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곳에 내가 있었다-306화 (306/669)

#306.

경찰서.

“이미 다 끝났으니까 아는 거 빨리 다 불어.”

성진이 앞에 앉은 춘식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불긴 뭘 계속 불어요. 난 내가 여기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춘식이 답답한 얼굴로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연행되는 차 안에서 자기도 모르게 잠깐 졸은 것 같은데 눈 떠보니 경찰서.

거기다 경찰서 안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도 없는데, 취조를 받고 있는 이 황당한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가지 않았다.

쾅.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말 안 해!”

성진이 책상을 내려치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지만.

‘진짜 기억 못하네.’

경찰서에 오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하나도 기억 못하는 춘식을 보자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네가 여길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는 게!”

수갑을 찬 채 옆에 앉아있던 두식이 춘식을 바라보며 핏대를 올렸다.

“조용히 해라. 왜 내가 할 대사를 네가 하고 있어.”

성진이 입꼬리를 내리며 두식을 째려봤다.

“이게 다 누구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춘식이 두식을 죽일 듯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목을 졸라 죽일 듯 몸을 들썩였지만.

“누구 때문이긴 너 때문이지. 왜 아무 죄 없는 불쌍한 애를 죽이려고…….”

두식은 마치 춘식의 약을 올리듯 덤덤한 얼굴로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시킨 거잖아 이 새끼야!”

“이게 지금 누구한테 뒤집어씌우려고. 너 순영이 죽이려고 병원에 침입했다 걸려서 잡혀 온 거야 인마. 현행범이라고.”

“뭐 이 새끼야!”

쾅.

“둘 다 조용히 안 해!”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향해 성진이 다시 책상을 내리치며 앞에 앉은 세 인간을 바라봤다.

수갑을 차고 못난이 삼 형제 인형처럼 인상을 구긴 채 쪼르르 앉아있는 두식, 춘식, 송 매니저의 표정은 다 제각각이었다.

두식과 춘식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고.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송 매니저는 불안한 얼굴로 연신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하지만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는 세 사람의 한 가지 공통점은 아무도 경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

“형사님 전 정말 억울합니다.”

무슨 결심이 섰는지 송 매니저가 갑자기 고개를 들며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전 그냥 호기심에 카메라를 설치한 거지. 이 두 사람이 한 일하고는 정말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저도 이 두 인간한테 당한 피해자라고요.”

그리고 두식과 춘식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며 변명과 함께 자신의 억울함을 쏟아냈다.

“상관이 없어?”

“피해자?”

두식과 춘식이 기가 차는 얼굴로 동시에 소리쳤다.

“저를 이 두 인간과 똑같이 대하시는 건 정말 억울합니다. 전 납치범도 살인 미수범도 아니라고요.”

하지만 두 사람의 격한 반응에도 송 매니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야. 송창기.”

두식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송 매니저를 째려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대표님이라고 부르며 갖은 아부를 떨던 인간이, 한순간 얼굴을 바꿔 자기만 살겠다고 형사에게 붙는 모습이 기가 찼다.

“이런 쓰레기 새끼. 너 혼자 살겠다 그거야? 어!”

춘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송 매니저에게 소리 질렀다.

“솔직히 내가 너희들이 시키는 대로 한 거 말고 또 뭐가 있어. 형사님 전 정말 죽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하라는 대로 한 것뿐이에요. 물론 저도 몰래카메라 설치한 건 잘못했지만. 이 두 새끼는 그냥 인간 말종. 아니 악마예요. 악마!”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송 매니저가 지금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불만들을 한 번에 터트렸다.

“뭐 악마? 인간 말종?”

“너 나가서 보자.”

“형사님 지금 저 협박하는 거 보셨죠. 협박죄도 추가해 주세요.”

마치 선생님에게 이르는 초등학생처럼 송 매니저가 호들갑을 떨며 성진에게 소리쳤다.

“그쪽도 가만히 있어요. 아무리 살려고 억지로 시킨 대로 했다고 하지만 그건 핑계에 불과하니까.”

“…….”

성진이 꾸짖듯 말하자 잠시 기세등등하던 송 매니저의 고개가 다시 숙여졌다.

“그리고 너도 나가서 보긴 뭘 봐. 넌 평생 못 나갈 테니까 꿈 깨.”

“헛- 누가 못 나가요? 몰래카메라 하나로 우리 억지로 엮으려는 모양인데. 그걸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은데.”

성진의 말에 두식이 콧방귀를 뀌며 거들먹거렸다.

“네 얼굴이 이렇게 떡하니 나오는데 발뺌을 하시겠다.”

성진이 태블릿 화면 속 몰래카메라에 찍힌 두식의 모습을 보여주며 몰아세웠지만.

“아니 룸에서 약하다가 갑자기 토할 것 같다고 해서 화장실로 데려다준 건데 그게 뭐 죄가 돼요?”

두식은 화면 속 자신을 가리키며 거들먹거렸다.

“네가 김순영 씨한테 약 주사했잖아!”

“내가 순영이한테 주사했다는 증거 있어요? 봐요. 난 그냥 순영이가 오바이트 하는 거 도와주고 있는 것뿐이라고요.”

두식이 껄렁껄렁한 표정으로 태블릿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너 계속 헛소리할래? 그럼 그때는 왜 거짓말한 거야. 너 그때 반장님하고 통화하면서 일 있어서 지방 내려가는 중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김순영 씨가 쓰러진 이곳에 네가 찍혀 있냐고. 여기에 찍혀 있다는 것 자체가 네가 범인이라는 거잖아!”

성진이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이자.

“내가 거짓말 한 건 인정하는데. 그건 내가 순영이한테 약 판 거 걸릴까 봐 그런 거지. 다른 뜻은 없었다고요.”

두식도 한마디도 지지 않고 빠득빠득 대들었다.

“네가 생각해도 너무 구차하지 않냐? 억지 좀 부리지 마.”

“억지라뇨. 이걸 보세요. 난 순영이가 하도 제발 한 대만 더 팔라고 애원해서 어쩔 수 없이 준 거지. 내가 직접 주사 놓은 게 아니라니까.”

두식이 약을 주머니에서 꺼내는 장면까지는 정확하게 보였지만.

약을 순영에게 주사하는 모습은 춘식에게 가려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정신도 못 차리는 사람이 약을 더 달라고 했다고?”

성진이 태블릿을 거칠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가 차는 얼굴로 말했다.

“난 보이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뿐인데 억지라뇨. 나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말 못 해요. 이제 곧 내 변호사 올 테니까 그 사람이랑 이야기해요.”

결정적인 장면이 찍히지 않은 영상.

경호가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선임한 로펌과 돈이라면 유죄(有罪)도 무죄(無罪)로 바꿔줄 변호사.

이 정도면 충분히 한번 비벼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두식이었다.

그리고 두식은 경호가 자신을 절대 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때.

“변호사한테 여기 오는 거 괜한 헛걸음이니까.”

최 반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바로 구치소로 오라고 연락해.”

서류 봉투를 두식의 앞에 놓으며 씩 웃었다.

***

무릉도원.

“지금?”

통화를 하는 경호의 표정이 일순간 구겨졌다.

“후-”

긴 한숨을 공기 중으로 뿜은 경호가.

“지금 김 변호사한테 연락해서 당장 경찰서로 가라고 해. 그리고 적당한 선에서 알아서 처리하라고 전해.”

핸드폰을 반대 귀로 바꿔 들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두식과 춘식이 모든 걸 짊어지고 간다 항상 호언장담했지만.

사람은 쉽게 믿을 수 없는 법.

경찰서에 있는 두식과 춘식은 경호가 보내줄 변호사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바람과 달리 경호는 자신에게 불똥이 뛰기 전에 미리 변호사를 통해 차단할 계획이었다.

쾅.

“씨이.”

통화를 끊은 경호가 주방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이를 바득 갈았다.

“최 반장 이 인간이 기어코.”

자신이 만들어놓은 평화로운 낙원을 조금씩 허물려는 최 반장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다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든 경호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어. 알아보라는 건 어떻게 됐어?”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경호의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알았어. 계속 확인해 봐.”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수화기 너머의 내용에 귀 기울이던 경호가 무거운 표정으로 통화를 끊으며 핸드폰을 선반 위에 던졌다.

“마음에 드는 놈들이 하나도 없어. 하나도.”

경호가 앞치마를 두르며 못마땅한 얼굴로 이를 바득 갈던 그때.

드르륵

“안녕하세요.”

인혜의 인사와 함께 채린과 나연이 동시에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 안녕하세요.”

예상치 못한 세 사람의 방문에 경호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가게 문 여신 거 맞죠?”

나연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네. 들어오세요. 오늘은 세 분이서만 오셨네요.”

앞치마에 손을 슥슥 닦으며 주방 밖으로 나온 경호가 최 반장과 성진의 부재(不在)를 슬며시 떠봤다.

“여자들끼리만 모이는 날도 있어야죠. 저기에 앉을까요?”

인혜가 빙그레 웃으며 가게 안쪽 테이블로 걸어갔다.

“편한 곳으로 앉으세요. 솔직히 세 분이서만 오시니까 분위기는 더 좋은데요. 반장님하고 김 형사님께는 비밀입니다. 하하하. 자- 그럼 오늘은 뭘로 드릴까요?”

갑작스런 세 사람의 등장에 잔뜩 긴장했던 경호가 최 반장과 성진이 없는 걸 확인하자 농담까지 던지며 슬며시 경계심을 풀었다.

“사장님이 맛있는 걸로 알아서 주세요.”

자리를 잡은 나연이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말했다.

“흠- 오늘은 뭐가 좋을까…… 뭐 드시고 싶은 건 없으세요?”

경호가 채린이를 향해 묻자.

“알아서 해주세요.”

채린이 새침한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그 말이 제일 어려운데. 그럼 제가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경호가 꾸벅 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저기 있던 채린 씨 사진은 어디 갔어요?”

가게를 둘러보던 나연이 텅 빈 이벤트 게시판을 보며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아- 게시판 좀 새롭게 꾸미고 붙이려고 빼놨어요.”

칼질을 하던 경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채린과 인혜는 왠지 모를 찜찜함에 쉽게 웃지 못했다.

“전 또 채린 씨 사진 혼자 보려고 집으로 가져가신 줄 알았네요.”

“채린 씨가 미인이기는 하지만. 제가 그런 마음 품었다가는 저 잡혀갑니다. 나이 차가 얼마인데요. 하하하.”

나연의 농담에 경호가 수갑 찬 시늉을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수갑 차시는 폼이 너무 익숙해 보이시는데요.”

“그런가요? 하하하. 저 이렇게 생겼어도 나름 사고 안 치고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알죠. 농담이니까 기분 나빠 하지 마세요.”

“기분 나쁘긴요. 이렇게 생긴 제 잘못이죠. 하하하하.”

계속되는 나연의 짓궂은 농담에도 경호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사장님 마음도 넓으셔. 그래서 저희가 여기 자주 온다니까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살짝 분위기를 풀은 나연이 인혜에게 눈빛으로 넌지시 사인을 보내자.

“그런데 오늘은 표정이 좀 피곤해 보이시네요.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인혜가 바로 경호에게 떡밥을 던졌다.

“그래 보이나요?”

칼질을 하던 경호가 칼질을 멈추며 인혜를 바라봤다.

“네. 스트레스 많이 받으신 것 같은데요.”

“장사하다 보면 이런저런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죠.”

경호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다시 칼질을 했다.

“그래서 간 쓸게 다 빼놓고 장사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죠. 가게를 꾸려가는 일이 쉽지가 않네요. 내 맘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생각지도 못한 일도 터지고요.”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채린이 묘한 표정으로 경호를 빤히 바라보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렇죠.”

순간 다시 칼질을 멈춘 경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채린이를 바라봤다.

“힘내세요. 오늘은 저희가 매상 팍팍 올려드릴게요.”

나연이 주먹을 불끈 쥐며 환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오늘은 세 분을 위해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 드릴게요.”

경호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세 사람에게 말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러자 나연과 채린이 고마운 얼굴로 리액션을 하며 동시에 인혜를 바라보자.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고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보답으로 사장님께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드릴까요?”

인혜가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경호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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