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곳에 내가 있었다-240화 (240/669)

#240.

“막아! 막으라고!”

“아-”

“윽-”

“비켜!”

절규하듯 소리치는 찬혁의 바람과 달리 최 반장 앞의 건달들은 힘없이 쓰러졌다.

“윽-”

“하- 하-”

물건 치우듯 건달들을 하나씩 옆으로 치우며 드디어 찬혁의 앞에 선 최 반장이 분노에 휩싸인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죽어!”

찬혁이 최 반장의 얼굴을 향해 먼저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

하지만 가볍게 주먹을 피한 최 반장이 찬혁의 멱살을 잡아 단숨에 바닥에 메다꽂았다.

쾅-

“아!”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찬혁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일어나 이 새끼야.”

최 반장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찬혁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으- 이 미친. 새…… 으-”

하지만 찬혁은 신음을 토해내면서도 끝까지 최 반장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봤다.

“아프냐?”

쾅-

“으-”

“아프냐고!”

쾅-

최 반장이 포효하며 연이어 업어치기로 찬혁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으- 으- ”

“아프지. 너 같은 새끼도 이렇게 아픈데. 그 조그마한 애는 얼마나 아팠을까. 어!”

최 반장이 목을 조르듯 다시 찬혁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컥- 헉- 오. 오지랖 떨지 마. 흑- 내 새끼 커억-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네. 네가 크억- 뭔 상관이야.”

하지만 찬혁은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괴로워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내 새끼? 이게 진짜 뚫린 입이라고,”

최 반장이 순식간에 찬혁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쾅-

“으- 그만. 그만.”

쓰러진 찬혁이 죽을힘을 다해 바닥을 기며 최 반장에게 그만하라 손짓했다.

기세등등하던 찬혁의 눈빛에 어느새 두려움이 드리웠다.

“뭘 그만해. 일어나 이 새끼야. 아직 시작도 안 했어!”

하지만 최 반장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형준이 몸에 새긴 상처 하나하나 똑같이 네 몸에도 새겨줄게.”

최 반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기어서 도망가는 찬혁의 발목을 지그시 밟았다.

***

“다 끌고 가. 후-”

성진이 줄줄이 사탕처럼 수갑을 찬 건달들을 경찰에 인도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리 성진이라도 열 명이 넘는 덩치들을 상대하는 건 역시 힘에 부쳤다.

“괜찮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긴 최 반장도 마찬가지.

최 반장이 지친 얼굴로 소파에 몸을 던지며 물었다.

“그럼요. 이제야 조금 몸 풀은 것 같은데요.”

성진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복싱하는 포즈를 취했다.

“하루 종일은 무슨. 이마에 흐르는 피나 닦아.”

성진의 귀여운 허세에 최 반장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옆에 있던 각 티슈를 던졌다.

“어. 이게 언제 그랬지? 그냥 살짝 긁힌 거예요. 살짝.”

받아든 각 티슈에서 티슈 몇 장을 꺼낸 성진이 멋쩍은 표정으로 피가 흐르는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후- 엉망이네.”

잠시 밖에 몸을 피하고 있던 주철이 폭격을 맞은 것 같은 사무실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들어왔다.

“안 다치셨죠?”

“아까 정신없을 때 슬쩍 빠져나가서 괜찮았어요.”

최 반장의 물음에 주철이 빙그레 웃었다.

그 순간.

“너 이 새끼들 내가 진짜 다 죽여 버릴 거야!”

마지막으로 수갑을 차고 끌려나가던 찬혁이 세 사람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냥 입을 때리지 그러셨어요. 말 못 하게.”

마지막까지 시끄러운 찬혁을 바라보며 성진이 미간을 구기던 그때.

“잠깐만.”

최 반장이 찬혁을 연행해 가던 경찰들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뒷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오른손을 감싼 채 천천히 찬혁에게 걸어갔다.

“뭐. 뭐야.”

서서히 다가오는 최 반장의 모습에 찬혁이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하던 그때.

“이건 내가 가져갈게.”

최 반장이 손수건을 감싼 오른손으로 찬혁의 벨트를 단숨에 풀었다.

“미쳤어? 뭐하는 거야 이 변태새끼야!”

갑작스런 상황에 찬혁이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거 맞지?”

“네.”

벨트를 들어 보이며 묻는 최 반장을 향해 성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감식 좀 부탁드릴게요.”

혹시 증거가 손상될까 최 반장이 주철에게 조심스럽게 벨트를 건넸다.

“이걸요? 어떤 감식이요?”

“혈흔 감식 좀 부탁드려요.”

“…….”

최 반장의 말에 일순간 찬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혈흔이요? 무슨 혈흔인데요?”

주철이 손수건에 싼 벨트를 주변에 굴러다니던 빈 서류 봉투에 조심스럽게 넣으며 물었다.

“아까 급하게 오느라 차 안 가지고 오셨죠. 자세한 이야기는 국과수 가면서 김 형사한테 들으세요. 김 형사가 국과수까지 좀 모셔다드려.”

“네. 가시죠.”

“언제까지 해드리면 될까요?”

“최대한 빠르게 부탁드려요. 오늘 안에 나오면 좋고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것도…….”

주철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벨트에 묻은 혈흔이라니.

이런 걸 찾아낼 수 있는 건 채린이 밖에 없다 생각했다.

“네.”

주철의 눈빛이 뭘 말하는지 아는 최 반장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이따 경찰서에서 뵐게요. 가시죠.”

“어. 수고해.”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성진과 주철을 바라보던 최 반장이 고개를 돌려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는 찬혁을 바라봤다.

“뭘 그렇게 놀래. 아직 진짜 놀랄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

경찰서 취조실.

[“전 저에 대해서 다 말씀드렸다고 생각했는데. 저를 못 믿으시는 건가요?”]

[“못 믿는다기보다. 저희의 운영 방침입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아- 네.”]

[“자. 그럼 사인하시죠.]

취조실 안에 아까 사무실에서 녹음한 주철과 찬혁의 대화가 노트북 안에서 흘러나왔다.

탁-

“들어보니까 이제 이해가 가시나요? 왜 여기에 주찬혁이 잡혀 왔는지.”

성진이 노트북 스페이스바를 눌러 녹음파일을 멈추며 찬혁의 변호사를 빤히 바라봤다.

“이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죠?”

하지만 변호사는 여전히 전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입꼬리를 내리며 되물었다.

“그럼 지금 이게 문제가 없는 대화 내용이라는 겁니까?”

뻔뻔한 변호사의 모습에 성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네. 그저 일상적인 대화일 뿐이지 않습니까.”

쾅-

“일상적이요? 지금 애들을 이용해서 불법적으로 아파트 청약을 받아주겠다는 이야기가 그냥 일상적인 대화라고요?”

성진이 책상을 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그냥 부동산 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상적인 대화인데요.”

“지금 여기에 이렇게 불법적인 대화 증거가 버젓이 있는데. 계속 발뺌하는 겁니까!”

성진이 노트북을 변호사 쪽으로 돌리며 핏대를 올렸다.

“저희는 발뺌한 적도 없고. 결론적으로 뭐가 불법적이라고 말씀하시는 건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변호사가 다시 노트북을 성진 쪽으로 돌리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위 입양을 통해 아파트 청약을 받아주겠다고 돈 2억을 요구했잖아요.”

그리고 그 차분한 목소리가 성진의 화를 더 돋웠다.

“저희 의뢰인께서 그걸 실행했습니까? 아니잖아요. 잘 아시겠지만 이 정도로는 예비죄(豫備罪)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거 형사님께서 더 잘 아실 텐데요.”

변호사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훗-”

그러자 취조실에 들어온 이후 입 한번 열지 않던 찬혁이 돈값을 톡톡히 하는 변호사의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웃지 마라.”

성진이 이를 바득 갈며 찬혁에게 경고를 날렸다.

“그리고 모든 말에 법적 책임을 지을 수는 없죠. 살면서 형사님도 이런 말 하실 때 있잖아요. 밥 한번 먹자. 술 한번 먹자. 친구들한테 내가 돈 벌면 저거 사주겠다. 뭐 이런 의미 없는 이야기들 많이 하잖아요. 저희 의뢰인께서 한 말들은 그런 가벼운 농담 같은 말입니다.”

“계속 말장난할 겁니까!”

“장난은 형사님들이 치신 것 같은데요. 영장도 없는 불법 도청이라…… 이거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각오하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여유로운 얼굴로 말을 하던 변호사가 순간 정색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성진을 째려봤다.

“각오? 지금 말 다 했어요?!”

성진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던 그 순간.

“녹음 건은 사후영장 받아놨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 김 형사 잠깐 밖에 나가 있어.”

최 반장이 취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주찬혁 이제 그만 하자.”

성진이 나간 의자에 자리를 잡은 최 반장이 경멸하는 눈으로 찬혁을 빤히 바라봤다.

“그만해? 뭘 그만해. 내가 너 폭행죄로 반드시 잡아 처넣을 테니까 기다려. 김 변호사 저 인간 당장 고소해.”

성진 앞에서 시종일관 입을 닫고 있던 찬혁이 최 반장을 보자 아까 맞은 게 분하고 억울한지 좀처럼 흥분을 참지 못했다.

“이거 보이지? 난 예상치 못한 피의자의 과격한 저항에 정당한 업무수행을 한 거야.”

하지만 아까 살짝 긁힌 뺨에 손바닥만 한 반창고를 붙인 최 반장이 찬혁과 변호사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당당하게 말했다.

“닥쳐. 내가 진짜 너 가만 안 둘 거야.”

찬혁이 이를 바득 갈며 죽일 듯 노려보자.

“너나 닥치고. 자료 어딨어?”

최 반장이 눈을 피하지 않은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자료?”

“네가 지금까지 애들 이용해서 불법적으로 청약받아준다고 하면서 받았던 자료들하고 이면 계약서 말이야.”

솔직히 녹취가 찬혁을 잡아넣을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 못하다는 걸 최 반장도 잘 알고 있었다.

녹취는 그저 찬혁을 이곳에 데려오고, 잡아 둘 수 있는 임시방편 일 뿐.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야 했다.

“아니 도청도 모자라서 이제는 없는 자료까지 내놓으라는 거야? 어이가 없네 진짜.”

자료를 달라는 거 보니 아직 자신이 숨겨놓은 자료까지는 찾지 못한 듯한 최 반장의 모습에 찬혁이 의자에 기대 헛웃음 치며 씩 웃었다.

“좋아.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최 반장이 노트북을 접으며 분위기를 바꿨다.

“안 걸릴 줄 알았지?”

“무슨 소리인지.”

“애들 때린 거 말이야. 죽을 때까지 안 걸릴 줄 알았지? 아이들 몸에 난 상처는 아물 거고, 멍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테니까 말이야.”

최 반장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 말씀하신 아동학대에 건은 아무 근거도 없는 명백한 허위 사실…….”

“쉿! 내가 이곳에 오는 많은 쓰레기 같은 놈들 중에 제일 증오하는 인간이 뭔지 알아?”

검지를 변호사의 얼굴에 가져대며 말을 끊은 최 반장의 입술이 분노로 바르르 떨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찬혁이 시건방진 표정으로 대꾸했다.

“딱 너 같은 인간이야. 애들한테 손찌검하고 욕하고, 마치 자기 장난감처럼 마음대로 휘두르고 가지고 놀면서 애들 데리고 불법으로 돈 버는 새끼들.”

최 반장이 한마디 한마디에 증오와 분노를 담아 찬혁의 얼굴에 침 뱉듯이 말했다.

“너무 흥분하시네.”

찬혁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지금 웃을 수 있을 때 맘껏 웃고 까불어 봐. 곧 질질 짜면서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할 테니까.”

“아-휴 진짜 우리나라 경찰 허세는 알아줘야 해. 아니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증거를 가져오세요. 증거를!”

찬혁이 테이블 앞으로 몸을 쭉 빼 최 반장을 빤히 바라보며 약을 올렸다.

“조금만 기다려. 이제 곧 검사결과 나올 테니까.”

“그런데 내가 그쪽 기대를 깨기는 싫지만 말이야. 내 벨트에서 혈흔이든 뭐가 나오든. 당신은 날 잡을 수 없어.”

찬혁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쾅-

“아니. 넌 여기서 절대 벗어날 수 없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최 반장이 찬혁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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