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곳에 내가 있었다-275화 (275/669)

#275.

“아- 떨어져 죽은 여자 말하는 거죠?”

건물에서 사람이 투신(投身)한 사고.

하지만 춘식은 놀라는 표정 하나 없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네.”

그리고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하는 이런 춘식의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 최 반장이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데요?”

눈치가 없는 건지 눈치 없는 척을 하는 건지.

춘식이 살짝 귀찮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CCTV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춘식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기는 성진도 마찬가지.

성진이 퉁명스런 얼굴로 CCTV 모니터를 가리키자.

“못 보여드릴 것 같은데요.”

춘식이 거만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며 기분 나쁘게 입꼬리를 올렸다.

“뭐요?”

성진이 살짝 발끈하며 춘식에게 한발 다가서자.

“제가 여기 직원이 아니라 서요. 전 이거 하나도 몰라요.”

춘식이 빈정거리며 히죽거렸다.

“그럼 누군데 여기 있는 겁니까?”

“여기 직원이 제 친구인데 지금 잠깐 편의점 갔다 온다고 좀 봐달라고 해서요.”

최 반장의 질문에 춘식이 다리를 꼬며 다시 핸드폰으로 눈을 돌렸다.

“그럼 친구분은 언제 와요? 급한 일이라서 그런데 친구분에게 연락 좀 해줄래요?”

“아- 귀찮아. 잠깐만요.”

최 반장의 말에 춘식이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마지못해 핸드폰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

성진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귀에 가져 댄 춘식을 위아래로 훑었다.

30대 초중반.

짧은 스포츠머리에 딱 봐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덩치와 인상은 그냥 깡패의 전형적인 모습 그 자체였다.

“어. 너 어디야? 지금 짭…… 아니 경찰들이 CCTV 좀 보자고 하는데.”

춘식이 짭새라는 단어를 말하려다 슬쩍 말을 돌리며 두 사람의 눈치를 봤다.

‘짭새?’

분명 일부러 들으라고 한 소리.

실수일 리가 없는 상황에 성진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춘식을 노려봤다.

“어. 빨리 와.”

통화를 마친 춘식이 다시 핸드폰 게임을 켜며,

“금방 온대요.”

게임에 시선을 고정한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새끼 뭐야 진짜.’

성진이 이를 바득 갈며 주먹을 슬며시 말아 쥐었다.

잠시 후.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전혀 춘식의 친구라는 게 믿기지 않는, 30대로 보이는 순박하게 생긴 남자가 편의점 비닐봉투를 들고 헐레벌떡 사무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진짜 친구 맞아요?”

성진이 어이없는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묻자.

“그럼 뭐 우리가 애인 사이일까 봐요?”

춘식이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 던지며 혼자 키득거렸다.

“CCTV 확인 좀 하고 싶은데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는 최 반장이 춘식의 말을 귓등으로 넘긴 채 남자를 바라봤다.

“아까 사고 때문에 그러시죠? 그럼 사고 시간 부근 CCTV 보여드리면 되는 거죠?”

잠깐 춘식의 표정을 살핀 남자가 의자에 앉으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조작했다.

“네. 건물에 CCTV가 총 몇 대가 있죠?”

“총 20대인데. 지금 수리 중인 게 몇 개 있어서 제대로 작동하는 건 한 12개 정도 될 것 같은데요.”

남자가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이며 말했다.

“엘리베이터하고 옥상CCTV는 어떤 건가요?”

성진이 한쪽 벽면을 꽉 채운 CCTV 모니터를 바라보며 물었다.

“엘리베이터는 저기 오른쪽 화면이고요. 옥상에는 CCTV가 없는데요.”

남자가 오른쪽 위에 있는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다 성진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없어요?”

성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네.”

“원래 옥상에는 CCTV가 없었어요?”

최 반장이 성진과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정황상 단순 자살로 결론지어질 사건이었지만.

일단은 타살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놓지 않을 수 없었기에.

CCTV로 사고 상황을 확인하는 건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네.”

“그럼 엘리베이터하고…… 아니 일단 그 시간데 CCTV 다 보여주세요.”

최 반장이 모니터 전체를 손으로 가리키며 심각한 얼굴로 말하자.

“……네.”

슬쩍 춘식과 눈을 맞춘 남자가 다시 마우스 쥔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

“계단으로 올라간 것 같은데요.”

성진이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꽤 오랜 시간 사건추정 시간 앞뒤의 모든 CCTV 화면을 확인했지만 옥상으로 올라가는 미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곳 CCTV는 없나요?”

최 반장이 굳은 표정으로 남자에게 묻자.

“지금 보신 게 다 인데요. CCTV 파일 복사해 드릴까요?”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남자가 벌써 빈 USB를 컴퓨터에 꽂으며 말했다.

“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언제 친구예요?”

최 반장이 편의점에서 사온 과자를 집어 먹으며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춘식을 바라보다 남자에겐 넌지시 물었다.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여기 있습니다.”

순간 멈칫하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대답한 남자가 컴퓨터에서 뽑은 USB를 최 반장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가자.”

춘식을 미심쩍은 눈길로 다시 한번 바라보던 최 반장이 성진에게 그만 가자 고갯짓했다.

“네. 그럼 따로 연락드릴 때까지 폴리스라인으로 쳐진 곳은 사람들 접근 좀 잘 막아주세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성진의 말에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뭐 나오면 이리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남자가 성진이 건넨 명함을 빤히 바라보다 주머니에 넣으며 사무실 문을 열어줬다.

“그럼 오늘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 반장과 성진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안녕히 가세요.”

춘식이 기다렸다는 듯 히죽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

뜬금없는 인사에 두 사람이 동시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춘식을 노려보다 대꾸도 없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쾅-

사무실 문이 닫히자.

“뭐 저런 게 다 있어.”

성진이 마치 투시라도 해 춘식을 노려보듯 굳게 닫힌 사무실 문을 째려보며 투덜거리다.

“반장님 둘이 친구라는 말 믿으세요?”

의심 가득한 얼굴로 최 반장에게 물었다.

“아니.”

최 반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뭔가 수상한데 한번 파볼까요?”

“일단은 병원부터 가자.”

그러자 앞서가던 최 반장이 씁쓸한 입안에 금연사탕을 밀어 넣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

TK 병원 로비.

“세리. 세리 지금 어디 있어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안내데스크로 뛰어온 순영이 안내직원을 보자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였다.

“진정하시고요. 무슨 일 때문에 찾아오셨나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안내직원이 침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세리. 세리 지금 어디 있냐고요.”

하지만 순영은 당장이라도 안내직원의 멱살을 잡을 듯 데스크에 몸을 기댄 채 소리 질렀다.

“좀 진정하시고요. 환자분 성함이 세리이신가요? 이름과 성을 정확히 말씀해주셔야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아 됐어. 영안실. 영안실이 어디야?”

이미 성진에게서 미향의 사망 소식을 통화로 전해 듣고 왔기에.

차라리 장례식장으로 바로 찾아가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지하 2층인데. 저쪽 보이시는 엘리베이터 타시면 됩니다.”

안내직원의 말에 순영이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김순영 씨.”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에 순영의 고개가 돌아갔다.

“뭐야 당신들.”

최 반장과 성진의 모습을 보자 순영이 흥분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삿대질을 하며 뛰어갔다.

“찾아준다면서. 찾아준다면서! 누가 시체 찾아달라고 했어!”

그리고 병원 로비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진정하세요. 오미향 씨 일은 저희도 유감입니다.”

성진이 흥분한 순영을 말렸다.

“유감? 지금 그게 당신들이 할 말이야! 당신들이 죽인 거야 당신들이! 당신들이 세리를 죽인 거라고!”

“저기요. 오미향 씨 일은 저희도 진짜 유감인데요. 적당히 좀 하죠. 보는 사람들 눈도 많은데.”

로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성진이 짜증난 얼굴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말했다.

“왜? 사람 죽여 놓고 쪽팔린 줄은 아나 보지?”

“김순영 씨!”

“그만해. 김순영 씨 일단 진정하시고 가서 오미향 씨 신원확인부터 좀 해주시죠.”

발끈하는 성진을 막아선 최 반장이 근엄한 눈빛으로 쏘아보자.

“후- 후- 이따 이야기해요.”

호랑이 같은 최 반장의 눈빛에 살짝 기가 죽은 순영이 마지못한 척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겼다.

***

한기(寒氣)가 도는 영안실.

흰 보자기가 젖혀지며 이내 창백한 미향의 얼굴이 보이자.

“아-”

순영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왜. 왜 그랬어. 이 나쁜X아.”

그리고 영안실이 떠나가라 원망과 울음을 쏟아냈다.

“미안할 거 왜 죽었어. 왜…… 아-”

“잠시 나가 있자.”

오열하는 순영을 묵묵히 바라보던 최 반장이 성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심스럽게 영안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후- 후-”

영안실 문이 열리며 퉁퉁 붓고 흘러내린 마스카라로 엉망이 된 눈으로 순영이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좀 괜찮아요?”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구석 하나 없는 순영이었지만.

그래도 친구를 위해 진심을 다해 슬퍼해 주는 모습에 살짝 마음이 약해진 성진이 물병을 건네며 물었다.

“후-”

성진이 건넨 물병을 말없이 받아들고 단숨에 반을 비운 순영이 손으로 입을 닦으며 복도 의자에 털썩 앉았다.

“유서는 없었어요?”

그리고 핸드백 안에서 콤팩트를 꺼내며 성진에게 물었다.

“네.”

“문자 한통 딸랑 보내놓고 죽으면 어쩌자는 거야.”

콤팩트를 거울로 엉망이 된 얼굴을 확인하며 짜증을 냈다.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고요?”

순영이 뭍티슈로 엉망이 된 화장을 지우며 쌀쌀맞게 물었다.

“네.”

갑자기 변한 순영의 분위기에 성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독한년 고소공포증도 있는 게…… 아이씨 짜증나. 샵에 또 가야 하잖아.”

“고소공포증이 있었어요?”

흘리듯 내뱉은 순영의 말에 최 반장이 미간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네. 그래서 육교 같은 곳은 다니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런 X이 10층에서 뛰어내리고. 어지간히 내 돈 갚기 싫었나 보네. 아이 씨.”

“…….”

순영의 대답에 최 반장과 성진이 아무 말 없이 황당한 표정으로 눈을 맞췄다.

방금 전까지의 오열이 죽은 미향을 위한 슬픔인지.

천만 원을 날리게 된 억울함의 눈물인지 헷갈리는 두 사람이었다.

“그럼 전 가봐도 되죠. 샵에 가서 화장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아- 귀찮아.”

어느새 선글라스를 낀 순영이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례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성진의 말에 순영이 황당한 얼굴로 대답했다.

“보니까 주변에 연락할 일가친척 한 명 없는 것 같은데. 친구잖아요.”

“그렇게 소름끼치게 친하지도 않았거든요.”

“헛-”

순영의 대답에 성진이 기가 차는 얼굴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난 신원확인 했으니까 나머지는 알아서들 하세요.”

“아니 감이 안 좋다고 그렇게 친구 찾아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쌀쌀맞게 돌아서는 순영의 앞을 성진이 막아섰다.

“아니 내가 왜 쟤 장례를 치러줘요. 그리고 난 이미 쟤한테 천 만원 노잣돈으로 준거나 다름없거든요.”

순영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정색을 했다.

“뭐요? 노잣돈? 허- 진짜 어이가 없어서.”

“어이는 내가 없거든요.”

“알았어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만 가 봐요.”

또다시 한판 붙으려는 두 사람을 말리며 최 반장이 순영에게 빨리 가라고 손짓했다.

“반장님!”

“그럼 수고하세요.”

두 사람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순영이 다시 선글라스를 끼며 도도하게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하- 진짜 진상. 저 개진상.”

성진이 멀어지는 순영의 뒤에 주먹을 들어 올리며 씩씩거리던 그때.

“저 장례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여기 병원에서 하시나요?”

영안실 문을 열고 나온 직원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아니요. 저희가 따로 옮길 곳이 있어서요.”

“어디로 가시게요?”

성진이 궁금한 얼굴로 말했다.

“윤 법의관님한테 전화 좀.”

최 반장이 미간을 찡그리며 다시 영안실 안으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