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
찬혁의 사무실 지하주차장.
똑. 똑.
자기가 온 줄도 모른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 반장의 모습에 성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운전석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러자 최 반장이 아무 말 없이 빨리 차에 타라고 손짓했다.
“뭐 하세요?”
심각한 최 반장의 모습에 성진이 조수석에 타며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쉿!”
하지만 최 반장은 대답대신 미간을 찡그린 채 검지를 입으로 가져갔다.
“도대체 뭐하시는…….”
이해할 수 없는 최 반장의 행동에 성진이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그리고 이 일은 오직 저만 할 수 있습니다.”]
대시보드 위에 있는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 안에서 자신감 넘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어! 이게 뭐예요?”
갑작스런 상황에 성진이 화들짝 놀라며 되묻자.
“쉿!”
최 반장이 다시 검지를 성진의 얼굴 앞에 들이밀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총비용은 깔끔하게 두 장입니다.”]
“어! 이 목소린.”
차 안에 울리는 목소리들에 집중하던 성진이 순간 익숙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최 반장을 바라봤다.
“맞아. 주찬혁.”
최 반장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설마 이거 준비하시느라.”
이제야 아침 내내 연락이 안 되던 최 반장의 이유가 납득이 됐다.
“어.”
[“두 장이면 이천만 원…….”]
“이 목소리도 어디서 들어봤는데.”
찬혁과 대화하는 또 다른 남자.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에 성진의 몸이 저절로 스피커 쪽으로 향했다.
[“하하 하하하. 농담이시죠?”]
[“그럼 이억 인가요?”]
“이거 윤 법의관님 아니세요?”
성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최 반장을 바라봤다.
“맞아. 거짓말 못한다고 하더니 잘 하네.”
거짓말 못 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떨지도 않고 잘하는 주철의 모습에 최 반장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왜 저기에 계세요?”
다른 사람도 아닌 주철이 뜬금없이 저 자리에 있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것도 제가 진짜 많이 생각해드린 금액입니다.”]
[“그래도 너무 비싼 것 같은데요.”]
“내가 부탁했어.”
“증거 잡으시려고요?”
“어.”
[“비싸다니요. 서울 아파트 한 채가 거저 생기는 건데요. 그 돈이면 서울에서 어디 집도 못 구하는 돈 인거 잘 아시잖아요.”]
거들먹거리는 찬혁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울렸다.
[“그렇긴 하지만…….”]
“그런데 용케 저길 들어가셨네요. 주찬혁이 의심 안 해요?”
“다 미리 손을 써놨지.”
의심 많은 찬혁이 오대방의 소개로 왔다는 주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 만무.
미리 오대방에게 연락해 찬혁에게 확인전화가 오면 무조건 소개한 사람이라고 시킨 최 반장이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투자해서 이만한 수익 올리는 게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 이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이에요.”]
[“그래도 제 예상보다 너무 많이 들어서…….”]
주철의 난감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윤 법의관님 몸에 마이크 설치하신 거예요?”
성진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그럼요?”
“이따 설명해 줄게.”
최 반장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많긴요. 제가 진짜 요즘 우리나라의 주거환경 안정을 위해 특별히 신경 써 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 개소리 계속 듣고 계실 거예요? 그냥 지금 쳐들어가죠.”
찬혁의 말을 듣던 성진이 인상을 구기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기다려.”
하지만 최 반장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형준이 학대 증거도 잡았는데. 이렇게 기다리실 필요 없잖아요.”
이곳에 오기 전 미리 통화로 채린이가 찾은 증거에 대해 최 반장에게 이야기를 한 상황.
찬혁을 바로 눈앞에 두고 머뭇거리는 최 반장의 모습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꼬리만 자르고 끝낼 순 없잖아.”
“네?”
“제대로 머리를 날려야지.”
최 반장이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스피커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
찬혁의 사무실.
“제가 듣기로는 1억 안쪽에서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주철이 난감한 얼굴로 찬혁을 바라봤다.
“요즘 서울 아파트값이 얼마인 줄 아시면서 그런 소리 하시면 안 되죠. 그리고 지금 사장님 조건으로는 청약 당첨될 확률은 거의 제로예요. 제로.”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 치던 찬혁이 정색하며 오른손으로 0을 만들어 주철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제로요?”
주철이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네. 그리고 지금 사장님 재무 상태로는 죽을 때 까지 서울에 집 못 사시는 거 잘 아시잖아요.”
“…….”
히죽거리는 찬혁의 모습에 주철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아무리 지금 상황이 연기라지만.
사실 이름과 직업만 빼고는 자신의 재무 상태나 다른 조건들은 대부분 진짜.
명색이 법의관이지만 결국은 공무원.
개원 의사들 연봉의 1/2 밖에 안 되는 현실에도 나름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는데.
뼈 때리는 찬혁의 말에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제로를 제가 백 퍼센트로 만들어 드리는데. 이억이면 절대 비싼 금액이 아니죠.”
소파에 기대 다리를 꼰 찬혁이 입꼬리를 올리며 거들먹거렸다.
“흠-”
다시 연기에 집중한 주철이 고민하는 얼굴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이렇게 고민하실 일인가요?”
찬혁이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이게 가능한가요?”
주철이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그걸 증명하는 게 아닐까요?”
찬혁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런데 꼭 그 방법밖에 없나요?”
주철이 난감하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방법이 가장 안전하고 최선의 방법이니까요.”
하지만 찬혁의 얼굴에선 죄책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애들을 가지고 하는 건 좀…….”
꼭 연기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이용해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었다.
“어차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인데 오히려 좋은 일 하시는 거죠. 사장님은 집을, 아이들은 1년 동안 안락한 삶을. 이게 서로 서로 윈-윈 아니겠습니까.”
찬혁의 입가에 악마 같은 미소가 흘렀다.
“좋습니다. 그럼 계약서는 지금 바로 쓰는 건가요?”
결심한 듯 주철이 재킷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며 물었다.
“아니요. 오늘은 일단 이 컨설팅 계약서에만 사인하시죠.”
찬혁이 서류 한 장을 주철 앞에 내밀며 빙그레 웃었다.
***
지하주차장 차 안.
[“지금 쓰는 게 아니고요?”]
[“저도 사장님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 해서요.”]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은데 그냥 들어가시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성진이 다급한 얼굴로 운전석에 앉아 미동도 않는 최 반장을 바라봤다.
“…….”
하지만 최 반장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의 대화에 온 신경을 집중할 뿐이었다.
[“전 저에 대해서 다 말씀드렸다고 생각했는데. 저를 못 믿으시는 건가요?”]
예상치 못했던 찬혁의 대답에 스피커 안에서 살짝 당황한 주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못 믿는다기보다. 저희의 운영 방침입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계속 이렇게 듣고만 계실 거예요?”
최 반장을 향한 성진의 목소리가 커졌다.
“…….”
[“아- 네.”]
“반장님!”
[“자. 그럼 사인하시죠.]
다급한 성진의 목소리와 설렘이 묻어나는 찬혁의 목소리가 차 안에 뒤섞여 울리던 그때.
“가자.”
최 반장이 호랑이 같은 눈으로 운전석 문을 열며 밖으로 나갔다.
***
찬혁의 사무실.
“저 사인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후- 네. 물어보시죠.”
하라는 사인을 안 하고 갑자기 질문을 쏟아내는 주철의 모습에 찬혁은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비용은 전액 현금으로 직접 드려야 하나요? 아니면 계좌이체를 해야 하나요?”
“이런 일은 무조건 현금이죠. 증거를 남길 수 는 없으니까요.”
“아- 네. 그렇죠.”
“그럼 사인하시죠.”
찬혁이 계약서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재촉했다.
“죄송한데 진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하지만 주철은 사인대신 벽에 걸린 시계를 슬쩍 바라보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왜 이렇게 안 와.’
지금쯤이면 밖에서 최 반장의 목소리와 함께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잠잠한 밖의 상황에 주철의 입술이 바싹 타들어갔다.
“후- 궁금한 게 참 많으시네요.”
찬혁이 인상을 팍 구기며 기분 나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제 성격이 좀 꼼꼼해서. 그런데 비트코인 같은 걸로 결제하면 안 되나요? 요즘 영화나 드라마 보니까 이런 일은 비트코인으로 해야 안 걸린다고 그걸로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최 반장이 올 때 까지 시간을 끌기 위해 일단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 주철이었다.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비트코인으로 받으면 중간에서 장난치는 놈들이 꽤 있어서요. 저희는 무조건 현금입니다.”
“아- 네.”
“이제 그만 진짜 사인하시죠.”
찬혁이 다시 한번 계약서를 주철의 앞에 밀어 넣던 그 순간.
[“당신들 뭐야.”]
‘왔다.’
[“주찬혁 안에 있지?”]
주철이 그렇게 기다리던 최 반장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렸다.
“아이씨.”
심상치 않은 밖의 상황에 찬혁의 미간이 저절로 찡그러졌다.
“무슨 일 있나요?”
주철이 놀란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보며 사인하려고 손에 쥔 펜을 슬쩍 내려놨다.
“별일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일단 사인부터 하시죠.”
하지만 찬혁은 다시 주철의 손에 펜을 쥐여주며 어떻게든 빨리 이 계약을 끝내고 싶었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뭐든 들이닥친다 해도 항상 뒤탈 없이 증거들을 처리했기에, 그저 이런 상황이 신경 쓰고 거슬릴 뿐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 순간.
쾅-
“주찬혁!”
부서질 듯 문이 열리며 우렁찬 목소리가 사무실 안을 울렸다.
“하- 또 당신들이야?”
문 앞에 서 있는 최 반장과 성진을 보자 찬혁이 짜증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바쁘신가봐.”
최 반장이 빈정거리며 찬혁을 죽일 듯 노려보던 그때.
“죄송합니다. 나와 이 새끼야.”
갑작스런 상황에 허둥대다 두 사람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걸 놓친 건달들이 뒤늦게 호들갑을 떨며 사무실 안으로 뛰어 들어와 두 사람의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넌 혀가 반 토막 났냐? 어디서 처음부터 반말질이야.”
그러자 성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덩치 큰 건달의 팔을 꺾으며 이를 바득 갈았다.
“아- 아- 놔! 이거 놔!”
팔이 꺾인 건달의 괴로운 비명소리가 사무실 안에 퍼지자 기세 좋게 두 사람을 둘러쌌던 다른 건달들이 살짝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때.
“당신들 뭐야! 경찰 부르기 전에 당장 나가!”
실장이 흥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핸드폰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우리가 경찰이야.”
최 반장이 정색을 하며 실장을 바라봤다.
“…….”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그러자 말문이 막힌 실장을 대신해 찬혁이 애써 여유로운 얼굴로 최 반장에게 물었다.
“왜 왔을 것 같아?”
“부동산 컨설팅 받고 싶어서 오신 거면. 지금은 손님과 상담중이라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주실래요?”
찬혁이 최대한 정중한 얼굴로 최 반장에게 밖에 나가 있으라고 손짓했다.
“아- 손님. 그러게 손님이 있으신 걸 몰랐다.”
최 반장이 묘한 미소를 흘리며 소파에 앉은 주철을 바라봤다.
그 순간.
“그거 어디 있죠?”
주철이 소파에서 일어나 최 반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
그러자 예상치 못한 전개에 찬혁은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거기 소파 틈에 어디에 있을 거예요.”
최 반장이 손가락으로 주철이 앉은 소파를 가리키며 씩 웃었다.
“당신 뭐야.”
찬혁이 잔뜩 독기가 오른 눈으로 입술을 바르르 떨며 주철을 바라봤다.
“이게 어디 있나.”
하지만 주철은 찬혁의 말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채 자신이 앉은 소파 이곳저곳에 손을 찔러 넣으며 중얼거렸다.
“당신 뭐냐고!”
찬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지르던 그때.
“찾았다. 이거 맞죠?”
주철이 소파 틈 사이에서 작은 도청기를 꺼내 들어 최 반장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게 왜…….”
“수고하셨어요. 그럼 이제 나머지는 저희가 처리할게요.”
벙찐 찬혁을 바라보던 최 반장이 서슬 퍼런 눈으로 두 소매를 걷어붙이며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