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불청객 받아라(完)
* * *
에델린 폴 샤를테르.
성천교단을 대표하는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또한 회귀자임과 동시에 현 성천교단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성천교단의 실권을 장악한 이후 수많은 능력자들을 사냥했다.
유용한 능력을 빼앗아 부하들에게 나눠줌으로서 세를 불렸다.
덕분에 강력한 심복들을 잔뜩 만들 수가 있었다.
에델린은 지속적으로 힘을 쌓았다.
그 힘을 이용해 탑을 공략해 나아갔다.
회귀자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래의 지식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탑을 돌파할 수 있었다.
한 계층을 공략할 때 상당한 피해가 뒤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지만 성천교단은 별다른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몇 주에 한 번씩 미공략 계층을 공략해 나아갔으니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성천교단원들은 에델린을 우러러보며 선지자 혹은 선각자라 일컬었다. 혹자는 천주자의 딸이라며 칭송을 할 정도였다.
에델린에게 실패는 없었으며 항상 보상이 뒤따랐다.
탑을 공략하면서 쌓아올린 수많은 보구, 성유물, 영약, 아이템 등등을 아무렇지 않게 배분해주었다.
사람들이 에델린을 따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에델린이라는 인물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에델린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단 하나 뿐이니까.
껄끄러움.
나는 에델린이라는 인간이 껄끄러웠다.
딱히 잘못한 것은 없지만 첫 만남부터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회귀 전 에델린과 처음 만났을 때 은은한 미소와 함께 다가와 기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당신의 팬이에요.
정말이지 생뚱맞은 소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델린의 웃음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왜 에델린은 아련하고 애틋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걸까?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지만 나는 찝찝한 감정을 뒤로한 채 에델린과 함께 탑을 등반했다.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으므로 에델린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마음껏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에델린은 항상 조용히 웃으며 나를 든든히 지지해주었고 예린이는 살짝 불만스러운 얼굴로 흘겨보며 남몰래 이를 박박 갈았지만 직접적으로 배척하지는 않았다.
탑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에델린의 도움을 받는 게 여러모로 좋다는 걸 예린이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델린과 성천교단의 도움은 매우 유용했다.
만약 에델린이 없었다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것이다.
에델린은 성심성의껏 도움을 줬으며 때때로는 그 행동이 헌신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하면 모습에 충분히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과 별개로 항상 웃는 얼굴의 에델린을 보고 있노라면, 기묘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 아름다운 웃음 속에 도대체 무슨 생각과 감정을 숨기고 있을 걸까?
겉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어슴푸레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 에델린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은 다소 음험하고 비틀린 무언가였다.
그리고 에델린의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회귀를 한 이후였다.
왜냐하면 에델린은…….
***
“오랜만이네.”
오랜만.
그래, 오랜만이다.
기억을 되찾고 저 에델린의 낯짝을 제대로 보는 것은.
“기억을 되찾으니까 어떠세요?”
에델린은 아주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잔잔한 목소리로 질문을 건넸고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꽉 움켜쥐었다.
손가락에 힘이 꽉 들어갔다.
지금 에델린을 공격하면 죽일 수 있을까?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아주 위험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였다.
재빨리 발을 굴리면 단숨에 에델린의 목을 벨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당신.”
에델린의 곁에서 한 소녀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샬롯 레즈베리였다.
여러 갈래로 땋은 녹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를 흉흉히 쏘아보고 있다.
그 모양새는 마치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 새처럼 맹렬한 눈빛을 연상케 했다. 눈꺼풀이 반쯤 감겨있었지만 살의만큼은 숨길 수가 없었다. 맹금류와 같은 살의가 나를 덮쳤다.
“함부로…… 행동하면 어떻게 될 줄…… 알고 있겠지……?”
졸린 듯 낱말을 띄엄띄엄 내뱉는다.
다소 맹하게 들렸으나 기세는 진짜였다.
낮은 목소리로 위협을 했을 뿐인데 솜털이 곤두서고 터럭이 늘어졌다. 기억을 되찾았다는 사실에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위압감을 뽐내어 나를 압박하고 있다.
“뭘 그렇게 쳐다봐? 부담스럽게.”
나는 여유로운 얼굴로 피식 하고 조소를 흘겼다.
“눈을 잃었을 때보다 더 살벌하게 쳐다보는 거 아니야?”
“…….”
“아 맞다. 눈이 하나가 없으니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지 참? 깜빡했네.”
“……너.”
같잖은 도발이 잘 먹혀들었는지 샬롯은 분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으득 짓씹더니 품속에서 시퍼런 칼을 꺼내들었다.
“너…… 진짜 죽고 싶……?”
샬롯이 분을 이기지 못한 채 으르렁거리려는 찰나 샬롯의 어깨에 손을 얹어 만류하는 한 사내가 있었다.
“샬롯.”
아주 큼지막한 손바닥이다.
과장 조금 보태면 샬롯의 머리보다 큰 것 같다.
나는 찬찬히 사내를 살펴보았다.
남자는 기형학적인 문양으로 그려진 로브를 착용하고 있다.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저 남자는…….
‘카멜롯 브리타니아네.’
성천교단 총 기사단장.
현재는 에델린의 호위를 맡고 있다.
실력은 전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카멜롯의 능력은 상당히 특이하다.
심플하지만 강력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의 능력은 개념복합능력.
자신과 사물의 개념을 섞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창’ 과 개념을 섞는다고 가정 하에 카멜롯이 원한다면 창처럼 날카로워질 수도 있고, 창처럼 단단해질 수 있으며, 창처럼 길쭉하게 변할 수도 있다.
본인에 입맛대로 사물의 장점과 단점을 취사선택이 가능하다.
또한 한 가지 사물만 섞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한다면 여러 가지 사물을 섞을 수도 있다.
‘좀 탐나는 능력이긴 한데…….’
강철로 만들어진 검과 섞여도 어지간한 능력자들보다는 강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강철과도 같은 내구성에 검처럼 날카롭고 지치지도 않는다면 웬만한 능력자들은 상대도 되지 않을 테니까.
더군다나 현재의 카멜롯은 성천교단에게서 마음껏 보구 및 성유물을 대급 받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카멜롯과 싸운다는 것은 살아 숨쉬는 보구들과 싸우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살아있는 보구, 부동의 기사 등등으로 일컬어지는 카멜롯은, 성천교단의 최상위 능력자 중 한 명이었다.
“…….”
나는 그네들의 면면을 쭉 훑어보았다.
에델린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세 사람이 다 모였다.
10강 샬롯, 집행관 로랑, 총 기사단장 카멜롯…….
개인의 힘으로 저들과 싸워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아마 세계랭킹1위라고 할지라도. 이기기는커녕 도망치기도 어렵겠지.
당장 샬롯만 하더라도 S랭크 능력자 세 명을 간단히 쓰러뜨리지 않았는가?
사실상 현 성천교단의 올스타이자 최정예 멤버라고 볼 수 있었다.
정면충돌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일맥상통 할 터.
더군다나 지금의 나는 전성기에 미치지 못한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방긋 웃으며 기다리고 있는 에델린을 향해 목소리를 띄웠다.
“에델린.”
“어머.”
그녀는 살짝 놀랐다는 듯 손으로 입술을 가리다가 이내 배시시 웃는다.
“기억을 되찾았는데 아직도 절 에델린라고 불러주시네요?”
퍽 즐거운 얼굴이다.
“왜 내가 기억을 되찾게 내버려둔 거지? 너에게 있어서 별로 좋을 게 없을 텐데. 아무리 네 전력이 더 뛰어나다고 해도.”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에델린은 머리 위로 설핏 띄운 채 고개를 갸웃갸웃 거렸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걸요? 서준 씨께서 스스로 기억을 되찾은 거잖아요?”
시치미를 떼고 있다.
“그나저나 서준 씨. 이렇게 함부로 찾아오시면 어떻게요?”
에델린은 짓궂게 웃는다.
“저희 신자들까지 이렇게 건드리시고.”
자못 안타까운 눈빛으로 쓰러져 있는 신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에델린이었지만 눈빛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안타까움이 아니라 즐거움이었다.
본인의 부하들이 나뒹굴고 있는데 즐거워한다, 라…… 확실히 에델린 저 여자도 제정신은 아니다.
“이러시면 순순히 놔드릴 수가 없잖아요. 저도 입장이라는 게 있어서.”
“다들 살아 있잖아.”
다소 거칠게 제압한 후 능력을 흡수했기 때문에 반쯤 의식을 잃은 채 비몽사몽하고 있지만 확실히 숨을 쉬고 있었다.
“샬롯이 클랜 하우스에서 깽판 친 것도 있으니 좀 봐주지 그래?”
“흐음~. 글쎄요?”
에델린은 곤란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인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이유로는 놓아드리기 힘들 것 같네요? 안 그래요 샬롯.”
샬롯은 곧바로 고개를 주억였다.
“에델린…… 이참에 붙잡자. 괜히 후환을 만들지 말고…….”
“뭐야, 붙잡아도 되는 거예요? 에이 진작 말씀 좀 하시지. 괜히 맞고 있었네.”
샬롯과 로랑은 곧바로 임전태세를 갖춘다.
“그래? 그렇다면…….”
아무래도 에델린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한 듯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일단은 맞춰줄까.
“……이건 어때?”
나는 쓰러져있는 성천교단원들을 바라본 후 손가락을 튕겼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성천교단원들이 몸을 움찔움찔 떨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게거품을 게워냈다.
사지를 부르르, 부르르 떨며 숨을 꺽꺽 거렸다.
“무슨……?”
“독이야, 독.”
샬롯의 눈썹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독?”
“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약간 준비를 좀 해봤거든.”
나는 샬롯의 질문에 순순히 답변해준 후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인 채 에델린을 바라보았다.
에델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성천교단신자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꽤 오랫동안 에델린과 함께 했던 내가 보기에는 저 표정 속에 내제되어 있는 감정은 걱정과 안쓰러움이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놓아드리지 않으면 저희 쪽 신자들을 죽이시겠다는 말씀이군요?”
“응.”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에델린.
로랑은 불만스레 툴툴거렸다.
“뭐야? 진짜 놓아줄 거예요?”
저 미친년은 성천교단신자들이 죽든 말든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에델린이 실권을 장악할 때 가장 앞서서 사람들을 살육한 것이 바로 로랑이라고 들었다.
본인이 인정하는 사람들 말고는 별다른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닌 것 같았다.
“……당신 기억을 잃었을 때는 이런 짓은 하지 않았는데.”
샬롯은 이맛살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동료들이 죽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 로랑과 다르게 샬롯은 제법 신경을 썼다.
실제로 나 때문에 몇 명의 동료들이 죽임을 당하자 원한어린 눈동자로 쏘아보았던 것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좋아요. 서준 씨. 지금은 서준 씨를 사로잡는 것보다 신자들의 목숨이 더 중요하니까요.”
“좋은 선택이야.”
“성녀님? 정말로요? 멋대로 쳐들어와 깽판 친 사람을 내버려두면 면이 살지 않잖아요. 저희 애들도 좀 다쳤고.”
“하지만 신자 분들의 목숨이 인질로 잡혀있는 걸요?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에이. 성녀님도 참 평소였다면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로랑.”
에델린이 살짝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로랑은 ‘아차’ 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부탁 할게요, 로랑. 사람 목숨이 우선이잖아요?”
“아, 응. 그렇지. 미안해요 성녀님.”
로랑은 뒷목을 긁적이며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재빨리 사과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그래.”
“서준 씨.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음에는 좀 더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죠.”
“마음 같아서는 지금 물어보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 나중으로 미뤄두지 뭐.”
궁금한 점도 많고 묻고 싶은 점도 많았지만 오늘은 때가 아니다.
“참. 그리고 오늘 보물고에서 멋대로 보구와 성유물을 가져간 건 선물로 드릴게요.”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봐드리는 건 이번 한 번 뿐이에요. 다음부터는 저도 봐드릴 수가 없어요. 알다시피 저도 입장이라는 게 있는 몸인지라.”
“알고 있어.”
나와 에델린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러면 이만 가볼게. 다음에 보자고.”
“네.”
“아, 맞다. 물어볼 게 하나 있었는데.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
“뭔데요?”
“그냥…… 음.”
나는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이번이 몇 번째야?”
“네?”
“몇 번째냐고.”
“…….”
오늘 처음으로 에델린의 표정이 경직됐다.
“긴가민가했는데 얼굴을 보니까 정말인가 보네.”
“서준 씨…….”
나는 싱겁게 웃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에델린은 더 제정신이 아니었다.
에델린이 원하는 게 내가 생각했던 그거라면 진짜 에델린은 제정신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로랑보다도 더욱.
“그러면 진짜 가볼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공간도약을 이용해 성천교단을 빠져나갔다.
성천교단을 빠져나가기 직전 흘끗 뒤돌아보자 에델린이 무표정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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