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
똑. 똑.
“들어와.”
“다녀왔습니다.”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온 원성이 창밖을 보고 있는 명원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다.
“어때?”
명원이 소파로 걸음을 옮기며 묻자.
“별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원성이 그제야 허리를 펴며 명원 옆으로 걸어갔다.
“항상 뽑을 때는 문제없었지. 관리가 안돼서 문제지만.”
소파 상석에 앉은 명원이 다리를 꼬며 입꼬리를 내렸다.
“죄송합니다.”
원성의 고개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갔다.
“이번엔 잘 챙겨. 저번 같은 일 생기지 않게.”
명원이 원성을 못마땅한 눈으로 노려봤다.
“네.”
“파티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차질 없이 잘 준비되고 있습니다.”
“잘 해. 그날 하루 매출이 몇 달 매출 맞먹는 거 알지?”
명원이 소파 옆 서랍에서 시가를 꺼내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1년에 한번 백화점 정기휴무날 VIP와 VVIP들만을 백화점으로 초대해 프라이빗 쇼핑을 할 수 있게 해주며 성대한 파티를 여는 건.
이젠 JK 백화점의 하나의 시그니처이자.
이 파티에 초대받았냐 받지 않았냐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까지 될 정도였다.
“네.”
“공연 섭외는.”
“가수 및 연주자들도 특A급들로만 섭외했습니다.”
“돈 아끼지 말고 다 불러. 그리고 물부터 냅킨까지 아무리 사소한 것들도 무조건 다 최고급으로 준비해. 알겠어?”
“네.”
“다 대접받길 좋아하는 인간들이니까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떠받들어주란 말이야. 그럼 자연스럽게 지갑을 통째로 우리한테 넘길 테니까.”
찰칵.
명원이 시가 커터로 시가 끝을 자르며 빙그레 웃었다.
“실수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원성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명원의 말처럼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이 세상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 계급인양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그날 하루 거침없이 지갑을 열었다.
“당연히 실수가 있으면 안 되지.”
명원이 시가를 입에 물며 힘주어 말했다.
“저 그런데 외람되지만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원성이 명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술을 움직였다.
“질문은 항상 좋은 거지. 뭐? 물어봐.”
명원이 빙그레 웃으며 짙은 시가 연기를 공중으로 뿜었다.
“그분들은 왜 부르신 겁니까.”
“누구?”
“그때 같이 식사하셨던 형사분들 팀 말입니다.”
“아-”
명원이 시가를 손으로 옮기며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가볍게 쳤다.
“왜 그런 사람들을…….”
1년 중 가장 중요한 파티에.
그것도 식사 한번이 전부인, 어떻게 보면 생면부지(生面不知)나 다름없는 최 반장과 그 일행들을 이 중요한 파티에 초대했다는 걸 원성은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기 한명은 우리 백화점 VVIP아니야? 원래 초대해야 하잖아. 누구더라 그 도…….”
나연과 식사를 하고 그 뒤에 따로 차까지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명원은 나연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도나연입니다.”
“아- 맞아. 그때 같이 있던 예쁘장하게 생긴 어린애 이름이.”
“이채린입니다.”
“역시 이름 하나는 진짜 잘 외운다니까. 자네는 비서가 딱인 것 같아.”
명원이 시가를 입에 물며 원성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
“난 중요하지 않은 인간들한테 친한 척은 하겠는데 이름이 여기에 입력이 잘 안 되더라고.”
원성이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히죽거렸다.
“그럼 이채린은 왜.”
“어차피 파티 동반 1인 까지는 가능하잖아. 그리고 불러서 나쁠 것 없는 외모던데. 안 그래?”
명원이 시가 연기를 원성 쪽으로 뿜으며 씩 웃었다.
“그 두 사람은 그렇다고 쳐도 다른 사람들은 왜…….”
원성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형사들?”
“네.”
“혹시 메기효과(Catfish effect)라고 알아?”
원성이 시가를 물은 채 다리를 반대로 꼬며 물었다.
“메기효과요?”
“어.”
“잘 모르겠습니다.”
“북유럽 사람들이 청어(靑魚)를 많이 먹는데.”
“네.”
갑작스럽게 시작된 청어이야기에 원성이 의아한 표정을 애써 감췄다.
“그런데 청어를 먼 곳까지 수조탱크로 운반하다보니까 폐사율이 너무 높은 거야. 그래서 청어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천적(天敵)인 메기를 넣었어.”
명원이 시가를 입에 물고 오른손으로 메기가 헤엄치는 시늉을 했다.
“아-”
“그럼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청어들이 그 메기를 피하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수조탱크 안에서 움직이는 거야.”
“네-.”
“그러다 보니까 아이러니하게 그 메기 한 마리 때문에 오히려 청어들이 배송되는 지점까지 죽지를 않았다는 거지.”
“아- 네.”
뜬금없는 소리 같았지만 일단은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원성이었다.
“신기하지. 이게 바로 메기효과야.”
“그런데 지금 하신 말씀이 그 형사들 초대하신거하고 무슨 연관인지…….”
평소 같았으면 그냥 듣고 넘어갔겠지만.
어차피 파티의 실질적인 진행은 자신의 몫.
명원이 최 반장과 E.Y.E.S팀을 파티에 초대한 목적을 정확히 알아야 준비를 할 수 있었기에.
원성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아- 진짜 재미없게 왜 이래.”
명원이 실망한 얼굴로 원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서…….”
“잘 생각해봐. 방금 메기 효과처럼 항상 어떤 집단이 유지가 되려면 적절한 자극이 있어야해.”
“자극이요?”
“그래. 그럼 돈 많은 놈들에게 자극은 뭘까?”
명원이 이번엔 퀴즈를 냈다.
“음- 남들과의 비교, 아니면 자존심 아닐까요?”
잠시 고민하던 원성이 심각한 얼굴로 나름 대답을 내놓았다.
“뭐 그것도 일정부분 맞지만. 어차피 파티에 오는 놈들은 다 돈 많은 놈들이라 남이 뭘 사는지, 얼마나 사는지에 대해서는 별 감흥이나 자극이 없지. 어차피 나도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는 건데.”
“그렇겠네요.”
“그럼 뭘까? 부자들의 메기효과는?”
명원이 원성에게 다시 답을 재촉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바로 우월감이야.”
명원이 시가를 손가락 사이에 걸치며 원성을 빤히 바라봤다.
“우월감이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그 기분. 그 우월감이 사람을 미치게 하거든.”
“아-”
“허름한 인간들 VIP들 사이에 풀어놔봐. 돈 많은 놈들은 마치 자기를 보고 부러워하란 듯이 그 앞에서 돈 더 쓴다니까. 원래 돈도 누가 봐야지 더 쓰고 싶은 법이거든.”
“그러네요.”
원성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명품관 앞에 왜 하루 종일 대기 줄을 세우겠어. 1대1 응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매장 인원제한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핑계는 그럴 듯 하지. 그런데 생각해봐 직원을 더 뽑으면 되잖아. 더 뽑아서 많이 팔면 더 이득 아니야?”
“맞습니다.”
“거기다 심지어 줄서서 힘들어 들어갔는데 물건도 없어. 진열장이 텅텅 비어 있다고. 솔직히 이게 이해가 돼? 그렇다면 장사를 하지 말아야지.”
“…….”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 왜? 그럼 가치가 떨어지거든. 사람들이 자기 브랜드를 사면서 우월감을 느끼지 않아. 누구나 다 살 수 있으면 매력이 없거든.”
“아-”
“그리고 더 웃긴 건 사람들도 그런 거에 불만이 없어. 못 사고 돌아가는데 화도 안내. 오히려 다음날 더 새벽부터 와서 줄을 서. 왜?”
명원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 줄에 서있었다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우월감으로 작용하거든. ‘난 너희들과 달라.’, ‘난 이걸 살 수 있는 돈이 있어.’ ‘겉으로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라 욕하지만 솔직히 너희도 이 줄에 서고 싶은 거 다 알아’, 뭐 이런 우월감이 더 지갑을 열게 하고 그 브랜드에 더 충성하게 만들거든.”
“역시 대단하십니다.”
명원의 일장연설에 원성이 감탄을 쏟아냈다.
“그럼 그날 그 팀들은 메기 인가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증인으로 쓸 수 있잖아.”
“증인이요?”
원성의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우리가 이상한 거 하지 않고 있다는 증인으로 형사가 딱이잖아. 안 그래?”
명원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원성을 바라봤다.
***
백화점 지하 보안요원 사무실.
“오늘 모두 수고했어요. 그리고 며칠 뒤 VIP 파티 근무명단 부를 테니까. 호명된 사람은 잠시 남으세요. 김철영. 이재순…….”
매니저가 서류에 적힌 이름을 쭉 부르다 마지막으로.
“한승현.”
승현의 이름을 불렀다.
“네.”
예상치 못한 자신의 호명에 승현이 깜짝 놀란 얼굴로 얼떨결에 손을 들었다.
이제 겨우 한 달도 못 채운 자신이 중요한 행사에 뽑혔다는 사실이 신기함을 넘어 의아스러웠다.
“지금 이름 불린 사람들은 잠시 대기하고, 나머지는 모두 퇴근해요.”
“수고하셨습니다.”
매니저의 말에 호명되지 않은 직원들이 썰물처럼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가고 문이 닫히자.
“자- 내일 있을 VIP 파티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할게요. 일단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내가 임으로 뽑은 게 아니라.”
들고 있던 명단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매니저가 손가락을 위로 향하며 말을 이었다.
“위에서 따로 심사를 거쳐서 소위 말하는 에이스들로만 뽑은 거니까 나름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요.”
“네.”
“JK백화점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가 VIP파티인거 잘 알고 있죠?”
“네.”
“그래서 대표님뿐만 아니라 백화점 전체가 지금 초긴장 상태니까 여러분들도 그날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네.”
“그리고 지금 나눠드리는 종이에 모두 사인하세요. 뒤로 돌리세요.”
매니저가 맨 앞에 앉은 인원에게 서류 뭉치를 건넸다.
그리고 잠시 후.
서류를 받아든 보안요원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
“이게 뭔가요?”
이해 할 수 없는 얼굴로 매니저에게 물었다.
“거기 써져있는 것처럼 비밀누설 금지 서약서 입니다.”
“갑자기 이런 걸 왜 하는 겁니까?”
불만 아닌 불만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파티에 오시는 대부분의 VIP 분들은 본인의 프라이버시를 굉장히 중요시하시기 때문에,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는 걸 극도로 민감해하셔서. 우리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이해 부탁할게요.”
매니저가 미안한 얼굴로 직원들에게 말했다.
과거 파티 직후 ‘누가 와서 돈을 하룻밤에 얼마를 썼다더라’ , ‘누가 누구랑 몰래 왔다더라.’ ‘사실은 퇴폐 음란 파티였다.’ 등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루머들까지 섞여 한동안 백화점 VIP 파티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기에.
백화점 홍보팀이 언론의 취재전화와 VIP들의 항의 전화에 몸살을 앓았던 적까지 있었다.
“저희만 입 닫는다고 밖으로 이야기가 안 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솔직히 이야기는 고객들이 다 할 텐데 이런 게 의미가 있을까요?”
“맞아요. 이런 것까지 써야 하는 건…….”
여기저기서 직원들의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여러분들 말도 맞지만. 회사지침이니 지금이라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요. 대신 그날 일당은 한 달 치 월급에 상응하는 금액이 지급될 거라는 것만 알고계세요.”
“진짜요?”
투덜거리던 직원들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이런 것까지 쓰는데 그 정도 보상은 있어야죠. 자- 빨리 결정하세요.”
매니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직원들이 자신의 앞에 놓인 서약서에 망설임 없이 사인을 채웠다.
“그럼 전원 합의한 걸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비밀이 새어나가면 끝까지 추적해서 책임을 물을 테니까 입단속 잘 하세요.”
“네.”
“그리고 파티가 끝날 때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친절과 미소 잊지 마세요. 아시겠죠?”
“네.”
“좋아요. 그럼 파티 당일 본인의 지정 위치 알려드릴 테니까 잘 숙지하세요. 먼저 한승현 씨.”
“네.”
승현이 번쩍 손을 들었다.
“8층 VVIP 라운지 앞.”
서류를 확인한 매니저가 고개를 들며 승현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