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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었더니 S급 여친이 너무 많음-176화 (175/216)

〈 176화 〉 기억을 되찾자(2)

* * *

‘샤를테르랑 사귀기라도 했어?’ 라는 지현이의 질문에 그녀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집중되었다. 지현이, 서윤이, 예린이, 화련이 할 것 없이 전부 나를 바라보자 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에델린과 사귀긴 무슨.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별다른 관계 아니었다니까.”

“그래?”

회귀 전 에델린과의 관계가 의아하여 몇 번이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뇌까리고 의심해보았지만 진짜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다.

물론 회귀 전의 기억이 전부 확실치 않았기에 100%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띄엄띄엄 떠오르는 기억과 지금껏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곱씹어보았을 때 높은 확률로 에델린과 연인관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것치고는 항상 에델린, 에델린 거리면서 이름을 부르더라? 누가 보면 여친이라도 되는 줄 알겠어?”

“……그냥. 회귀 전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니까.”

별안간 지현이는 언짢은 표정으로 쯧 하고 혀를 찼다.

“너 기억을 잃기 전에 샤를테르과 싸웠고 그 결과 샤를테르는 몇 달 동안 의식불명이 됐다고 했잖아.”

“어.”

“그런데도 샤를테르는 널 가만히 내버려둔 걸 봐서는 진짜 너랑 뭐 있는 거 같은데. 아니야?”

“지현아 또 왜이래? 그냥 함께 탑을 공략했을 뿐이라니까. 그리고 네 말처럼 한바탕 싸웠던 사이잖아? 나 에델린 별로 안 좋아해.”

의심이 섞인 눈발이 속속들이 덮쳐왔지만 나는 애써 침착한 얼굴로 지현이의 말을 부정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지현이 쟤 의부증이라도 생길 것 같은데?

뭐, 지현이가 의부증이 생긴다면 그것은 전부 내 탓이겠지만.

지금껏 내 행적을 되살펴보면 지현이가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생각할수록 이상하잖아?”

지현이는 단단히 팔짱을 낀 채 얼굴을 찡그렸다.

내 말을 순순히 믿을 생각은 전혀 없는 눈치였다.

“애당초 샤를테르는 왜 회귀를 한 건데?”

에델린의 회귀 이유?

나도 모른다, 몰라.

“네가 회귀해서 샤를테르도 회귀한 거 아니야?”

“……글쎄다.”

아예 설득력 없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진짜 그러면 좀 소름 돋네. 완전 스토커 아니야?”

지현이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진다.

“아, 답답해 진짜. 빨리 그 여자 만나서 따지든가 해야지 원.”

지금 아무리 추측해 봐야 제대로 된 결론을 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지현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됐어,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으니까.”

“응.”

“아무튼 샤를테르가 널 집착하는 이상 마찰은 피할 수 없겠지. 일단 탑을 누가 먼저 공략하기로 내기를 했다지만 까딱 잘못하면 성천교단 쪽과 무력분쟁이 일어날 거야.”

“그러겠지.”

“우리 쪽도 나름 전력이 만만치 않다지만 솔직히 성천교단과 비교하면 좀…….”

지현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성천교단에 소속된 신자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괜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보유한 초거대 종교집단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샤를테르는 타인의 능력을 완전히 빼앗아서 전해줄 수가 있다며?”

“응. 아마 그 능력을 이용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능력을 강탈하고 자신의 수하들에게 나눠줬을 거야.”

“도대체 샤를테르의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안가. 우리 쪽은 기껏 해봐야…….”

지현이는 우리들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솔직히 이 정도 전력이라면 한 나라의 대표 클랜을 뺨 칠 수도 있었지만 성천교단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새발에 피라고 할 수 있었다.

“저희 성씨세가에서 인원을 충당하면 그럭저럭 쓸만한 전력이 모일 텐데요.”

“우리 흑산회도 뭐.”

“저도…….”

그녀들 전원 대표 클랜의 후계자 및 핏줄이었기 때문에 각자 끌어 모을 수 있는 전력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천교단과 비교할 수준은 되지 못했다.

나는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성천교단 쪽 S랭크 능력자들은 대충 수십 명은 되지 않을까?”

“수십 명이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S랭크 능력자들보다는 많을 것 같은데.”

“확실히 그럴 것 같네요. 성천교단의 규모와 성천녀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S랭크 능력자들을 마구잡이로 양산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예린이가 숫제 떨떠름한 얼굴로 침음을 삼켰다.

“양산형 능력자, 라…… 뭐 틀린 말은 아니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의 능력을 영구적으로 빼앗아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네줄 수 있는 에델린의 능력은 확실히 병력을 양성하는데 매우 적합하다.

“하지만 에델린이 건네준 S랭크를 받아봐야 온전히 사용할 수는 없을 거야.”

“그러네요. 서윤 언니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요.”

나와 예린이는 서윤이를 쳐다보았다.

알다시피 서윤이는 강력한 정신감응능력을 타고 나 고통을 받고 있다.

처음부터 강력한 능력을 가지게 될 경우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서준이 쟤도 우리들 능력 다 흡수했으면서 지금껏 제대로 사용을 못했잖아?”

지현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에델린이 건네준 능력을 어찌어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들, 그 능력을 잘 활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S랭크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몇 년에서 십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양산형 S랭크 능력자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기껏 해봐야 S­~A­ 수준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좀 낙관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우리들과 비교할만한 수준은 아니겠지.”

지현이와 화련이가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

“그래. 아마 하이랭커 수준 정도 밖에 되지 않을까 싶어.”

“하이랭커 수준 정도, 라…… 보통은 그 정도만 되도 상당한 전력인데 말이지.”

화련이는 픽 하고 웃음을 흘렸다.

“하이랭커가 여러 명이서 덤비면 좀 위험하겠지만 이지현 너라면 별 문제 없겠지?”

“아마도?”

지현이는 가슴을 쭉 핀 다음에 당당한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탑 20위권 이내 정도가 아니라면 별로 무섭진 않으니까.”

“아, 그러셔?”

화련이는 눈살을 한 번 찌푸린 채 사탕을 꺼내 깨물었다.

살짝 불만스러운 듯 사탕을 으적으적 짓씹는다.

지현이의 잘난 척이 꼴 보기 싫어 보인다.

그러나 허세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터.

그도 그럴 것이 지현이의 말마따나 양산형 S랭크 능력자는 지현이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을 테니까.

샬롯의 습격이후 지현이와 몇 번이나 대련을 한 화련이었기에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지현이는 일반적인 S랭크 헌터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하다는 걸.

애당초 샬롯 한 명에게 서윤이, 화련이, 예린이가 쩔쩔 매고 있을 때 오로지 지현이만이 호각을 이뤘다.

양산형 S랭크 능력자 따위 지현이의 상대가 될 리 없다.

물론 상성의 차이, 능력의 상하, 실전의 변수 등등 위험 요소는 많았지만, 염동능력은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대응이 가능하며 가장 범용적인 능력이므로 공격, 방어, 회피 모든 것에 적합하다.

또한 광범위 공격에 매우 탁월하여 진심으로 죽일 생각으로 능력을 펼친다면, S랭크 능력자든 아니든 목숨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현이가 적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만약 지현이가 적이었다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싫어.

“옛날 생각나네. 나보고 거품이다, 뭐다 해서 덤벼드는 능력자들도 많았는데. 별 이상한 놈들이 시비를 다 걸었거든.”

“다들 어떻게 됐어?”

“서준아. 내가 지금 멀쩡히 살아있는 거 보면 모르겠니?”

“어, 음. 그렇지?”

지현이가 일반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격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큼큼. 어쨌든 에델린의 수중에는 양산형 S랭크 능력자들만 있는 게 아닐 거야. 쓸만한 S랭크 능력자들도 꽤 많겠지.”

“레즈베리 같은?”

“어. 샬롯 레즈베리. 걔가 진짜 문제지.”

나는 뺨을 긁적였다.

샬롯은 혼자서 지현이의 클랜 하우스에 침입해 서윤이, 화련이, 예린이를 손쉽게 쓰러뜨린 그 모습이 아직까지 눈앞에 선명했다.

물론 기습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샬롯이 위험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성천교단 성가대 악장, 10강의 일원, 세계랭킹3위, 영국의 전 최강헌터…….

우리 쪽에서 샬롯과 일대일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지현이가 유일했다.

“골치 아픈 사실은 샬롯 말고도 강력한 능력자들이 더 있다는 거야.”

“총 기사단장 카멜롯 브리타니아와 집행관 로랑 드 다비드?”

“풀네임까지 기억하고 있네?”

에델린의 최측근이자 최고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라고 한다면, 샬롯 레즈베리, 카멜롯 브리타니아, 로랑 드 다비드 이 세 사람을 뽑을 것이다.

샬롯이 창이라면 카멜롯은 방패 그리고 로랑은 미친개다.

각각의 실력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 샬롯 정도의 수준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정면으로 상대할만한 전력이 없다.

“에델린이 성천교단의 실권을 장악했다지만 불만을 품은 파벌은 존재할 테고, 실권을 장악한지 오래되지 않아 결속도 부실할 거야.”

“아무리 그래도 정면 승부는 답이 없겠죠. 애당초 레벨이 다르니까요.”

예린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끄응. 골치 아프네요.”

“하지만 굳이 샤를테르랑 맞싸울 필요는 없잖아.”

지현이의 말에 예린이가 설핏 고개를 쳐들었다.

“우리의 제일 목표는 성천교단보다 탑을 먼저 정복하는 거잖아?”

“맞아, 그렇지. 그 과정에서 무력다툼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만 그래도 먼저 정상에 오르면 게임은 끝나니까.”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지현이의 말에 편승했다.

“최초로 탑을 정복하면 소원이라는 걸 빌 수 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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