
“저 사람은 누군데?”
“아, 처음 보는 거야? 하긴 식당에 자주 안 오니까.”
정돈된 호흡과 깔끔한 걸음걸이.
알 수 없는 기세가 흘러나오는 것이 상당 수준의 강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몸이 오싹오싹했다.
“가주님의 장남이자 직계혈족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성수현 님이셔.”
“……성수현?”
“유력한 후계자 후보 중 한 명이시지.”
저 남자가 성백현을 뒤를 잇는 후계자 후보 중 한 명이라…….
처음 성백현을 봤을 때가 떠올랐다.
그 사람 같지도 않았던 느낌이 저 남자에게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백이라고 할까 기세라고 할까.
류예린은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네 의붓오빠 쯤 될까?”
성다현은 너스레를 떨었다.
“뭐, 어쨌든. 앞으로 열심히 해 보자. 곧 있으면 내년이니까 본격적으로 랭킹전이 시작될 거야.”
“…….”
“배치고사처럼 새롭게 랭킹을 갱신해야하니까 날 만날 수 있다고?”
류예린은 말없이 성다현을 쳐다보았다.
자줏빛 소녀는 조용히 류예린의 시선을 받아들이며 희희 웃었다.
“나 이래봬도 또래들 중에는 나름 강하거든. 다른 직계분들만큼은 안 돼지만 랭킹전에서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좋을 걸?”
자신만만한 눈초리로 말하고 있다.
류예린은 무덤덤하게 성다현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성다현은 ‘재미없는 반응이네’ 라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두 달 후.
랭킹전이 시작한 첫 번째 상대는 운이 나쁜건지 좋은 건지, 보랏빛 소녀 성다현이였다.
“뭐야. 이렇게 만나게 되네?”
대련장 위로 올라온 성다현은 희희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