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Dreams come true (4)
장 대표가 샤오웨이를 추천했다고?
태주가 차용석을 보니 그 또한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다.
“대표님에게 직접 공유받으신 겁니까?”
차용석의 질문에 관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샤오웨이라는 그 여배우, 중국에서는 떠오르는 신성이라면서요. 마스크가 청순한 게 태주 씨하고 얼굴 합도 잘 맞는 것 같고요. 그래서 저희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전혀 몰랐다는 듯한 차용석의 표정.
이중협이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용석아, 네가 태주 매니저면 장 대표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여서 이런 걸 알아봤어야지.]
차용석의 당황스럽다는 얼굴에 관계자도 그의 눈치를 살폈다.
“차 팀장님께서는 공유받지 못한 내용이었습니까?”
“아, 저희 대표님께서 좀 섣불리 결론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차용석이 태주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솔직히 저로서는 태주의 의견도 반영되었으면 좋겠거든요. 태주가 메인 모델인데, 상대 모델에 대한 의견 정도는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부른 거고요.”
태주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계자를 마주했다.
그는 태주의 사진과 샤오웨이의 사진을 나란히 놓았다.
“태주 씨, 샤오웨이 씨랑 이렇게 나란히 모델 서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두 분 얼굴 조합도 괜찮고, 알려지지 않은 신인 모델 쓰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흐음…….”
태주는 잠시 망설였다.
샤오웨이란 이 중국배우, 예쁘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섣불리 상대 모델을 결정하는 건 너무 선급한 거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모델이 한 명 있었다.
‘채이진. 그분 마스크도 좋던데.’
[채이진?]
태주의 말에 이중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채이진이 분위기도 있고 괜찮았지. 샤오웨이란 이 친구는 뭔가 너랑은 케미가 좀…. 너무 어려 보인다고 할까? 그에 반해 채이진이랑 너는 그림체도 비슷하고, 더 어울려. 원래 광고는 케미가 생명이잖아.]
태주는 관계자에게 말했다.
“상대 모델로 샤오웨이 씨를 지명하신 건, 저희 대표님의 의견이셨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관계자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번에 ‘청룡검신’ 무녀 역할로 캐스팅되신 분이라면서요?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 활동을 시작하려는 것 같던데. 얼굴도 청순하게 예쁘니 화장품 광고에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대로 갈까요?”
“흠…. 혹시 시간을 좀 더 주실 수 있을까요?”
그의 거절에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을 겪어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상대 모델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차용석은 희한한 눈치로 태주를 바라보았다.
“네가 원하는 상대가 특별히 있는 거야? 말해봐, 누군지.”
“아, 그게……”
마저 생각을 정리한 태주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채이진 씨는 어떨까 싶어서요.”
“채이진 씨가 누구죠?”
어리둥절한 관계자에게 차용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핸드폰에서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모델 출신 배우인데, 예전에 런던, 밀라노 등 패션위크를 돌던 하이패션 모델 출신입니다.”
“오호, 마스크가 개성이 있고 좋네요. 주근깨가 난 게 발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고요.”
관계자가 옆에 있던 직원과 머리를 맞댔다.
“이 친구 괜찮지?”
“괜찮은데요? 확실히 분위기가 있어요.”
“장 대표한테서 이 친구 얘기 들은 적 있어?”
“아뇨. 왜 이런 친구를 얘기 안 해줬지?”
의외로 흥미를 보인 관계자는 태주를 보고 씩 웃었다.
“저희 쪽에서 채이진 씨도 재고해 보겠습니다. 이분이 태주 씨하고 궁합이 더 잘 어울리겠어요.”
* * *
차용석과 함께 태주가 회사로 돌아가는 길.
태주도, 차용석도 각자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이때.
먼저 입을 연 건 잔뜩 미간을 찡그렸던 차용석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뭐가요?”
“장 대표가 자꾸 널 자기 장기말로 쓰려고 하잖아. 무력하게 이렇게 있고 싶지는 않아.”
끼익.
빨간불에 차를 멈춘 차용석이 태주를 바라보았다.
“분명 나는 너의 매니저인데, 장 대표가 제멋대로 널 움직여 버리면. 나는 무책임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거라고. 명색이 한태주 매니저에, 3팀장인데 이게 뭐냐. 장 대표 뒷공작도 모르고.”
[그러게, 관리 좀 잘하지. 언제까지 장 대표만 믿고 순진하게 당하고 있을 거야. 말로만 태주가 네 배우냐?]
옆에서 신랄한 비판을 하는 이중협을 태주가 막았다.
‘형!’
[맞잖아. 용석이 이 녀석이 원하는 게 설마 장 대표한테 당하는 건 아닐 거 아냐. 장 대표 입맛대로 널 길들이려는 것도 아닐 테고.]
그때, 차용석이 말을 꺼냈다.
“아까 상대 모델로 채이진 지명한 거, 괜찮은 생각 같아. 사실 샤오웨이라는 친구, 장 대표가 일방적으로 밀어주는 추세거든. 그 친구가 얼굴 예쁜 거 빼고는 매력이 없다고 생각한 거지?”
“아뇨, 그건 아니고…….”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던 차용석이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회사 내에서 지금 말이 많아. 웬 중국 애를 데려와서는 갑자기 주연급으로 팍팍 밀어주는데, 누가 납득을 하겠어?”
최근 장 대표의 중국 친화적인 행보에 대해 회사 사람들도 의문과 불만투성이였다.
특히나 차용석에게는 일전에 탁시준에게서 들었던 말이 결정적이었다.
-대표님이 중국에 괜히 수월하게 진출했을 거라고 생각하냐? 헤븐 리조트 쪽하고 우연히 연결됐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다 그쪽 니즈를 들어줬으니까 가능했던 거야. 헤븐 리조트 사장 딸이 바로 샤오웨이라고. 중국 신성은 무슨, 제대로 뜨지도 못한 애를 그냥 데려온 거야. 자기가 잘 다듬기만 하면 한국에서 빵 뜰 거라고 하면서.
하지만 잘 다듬으면 뜰 거라는 건 온전히 장 대표의 생각이다.
드림액터스의 대다수 사람은 중국 여배우의 영입이 너무 갑작스러웠고, 그녀에게서 톱스타가 될 재능조차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실제로 프로필을 찍은 포토그래퍼, 그녀의 연기를 봐주는 연기 선생 등등 다들 연기력과 분위기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드라마 ‘청룡검신’의 주연과 여러 광고모델로 푸쉬할 만큼의 스타성도 없다고 했고.
“장 대표가 엄한 애를 밀어주고 말이야….”
혼잣말하던 차용석은 걱정과 의심이 가득한 잘생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아무튼, 주노 광고모델 건은 나한테 맡겨. 더는 장 대표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너한테 제일 어울리는 모델을 찾아서 픽스할 거야.”
차용석이 믿음직한 얼굴을 내보였다.
“그러니까 날 꼭 믿어줘, 태주야.”
“믿어요, 형.”
태주가 차용석의 곧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 * *
다음날, 화음픽쳐스.
베일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데스 게임’의 주연들이 한곳에 모였다.
태주는 맞은편에 있는 대선배 심요연과 그녀 옆에서 잔뜩 얼어 있는 채이진을 마주했다.
그의 옆에 앉으려던 채이진은 심요연의 권유로 그녀 쪽에 앉게 되었다.
그래도 영화 촬영에서 몇 번 봤다고 채이진은 태주를 친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심요연은 채이진의 등을 두드렸다.
“왜 이렇게 긴장했어, 내가 무섭니?”
“아…, 아니욧!”
긴장한 채이진을 본 모황국이 큭큭 웃었다.
“요연 씨 카리스마는 여전하구만. 아직도 후배들을 덜덜 떨게 하네.”
“어머, 감독님.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섭섭해요, 제가 여태까지 얼마나 얌전한 현모양처로 살았는데요.”
“남편 말 잘 들어서 여태껏 연기도 못했던 거고?”
“그럼요.”
심요연이 어깨를 으쓱했다.
“희재 씨가 저 연기하는 것 싫어하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장 대표도 참 이상하네. 왜 연기 잘하는 여배우를 살림만 하게 썩혔대?”
모황국이 태주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잘생기고 연기 잘하는 배우랑 합을 맞추면 질투 나니까?”
“그런 걸지도 모르죠.”
심요연이 태주를 보며 윙크를 하자, 태주는 이중협과 함께 흠칫했다.
[넌 누님들 사랑을 많이 받나 보다. 심 선배도 너한테 관심 가지는 거 보니.]
유쾌한 분위기 속 미팅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태주 씨가 주연으로 붙으니까 사람들 관심이 확 살더라고요.”
제작자 이덕량이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지금 나머지 배역들 오디션 보고 있는데, 지원자들이 많아서 오디션 경쟁률이 엄청나요.”
“오, 좋네요.”
얼굴이 상기된 태주가 말을 이었다.
“데스 게임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좋아하는 장르지만,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메이저 장르가 아니라, 관심이 적을까 걱정했습니다.”
“한태주가 주연을 맡았는데 한국에서 관심이 적을 리 있겠어? 지금 관심 폭발이야.”
모황국이 씩 웃었다.
“게다가 우리뿐 아니라 베일릭스 본사에서도 주목하고 있다고. 태주 군이 찍은 단편영화가 선댄스에서 대상을 수상했다지? 거기서 연기 잘했던 주연이 우리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나름 화제가 되고 있어.”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과찬이세요.”
“과찬은 무슨? 내가 LA에 아는 지인한테서 들은 건데 말이야.”
비밀을 말하는 듯 모황국이 고개를 숙였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부문이 있었다면 만장일치로 자네였다고 하던데.”
* * *
미팅이 끝난 후.
태주는 뿌듯한 가슴을 안고 차에 탔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게 이런 것일까.
볼일이 있다던 차용석 대신 박인우가 차를 몰고 있는 지금.
그는 옆자리에 있던 박인우와 술 한잔하며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형, 우리 밥이나 먹고 들어갈래?”
그의 제안에 박인우가 씩 웃었다.
“정말? 나는 좋지. 그런데 네가 괜찮냐? 집에 바로 들어간다며.”
“괜찮아, 내가 술 사줄게.”
그때, 태주의 핸드폰에 진동이 울리자 박인우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태희 아냐?”
“어……. 대표님이네.”
번호를 저장은 해 두었지만 단 한 번도 연락해 본 적 없는 사이.
그런 장희재의 연락에 태주가 망설이자, 박인우가 재촉했다.
“뭐해, 대표님 연락이잖아!”
별로 받기 싫어서 태주는 느릿느릿하게 받았다.
“네, 한태주입니다.”
-그래, 태주야.
수화기 너머에서 유독 기분 좋은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 저녁이나 같이하자. 할 말 있으니까.
* * *
갑작스레 잡힌 저녁 약속.
핑계를 대고 안 갈 수도 있었지만, 자신을 보고 싶다는 장희재 대표의 속을 알고 싶어 거절하지 않았다.
한적한 일식당의 프라이빗 룸에서 만난 장 대표는 약간 초조해 보였다.
“여기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거든. 아무나 데리고 오는 데 아니다.”
음식이 차려지고 술을 받으면서도 태주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장 대표가 속내를 꺼내기를 기다릴 뿐.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다 지친 장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에 주노 광고모델 말이다. 네가 채이진을 추천했다면서?”
태주의 눈을 마주친 그가 강경한 태도로 바뀌었다.
“웬만하면 샤오웨이로 해주지 그러냐. 이왕 하는 거 같은 소속사 친구가 좋지 않겠어? 너도 선배니까 후배들을 이끌어 줄 때도 됐잖냐.”
“꼭 그 친구여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채이진 씨도 같은 소속사 식구인데요.”
“태주야. 채이진은 그냥 겉절이잖아. 샤오웨이는 이번에 회사에서 밀어주는 애고. 너도 회사 사정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
눈치도 없이 그런 걸 물어본다는 장 대표의 시선에 태주는 애써 웃었다.
“대표님이 사적으로 그 친구를 아끼는 게 아니고요? 저번에 회사에서 밤늦게까지 대본 연습하다 봤습니다. 대표님이 그 친구랑 사무실에서 나오는 거.”
그 순간, 장희재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