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곳에 내가 있었다-542화 (542/669)

#542.

“채린아.”

놀란 최 반장의 두 눈이 커졌다.

위이이이-

깡.

“빨리 연결부터요!”

날아오는 드론을 쇠 파이프로 내리친 채린이 최 반장을 재촉했다.

“어, 어.”

또다시 채린에게 목숨을 빚진 최 반장이 고마움과 미안함을 미처 표현할 새도 없이 급하게 견인 줄을 차에 걸었다.

위이이이-

“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두 눈이 비장함과 분노로 이글거리는 채린이 기합을 넣으며 쇠 파이프를 휘두를 때마다 쉴 새 없이 달려들던 드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위이이잉

깡-

“아! 아직 멀었어요?”

채린이 다급히 외치며 최 반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던 그때.

철컥.

“됐어!”

견인 줄을 묶은 최 반장이 급하게 굽혔던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먼저 빨리 타세요.”

채린이 쇠 파이프를 휘두르며 말소리가 빨라졌다.

“어.”

탁.

“채린아, 뭐 해! 빨리 타!”

급하게 시동을 다시 건 최 반장이 채린을 다급하게 불렀다.

위이이이-

탁.

“빨리 타세요!”

날아드는 드론을 마지막으로 쳐낸 채린을 향해 구급차 뒷문을 열어준 구급대원이 소리쳤다.

“네.”

주위에 부서져 떨어진 드론 몇 개를 먼저 구급차 안으로 집어 던진 채린이 곧이어 차 안으로 몸을 날렸다.

탁.

부르르릉.

문이 닫히고 구급차의 시동이 다시 걸리자.

“출발!”

최 반장이 성진과 연결된 핸드폰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네.”]

우우웅.

끼이익- 끼이익.

그러자 신호를 받은 E.Y.E.S팀이 타고 있던 앞차의 바퀴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돌아가자 두 차를 이은 견인 줄이 팽팽해졌다.

“꽉 잡아요.”

운전대를 힘껏 움켜쥔 최 반장이 고개를 돌리며 채린과 구급대원을 향해 소리쳤다.

“네.”

채린이 부상당해 들것에 누워 있는 구급대원을 다른 구급대원과 같이 꽉 붙잡아주며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부우웅-

끼이익

타이어가 터진 구급차가 앞차에 이끌려 빠른 속도로 공장 밖으로 끌려 나갔다.

***

잠시 후.

견인 줄에 끌린 구급차가 어둠 속을 얼마나 달렸을까.

“밖의 상황은 어때요?”

“이제 완전히 안 따라오는 것 같은데.”

채린의 말에 사이드미러로 뒤를 확인한 최 반장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안 쫓아올까요?”

“아까 공장 빠져나오면서 사이드미러로 봤을 때는 공장 문 앞까지만 따라오다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더라고.”

“어디 숨어서 따라오는 건 아니겠죠?”

채린이 불안한 표정으로 운전석과 연결된 창문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끼이익- 끼이익-

“프로펠러 소리 안 들리는 거 보니까 따라오지는 않는 것 같은데.”

터져서 찢어진 타이어는 어느새 다 떨어져 없어지고 휠이 바닥을 긁으며 내는 기분 나쁜 소리에 최 반장이 미간을 찡그렸다.

“저 그럼 이 상태로 더 가는 건 무리인 것 같은데, 그만 멈추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큰 고비는 넘겼다 생각한 구급대원이 지친 얼굴로 최 반장에게 말했다.

“네. 그러죠.”

고개를 끄덕인 최 반장이 조수석에 놓은 핸드폰을 집어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제 괜찮아진 것 같으니까 잠깐 멈춰 봐.”

[“네.”]

성진의 짧은 대답과 함께 구급차를 끌던 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자 최 반장도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잠시 쉬고 계세요. 곧 구급차 올 겁니다.”

차가 멈춰 서자 최 반장이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구급대원에게 말한 뒤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다.

드르륵.

탁.

“괜찮으세요?”

구급차에서 뒤따라 내린 채린이 지친 얼굴로 구급차에 기댄 최 반장을 바라봤다.

“응. 넌 괜찮아? 어디 다친 곳 없어?”

뻐근한 뒷목을 주무른 최 반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채린을 빠르게 훑으며 물었다.

“네. 다행히 멀쩡해요.”

채린이 몸 이곳저곳을 가볍게 툭툭 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 후- 정신이 하나도 없네.”

“저도요.”

생사를 넘나들며 수많은 일들을 겪었던 게 불과 몇 분 전이었다는 게 풀벌레 소리만 가득한 평화로운 지금 상황과 비교하니 쉽게 믿기지 않았다.

“아까 구해줘서 고마워.”

“당연한 일인데요.”

멋쩍은 최 반장의 감사 인사에 채린도 덩달아 어색한 미소를 짓던 그때.

“어디 다친 곳은 없으세요? 채린아, 괜찮아?”

앞차에서 내린 성진이 다급하게 두 사람에게 뛰어왔다.

“괜찮아.”

“저도요.”

“후- 다행이네요.”

“야- 이번 사건은 진짜 스펙터클하네요.”

“그러니까요.”

뒤따라 차에서 내린 나연과 인혜가 질린 얼굴로 혀를 내둘렀다.

삐빅.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철까지 차 문을 잠그고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합류하자.

“모두 수고 많았어요.”

최 반장이 많은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E.Y.E.S팀을 바라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다 고생했죠, 뭐.”

“그런데 민찬욱 씨는.”

“잠깐 긴장이 풀리셨는지 기절하듯 주무세요.”

“힘들 만도 하지.”

인혜의 말에 최 반장이 안쓰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해야 했던 인질 역에 이어.

생사를 넘나들던 순간까지.

그동안 슬픔과 분노 그리고 학준을 반드시 잡겠다는 집념으로 애써 참아왔던 피로가, 학준을 잡았다는 사실에 살짝 긴장을 푼 찬욱을 덮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학준하고 둘만 있어도 괜찮을까요?”

채린이 불안한 눈으로 두 사람만 남은 차를 바라봤다.

“이학준 눈, 귀 다 막고 정 선생님이 진정제까지 주사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은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자고 있으니까.”

혹시 몰라 준비했지만 최면에는 사용할 수 없었던 진정제를 이제야 사용한 인혜였다.

“아니요. 민찬욱 씨가 이학준 어떻게 할까 봐…….”

자신을 안심시키는 나연을 향해 채린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이 탄 차를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찬욱이 학준을 백번 죽인다 한들 이상하지 않은 상황.

무슨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한 채린이었다.

“그럴 일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죽이기로 마음먹었으면 아까 벌써 죽였을 거야.”

인질로 잡혔다 풀려났던 상황부터 폐공장 기계 밑에서 같이 있던 상황까지.

찬욱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학준을 죽일 수 있는 기회는 많았기에.

최 반장이 걱정하는 채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심시켰다.

그리고 지한이의 유골함을 품에 안은 순간 이젠 찬욱이 더 이상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드론은 어디서 날아온 걸까요.”

“이학준 뒤에 있는 놈이 보낸 거겠죠.”

인혜의 말에 성진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 그 드론만 있으면 그래도 대충 어디서 왔는지 알아볼 수 있을 텐데. 이따 지원팀 오면 같이 가서 부서진 거라도 챙겨와야겠어요.”

나연이 저 멀리 보이는 공장을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짓던 그때.

“지금 있어요.”

채린이 구급차 뒷문을 열며 말했다.

“있다고? 드론이?”

나연을 비롯한 E.Y.E.S팀의 시선이 일제히 채린에게 쏠렸다.

“네. 아까 혹시 몰라서 챙겼어요.”

채린이 구급차 안에서 부서진 드론 두 개를 꺼냈다.

“여기요.”

“오-”

“역시 채린이.”

성진과 나연이 연신 채린이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음-”

채린에게 드론을 건네받은 나연이 집중한 듯 미간을 구기며 꼼꼼히 부서진 드론을 살폈다.

“그걸로 뭘 좀 알아낼 수 있을까요?”

최 반장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메인 칩만 살아 있다면 가능성은 있으니까 알아봐야죠. 그런데 이 프로펠러 보세요. 여기서 살아남은 게 기적이네요.”

나연이 칼날 같은 프로펠러를 가리키며 혀를 내둘렀다.

“어떤 인간이 프로펠러를 칼로 만들어서 날릴 생각을 하지.”

“이학준을 심부름꾼으로 쓸 정도면 얼마나 X친 놈이겠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단 성진의 말에 나연이 맞장구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건 제가 책임지고 알아볼게요.”

“수고 좀 해줘요.”

굳은 얼굴로 나연을 바라보던 최 반장이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주철을 바라봤다.

“아까 윤 법의관님 좀 멋있었어요. 무슨 영화같이 등장하시던데요.”

“하하하. 그랬나요?”

주철이 쑥스러운 듯 안경을 밀어 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진짜 아까 말릴 새도 없이 운전석으로 자리 옮기자마자 바로 공장 문으로 그냥 바로 밟으시는데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나연이 아까 상황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젓자.

“미안해요. 아까는 워낙 상황이 급해 보여서.”

주철이 성진의 옷 앞에 꽂힌 카메라 펜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덕분에 저희가 살았잖아요.”

두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한 성진이 이번엔 인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정 선생님 아까 고마워요. 각목 아주 나이스 타이밍이었어요.”

“별말씀을요.”

“넌 뭐 다 고맙다고만 하고 도대체 이번에 뭘 한 거야.”

최 반장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성진의 가슴을 가볍게 툭툭 치며 웃었다.

“에- 반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죠. 아까 저 막 총 쏘고 날아다니는 거 못 보셨어요? 완전 혼자 액션영화 찍었는데.”

“오버하지 마.”

성진이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자 최 반장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위이이잉-

“여보세요.”

액션영화 찍듯 몸을 움직이던 성진이 급하게 핸드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알았어.”

“누구야?”

“이제 곧 지원팀하고 구급차 도착할 것 같은데요.”

“이제 진짜 끝난 건가요?”

“제발 좀 끝났으면 좋겠어요.”

“저도요. 좀 피곤하네요.”

인혜와 나연 그리고 주철이 동시에 지친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할까요.”

“어떤 걸?”

채린의 말에 최 반장이 되물었다.

“제가 여기에 있는 건 좀.”

자신이 사건 현장에 있는 건 아무래도 그림이 이상하다 생각했다.

“뭐 이미 구급대원들도 다 봤잖아. 그리고 그런 사람도 없겠지만 만약 물어보면 도 팀장 따라서 윤 법의관님도 정 선생도 그리고 너도 도와주러 온 지원팀이라고 다 소개할게.”

“네.”

최 반장의 말에 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들 정신없어서 널 신경 쓸 겨를도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네.”

그 순간.

“그런데 아까 일은 어떻게 된 거야?”

아까부터 뭔가 묻고 싶은 듯 입술만 달싹거리던 성진이 이제야 기회가 왔다는 듯 조심스럽게 채린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요?”

“그게…….”

또다시 잠시 머뭇거리며 최 반장의 눈치를 살피던 성진이 이내.

“동우 말이야. 뭔가 알아낸 거 같아서.”

결심한 듯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적막.

E.Y.E.S팀의 모든 시선이 최 반장을 향했다.

“후- 진짜 알아낸 거야?”

마음의 준비를 하듯 긴 한숨을 내쉰 최 반장이 초조한 눈으로 채린을 바라봤다.

“아- 그게.”

채린이 최 반장을 바라보며 입술을 움직이던 그때.

띵-동.

주머니에 넣어둔 채린이의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잠깐만요.”

“누구야?”

“뭘 그런 걸 물어봐. 프라이버시지.”

나연이 성진을 구박하면서도 묘한 타이밍에 온 연락에 궁금한 눈빛으로 채린의 핸드폰 화면을 슬쩍 바라봤다.

“……반장님.”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채린이 떨리는 눈빛으로 최 반장을 바라봤다.

“어.”

최 반장의 두 눈동자가 불안감과 기대감으로 흔들렸다.

“이것 좀 보실래요?”

“왜? 뭔데?”

그리고 이내.

“…….”

“왜 그러세요.”

“반장님.”

“괜찮으세요?”

갑자기 창백한 얼굴로 채린이 건넨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최 반장의 모습에 모든 팀원들이 걱정하며 묻던 순간.

“도, 동우야.”

왈칵 눈물을 쏟은 최 반장이 핸드폰을 품에 끌어안은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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