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곳에 내가 있었다-454화 (454/669)

#454.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유흥가.

담배를 오른손에 쥐고 왼손으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댄.

180은 훌쩍 넘는 키에 건장한 체격의, 양팔에 온갖 그림을 도배한 30대 초반의 남자가 연신 바닥에 침을 뱉으며.

“캬- 퉤.”

하얀 연기와 함께 거친 말들을 입에서 쏟아냈다.

“이 X신 새끼야. 거기에 넣은 돈을 다른 곳으로 빼란 말이야!”

“크윽- 퉤.”

말을 하는 건지 침을 뱉으려고 말을 하는 건지 헷갈릴 만큼.

“퉤.”

남자의 발 앞에는 그가 뱉어낸 침들 때문에 발 디딜 곳 하나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그걸 왜 그 지점에서 사냐고 이 X신 새끼야. 그 놈 전문가라며. 네가 추천한 새끼 때문에 나만 완전 물렸잖아! 너 내가 지금 얼마를 물렸는지 알아.”

길거리를 가득 메운 술 취한 사람들의 고성방가를 뚫고 나올 만큼 큰 남자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뭘 꼴아봐. 저리 안 가!”

잠시 핸드폰을 귀에서 뗀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위협을 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캬- 퉤. 아니야. 계속 말해. 그래서 그 새끼가 원금 회복을 못 시켜주겠다는…….”

남자가 겁을 먹고 슬금슬금 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다시 통화를 이어가려던 그때.

[“그렇게 침 뱉다가 말라 죽겠네.”]

뒤쪽에서 감정하나 없는 퉁명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어떤 X친 새끼가.”

성질을 건드리는 말에 다시 급하게 핸드폰을 내려놓은 남자가 담배를 바닥에 집어던지며 뒤로 고개를 돌렸다.

“누구야!”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좁고 긴 골목과 그곳을 가득채운 어둠 뿐.

사람의 모습은커녕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 별일 아니야. 어떤 미친 새끼가 겁대가리 없이 갑자기 시비를 걸어서.”

술 먹고 주제파악 못하는 인간의 유치한 장난쯤으로 생각한 남자가.

“몰라 나보고 쫄아서 도망갔나 보지. 아무튼 그 새끼한테 똑똑히 전해 이번에 완전히 물린 거 원금회복 못하면 진짜 내가 찾아가서 죽인다고.”

다시 통화에 집중하며 습관처럼 또다시 침을 뱉자.

“캬- 퉤.”

[“진짜 더러워 죽겠네.”]

또다시 어둠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어떤 X친 새끼가 진짜 뒤지려고 환장을 했나!”

급하게 핸드폰을 끊은 남자가 빠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또다시 그의 눈에 보이는 건 마치 블랙홀처럼 어두운 골목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자기 옆을 스쳐지나가는 취객들 뿐.

자신의 화를 긁어놓은 인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너 이 새끼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하지만 자기의 속을 긁어놓은 인간이 골목 안에 있다고 확신한 남자가.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 그런데 너 오늘 잘못 걸린 거야…….”

마침 화풀이 대상을 찾았다는 생각에 주먹을 말아 쥐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어두운 골목을 노려보던 그때.

깡!

어둠속에서 날아온 빈 캔 깡통 하나가 남자의 머리를 때리자.

“아! X발! 넌 진짜 오늘 뒤졌어!”

완전히 꼭지가 돌은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어두운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뭐가 이렇게 어두워.”

골목으로 뛰어 들어온 남자가 침침한 두 눈을 비비며 생각보다 어두운 골목에 살짝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불야성을 이루는 몇 걸음 밖의 큰 도로와 달리 어둠에 집어삼켜진 것 같은 좁은 골목은 마치 다른 세상의 출입구 같았다.

“지금 나오면 내가 목숨은 살려줄 테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

하지만 이미 분노에 반쯤 이성을 잃은 남자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어둠을 밝히며 천천히 골목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그때.

[“정훈식 씨.”]

어둠 속에서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어떤 새끼야!”

훈식이 본능적으로 권투자세를 취하며 주위를 살폈다.

[“정훈식 씨 맞으시죠?”]

“너 어떤 새끼야? 어디서 보낸 거야!”

또다시 들리는 낯선 목소리에 훈식이 뒷주머니에 꽂아뒀던 핸드폰을 슬쩍 꺼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한테 받을 게 좀 있는데.”]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훈식이.

“받을 거? X랄하네. 나와 이 새끼야!”

갑자기 핸드폰 플래시를 켜며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려 했지만.

플래시로 몰아낸 어둠 속엔 온갖 쓰레기들만 있을 뿐 사람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쥐새끼 같은 새끼. 진짜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

[“오늘 내가 당신에게 받아가야 할 게 있어.”]

“나오라고 이 새끼.”

훈식이 다시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핸드폰 플래시를 돌리며 동시에 주먹을 날리던 그때.

눈만 뚫린 검은색 가면을 쓴 낯선 존재가 훈식의 뒤에서 나타났다.

***

검게 물들었던 하늘이 조금씩 옅어지는 새벽.

길거리 여기저기 자기 집 마냥 쓰러져 자고 있는 술 취한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밤사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쓰레기들을 청소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환경미화원들의 발걸음이 바빴다.

쓰윽- 쓰윽-

“아니 술들을 먹으려면 좀 곱게들 처먹지. 왜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는 거야.”

큰 빗자루로 거리에 널린 쓰레기를 치우는 50대 후반의 남자가 연신 불만을 쏟아냈다.

쓰윽- 쓰윽- 쓱

“난 이 침들 좀 안 뱉었으면 좋겠어. 침을 왜 이렇게들 뱉는지.”

그러자 옆에 있던 동년배로 보이는 모자 쓴 남자도 덩달아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쓰윽- 쓰윽-

“아-후 진짜. 처먹는 놈들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이야. 양심이 없어요. 양심이. 이게 뭐냐고 이게.”

남자가 한곳으로 모아놓은 쓰레기더미를 바라보며 혀를 차다 빗자루를 벽에 세워놓고.

“거기 대충 쓸고 쓰레기봉투들 옮기자고. 곧 차 올 시간이니까.”

길가에 엉망으로 쌓인 쓰레기봉투를 수거하기 쉽게 정리하기 위해 다시 소매를 걷어붙였다.

“어.”

“내일 나올 때 안내문 하나 뽑아서 각 가게들 마다 붙여놔야겠어. 다음부터 이따위로 쓰레기봉투 내놓으면 안 가져간다고.”

“그러자고.”

“저쪽 골목 쪽 그때 잘 안 치워져 있다고 민원 들어왔으니까 특별히 좀 잘 봐.”

“누가 그렇게 민원을 넣는지 모르겠네 진짜.”

쓰레기봉투를 정리하던 모자 쓴 남자가 투덜거리며 골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자기들이 와서 치워보지. 치우지도 않을 거면 잘 버리기라도 하던가. 맨날 민원만.”

“아- 누가 여기다가 또 여행가방 하나 몰래 버려놨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던 모자 쓴 남자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리자.

“어떤 놈이 또 양심 없이 몰래 버리고 갔나보네.”

밖에서 쓰레기봉투를 정리하던 남자가 인상을 구기며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스티커 붙이고 그냥 둬. 이런 거 다 치워주니가 계속 버리는 거라고.”

그리고 [수거불가] 스티커를 먼저 도착해있던 남자에게 건네고 다시 발길을 돌리려 하자.

“이거 또 놓고 가면 민원 들어오는 거 아니야?”

스티커를 바퀴 빠진 큰 여행 가방에 붙인 모자 쓴 남자가 입을 삐죽거렸다.

“그렇게 욕먹기 싫으면 그럼 그냥 가지고 오던가.”

“에- 사람 귀찮게.”

다시 큰 도로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료를 따라 모자 쓴 남자가 여행가방 손잡이를 잡고 끌려던 그때.

“오!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묵직한 가방 무게에 자기도 모르게 놀란 얼굴로 멈칫했다.

“빨리 안 오고 뭐해.”

“이리 와서 좀 도와줘. 이거 혼자 들기 꽤 무겁네.”

“바빠 죽겠는데. 그것도 혼자 못 옮겨서 어떡해. 그냥 빨리 가지고 와.”

멀찌감치 떨어져 다른 쓰레기봉투를 옮기던 동료가 핀잔을 쏟아냈다.

“그러지 말고 와서 좀 같이 들어. 나 요즘 허리 안 좋단 말이야.”

“아- 진짜 사람 참. 또 어떤 새끼가 안에 쓰레기 가득 채워서 버렸나보네.”

어쩔 수 없이 투덜거리며 온 동료가 여행 가방을 발로 툭툭 차며 짜증을 내다.

“이까짓게 뭐가 무겁다고 엄살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보란 듯이 여행 가방을 힘껏 들어 올리려다.

“어이쿠.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꿈쩍도 안하는 여행 가방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지?”

“이거 도대체 안에 뭐가 들은 거야.”

“열어볼까?”

“열어봐.”

쿵-

가방을 발로 힘껏 밀어 바닥에 쓰러트린 모자 쓴 남자가.

지이익-

여행 가방의 양쪽 지퍼를 열어 가방을 열어젖히는 순간.

“아!”

“아-”

하얗게 질린 얼굴의 두 사람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찌며 비명을 질렀다.

***

“잠시 만요. 잠시 만요.”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사건현장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헤치며 도로로 들어선 최 반장의 앞에 바쁘게 움직이는 경찰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 좀 막아.”

“네.”

“자- 자- 모두 돌아가세요.”

“뒤로 물러나세요.”

최 반장의 지시에 경찰들이 급하게 추가로 폴리스라인을 치며 사람들을 통제했다.

“오셨어요.”

먼저 도착해 심각한 얼굴로 다른 형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성진이 꾸벅 인사하며 최 반장을 맞았다.

“어디야?”

최 반장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저기 골목안쪽에서 발견됐어요.”

성진이 손으로 몇 미터 떨어진 골목 입구를 가리키며 걸음을 옮기자.

“발견자는 누구야?”

그 뒤를 따르던 최 반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새벽에 청소하시던 시청 환경미화원 두 분이요.”

“어디서 발견됐어?”

“여행가방 안에 있었다고?”

성진이 고개를 돌려 라텍스 장갑을 건네며 말했다.

“여행가방?”

장갑을 끼던 최 반장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네.”

“감식반은?”

“곧 도착한다고.”

“신원은?”

골목 입구로 들어선 최 반장이 다시 골목 안 이곳저곳을 살피며 물었다.

“핸드폰하고 신분증이 없어서.”

성진이 난감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지문은?”

“이번에도 지문이 다 훼손됐어요.”

“흠-”

짧은 탄식을 내뱉은 최 반장이 사건 현장 앞을 지키고 있는 경찰들에게 가볍게 경례를 하며 질문을 던졌다.

“설마 이번에도 없어?”

“다행히 이건 있어요.”

벌써부터 코끝을 찡그리게 하는 피 비린내에 성진이 인상을 쓰며 머리를 가리키자.

“후-”

이런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최 반장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려는 순간.

“그런데 다른 게 없어요.”

“뭐가?”

성진의 말에 다시 인상이 구겨졌다.

“그게…….”

“뭐가 없는데.”

“이게 없어요.”

굳은 표정의 성진이 손가락으로 자기 심장을 가리켰다.

“이런 미친.”

이번에는 심장이 없다는 소리에 최 반장이 주먹을 말아 쥐며 이를 바득 갈았다.

곧이어.

“저기요.”

앞서 가던 성진이 사건현장에 도착해 먼저 길을 열어주자.

“흠-”

가방 안에 구겨져 있는 참혹한 훈식의 모습에 최 반장의 입에서 저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설마 저번처럼…….”

얼마 전 사건과 오버랩되는 사건모습에 성진이 굳은 얼굴로 말하자.

“단정하지 마.”

손으로 성진의 말을 자른 최 반장이 사건현장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펴보던 그 순간.

“네.”

착잡한 얼굴로 잠시 고개를 들어 벽을 바라보던 성진이.

“반장님 여기!”

급하게 최 반장을 불렀다.

“왜?”

“여기 또 있어요.”

성진의 손이 가리킨 곳을 따라 고개를 돌린 최 반장의 시선에 [Committitur] 쓰인 작은 메모지가 벽에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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