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곳에 내가 있었다-177화 (177/669)

#177.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야! 거기 기자들하고 사람들 막아!”

폴리스라인을 온몸으로 막는 경찰관들의 고함소리.

“지금 환자들은 준비된 구급차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정확한 피해자 집계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화마에 휩싸인 건물은 연신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하나라도 더 특종을 잡으려는 기자들과 카메라들의 치열한 취재 열기까지.

화재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그때.

“구조자는 있나요? 아니 구조된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나요?”

주철이 사색이 된 얼굴로 폴리스라인 앞에 서 있는 경찰을 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지금 인근 병원으로 다 분산이동 했으니까 자세한 건 나중에 언론발표로 확인하세요.”

지친 얼굴의 경찰이 기계적으로 말했다.

“생존자는 있나요?”

여전히 받지 않는 영수의 전화가 주철을 더욱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 위독한 상태라고…….”

“하-”

주철이 충격을 받은 듯 휘청거렸다.

“괜찮으세요?”

경찰이 급하게 주철을 부축하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이송된 병원은 어디인가요?”

아찔한 정신을 겨우 붙잡은 주철이 다시 다급하게 물었다.

“그건 저쪽 대책본부 쪽에 한번 물어보세요. 그런데 지금 가셔도 아직 정확한 정보는 없을 거예요. 방금 병원으로 이송해서요.”

“네. 감사합니다.”

도로 한편 임시로 세워진 대책본부를 향해 무겁게 발길을 돌리던 주철이 순간 멈칫하며 다시 경찰을 바라보며.

“화재가 시작된 곳이 어딘가요?”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5층에서 시작된 것 같다고 하던데요.”

“화재 원인은 나왔나요?”

“그건 저도 잘……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어보세요?”

처음에는 피해자 가족으로 쯤으로 생각하던 경찰이 꼬치꼬치 캐묻는 주철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경계했다.

“전 국과수의 윤주철 법의관이라고 합니다. 아시는 대로 자세히 좀 말씀해 주세요.”

아직까지 영수의 생사도, 또 어디 병원으로 이송된 지도 발표가 되지 않은 상황.

무작정 대책본부의 발표가 나기만을 애태우고 기다리느니.

지금은 일단 최대한 사건의 정황이라도 파악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정말 법의관이세요?”

하지만 경찰은 여전히 긴가민가한 얼굴로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잠시만요. 여기요 맞죠. 윤주철 법의관.”

주철이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자신의 명함 한 장을 꺼내 경찰 앞에 들이밀었다.

“저도 확실히는 잘 모르겠는데. 5층에서 시작됐다고 하던데요.”

주철의 신원을 확인한 경찰이 그제야 퉁명스럽던 표정이 슬며시 풀렸다.

“5층이요?”

영수의 병원 바로 아래에서 화재가 시작됐다는 이야기에 주철의 고개가 저절로 건물 5층을 향했다.

“네. 거기가 무슨 주점인데. 그쪽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하던데요.”

“그럼 주방 쪽에서 시작된 건가요?”

“거기까지는 저도 잘.”

경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피해가 큰 거죠?”

5층에서 일어난 화재만으로 이렇게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건물 외벽 외장재를 타고 불이 확 번져서 그렇다고.”

아마 단열성이 뛰어난 데다 값이 싸고 시공이 편리한 '드라이 비트'가 사용된 것 같았다.

불에 너무 취약해 '불쏘시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마감재인데.

위험성에 대한 끊임없는 지적에도 여전히 건물에 쓰이는 이유는 역시 하나.

돈 때문이었다.

“그리고 옥상하고 몇 군데 비상구가 막혀 있었나 잠겨 있었나. 아무튼 안 열렸다고 하더라고요.”

“비상구가 막혀 있었다고요?”

주철이 아연실색하며 소리쳤다.

보통 옥상으로 올라가는 비상구는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막아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비상구가 잠겨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네. 아까 소방관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던데요.”

“그거 안에서 열리는 거잖아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주철의 목소리가 커졌다.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고요. 아무튼 그래서 초기에 진입하는데 애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창문으로는 진입 안 했나요?”

주철이 여전히 뿌연 연기들을 쉼 없이 내뿜는 깨진 창문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워낙 불길이 거세서. 그것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나 봐요.”

“하-”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가족이 저기 계셨나요?”

경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친구가…….”

미처 말을 맺지 못한 주철이 다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통화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화면에 [영수] 라는 이름과 함께 다시 사람 피 말리는 신호음이 들리던 그때.

“환자 이송 병원 알려드리겠습니다.”

현장 관리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기자들을 향해 소리치자 기자들과 카메라들이 일제히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현재 각 병원으로 분산된 환자 현황 및 정확한 신원은 취합 중이니 추후에 다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병원 이름 불러드리겠습니다. 태경병원, 서울대학교 병원, 소망병원…….”

“지금 병원 발표하는 것 같은데요. 빨리 가보세요.”

경찰이 대책본부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고맙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주철이 사람들을 밀치며 다급한 얼굴로 기자들이 모여 있는 대책본부를 향해 뛰어갔다.

***

몇 시간 뒤.

어느 병원 응급실.

“한분씩 말씀하세요. 한분씩.”

병원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의자에 올라가 목소리를 높였고.

“보호자 아닌 기자분들은 밖에서 기다리세요.”

“다른 환자분들도 계시니 질서를 지켜주세요.”

병원 안전요원들은 화재 피해자 가족들과 기자들로 뒤섞여 혼란스런 응급실을 통제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상철아-”

“은비야!! 괜찮아? 다친 데 없어?”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응급실 이곳저곳에서 가족의 안위를 확인한 사람들의 안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아수라장 같던 응급실이 천천히 안정을 되찾았을 때쯤.

주철이 숨을 헐떡이며 응급실 안으로 뛰어들어와.

“화재현장에서 이송된 환자들은 지금 어디 있나요?”

지나가던 안전요원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저쪽 분께 한번 여쭤 보세요.”

안전요원이 지친 얼굴로 데스크에 기대 서류를 확인하는 남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주철이 바싹 타들어 가는 입술로 남자를 향해 뛰어갔다.

“화재 사고 피해자 확인하러 왔는데요.”

“가족분이세요?”

남자가 서류를 뒤적이며 물었다.

“친구입니다.”

각 병원으로 분산된 정확한 피해자 명단이 발표되지 않아 영수의 가족들과 병원을 나눠 확인하러 다니길 벌써 4시간째.

이곳이 마지막으로 들른 병원이었다.

“가족분들은요? 가족분들만 확인 가능하십니다.”

친구라는 말에 남자가 뒤적이던 서류철을 매몰차게 덮었다.

“가족들은 지금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다른 병원은 없는 걸 다 확인했습니다. 여기가 마지막 병원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온몸이 땀에 전 채 하늘이 무너질 듯한 주철의 표정에 남자가 못 이긴 척 다시 서류철을 열었다.

“김영수입니다.”

주철이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김. 김영수 씨. 김. 영. 수. 씨. 김영…….”

빠르게 명단을 훑어 내려가던 남자의 표정에 갑자기 그늘이 드리웠다.

“혹시 수술 들어갔나요?”

남자의 표정을 읽은 주철이 다급하게 물었다.

“가족분들은 언제 오시나요?”

남자는 침통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주철을 바라봤다.

“상태가 심각한가요?”

주철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후- 따라오시죠.”

남자가 긴 한숨을 내쉬며 응급실 반대편에 있는 복도를 향해 걸어가자.

불안한 얼굴로 남자의 뒤를 따라 걷던 주철의 얼굴이 순간 백지장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아. 아니죠?”

“…….”

남자의 무거운 표정이 대답을 대신했다.

“아- 안 돼!”

주철이 벽에 붙은 [영안실] 안내 표지판을 붙잡고 쓰러지며 오열했다.

***

늦은 밤.

삑-

“어서 오세요.”

친절한 버스기사의 인사가 상식을 반겼다.

“…….”

하지만 상식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끼고 핸드폰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버스 뒤로 걸어갔다.

자석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뒷문 반대편 좌석에 자리를 잡은 상식의 온 신경은 여전히 핸드폰에 쏠려있었다.

[“오늘 일어난 화재 사고로 인해 현재까지 사망 1명 부상 12명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상자들의 상태가 심각해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현장에 나가 있는 김윤진 기자 연결해 지금 현재 상황 다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아나운서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화재의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 저기 보이는 6층인데요. 아래에서 시작된 불이 건물 외벽을 타고 빠른 속도로 위로 퍼지면서 피해가 컸습니다.”]

왼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상식이 오른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 라이터를 꺼냈다.

[“또한 옥상으로 통하는 비상구가 잠겨있었고 일부 층의 비상구가 열리지 않았다는 생존자들의 진술을 통해 부실한 비상구 관리가 이번 화재의 피해를 더욱더 키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엄지와 중지로 잡은 라이터를 검지로 튕기며 손가락 안에서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화재 원인은 나왔나요? 방화 가능성은 없나요?”]

작은 핸드폰 화면 속 아나운서가 미간을 찡그렸다.

[“현재까지 나온 화재 원인은 5층 주점에서 일어난 발화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추후 정밀감식을 통해서 밝혀져야 한다는 경찰과 소방당국의 입장입니다.”]

마치 피젯스티너처럼 라이터를 손안에서 돌리던 상식의 입가에 뜻 모를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렇군요. 그럼 추가 소식 들어오는 대로 다시 현장 연결해보겠습니다. 김윤진 기자였습니다. 이번 화재 사건으로 인해…….”]

뉴스를 끈 상식이 자신의 유튜브로 들어갔다.

「상식이의 식상한 하루!」

몇 날 며칠을 고민해 만든 자신의 채널 이름이 먼저 상식을 반겼다.

처음 이 이름을 생각하고 스스로 천재가 아닌가? 라고 생각할 만큼 자기 딴에는 대박 이름이라며 좋아했었다.

그리고 금방 10만, 100만 찍고 돈방석에 앉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열광할 줄 알았다.

지금의 구질구질한 세상이 아닌 금방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 믿었다.

「구독자 4명」

하지만 이내 한 손으로도 세어지는 초라한 구독자 숫자에 상식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이- 씨.”

늘기는커녕 한 명 줄어든 구독자 수에 상식이 돌리던 라이터를 부서질 듯 움켜줬다.

끓어오르는 짜증과 분노에 상식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왜 이렇게 안 느는 거야.”

상식의 손가락이 다급하게 핸드폰 화면 위를 스치자.

환하게 웃고 있는 은찬의 모습과 함께.

「구독자 98만명.」

자신이 꿈꾸던 숫자가 상식의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흠-”

단전에서 올라오는 깊은 탄식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빡침주의!!) 개진상 배달알바]

은찬의 채널 인기 업로드 가장 최신에 올라가 있는 영상 하나가 상식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상식이 잔뜩 독기가 서린 표정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 수 있어요?”]

얼굴이 모자이크된 한 남자가 은찬에게 질문을 하다 집 밖으로 쫓겨나가듯 나가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메라를 향해 남자를 비난하는 은찬의 모습.

저 모자이크 속 인물이 자신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댓글 658개.

은찬짱 1일 전

세상은 넓고 X신은 많다.

추천 7.9천 반대 843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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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아 어서와 1일 전

나 같으면 바로 경찰에 신고 각!!!!! 은찬님이 천사임.

추천 1.9천 반대 230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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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님이 보우하사. 1일 전

모자이크로 가려도 똘끼가 짐. 뭔가 섬뜩함.

추천 87 반대 16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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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들을 쭉 훑어보던 상식이 눈가를 찌푸리며 연신 입술을 깨물었다.

[조회수 58만. ⦁ 1일 전]

하지만 영상 밑에 뜬 조회수를 보자 잔뜩 일그러졌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래도 많이 봤네.”

자신을 비난하는 영상이었지만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에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무도 모르게 태어나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리는 그저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비난을 받고 손가락질받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다.

곽. 상. 식.

이 세 글자를 사람들 머릿속에 영원히 남기는 것.

그것이 이 거지 같은 세상을 참고 살아가는 이유이자.

궁극적인 목표였다.

“정은찬 또 보자.”

상식이 입맛을 다시며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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