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
“승현아.”
“어! 채린아. 여긴 어쩐 일이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채린이를 마주한 승현이 반갑고 놀란 얼굴로 자기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최 반장이 빙그레 웃으며 승현이에게 인사를 건네자.
“안녕하세요. 김 형사님도 안녕하세요.”
최 반장에게 반갑게 고개를 숙인 승현이 성진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나도 기억해주고 고마운데.”
“당연히 기억하죠. 잘 지내셨죠?”
성진의 말에 승현이 입가에 반가운 미소가 번졌다.
“그럼.”
“우리도 제대로 소개 좀 시켜줘.”
“이야기는 채린이에게 진짜 많이 들었는데. 만나서 반가워요.”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지만 제대로 소개받은 적은 없었기에.
나연과 인혜가 미소 띤 얼굴로 승현이를 바라봤다.
“음- 여기계신 분들은 나랑 친한 언니 분들. 그리고 이쪽은 제 고등학교 동창 한승현이요.”
인혜와 나연을 어떻게 소개할까 잠시 고민하던 채린이 미소로 두 사람을 승현에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한승현입니다. 채린이 잘 부탁드립니다.”
승현이 채린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넉살좋게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자.
“오버하지 마.”
채린이 살짝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승현의 배를 가볍게 쳤다.
“외모도 훈훈한데 성격도 싹싹하고 이래서 우리 채린이가…….”
나연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채린과 승현을 번갈아 바라보자.
“오늘 일하는 날이었어?”
채린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급하게 말을 돌렸다.
“어.”
“그런데 왜 일 한다고 말 안했어?”
“회사에서 비밀로 하라고 해서. 그런데 넌 여기 어쩐 일이야.”
승현이 궁금한 얼굴로 되물었다.
“초대 받았어.”
“초대? 어떻게.”
눈이 커진 승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어. 모두 초대 받으신 거예요?”
“뭐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
“네. 그런데 다 같이 어디 가세요? 이쪽에는 가실만한 곳이 없는데요.”
성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승현이 텅 빈 복도를 바라보며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여기 8층 식당에 밥 먹으러.”
최 반장이 복도 끝에 있는 식당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식당 문 아직 안 열었을 텐데요.”
“대표님이 미리 초대해주셨어.”
“대표님이?”
채린이의 대답에 여러 번 놀라는 승현이었다.
“어.”
“와- 어떻게.”
승현이 놀라움과 부러움이 뒤섞인 얼굴로 말했다.
“그것도 이야기 하자면 좀 길어서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너 오늘 따라 비밀이 많다.”
“이따 말해줄게. 그런데 여기서 무슨 일 하는 거야?”
“VVIP라운지 출입검사 담당이라.”
“여기가 VVIP라운지야? 문도 없는 것 같은데.”
성진이 벽이나 다름없는 문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게 다 문이에요.”
승현이 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뭘 이렇게 꽁꽁 감춰놨어.”
최 반장이 입을 삐죽거리며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럼 도 팀장님도 들어가실 수 있겠네요. 여기 와보셨어요?”
“옛날에 한번 와봤나. 혼자 여기 올 일이 없어서요. 그리고 여기 분위기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요.”
인혜의 대답에 나연이 입꼬리를 내렸다.
“분위기가 어떤데요?”
채린이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물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묘한 기싸움이 있는, 아무튼 분명 쇼핑하다 쉬러 오는 곳인데 전혀 쉴 수 없는 분위기?”
“아-”
“듣기만 해도 불편한데요.”
왠지 알 것 같은 분위기에 채린과 인혜가 입꼬리를 내렸다.
“한번 들어가 볼까요? 궁금한데.”
성진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저 그런데 죄송하지만 VVIP 확인을 하셔야 출입이 가능해서요. 초대장 스캔과 이쪽 카메라에 얼굴 인식 후 들어가실 수 있어요.”
승현이 난감한 표정으로 얼굴 인식카메라를 가리켰다.
“들어오지 말라는 거네.”
성진이 미간을 찡그리며 굳게 닫힌 벽을 바라봤다.
“내가 있잖아 내가. 같이 들어가 봐요. 여기요.”
나연이 핸드백에서 초대장을 꺼내 승현에게 건네자.
“그런데 죄송해서 어떡하죠. 동반1인만 가능하셔서 모두 같이 들어가시기는 불가능 할 것 같은데요.”
“여기는 뭐 딴 세상인가. 유난은 진짜.”
은근 자존심이 상한 성진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한발 물러섰다.
“이 안에서 지금 뭐해요?”
묵묵히 있던 최 반장이 궁금한 얼굴로 승현을 바라봤다.
“저도 자세히는 잘 모르는데. 무슨 파티 하는 것 같던데요. 거의 다 술 취해서 나오시더라고요.”
“안에서 뭐 이상한 파티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가요.”
가볍게 농담을 던진 나연이 식당 쪽으로 발길을 돌리려던 그때.
우당탕탕. 쨍그랑.
[“아-”]
요란하게 부셔지는 소리와 함께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뭐야?”
갑작스런 비명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굳게 닫힌 문으로 향했다.
쾅- 쾅-
[“야이 X새끼야!”]
“안에서 싸움 난 거 아녜요?”
성진이 눈가를 찡그리며 귀를 문에 가져댔다.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 문은 신분확인 후 자동으로 열리는 거라서 제가 열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요.”
채린의 말에 승현이 난감한 얼굴로 재킷 깃에 꽂혀있던 마이크에 입을 가져댔다.
“VVIP라운지 상황 발생. VVIP 라운지 상황발생.”
“안에 보안요원들 없어요?”
최 반장도 문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안에 보안요원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보안요원 업무 분담표 상 VVIP 라운지 안 보안요원은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이런 날 안에 보안요원 하나 배치 안하고 뭐하는 거야. 아직 뭐라고 연락 없어요?”
성진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한 얼굴로 승연을 바라봤다.
“잠시 만요. 아. 지금 바로 온다고 연락 왔어요.”
귀에 꽂은 이어폰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승현이 매니저와 다른 보안요원들이 온다는 소식에 그나마 다행이란 표정으로 말했다.
쾅- 쾅-
[“아- 아-”]
[“죽어! 죽어 이 X새끼야.”]
하지만 잦아들기는커녕 더 커지는 비명과 고함 목소리에.
“뭔 일 난 거 아니야?”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최 반장과 성진이 심각한 얼굴로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자.
“내가 열을 게요. 내가 얼굴인식하면 열수 있죠.”
뒤에 있던 나연이 문을 열기 위해 급하게 승현에게 초대장을 건네며 카메라 앞으로 얼굴을 가져대던 그때.
위이잉.
갑자기 VVIP 라운지 문이 열리며.
“아-”
피투성이의 사내가 튕겨져 나왔다.
“죽어 이 새끼야!”
그리고 곧이어 눈가에 피를 흘린 남자가 깨진 술병을 움켜쥔 채 전력으로 뛰어나왔다.
“김 형사!”
최 반장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아- 오늘 진짜 일진이 왜 이러냐.”
인상을 구긴 성진이 번개처럼 깨진 병을 든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
그리고 남자의 손에 들린 깨진 병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쓰러진 남자를 향해 내리꽂히던 순간.
쨍그랑.
“그만하세요.”
성진이 남자의 손에 들린 병을 단숨에 뺏어 바닥에 던졌다.
“넌 또 뭐야 이 새끼야!”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진 남자가 눈이 뒤집힌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젠 성진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술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진정하세요.”
주먹을 가볍게 피한 성진이 뒤에서 흥분한 남자를 끌어안았다.
“하- 감히 날 잡아? 놔! 이거 안 놔!”
“…….”
남자가 거칠게 내뱉은 숨결과 그의 몸에서 풍기는 채취에 성진의 미간이 일순간 구겨졌다.
“괜찮으세요?”
인혜가 손수건을 꺼내들어 먼저 튕겨져 나온 피범벅 된 남자의 이마를 지혈하며 물었다.
“하아- 하아-”
하지만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무 말 없이 성진에게 붙잡힌 남자를 노려볼 뿐이었다.
“놔! 놓으라고 이 새끼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몸부림치며 성진에게 있는 대로 화를 내던 남자가 아무래도 자기 힘으로는 풀려나기 힘들겠다 생각했는지.
“너 이 새끼 내가 진짜 죽일 거야. 감히 날 속여? 넌 뒤졌어.”
인혜에게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남자에게 침을 튀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속이긴 뭘 속여. 원래부터 내거였어.”
이마에 흐르는 피를 눌러주고 있던 인혜를 밀친 남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함을 쳤다.
“괜찮아요?”
“네.”
뒤로 밀쳐진 인혜를 살핀 최 반장이.
“가만히 있어요. 좋은 말 할 때.”
굳은 얼굴로 흥분한 남자의 어깨를 꾹 누르며 다시 바닥에 꿇어앉혔다.
“아- 이거 안 놔!”
최 반장의 손아귀에 얼굴을 구긴 남자가 무릎을 꿇으며 괴로운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이 새끼들 다 뭐야!”
성진의 품에 잡힌 남자가 고개를 앞뒤로 돌려 최 반장과 성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있는 대로 분노를 쏟아내던 그때.
다다다다. 다다다.
요란한 구둣발 소리와 함께.
“죄송합니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보안팀 매니저를 필두로 건장한 보안요원들이 뛰어왔다.
그리고 곧이어 굳은 표정의 원성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이런 일에 또 휘말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이제부터 저희가 맡겠습니다.”
최 반장과 성진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원성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매니저를 바라보자.
“뭐해.”
매니저가 다급한 목소리로 보안요원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놔- 놔- 이 새끼들아.”
“이거 안 놔!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여기 VVIP야.”
그러자 보안요원들이 일사분란하게 고함을 지르는 두 남자를 끌고 미리 열어놓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후-”
긴 한숨을 내쉰 최 반장이 구겨진 점퍼를 툭툭 털자.
“정말 죄송합니다. 모두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원성이 정중한 얼굴로 E.Y.E.S팀과 최 반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채린 나연 인혜와 달리.
“오늘 참 여러 가지로 일이 많네요.”
최 반장이 원성에게 뼈있는 말을 던졌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원래 이런 일이 거의 없는데 오늘따라 좀…….”
위이잉- 위이잉.
“저 잠시만.”
품안에서 울리는 핸드폰 진동에 최 반장에게 양해를 구한 원성이 통화를 위해 잠시 몇 걸음 떨어지자.
“반장님.”
원성의 눈치를 보던 성진이 슬쩍 최 반장의 곁으로 다가왔다.
“왜.”
“아까 그 남자들 냄새가 좀 나던데요.”
성진이 통화하는 원성의 눈치를 살피며 최 반장의 귓가에 속삭였다.
“술 냄새?”
“아니요. 떨이요.”
“대마초?”
성진의 말에 최 반장의 미간이 구겨졌다.
“네.”
“진짜야?”
“네.”
“무슨 일 있으세요?”
심각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채린이 불안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별일 아니야.”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소 짓던 최 반장이 통화를 마치고 걸어오는 원성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이제 식사 하러 가시죠.”
원성이 손을 뻗으며 최 반장과 E.Y.E.S팀을 식당 쪽으로 안내하자.
“잠깐만요. 그전에 잠깐 확인하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
최 반장이 심각한 얼굴로 원성의 손을 가볍게 막았다.
“네? 뭐를.”
원성이 차분하지만 살짝 긴장한 얼굴로 되물었다.
“저기 안에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최 반장이 VVIP 라운지를 눈짓으로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