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
“무슨 X소리야!”
원성의 사원증을 든 채린이를 향해 명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돼? 네가 한 모든 일들이 여기에 있다고.”
채린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사원증을 명원의 앞에 흔들었다.
“헛- 거기에 있긴 뭐가 있어. 아- 설마 김원성 저 새끼가 지금 증거라는 거야?”
하지만 잠시 인상을 구기던 명원은 이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빈정거렸다.
“김원성 저 새끼가 너희들하고 무슨 거래라도 했나본데. 저 인간은 근본이 하찮은 인간이라 신뢰의 대상이 되지 못해.”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한다는, 심지어 원성을 비서가 아닌 친동생처럼 생각한다던 명원이.
지금은 자기 살겠다고 한순간 원성을 쓰레기로 만드는 모습에 E.Y.E.S팀이 기가 찬 얼굴로 명원을 바라봤다.
“저 인간이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나 엿 먹이려고 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거짓말?”
명원의 말에 헛웃음을 친 채린이 아까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한쪽 라운지 벽면을 가득 채운 큰 모니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지. 할 말 없으니 내빼는 꼬락서니하고는.”
명원이 채린의 모습에 빈정거리며 나지막히 중얼거리다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들 후회하기 싫으면 당장 나한테 무릎 꿇고 사과해. 아니 일단 이것부터 풀러. 빨리!”
하지만 채린은 명원의 행동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잠시 모니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파티를 위해 설치된 작은 DJ 박스 같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쥐뿔도 없으면서 시간이나 끌어보겠다고 X수작 하지 말고. 김 형사 너 이거 빨리 안 풀어! 너 진짜 내가 가만 안둔…….”
채린이의 행동을 비웃던 명원이 성진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던 그때.
[“차라리 잘 됐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저것들 싹 다 죽여 버리고. 어차피 화재 경보도 울렸겠다. 여기 불 질러 버리면 그만이야.”]
광기(狂氣) 가득한 명원의 얼굴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저. 저건.”
명원이 방금 전 자신의 모습이 화면에 나오자 아연실색하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표님.”]
[“오늘 난 처음부터 아예 백화점에 없었던 거야. 알겠어?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은 다 네가 한 짓이라고.”]
마치 1인칭 관찰자 시점처럼 찍힌 영상 속엔 원성의 목소리만 들릴 뿐.
화면에 보이는 등장인물은 오로지 한명.
명원뿐이었다.
“이. 이게 뭐야.”
명원의 얼굴에 혼란과 분노가 소용돌이 쳤다.
“자- 이건 어떻게 설명할거지?”
채린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명원을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명원이 라운지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뭐긴 뭐야. 너 끝났다는 소리지.”
그러자 뒤에 있던 성진이 빙그레 웃으며 명원의 귓가에 속삭였다.
“마. 말도 안 돼. 저건 다 거짓말이야. 조작이야. 저건 조작된 영상이라고!”
“저기에 방금 전 우리 모습도 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언제 조작해서 우리 모습까지 넣으셨을까.”
나연이 화면 속 라운지 안으로 들어오는 E.Y.E.S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못마땅한 얼굴로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김원성이 지금까지 당신이 한 모든 악행(惡行)을 사원증에 다 녹화하고 있었어.”
“거. 거짓말.”
채린의 말에 명원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떨구자.
[“오늘 난 처음부터 아예 백화점에 없었던 거야. 알겠어?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은 다 네가 한 짓이라고.”]
“거짓말? 똑똑히 봐. 지금 네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거짓말이라고 할 거야!”
성진이 거칠게 양손으로 명원의 고개를 일으켜 억지로 화면을 보게 하며 핏대를 올렸다.
그때.
“으-”
이제야 정신을 차린 원성이 괴로운 얼굴로 머리를 움켜쥔 채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직접 찍은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되겠네.”
나연이 정신 못 차리는 원성의 고개를 명원 쪽으로 돌리며 씩 웃었다.
“야이 X새끼야! 이런 XXXX. XXXX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명원의 분노 가득한 욕이 원성을 향해 쏟아졌다.
“으- 으-”
아직까지도 흔들리는 머리에 귀를 때려 박는 명원의 욕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던 원성이 거슴츠레한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고개를 돌리다.
자연스럽게 모니터에 띄어진 명원의 영상을 보는 순간.
“아!”
파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사원증. 사원증.”
그리고 급하게 자기 목에 걸려 있어야 할 사원증을 찾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네 사원증 저기 있잖아.”
나연이 사원증을 들고 천천히 걸어오는 채린이를 가리키자.
“저. 저걸 어떻게.”
원성이 말까지 더듬으며 채린의 손에 들린 자신의 사원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채린아 그것 좀.”
“네.”
“오- 돈 좀 썼겠는데.”
채린이의 손에 들린 사원증을 넘겨받은 나연이 꽤 놀란 얼굴로 무릎 꿇은 원성을 바라봤다.
“초소형 몰래카메라에 녹음기, 거기다 블루투스까지. 저장 메모리까지 넣으면 부피가 커지니까…… 여기서 찍으면 바로 블루투스로 연결된 핸드폰에 저장되는 방식 같은데. 꼴에 머리 좀 썼네.”
꼼꼼히 신분증을 살펴보던 나연이 원성을 가소롭단 눈으로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너 이 새끼. 네가 감히…….”
명원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모든 비밀을 들킨 원성이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배은망덕한 새끼. 내가 이래서 근본 없는 새끼를 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말 좀 잘 듣는다고 믿은 내가 X신이지.”
“…….”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명원의 비난에 원성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은혜도 모르는 쓰레기 같은 새끼. 감히 내 뒤통수를 쳐? 지가 지금까지 누구 덕에 먹고 살았는데. 감히 주인의 목덜미를 물어? 진작 정리했어야 했는데. 저런 X새끼를…….”
그 순간.
“이제 그만 좀 하시죠.”
원성이 명원의 말을 끊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그만 좀 하라고.”
그동안 꾹꾹 누르고 있던 원성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너. 너 지금 반말했냐?”
처음 보는 원성의 반항에 명원이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
“그래 반말했다 어쩔래. 이렇게 된 마당에 내가 이제 너한테 머리 조아릴 필요 없잖아.”
눈빛이 바뀐 원성이 명원을 죽일 듯 노려봤다.
“이 새끼가 미쳤나.”
“미친 건 너야.”
“뭐?”
“미친 새끼는 너라고. 이 사이코패스 돌아이 새끼야.”
원성이 명원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핏대를 올렸다.
“김원성 너 진짜 미쳤구나.”
명원이 기가찬 걸 넘어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젠 정말 네 돌아이짓 받아주고 뒤치다꺼리 하는 것도 지긋지긋해.”
“이게 머리를 처맞더니 미쳤나. 야! 나 함명원이야. 함명원이라고!”
명원이 이를 바득 갈며 연신 자기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지만.
“함명원이 뭐!”
원성은 이미 예전의 원성이 아니었다.
“허- 넌 뒤졌어. 그리고 감히 이렇게 내 뒤통수를 쳐?”
“나 혼자 당할 수는 없잖아. 나도 보험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원성이 나연의 손에 들린 자신의 신분증을 바라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런 X새끼…….”
“저거 봐서 알겠지만 지금까지 한 일은 다 저 새끼가 시킨 거예요. 아니 다 저 새끼가 한 짓이에요.”
“오- 내분(內紛)인가.”
팔짱을 낀 채 마치 관중처럼 둘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연이 짧은 탄성과 함께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공멸(共滅)이죠.”
그 모습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인혜가 쓴웃음을 지었다.
“야! 입 안 닥쳐.”
“그리고 최미숙, 김주성 그리고 또 누구냐. 아무튼 저 새끼 때문에 골로 간 사람이 너무 많은데. 저 새끼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하찮게 여기는 인간이에요.”
“야. 김원성…….”
원성의 폭주에 명원의 눈가에 광기(狂氣)가 차올랐다.
“아! 그리고 최 반장도 저 인간이 찌른 거고요.”
“그러니까 이 인간이 반장님을 찔렀단 말이지.”
원성의 말에 성진이 명원의 멱살을 힘껏 잡으며 죽일 듯 노려봤다.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어디를 가나 사원증 걸고 다닌 것 같던데. 그날 영상도 분명 있겠지.”
“아.”
채린의 말과 함께 명원의 머릿속에 최 반장을 죽이려고 했던 날 사원증을 걸고 있던 원성에게 잔소리를 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야 끝났다는 걸 느껴?”
달라진 명원의 표정을 확인한 성진이 명원을 죽일 듯 째려보던 그때.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
“이런 X새끼. 뒤졌어!”
완전히 눈이 뒤집힌 명원이 갑자기 온 힘을 다해 성진을 밀치며 원성을 향해 달려들던 순간.
“너 내가 끝났다고 했지.”
재빨리 팔을 뻗어 달려가던 명원의 뒷덜미를 움켜잡은 성진이 업어치기로 명원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쿵-
“아- 으-”
완전히 목이 꺾일 듯 바닥에 내리꽂힌 명원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부들부들 떨다 이내 정신을 잃었다.
“이건 반장님 찌른 값이다.”
성진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 명원을 바라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설마 죽은 건 아니지?”
완전히 맛이 간 명원의 모습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나연이 미간을 찡그리며 옆에 있던 인혜를 바라보자.
“괜찮아요. 잠시 기절한 것뿐이에요.”
빠르게 명원의 상태를 확인한 인혜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머지 자료들은 다 어디 있어!”
명원을 처리한 성진이 이번엔 원성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자료 넘기면 나한테 뭘 해줄 건데.”
명원을 팔고 자신이 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 원성이 성진에게 거래를 제안하자.
“정신 차려 이 쓰레기새끼야.”
“윽-”
잔뜩 독이 오른 성진이 목을 조르듯 원성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건 협조나 거래가 아니야. 명령이야. 명령.”
“으- 내. 내가 말 안하면 그 자료들은 절대 못 찾을 텐데. 그럼 함명원은 절대 못 잡아.”
지금까지 찍은 모든 명원의 불법 영상과 자료들은 자신만이 아는 비밀장소에 보관했기에.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괴로운 표정 속에서도 원성이 끝까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하자.
“아니. 우린 다 찾을 수 있어.”
더 힘껏 원성의 멱살을 움켜쥔 성진이 옆에 있는 채린이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얼마 뒤.
[“JK백화점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마약거래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한데요. 특히 소위 우리나라 1% 부유층들이라 불리던 백화점 VVIP들의 마약거래 실태와 소문으로만 떠돌던 비밀클럽 운영 등에 대한 실체가 이번 사건을 통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죠.”]
“요즘은 어디를 틀어도 저 뉴스 밖에 없네.”
소파에 앉은 나연이 과일 음료수 뚜껑을 따며 못마땅한 얼굴로 TV를 바라봤다.
“워낙 큰 사건이잖아요. 내로라하는 국회의원에 대기업 사장 거기다 이름만대면 알 만한 사람들까지 마약거래로 다 체포됐으니. 저만한 뉴스거리가 또 어디 있겠어요.”
반대편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인혜가 캔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건 이 모든 일에 함명원 대표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인데요. 자세한 내용은 김 기자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기로 하겠습니다. 김 기자. 함 대표가 마약 밀수와 판매 말고도 살인청부와 납치 심지어 경찰 살인미수 혐의까지 받고 있는데. 오늘이 첫 재판이죠?”]
“진짜 재판은 어떻게 됐을까요?”
벽에 기대 TV를 보던 채린이 궁금한 얼굴로 말하자.
“뭘 어떻게 돼. 당연히 최소 무기징역이지. 마음 같아서는 사형인데.”
나연이 다 마신 음료수 병을 힘껏 움켜쥐며 이를 바득 갈았다.
“그런데 김원성 그 인간 자기 형량 줄이려고 끝까지 우리랑 딜(Deal)하려고 입 안 여는 것 보고. 진짜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 괜히 함명원 비서가 된 게 아니야.”
“채린이 아니었으면 증거 찾기 힘들었죠. 수고했어 채린아.”
성진의 말에 인혜가 맞장구를 치자.
“제가 뭘요.”
채린이 쑥스러운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끝까지 녹화 파일이 어디 있는지 말을 하지 않는 원성의 기억 속에 들어가 은행 비밀금고에보관 되어 있던 영상 파일들과 그동안 원성이 모아놓은 명원의 모든 불법 자료를 찾은 채린이었다.
“그러고 보면 항상 가까이 있는 놈들이 위험해.”
“김 형사도 위험한 거 아니야?”
성진의 말에 나연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하자.
“모르셨어요? 저 위험한 남자예요. 치명적인 매력의…….”
“반장님 옆에 누워있을래?”
능글맞은 성진의 말에 나연이 주먹을 말아쥐던 그때.
“으- 병문안 와서 시끄럽게 떠들 거면 그냥 다 가요. 정신없으니까.”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최 반장이 특유의 미간 찡그리는 표정을 지으며 E.Y.E.S팀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