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
“그럼 이성오도 그 사이트 회원이라는 거예요?”
“VPN까지 써서 들어갈 정도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성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나연이.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심각한 표정으로 팀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가요?”
“전 저 장면이 너무 이상한데. 저만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가요?”
고개를 갸웃하는 최 반장의 말에 나연이 미간을 찡그리며 팀원들에게 되물었다.
“이상해요. 많이.”
그러자 채린이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심각한 얼굴로 나연과 눈을 맞췄다.
“그럼 나랑 같은 생각인거지?”
“네. 선생님 김범진 진짜 해리성 인격장애 맞아요?”
채린이 굳은 얼굴로 인혜에게 묻자.
“뭐야 그럼 김범진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최 반장이 입안에 오물거리던 사탕을 자기도 모르게 꿀꺽 삼키며 놀란 얼굴로 덩달아 인혜에게 물었다.
“저도 지금 좀 당황스러워서…….”
인혜가 떨리는 눈빛으로 화면 속 범진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저걸 보고 어떻게 이성오 아니 김범진, 아무튼 저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안 거야?”
“김범진이라면 몰라도 컴퓨터를 잘 못한다고 하는 이성오가 저런 걸 할 수 있다는 게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요.”
컴퓨터를 잘 모르는 최 반장에게 채린이 설명을 해주자.
“아- 그 말 듣고 보니까 이상하긴 하네.”
최 반장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무리 컴퓨터 잘 못 한다고 해도 VPN 정도는 인터넷 조금만 찾아보면 초등학생도 할 수 있게 설명해 놓은 것도 엄청 많은데, 저걸로 해리성 인격장애가 아니라고 의심하기에는 좀…….”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저 손놀림이나 프로그램 언어 쓰는 것 보면 단순히 인터넷에 있는 거 따라하는 수준이 아녜요.”
의문을 제시하는 주철에게 나연이 다시 CCTV 화면을 플레이 시키며 부연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 도 팀장 생각은 처음부터 이성오라는 캐릭터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죠?”
“봐봐. 그런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성진의 말에 나연이 다시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짜 김범진이 거짓말 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최 반장이 다시 한번 인혜의 대답을 재촉했다.
“혼란스럽네요.”
하지만 인혜는 심란하고 혼란스런 얼굴로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 했다.
“혼란스러우시다는 건 정 선생님은 아직 김범진을 믿으신다는 건가요?”
이미 답이 나온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인혜를 나연이 이해할 수 없단 얼굴로 바라봤다.
“흠- 일단 제가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김범진이 제 환자이기 때문에 제가 동정하거나 그를 전적으로 믿고 있어서 지금 이 자리에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건 아니에요.”
인혜가 바싹 타들어간 입술을 물로 가볍게 축이며 말을 이었다.
“단지 아직까지는 저 화면 하나로는 판단을 내릴 근거가 부족하니까 섣부른 판단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저 화면 하나로 판단하는 건 성급한 면이 없지는 않죠.”
주철이 화면 속 범진의 모습을 바라보며 인혜의 말을 보탰다.
“좋아요. 저도 일단 확실한 게 좋으니까 판단은 잠시 보류할게요. 그런데 저 인간 그냥 저렇게 둘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한발 물러선 나연이 화면 속 사이트를 보며 히죽거리는 범진을 죽일 듯 노려봤다.
“단순히 사이트 접속한 것만으로는 죄가 안 돼서.”
성진이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다른 걸로라도 잡을 방법이 없을까요?”
채린이 심각한 얼굴로 최 반장을 바라보자.
“흠- 다른 뭔가로 걸어야 할 것 같은데…….”
최 반장이 고민에 빠진 얼굴로 까슬까슬한 턱을 쓰다듬던 그때.
“그럼 일단 제가 이걸로 한번 탈탈 털어볼게요. PC방 알바생 말로는 한 달 정액권 끊고 와서 항상 이 컴퓨터만 썼다고 하니까. 분명 뭐가 남아 있을 거예요.”
나연이 바닥에 놓인 범진이 쓰던 컴퓨터 본체를 가볍게 발로 툭툭 두드리며 전의(戰意)를 불태웠다.
“좋아요. 김범진이든 이성오든 한번 제대로 탈탈 털어 봐요. 뭐라도 하나 나오겠지.”
“네.”
“그런데 장도성한테 발골칼 가져오라고 시킨 그 마스터도 찾아야 할 것 같은데요.”
일단 범진의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됐다고 느낀 채린이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하긴 어떻게 보면 그 마스터란 놈이 모든 사건의 중심일 수도 있으니까.”
성진이 수첩을 펼치며 말했다.
“고두창 가게 CCTV에 장도성이 발골칼 가지고 가는 모습 찍혔으니까.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어디로 그 칼을 가지고 갔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그 끝에 마스터가 있겠네.”
채린의 말에 성진이 볼펜을 딸깍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PC방 컴퓨터에 고두창 노트북, 거기다 발골칼까지. 뭔가 조각들이 하나씩 모이는 느낌인데요.”
주철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팀원들을 바라봤다.
“장도성 CCTV 추적은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그냥 제가 할게요.”
“PC방 컴퓨터 털기도 바쁘실 텐데 가능하시겠어요? 힘드시면 그냥 제가 할게요.”
수첩에 조사해야 할 항목들을 적던 성진이 살짝 미안한 얼굴로 나연을 바라봤다.
“CCTV 관제센터가서 어느 세월에 그거 다 눈으로 보고 찾을 건데. 그냥 장도성 처음 찍힌 가게 영상이나 가져와. 그리고 아까 뭐 고두창 노트북 그것도 같이 가져다주고.”
나연이 의욕에 불타는 얼굴로 말했다.
“도 팀장님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노트북은 내가 국과수로 가져갈게.”
주철이 나연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말하자.
“쓰레기들 치우는 데 이 정도 수고는 해야죠. 그리고 저 인간 가면 벗기고 싶어서라도 제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요.”
나연이 화면 속 범진을 노려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그럼 힘들겠지만 수고 좀 해줘요. 그리고 혹시라도 힘에 부치면 바로 말해요. 우리가 뒤에서 백업할 수 있는 건 백업해 줄 테니까요.”
최 반장이 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며 말했다.
“그럴 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고두창 노트북은 언제 가져다주실 거예요?”
입꼬리를 올리며 손가락을 까딱거리던 나연이 이내 심각한 얼굴로 최 반장을 바라봤다.
“이제 가지러 가야죠.”
사탕을 어금니로 두 동강낸 최 반장이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오늘 예약은 이제 다 끝난 거죠?”
살짝 지친 얼굴로 아이스커피를 들고 주방에서 나온 두창이 텅 빈 홀을 둘러보자.
“네. 방금 전 테이블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테이블을 정리하던 매니저가 하던 일을 멈추고 두창에게 걸어왔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요.”
두창이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며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네. 오늘은 좀 일찍 끝났습니다.”
“오늘 총 몇 팀 왔었죠?”
“런치에 10팀 디너에 8팀이었습니다.”
“아- 지금 딱 한 팀만 더 받았으면 좋겠는데. 재료도 어중간하게 남아서 버리기도 아깝고.”
테이블 의자 하나를 빼서 앉은 두창이 다리를 꼬며 인상을 찡그렸다.
유통기한이 짧은 고가의 식재료들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아깝기도 했지만.
지금의 매출로는 가게를 운영하는데 간신히 적자를 면할 뿐이었다.
“요즘 다른 가게들 상황은 어때요?”
“비슷비슷 한 건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면 좀 곤란한데.”
두창이 텅 빈 홀을 바라보며 심란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SNS나 방송 쪽에 홍보를 좀 해보는 건 어떨까요? 셰프님 방송출현 좋아하시잖아요.”
“에- 내가 또 뭘 그런 걸 좋아한다고…… 그런데 어떻게 연결할 수는 있어요?”
두창이 커피를 홀짝이며 못 이긴 듯 넌지시 매니저에게 물었다.
“저번에 손님으로 방송국 PD분이 한 분 오셨었는데, 그럼 그분께 제가 한번 연락을…….”
매니저가 재킷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던 그때.
“저기요.”
우렁찬 목소리가 가게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손님인가? 그냥 예약 안했어도 괜찮다고 하고 그냥 받아요.”
두창이 신난 얼굴로 매니저의 등을 떠밀었다.
“네. 그럼 바로 모시…… 어!”
서둘러 손님을 맞으러 안내데스크로 향하던 매니저가 갑자기 깜짝 놀라며 멈칫했다.
“안녕하세요. 영업 끝난 거 아니죠?”
성진이 벙찐 매니저를 향해 가볍게 손을 들며 빙그레 웃었다.
“끝나진 않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저희는 예약만 가능…….”
“고 셰프님 지금 안에 계시죠?”
뒤따라 들어온 최 반장이 어느새 주방 안으로 자리를 피한 두창을 이리저리 찾았다.
“지금 셰프님께서는……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경찰에 매니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어떻게든 상황을 정리하려 했지만.
“고 셰프, 아니 고두창 씨 시간 끌지 말고 나오시죠.”
어느새 주방 앞까지 걸어간 최 반장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두창을 불렀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마침 손님도 안 계시고 잘됐네요. 고두창 씨 사무실을 압수수색 해야 하는데 저쪽인가요?”
성진이 텅 빈 홀을 바라보며 둘러보며 말했다.
“압수수색이라뇨? 갑자기 그걸 왜…….”
매니저의 당황한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압수수색 할 만하니까 왔죠.”
“저쪽이 사무실 같은데 저쪽부터 할까요?”
어느새 푸른색 이삿짐 박스를 들고 들어온 주철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사무실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네. 시작하시죠.”
“가시죠.”
성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주철이 조용히 뒤에 서 있는 채린이에게 가자고 사인을 보내자.
“네.”
채린이 쓰고 있던 모자를 다시 한번 푹 눌러쓰며 짧게 대답했다.
어차피 우르르 몰려와서 상자에 다 쓸어 담아가는 압수수색.
실제로 증거를 찾는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심리적 압박을 준다는 기능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무작정 들이닥친 사람들에 패닉이 된 압수수색 당하는 쪽은.
누가 경찰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짝. 짝.
“자- 자- 시간 없으니까 빨리빨리 시작합시다.”
최 반장의 박수 소리와 우렁찬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채린과 주철 그리고 성진이 가게 안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하려는 그때.
쾅-
“지금 남의 영업장에서 뭐하는 겁니까!”
주방문을 부서질 듯 열고 나온 두창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에 계셨으면 좀 빨리 나오시죠.”
최 반장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두창을 반겼다.
“지금 압수수색 영장은 가지고 이러시는 겁니까?”
“아니요.”
“헛- 없어요? 아니 이 사람들 진짜 미쳤나. 매니저 지금 당장 경찰 불러요.”
자신만만한 최 반장의 대답에 헛웃음을 터트린 두창이 이내 매니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네.”
“잠깐만요. 고두창 씨께서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압수수색을 먼저 실시하게 돼서 영장은 사후(事後)에 첨부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를 걸려는 매니저의 손을 막은 성진이 두창을 똑바로 노려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증거인멸? 도주? 내가 무슨 사람이라도 죽였어요!”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죠.”
최 반장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압수수색을 하든 뭘 하든 한번 해봐요. 그리고 지금 일 반드시 책임져야 할 겁니다.”
두창이 최 반장의 면전에 삿대질을 하며 핏대를 올렸다.
“이제야 협조해주시네요. 자- 그럼 다시 시작합시다.”
“매니저. 빨리 동영상 찍어요. 동영상. 내가 아주 오늘 일 제대로 책임을 물을 테니까 당신들 각오해.”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버튼을 누른 두창이 최 반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쪽이 사무실이죠.”
하지만 최 반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두창의 사무실 쪽으로 걸어가 벌컥 문을 열었다.
“오- 깔끔하게 잘 꾸며 놓으셨네.”
“그런데 도대체 뭘 찾겠다는 겁니까?”
최 반장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길길이 날뛰던 두창이 갑자기 차분한 목소리로 마른 침을 삼키며 넌지시 물었다.
“뭐 이것저것.”
사무실 안을 둘러보던 최 반장의 시선이 이내 한쪽 벽에 걸린 그림으로 향했다.
“오- 저 그림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