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5.
경찰서 복도.
“뭐? 돈이 없어?”
최 반장의 미간 사이에 깊게 주름이 파였다.
[“네.”]
“도대체 그 돈이 어디로 간 거야.”
[“아무래도 바꿔치기한 것 같아요.”]
“언제?”
[“중간에 골목으로 도망쳤었는데 아마 거기서 바꿔치기 한 것 같아요.”]
“골목?”
[“네. 중간에 좁은 골목으로 도망가느라 못 쫓아갔었거든요.”]
“젠장.”
[“미리 계획을 다 세웠던 것 같아요.”]
핸드폰 수화기 너머 성진의 목소리에 분노와 짜증이 뒤섞여 흘렀다.
“흠.”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그 골목은 확인해봤어?”
[“아직이요. 일단 이놈들 경찰서에 데려다 놓고 이따 가보려고요.”]
“쉬운 게 없네. 쉬운 게.”
[“채린이는 승현이한테 간다고 해서 병원으로 갔는데 연락받으셨죠?”]
“응.”
최 반장이 살짝 열린 사무실 문틈 사이로 조사 받고 있는 요양원 직원과 운전기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짧게 대답했다.
[“승현이는 좀 괜찮나요?”]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근육이 좀 놀란 것 같아.”
[“후- 천만다행이네요.”]
성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채린이랑은 현장에서 헤어진 거야?”
[“네. 제가 이놈들 데리고 가느라 따로 택시 타고 병원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지금 어디쯤이야?”
[“이제 거의 다 왔어요. 한 5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그래.”
최 반장이 복도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그런데 아까 그 여자애 맞죠?”]
“응.”
성진의 말에 최 반장의 입꼬리가 저절로 내려갔다.
[“그냥 딱 보자마자 그 애 같더니. 그런데 도대체 그때 왜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거래요?”]
“몰라 아직 물어보지 않았어. 지금 다른 사람들 조사 중이라.”
[“다른 사람들 조사는 어떻게 됐어요? 보이스피싱 일당들 맞아요?”]
“일단 들어와. 들어와서 이야기해. 끊는다.”
띠릭.
길어질 것 같은 이야기에 최 반장이 서둘러 통화를 끝냈다.
“후-”
긴 한숨과 함께 최 반장이 복잡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금연 사탕 하나를 꺼내던 그때.
“반장님 잠깐만.”
사무실 문을 열고 박 형사가 최 반장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왜? 무슨 일 있어?”
최 반장이 깐 사탕을 입에 밀어 넣으며 심각한 얼굴로 박 형사에게 걸어갔다.
“일단 세 명 다 신원조회는 해봤는데요. 지금 당장 딱히 의심 갈만한 건 없는데요.”
“그래?”
“네. 한 명 빼고요.”
“운전기사?”
“어떻게 아셨어요?”
대답도 하기 전에 최 반장이 정답을 이야기하자 박 형사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외모가 남다르잖아요. 전과가 뭐야? 폭력?”
“네. 폭력으로 짧게 1년 씩 2번 살았더라고요.”
“조직 출신이야?”
최 반장이 눈가를 찡그리며 물었다.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거 보니까 그쪽은 아닌 것 같아요.”
조직폭력배 출신들은 따로 경찰에서 데이터베이스로 관리를 하고 있었기에 그쪽 출신인지 아닌지 아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요양원 직원은 맞아?”
최 반장이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확인해보니 맞더라고요.”
“맞아?”
최 반장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도 좀 의외였어요. 그 요양원에서 일한지도 거의 1년 가까이 되던데요. 그리고 다른 그 남자 직원도 요양원 직원 맞고요.”
“요양원에 연락해서 확인해봤어?”
“네. 조금 전에 이 형사가 확인해봤는데 두 사람 다 요양원 직원 맞고요. 오늘 은행에 돈 뽑으러 직원들하고 알바생 간 거 맞다고 하더라고요.”
“흠- 다 직원이라고…….”
대답을 들은 최 반장이 팔짱을 끼며 뭔가 찜찜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아까 다 보이스피싱 애들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박 형사가 살짝 열린 사무실 문 쪽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 그냥 감이 그렇다는 거지.”
최 반장이 사탕을 오물거리며 눈가를 찡그렸다.
“보니까 딱히 보이스피싱 애들 같지는 않던데요. 그리고 보이스피싱 하는 애들이 요양원에서 일할 리가 없잖아요.”
“흠- 같이 온 여자애는.”
박 형사의 말을 곱씹어보던 최 반장이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그 애만 아직 조사 못 했어요. 바로 들어가서 할게요.”
“아니. 그 애는 내가 직접 할게.”
최 반장이 굳은 얼굴로 오물거리던 사탕을 와그작 깨물며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
“최정미 씨.”
“네.”
“신분증 좀 주시죠.”
최 반장의 자리에서 시작된 정미의 조사는 간단한 신상 조회로 시작했다.
“여기요.”
“31살이면 생각보다 나이가 좀 있네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최 반장이 정미와 신분증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좀 동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정미가 쑥스러운 듯 옅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아까 요양원 직원 말 듣기로는 최정미 씨 나이를 오늘같이 일 한 한승현 씨와 비슷한 20대로 알고 있던데. 혹시 나이를 속인 건가요?”
“속이다뇨. 그분이 지레짐작으로 잘 못 알고 계신 거죠.”
최 반장의 말에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인 정미가 한순간 자신에게 쏠린 사무실 사람들의 시선에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분은 그냥 오늘 알바 관리 차원에서 나오신 분이라 저나 승현 씨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것 같았어요.”
“그럼 지금 학생이신가요? 그때 그 퍽치기 당한 돈 학교 등록금이라고 하셔서.”
“엄밀히 말하면 지금 학생은 아니에요.”
“그럼요?”
“제가 개인적인 일 때문에 학교를 휴학 했는데, 이번에 복학하려고 준비하다 그때 그런 일을 당한 거였거든요.”
“휴학을 꽤 오래 하신 것 같은데, 개인적인 일이라면…….”
“다 돈 문제죠.”
정미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그때 돈도 다시 찾았으니 이번에 복학했나요?”
“아니요.”
“왜요?”
최 반장의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개인적인 일인데 다 말씀드려야 하나요?”
“좋습니다.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오늘 한 알바는 처음이었나요?”
퉁명스런 정미의 대답에 최 반장이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네.”
“오늘 알바는 누구 소개받고 한 건가요? 특별히 따로 알바 공고(公告)도 안 해서 소개받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알바라고 하던데.”
“그 요양원에 저희 할머니가 계셔서 자주 뵈러 다니다 보니, 거기 계신 직원분들하고 자연스럽게 친해졌는데, 좋은 알바 자리 하나 있으니까 해보라고 소개해 주셔서 하게 됐어요.”
“요양원 직원분들하고 꽤 친했나 보네요.”
“네. 아무래도 할머니 때문에 자주 가다 보니.”
“요양원에는 얼마나 자주 갔나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갔어요.”
“그런데 아까 오늘같이 온 요양원 직원하고는 잘 모르는 사이라고 했잖아요.”
최 반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질문을 던졌다.
“요양원에 직원분이 몇 명인데 제가 어떻게 다 알겠어요.”
살짝 목소리를 높이려던 정미가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희 할머니 돌봐주시던 층 직원분들하고나 친한 거죠.”
“그분들 중 누가 이 알바를 소개해 준거죠? 누군지 정확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런데 이런 건 왜 물어보시죠? 제가 알바한 게 죄가 되나요?”
“아니요. 그냥 확인차 여쭤보는 겁니다.”
“그런데 마치 제가 무슨 범죄와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물어보시는 게 좀 그러네요.”
정미가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죠.”
어차피 나중에 요양원에서 다시 꼼꼼히 확인해볼 생각.
지금은 슬쩍 한번 정미를 떠본 최 반장이었다.
“그럼 그때 이야기를 좀 해보죠. 그날 왜 갑자기 경찰서에서 사라진 겁니까.”
최 반장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갑자기 할머니가 위급하시다는 소식을 들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말씀 못 드리고 간 건 죄송합니다. 워낙 그날 제정신이 아니라.”
정미가 최 반장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친할머니인가요?”
“아니요.”
“그럼 외할머니?”
“후-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저를 그냥 어렸을 적부터 키워주셨던 분이세요.”
한숨을 내쉰 정미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키워주신 분이요? 실례지만 가족분들이 안 계신가요?”
“보육원에서 자랐어요. 부모님 얼굴도 모르고요.”
정미가 고개를 떨어뜨리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네.”
“할머니도 가족이 없으셔서 저를 친 손녀처럼 예뻐해 주시면서 키워주셨거든요. 할머니가 안 계셨다면 전 아마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정미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할머니분 성함이.”
“김 점 자 례 자세요.”
따 닥다 따다닥 다다.
노트북에 할머니의 이름을 입력한 최 반장이 질문을 이어갔다.
“연세가.”
“89세에 돌아가셨어요.”
“네. 슬픔이 크셨겠네요.”
“한동안은 슬픔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어요.”
정미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흐느꼈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신 거죠?”
최 반장이 책상에 있던 티슈를 뽑아 건네며 계속 질문을 던졌다.
“제가 4살 때 인가 보육원에 봉사활동 오셨다가 유독 저를 예뻐해 주셔서…… 그런데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요?”
눈물을 닦으며 입술을 움직이던 정미가 급하게 말을 끊으며 못마땅한 얼굴로 최 반장을 바라봤다.
“자세하게 말씀 안 해주셔도 됩니다. 그럼 장례도 혼자 치르신 건가요?”
“요양원에서 좀 도와주셨어요.”
“고생 많으셨겠네요. 혹시 그럼 그 등록금을 장례비로…….”
“…… .”
정미가 침묵으로 최 반장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데 장례 이후에 왜 다시 경찰서에 연락하지 않았나요. 저희가 분명 찾을 거란 생각은 못 하셨나요?”
“장례 치르고 뭐 이것저것 할머니 유품들 정리하고, 저도 마음 추스르고 하다 보니 경황이 없었어요. 그리고 이미 돈도 찾았고 특별히 연락 안 드려도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해서……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미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놈들은 어떻게 됐나요?”
이번에는 정미가 역으로 최 반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때 퍽치기범이요?”
“네.”
“구속돼서 지금 아마 재판 중 일 겁니다.”
“그런 놈들은 꼭 죗값 받게 해주세요.”
정미가 분에 찬 얼굴로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그래야죠.”
“그런데 승현 씨는 괜찮나요?”
“네.”
“다행이네요.”
“다행이죠.”
최 반장이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가락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런데 두 분이 무슨 관계세요?”
정미의 질문에 노트북 위를 움직이던 최 반장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친구 아들이에요.”
하지만 이내 최 반장이 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아- 네. 성이 달라서 아닌 줄 알았지. 꼭 무슨 아들 다친 것처럼 걱정하시기에 저는 진짜 아들인 줄 알았어요.”
정미가 최 반장의 책상 앞에 붙은 이름표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었겠네요.”
최 반장의 짧은 대답이 끝나자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제 저한테 물어보실 건 다 물어보신 것 같은데 아닌가요?”
먼저 입을 연 정미가 이제 그만 조사를 끝내 달라는 듯 자세를 고쳐 앉으며 최 반장을 바라봤다.
“네. 이 정도면 된 것 같네요.”
최 반장이 노트북에서 손을 떼며 정미를 바라봤다.
“저 그럼 이제 알바 가도 될까요? 지금도 많이 늦어서요.”
“좋습니다. 오늘은 가보셔도 좋습니다.”
“오늘은요?”
최 반장의 말에 정미가 눈가를 찡그리며 되물었다.
“네. 혹시라도 저희가 또 연락드릴 일이 있을지 몰라서요.”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정미가 의자에서 일어나던 그 순간.
위이잉- 위이잉-
쥐고 있던 핸드폰이 손 안에서 울리자 습관처럼 귀에 가져댔다.
“여보세…….”
“저희가 전화하면 그렇게 받으시면 됩니다.”
“오늘 여러 가지로 썩 유쾌하지는 않네요.”
하지만 이내 앞에서 자신에게 건 핸드폰을 흔들며 빙그레 웃고 있는 최 반장을 보자 짜증 난 얼굴로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경찰서가 유쾌한 곳은 아니라.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최 반장이 사무실 문 쪽을 손으로 안내하며 능청스럽게 말하자.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수고 하세요.”
정미가 최 반장을 한번 쏘아붙이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로 밖으로 나갔다.
쾅-
그러자 책상 위 어지럽게 쌓아놓은 서류파일 사이에 손을 찔러 넣은 최 반장이 그 속에서 작은 녹음기를 꺼내 [정지] 버튼을 누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최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