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경찰서 조사실.
“전 정말 아니라고요!”
절규에 가까운 현일의 목소리가 어두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진정하세요.”
성진이 흥분한 현일을 진정시켰다.
“진정? 지금 내가 진정하게 됐습니까!”
평소 조용하고 순박하기만 한 그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흥분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국민성 의원이 자신의 뇌물비리 자료를 곽현일 씨가 검찰에 넘겼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거죠.”
“그뿐만이 아니라, 이게 다 자신의 추악한 비밀을 감추기 위한 그 인간의 계획이라고요!”
현일이 주먹을 말아 쥐며 책상을 내려쳤다.
꽤 오랜 시간 이어진 취조 내내 현일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건.
이 모든 게 민성이 꾸민 계략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국민성 의원이 자신의 비밀금고를 알고 있는 박진호 씨와 검찰에 뇌물비리를 제보한 곽현일 씨를 한 번에 보내기 위해 이 계획을 세웠다는 말씀이시죠?”
성진이 현일의 주장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네! 그러니까 제가 아니라 국민성을 잡으시라고요.”
현일이 의자를 앞으로 당기며 핏대를 세웠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엘리베이터부터 다시 시작해 보죠.”
성진이 다시 노트북 키보드 위에 두 손을 올리며 마치 처음 조사실에 들어왔던 것처럼 자세를 고쳐 앉았다.
또다시 서로의 에너지만 빼는 쳇바퀴 같은 질문과 대답이겠지만.
현일이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는 지금.
사건의 해결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
“아니 그건 아까 물어보셨잖아요.”
현일이 질린다는 얼굴로 의자에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말하면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법이라 서요.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일이 있었죠?”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저를 갑자기 벽으로 몰아붙이더니 욕을 하고 멱살을 잡고 난리를 쳤다니까요. 이걸 보고도 제 말을 못 믿으시겠어요?”
현일이 단추가 떨어진 자신의 셔츠를 흔들며 소리 질렀다.
“그건 두 사람을 공격하다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형사님. 전 진짜 아니에요! 국민성이 저한테 누명을 씌우는 거라고요!”
성진의 반박에 현일이 가슴을 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럼 국민성 의원이 곽현일 씨에게 뭐라고 협박하던가요? 직접적으로 검찰에 넘긴 비리 내용에 대해 언급했나요? 그러니까 곽현일 씨가 검찰에 비리사실을 넘긴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나요?”
노트북 키패드 위를 움직이는 성진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꼭 집어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그런 뉘앙스였죠. 제가 맘에 안 든다고 무턱대고 화를 냈으니까요.”
“그럼 국민성 의원이 화를 낸 이유가 곽현일 씨가 자기를 검찰에 고발한 걸 알아서 화를 낸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이네요. 그죠?”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던 성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 이유 외에는 저한테 그렇게 갑자기 화를 낼 이유가 없다고요.”
묘하게 꼬이는 진술에 현일이 머리를 헝클며 다시 소리쳤다.
“엘리베이터에서는 갑자기 왜 내리신 겁니까?”
성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멱살 잡고 욕하고 그 난리를 치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지역구 사무실에 가서 무슨 서류 하나를 가져오라고 해서 내렸습니다. 급하니까 빨리 가져오라고요.”
“뜬금없이요?”
“네. 그 인간이 좀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어서.”
“그런데 왜 지하주차장까지 안 내려가고 중간에 내린 건가요?”
“제가 그냥 내릴 수 있겠습니까? 국민성이 꼴도 보기 싫다고 빨리 꺼지라고 해서 내린 거죠.”
“그러니까 국민성 의원이 내리라고 한 거다.”
“네.”
“그 가져오라는 서류가 무슨 서류죠?”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 서류를 가지러 가다 이렇게 잡혀 왔는데.”
다시 생각해도 분하고 억울한 그날의 기억에 현일이 다시 감정이 격해지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도 무슨 서류인지 모르시나요?”
“책상 위에 있으니까 그냥 가져오라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서류가 진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흠-”
현일의 진술을 노트북에 입력하던 성진이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봐도 거짓말 같은 진술.
하지만 또 그 거짓말 같은 진술을 말하는 현일의 눈을 보면 그의 말이 모두 진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형사님이 생각하기에도 이상하시죠. 이 모든 게 국민성 그 인간이 저를 범인으로 만들기 위한 다 계획이었다니까요.”
살짝 흔들리는 것 같은 성진의 모습에 현일의 목소리가 더 다급해졌다.
“곽현일 씨가 검찰 쪽에 정보를 넘겼다는 걸 아는 사람은 박진호 씨 한 사람뿐이었나요?”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은 성진이 다른 질문을 이어갔다.
설령 현일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 해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앞에 수갑을 차고 앉아있는 사람은 민성이 아닌 현일이었으니까.
“후- 네.”
아무리 떠들어도 바뀌는 것 없는 현실에.
현일이 탄식에 가까운 숨을 쉬며 짧게 대답했다.
“그래서 박진호 씨를 죽인 겁니까?”
성진이 매서운 눈빛으로 현일을 노려봤다.
“안 죽였다고요! 제가 그 인간을 왜 죽입니까.”
현일이 책상을 내리치며 팔짝 뛰었다.
“죽일 이유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곽현일 씨가 국민성을 검찰에 고발한 걸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고. 또 의원실의 다른 직원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두 분이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성진이 현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제가 박 보좌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겠습니까? 제 딸아이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전 절대 박 보좌관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박 보좌관을 죽일 이유라면 국민성도 충분한 거 아닌가요?”
현일이 가슴에 손을 올리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여전히 박진호 씨는 국민성 의원이 죽였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그 이유는 박진호 씨가 국민성 의원의 비밀 금고 위치를 알아냈기 때문이고요.”
“네!”
빠르게 이어지는 성진의 말에 현일이 비장한 표정으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비밀금고가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신가요?”
민성의 비밀 금고에 대한 풍문은 성진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아니요.”
“박진호 씨가 그 위치에 대해 말한 적이 있나요?”
“국민성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카드인데 박 보좌관이 저한테 순순히 이야기할 리 없지 않습니까.”
현일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국민성 의원이 박진호 씨를 죽였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아니 죽이는 걸 보셨나요?”
성진이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그건…….”
자신감 넘치던 현일의 목소리가 순간 사그라졌다.
“보셨나요?”
성진이 다시 현일의 대답을 재촉했다.
“……아니요.”
현일의 고개가 무겁게 떨어졌다.
“보세요. 결국 지금까지 곽현일 씨가 한 진술들의 결론은 금고 위치도 모르고, 국민성 의원이 박진호 씨를 죽인 것도 본 적 없다는 게 팩트지 않습니까.”
“그런데 국민성이 박 보좌관을 죽인 건 제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뒤에 일어난 일인데 제가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 화면을 보세요.”
성진이 노트북을 현일 앞으로 돌리며 말했다.
“여기 CCTV에 찍힌 건 곽현일 씨 혼자뿐이죠.”
“…….”
의원회관 복도 CCTV 화면 속 헝클어진 옷으로 엘리베이터를 급하게 걸어 나오는 자신의 모습에 현일의 말문이 막혔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곽현일 씨의 말을 믿어드리고 싶어도 믿어드릴 수 있겠습니까? 본인이 아니라고 주장을 하시기 전에 그에 합당한 증거가 뒷받침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현일의 주장처럼.
민성이 꾸민 덫에 현일이 빠진 것일 수도 있었다.
사실 성진도 병실에서 민성의 말을 들으면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느낌만으로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CCTV에 찍혔다고 제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박 보좌관을 죽인 화면도 아닌데요.”
현일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죽이고 나오는 화면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까.”
“……전 정말 하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현일의 얼굴이 답답함과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인 국민성 의원이 곽현일 씨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성 의원의 진술이 거짓이라는 걸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이 사건의 결과는 절대 뒤집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다 거짓말이라고요!”
현일이 핏대를 올리며 고함치던 그때.
조사실 문이 열리며 최 반장이 심각한 얼굴로 들어왔다.
“반장님. 아직 안 끝났는데요.”
옆방 관찰실에서 보고 있어야 할 최 반장의 갑작스런 등장에 성진이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알아. 곽현일 씨.”
성진과 가볍게 눈빛을 교환한 최 반장이 책상을 짚으며 현일을 똑바로 바라봤다.
“네.”
뭔가 포스가 다른 최 반장의 등장에 현일이 바짝 얼었다.
“살해도구는 어디다 버렸습니까?”
최 반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살해도구라뇨?”
“박진호 씨를 죽인 살해도구 말입니다.”
“내가 죽이지 않았는데. 살해도구가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현일이 황당한 표정으로 최 반장을 바라봤다.
“정말 박진호 씨 안 죽였나요?”
테이블을 짚은 최 반장이 현일 쪽으로 얼굴을 쭉 들이밀며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렇다니까요. 제발 제 말 좀 믿어주세요. 전 정말 안 죽였습니다.”
현일이 억울함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소리쳤다.
“국민성 의원은 볼펜 모양의 암살도구로 곽현일 씨가 박진호 씨를 찌르고 자신을 공격했다고 하던데요.”
최 반장이 점점 목소리를 높이며 현일을 몰아붙였다.
“그 말 자체가 다 거짓말이라고요. 엘리베이터 안에 CCTV가 없다는 걸 알고 국민성이 다 꾸며낸 이야기란 말입니다. 그리고 암살도구라뇨. 저 같은 사람이 그런 걸 어떻게 구합니까. 전 그런 거 들어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습니다. 전 그저 운전기사일 뿐이라고요.”
현일이 온 사력을 다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던 그때.
“이거 곽현일 씨 볼펜 맞죠?”
최 반장이 품속에서 비닐 팩에 든 볼펜 하나를 현일의 앞에 내려놨다.
“어! 그거 제 딸아이가 만들어준 볼펜인데. 그런데 이게 왜…….”
예상치 못한 전개에 현일이 놀란 얼굴로 최 반장을 바라봤다.
[사랑하는 아빠꺼♥] 라는 네임스티커가 붙은.
얼마 전 방학을 맞아 집에 왔다 간 딸이 자신이 쓰는 필기구들에 붙여준 볼펜들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곽현일씨 볼펜이 맞다는 말씀이시죠?”
최 반장이 굳은 얼굴로 다시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네.”
“이런 볼펜이 몇 개나 있나요?”
“딸아이가 그렇게 스티커를 붙여준 건 한 4개 정도.”
“4개요…….”
최 반장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왜요? 딸아이가 만들어준 볼펜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이젠 문제가 되나요? 그 볼펜도 제가 범인이라는 증거인가요?”
현일이 기가 찬다는 얼굴로 물었다.
“이 볼펜은 방금 곽현일 씨가 운전하는 국민성 의원 관용차 운전석 시트 틈에서 찾았다고 과학수사대에서 가져온 겁니다.”
최 반장이 성진 옆의 의자에 앉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게 왜 거기 있었죠?”
보통 콘솔박스 안에 넣고 차에서 쓰던 볼펜이 운전석 시트 틈에서 나왔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자주 쓰시는 펜인가 보죠? 몸에도 지니고 다니고요.”
“주로 차에서 쓰지만. 가지고 다닐 때도 있죠.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왜 계속 그런 걸 물어보시는 겁니까?”
변죽만 울리는 최 반장의 질문에 현일도 날카롭게 맞받아쳤다.
“문제가 되네요. 이게 박진호 씨를 죽인 살인도구거든요.”
탁-
최 반장이 비닐봉투 속 볼펜 버튼을 누르자 볼펜 촉 대신 날카로운 바늘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반장님 이게 그…….”
그 모습에 놀란 성진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 이제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최 반장이 바늘이 튀어나온 볼펜을 현일의 눈앞에 들어 보이며 그의 대답을 재촉했다.
“아니에요. 이럴 리가 없어요. 이건 뭔가 잘못된 거라고요.”
당황한 현일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