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곳에 내가 있었다-517화 (517/669)

#517.

“무슨 방법인데?”

최 반장이 궁금한 얼굴로 채린이를 바라봤다.

“현장 검증이요.”

채린이 반짝이는 눈으로 E.Y.E.S팀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췄다.

“현장 검증?”

“현장 검증을 통해 이학준 기억 속으로 들어가자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에 성진을 비롯한 팀원들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네. 여기서 안 되면 밖에서 방법을 찾아야죠.”

경찰서 안에서 더 이상 최면이 불가능하다면 밖으로 눈을 돌리는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그러니까 현장 검증 가서 최면을 걸자는 거야? 에- 그건 불가능하지 현장 검증하면 따라가는 인원들이 얼마고 또 보는 눈들이 얼마나 많은데.”

성진이 불가능하단 얼굴로 손을 흔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장 검증 가서가 아니라 가는 길에 하자는 거예요.”

“가는 길에?”

채린의 대답에 성진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네.”

“어떻게?”

최 반장이 팔짱을 끼며 궁금한 얼굴로 채린이를 바라봤다.

“예전 조춘식 때 썼던 방법으로요.”

딱.

“조춘식? 아- 그때 접촉 사고!”

나연이 채린의 계획이 뭔지 알겠다는 듯 핑거스냅을 하며 반색을 하자.

“그때 반장님이 내셨던 아이디어 말하는 거지? 조춘식 데리고 경찰서 가는 길에 일부러 접촉사고로 차 세우고 조춘식 차에 혼자 남았을 때 에어컨 통해서 수면 가스 넣었던. 지금 그 방법을 다시 쓰자는 거야?”

인혜가 나연의 말을 받으며 과거 조춘식 때 사용했던 방법을 떠올렸다.

“네.”

“그래. 그 방법이면 가능할 수도 있겠네. 차에 수면 가스 넣는 건 곽상식 때부터 효과 직빵이었잖아.”

내려갔던 성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현장 검증을 가는 길에 수면 가스를 사용해서 다시 이학준 기억 속에 들어가자는 거지.”

최 반장이 채린의 계획을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네.”

채린이 비장한 눈빛으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괜찮은 방법 같은데요.”

“저도 찬성이요.”

나연과 성진이 손을 들며 채린의 계획에 찬성하자.

“나도 나쁘지 않은 방법 같은데, 정 선생 생각은 어때요?”

최 반장이 최종 결정을 인혜에게 돌렸다.

“음- 처음 하는 방법도 아니고 가능만 하다면 지금 상황에선 가장 좋은 대안인 것 같아요.”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하던 인혜가 이내 팔짱을 풀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케 그런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네. 역시 우리 팀 에이스야.”

나연이 빙그레 웃으며 채린이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자.

“아니에요.”

채린이 쑥스러운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현장 검증 가는 길에 접촉사고 내고 최면까지 걸 시간이 될까요?”

하지만 방법을 찾은 기쁨도 잠시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자 미소 짓던 나연의 얼굴에 다시 근심이 내려앉았다.

“최면 시간은 10분 정도면 충분하니까 시간적으로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인혜가 걱정하는 나연을 안심시켰다.

“현장 검증은 어디로 정해야 할까요? 첫 번째 사건의 피해자인 이희연 씨가 발견된 장소로 해야 할까요?”

“경찰서에서 이희연 씨 사건 장소 까지는 별로 멀지 않아서 중간에 접촉사고도 내고 그러려면 거리가 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채린이의 말에 성진이 입꼬리를 내리며 고민을 하자.

“민찬욱 씨가 사라진 폐공장 현장 검증으로 하죠. 거기가 경찰서에서 제일 거리도 멀고 또 실질적으로 민찬욱 씨가 사라진 장소니까요.”

“그게 좋겠네요.”

“좋아요.”

최 반장의 말에 E.Y.E.S팀이 모두 찬성의 의미로 서로 눈을 맞췄다.

“그럼 그때 조춘식 때 쓴 차 필요하겠네요. 그 차 지금 어디 있어?”

“경찰서 차량이라 지금 차고에 있긴 한데요. 그 차를 쓸 수가 없어요.”

“왜?”

성진의 말에 나연이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때 한 번 쓰고 윤 법의관님이 그 장치 다 분해했거든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한 번 사용한 차량용 수면 가스 장치를 바로 분해해 처리한 주철이었다.

“없어요? 그럼 이번 계획 자체가 불가능하잖아요.”

인혜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그런데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리송한 성진의 대답에 궁금한 나연의 목소리가 커졌다.

“윤 법의관님이 그때 분해하시면서 나중에 아무 차에나 탈찰식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개량해서 다시 만드신다고 했거든요.”

“정말요?”

걱정으로 일그러졌던 인혜의 미간이 슬며시 퍼졌다.

“네. 아마 윤 법의관님 성격에 벌써 만들어 놓으셨을 거예요. 뜸 들이고 이런 거 싫어하시는 분이라.”

주철의 성격이라면 벌써 VER.2, VER.3까지 만들고도 남았다.

“그럼 빨리 윤 법의관님께 연락해봐야지.”

“네.”

나연의 재촉에 성진이 급하게 통화목록에서 주철을 찾았다.

“네. 전데요. 그때 그 아무 차량에나 설치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하신다고 하셨던 수면 가스 기계 있잖아요. 그거 만들어 놓으셨어요?”

성진이 관찰실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주철과 통화를 하는 사이 E.Y.E.S팀은 계속 회의를 이어갔다.

“그런데 현장 검증 가면 다른 형사분들도 다 따라갈 텐데 자연스럽게 접촉 사고를 낼 기회가 있을까요?”

인혜가 심각한 얼굴로 최 반장을 바라봤다.

두더지 게임처럼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튀어 올라왔다.

“기회야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학준이 워낙 눈치가 빨라서 일부러 접촉 사고 내면 바로 뭔가 의심할 것 같아서요.”

나연의 말에도 인혜는 쉽게 불안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접촉 사고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너무들 걱정하지 마요. 그 인간 차에 혼자 두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으니.”

채린의 말에 최 반장이 무슨 생각이 있는지 꽤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요?”

“그건 뭐 대충 아무 핑계나 대면 가능할 것 같아.”

“하긴 일단 차 안에만 넣어두고 가스 틀면 끝이긴 하니까. 안 되면 그냥 밀어 넣고 틀어버리죠. 뭐.”

나연이 유리 벽 너머 학준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채린이 하고 정 선생님, 도 팀장님은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걸로 하죠. 그리고 상황상 조춘식 때처럼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최면 걸고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 할 것 같으니까 이동하면서 하는 걸로 하고요.”

“국민성 때처럼요?”

최 반장의 말에 채린의 눈이 반짝였다.

“응.”

“국민성? 지금 감옥 간 그 국회의원 국민성이요?”

나연이 놀란 얼굴로 채린과 최 반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네.”

“그 사건도 우리 팀에서 해결한 거였어요?”

“네.”

“대박! 그럼 설마 그 무덤 비자금 금고부터, 국회의원 배지 독극물 살인사건까지 다 채린이가 찾은 거예요?”

“저 혼자 한 게 아니라 다 같이 도와주신 거죠.”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나연의 모습에 채린이 민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진짜 대박이다. 난 꿈에도 생각 못 했어.”

“그때는 아직 저희 팀에 들어오시기 전이었잖아요.”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는 나연을 향해 인혜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국민성 때처럼이라는 게 무슨 방법이에요?”

“국민성이 타고 가던 차를 뒤따라가면서 기억 속으로 들어갔거든요.”

“진짜? 이거 뭐 알면 알수록 대박이네. 어떻게?”

채린의 대답에 나연이 호기심 가득한 두 눈을 반짝였다.

“그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나중에 해드릴게요. 지금 다 설명해 드리기는 좀 길어서요.”

“알았어. 그럼 궁금하니까 이따 꼭 해줘.”

“네.”

“이제 방법은 다 찾았으니 차만 준비되면 되는 건가요?”

채린의 말에 나연이 잠시 궁금증을 뒤로 미루며 다시 학준의 사건에 집중했다.

“차도 준비 끝났어요.”

그때 주철과 통화를 마친 성진이 빙그레 웃으며 팀원들을 바라봤다.

“진짜요?”

“네. 조금 이따 다락방에서 나온 증거 결과하고 같이 가지고 오신대요.”

인혜의 말에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 결과 어떻게 나왔어?”

최 반장이 심각한 얼굴로 성진을 바라봤다.

“채린이 말처럼 등산 가방 안에 있던 흉기들 중 하나에서 이희연 씨 혈흔하고 이학준 혈흔이 동시에 발견됐어요.”

“됐어!”

나연이 주먹을 꽉 쥐며 쾌재를 불렀다.

“후- 다행이네요.”

기억 속에서 학준의 피가 칼에 묻는 걸 확인했지만, 항상 변수(變數)를 상수(常數)처럼 사용하는 학준이었기에.

혹시라도 학준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채린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채린이하고 도 팀장이 큰일 했네요.”

학준을 잡기 위한 큰 산을 넘은 것 같은 마음에 시종일관 굳어 있던 최 반장의 입가에도 이제야 옅은 미소가 번졌다.

“전 한 게 없어요. 채린이가 다 했죠.”

이번에는 나연이 모든 공을 채린에게 돌리자.

“아니에요. 왜 다 저 혼자 했다고 하세요. 이번에 팀장님 아니셨으면 혼자 못 했을 거예요.”

채린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연신 손을 흔들었다.

“무슨.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난 너 따라다닌 것밖에 없는데, 뭐.”

“팀장님 왜 안 어울리시게 겸손까지 하세요. 그냥 평소대로 하세요.”

성진이 빙그레 웃으며 나연에게 농담을 건네자.

“왜? 겸손까지 하니까 너무 완벽해서 부담스러워?”

나연이 성진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도도한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니요. 그냥 존재 자체가 좀 부담스러우세요.”

“또. 또 까분다.”

성진의 농담에 나연이 주먹으로 배를 툭툭 치며 받아주자.

“그러지 말고 경찰 그만두고 둘이 그냥 개그 콤비를 만들어 봐요.”

“오- 두 분 다 어울리실 것 같아요.”

피식 웃음을 터트리는 최 반장의 말에 인혜가 맞장구를 쳤다.

“이런 인간이랑 어떻게.”

“저도 싫거든요.”

두 사람의 티키타카가 재밌어서인지, 아니면 학준에 대한 실마리를 드디어 잡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무거웠던 팀원들의 얼굴에도 이제야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자- 자-.”

하지만 짧은 여유도 잠시.

“그럼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니까 마지막까지 긴장 늦추지 말고 저 쓰레기 깔끔하게 처리해 봅시다.”

다시 두 눈에 비장함을 채운 최 반장이 유리 벽 너머 히죽거리는 학준을 노려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

경찰서 취조실.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현장 검증이야.”

성진의 말에 학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현장 검증은 당연한 거야.”

성진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학준을 죽일 듯 노려봤다.

“당신들 미쳤어? 아니 내가 아무 죄도 없는데 무슨 현장 검증은 현장 검증이냐고. 나 못 해. 아니 안 해!”

“잔말 말고 일어서.”

막무가내인 학준의 모습에 성진의 목소리가 올라가던 그 순간.

“형사님 갑자기 저한테 왜 이러세요. 무서워요.”

갑자기 고윤으로 목소리를 바꾼 학준이 겁에 질린 얼굴로 훌쩍이기 시작했다.

“일어나.”

하지만 뻔히 눈에 보이는 학준의 장난질에 속을 성진이 아니었다.

“형사님. 저 김고윤이에요. 저 김고윤이라고요. 저 정말 억울해요. 이학준은 제가 지우고 싶은 제 안의…….”

쾅!

“이학준! 개수작 부리지 마라.”

단칼에 학준의 말을 끊은 성진이 이를 바득 갈며 책상을 내리치자.

“히히히히히.”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짜내며 고윤을 연기하던 학준이 갑자기 기괴한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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