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곳에 내가 있었다-566화 (566/669)

#566.

철컥

“지금 밖으로 나간 여자 그 애 맞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성진이 놀란 얼굴로 뒤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응.”

자리에서 일어난 최 반장이 창가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냥 저렇게 보내시는 거예요?”

성진이 이해할 수 없단 얼굴로 최 반장을 바라봤다.

“그럼 아무 죄도 없는데 뭐로 잡아.”

“저 애 분명 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성진이 눈가를 찡그리며 최 반장이 선 창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이거나 도 팀장 한테 보내.”

최 반장이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녹음기를 성진에게 건넸다.

“이게 뭔데요.”

성진이 받아든 녹음기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며 물었다.

“아까 저 여자애 진술 녹음한 거.”

최 반장이 어느새 주차장을 지나 경찰서 정문으로 향하는 정미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내렸다.

“진술 녹음한 거는 왜요? 그리고 이건 또 언제 하셨어요?”

성진이 놀란 얼굴로 녹음기를 바라봤다.

“아까 조사 받으면서 슬쩍 했어. 아무튼 일단 도 팀장한테 보내봐.”

“설마 아까 그 여자애가 그 여자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성진이 놀란 눈으로 최 반장을 바라봤다.

“그냥 느낌이 그래.”

어느새 택시를 잡아타고 사라진 정미의 모습에 최 반장이 다시 책상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김대식 씨한테 사기 친 황은지 하고 승현이 한테 연락 온 김미영이 아까 다 그 애라는 말씀이세요?”

“그러니까 알아보자는 거잖아. 맞는지 아닌지. 빨리 그거나 맡기고 오라니까.”

최 반장이 귀찮다는 얼굴로 의자에 기대며 성진에게 빨리 가라고 손짓했다.

“지금 가봤자 어차피 도 팀장님 바빠서 바로 못 해주신다고 하실 텐데…….”

입꼬리를 내리며 녹음기를 주머니에 찔러 넣은 성진이 팔짱을 끼며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설마 자기 발로 경찰서에 왔을까요.”

“자기 발로 안 왔어. 내가 가자고 해서 온 거지.”

최 반장이 방금 전 정미와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한 파일을 확인하며 눈가를 찡그렸다.

“그래도요. 뭔가 찔리는 게 있으면 절대 순순히 따라 오지 못 했을 것 같은데요.”

“지금 상황에선 단순 퍽치기 목격자에 아무 죄도 없는데 괜히 안 간다고 고집 피우다간 더 의심만 살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거겠지. 그리고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

“생긴 건 세상 순진하게 생겼는데.”

성진이 팔짱을 끼며 알 수 없단 표정을 짓자.

“겉모습만 그렇지 보통 애가 아니야.”

최 반장이 마우스를 내리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어떤데요.”

“결이 좀 다르다고 할까.”

“결이요? 어떤 결이요?”

알 듯 모를 듯한 최 반장의 말에 성진이 궁금한 얼굴로 되물었다.

“뭐라 딱 설명할 순 없지만 아무튼 결이 달라.”

딱 부러지게 설명 할 수 없는 그 묘한 느낌에 최 반장이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입을 오물거리며 인상을 썼다.

“그냥 인간이 별로라는 말씀이시죠?”

성진이 최 반장의 답답한 곳을 긁어주듯 짧고 간결하게 정리했다.

“그래. 그냥 인간이 좀 별로야. 아무튼 일단 그 녹음기부터 빨리 도 팀장에게 넘겨.”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갑니다. 가요.”

성진이 최 반장의 성화에 못 이겨 사무실 문 쪽으로 발길을 돌리려던 그때.

“그런데 그 잡아 온 두 놈은 어떻게 됐어?”

최 반장이 성진을 불러 세웠다.

“지금 조사받고 있어요.”

“뭐 좀 나올 것 같아?”

“18살 고딩이라 딱히 뭐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아요.”

“18살? 후-”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최 반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네. 철이 없는 건지. 아니면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건지. 저도 잡고 나서 얼굴 보는데 심난하더라고요.”

성진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돈 많이 준다고 하니까 한 것 같은데…… 잘 구슬려서 입 열게 해봐.”

“그런데 아까 경찰서 오면서 잠깐 이야기해보니까 겁을 먹은 건지 쉽게 입을 열 것 같지는 않아요.”

“오면서 네가 또 애들 쥐 잡듯이 한 거 아니야?”

“아니요. 저 때문이 아니라 시킨 놈이 협박 한 것 같아요.”

최 반장의 말에 손사래를 친 성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하긴 집 주소 다 알고 가족 연락처 다 알고 있으니 입 뻥긋하면 가만 안 둔다고 그랬겠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무조건 잡혔을 때 입 닫고 있으면 그냥 훈방에 벌금 정도로 끝날 거라 교육 받은 것 같아요. 어차피 지금 걸린 건 오토바이 무면허 밖에 없으니까요.”

“처음부터 미끼였다.”

최 반장이 까슬까슬한 턱을 만지며 미간을 찡그렸다.

“플랜이 두 개지 않았을까요? 걸렸을 경우 걸리지 않았을 경우. 걸릴 것 같으면 미끼. 아니면 그냥 수금책.”

성진이 손가락 두 개를 펴며 말했다.

“흠- 일단 은행 앞 CCTV하고 그 주변 CCTV 부터 확인해봐.”

“벌써 윤 형사한테 지시했어요.”

“훗.”

발 빠른 성진의 모습에 최 반장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 잘했죠.”

“빨리 가서 녹음기나 맡겨.”

빙그레 웃는 성진을 향해 최 반장이 하여간 틈을 주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빨리 가라 손사래를 치며 의자에 걸어놓은 점퍼를 집어 들었다.

“가는 사람 붙잡아놓으시고는…… 어디 가시게요?”

입을 삐쭉거린 성진이 최 반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일단 그 가방 바꿔치기 했다는 골목부터 가봐야지.”

점퍼를 걸친 최 반장이 지퍼를 올리며 말했다.

“저도 같이 가요. 이것만 금방 맡기고 올게요.”

***

서울의 한 고층 오피스텔.

띵- 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정미가 굳은 얼굴로 내리자.

“오셨습니까.”

사무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건장한 남자 둘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X발.”

침 뱉듯 미간을 찡그리며 욕을 내뱉은 정미가 남자들이 열어준 사무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러자 마치 콜센터를 연상시키는 사무실 안은 수많은 사람들의 통화소리로 가득했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정미에게 쏠렸다.

“뭘 봐! 돈 벌어! 돈!”

사람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른 정미가 씩씩거리며 안쪽에 있는 사무실 문을 부술 듯 열며 들어갔다.

쾅-

“야. 야. 그래서 문이 망가지겠냐.”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던 험상궂은 표정의 남자가 빈정거리며 정미를 반겼다.

“닥쳐라.”

남자를 죽일 듯 노려보던 정미가 사무실 한쪽에 있는 냉장고 문을 열며 캔 맥주를 꺼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골이 나셨을까.”

“아무 일이 없어? 아무 일이 없어!”

정미가 남자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무슨 일이 있는데. 돈은 이미 다 수금했고, 그럼 됐잖아.”

치킥

꿀꺽. 꿀꺽.

맥주 캔을 딴 정미가 단숨에 목구멍으로 술을 들이붓더니.

크으-

손등으로 입을 한번 슥 닦고는 다시 남자를 향해 있는 대로 짜증을 냈다.

“되긴 뭐가 됐다는 거야. 넌 지금 이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냐!”

“그럼 무슨 문제가 있는데.”

“그것들이 분명 요양원을 파 볼 거 아니야.”

“그렇겠지.”

“그렇겠지?”

남자의 반응에 정미가 기가 찬 얼굴로 되물었다.

“그래서 뭐. 뭐가 달라지는데. 아니 요양원 운영하는 게 죄야?”

“지금 날로 먹던 황금 거위를 하나 잃을지도 모르는데…… 후 됐다. 너 같은 새끼하고 무슨 말을 하냐.”

정미가 남자를 인간 이하의 표정으로 바라보며 남은 맥주를 목에 털어 넣었다.

“오늘 알바로 그 남자 놈을 고른 것도 너고, 이 계획을 짠 것도 너야. 그런데 넌 지금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거냐.”

“…….”

뼈 때리는 남자의 말에 정미의 입이 굳게 닫혔다.

“그리고 내가 저번부터 경고했지 현장 뛰지 말라고. 그렇게 현장 뛰더니 아까 짭새한테 딱 걸리고. 아주 회장님이 좋아하시겠다.”

“너 진짜 뒤질래!”

깡.

정미가 던진 빈 맥주 캔을 고개를 까딱하며 가볍게 피한 남자가 핸드폰을 소파에 던지며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한 번만 더 나한테 저딴 거 던지면 진짜 가만 안 둔다고 했지.”

“이 새끼가 어디서 감히 나한테 대드는 거야!”

정미가 책상 위에 있던 유리 재떨이를 집어 들며 핏대를 세웠다.

“후- 됐다. 됐다. X 친 년 하고 싸워봤자 나만 X 친 놈 되는 거지.”

돌덩이 같은 주먹을 말아쥐며 엉덩이를 들썩이던 남자가 이를 바득 갈며 다시 소파에 등을 기댔다.

“경찰서에서 뭐라고 그래.”

잠시 화를 가라앉힌 정미가 냉장고에서 다시 맥주 캔을 꺼내며 물었다.

“뭘 뭐라고 그래. 전과 있는 놈한테 물어보는 거 뻔하지.”

“그래서 뭐라고 했냐고.”

“잘 대답했으니까 내가 너보다 먼저 와서 여기 앉아있는 거 아니겠냐.”

남자가 소파 등받이에 거만하게 양손을 걸치며 웃었다.

“그러니까 뭐라고 했냐고! 또 헛소리한 거 나중에 알려져서 뒤지기 싫으면 지금 당장 다 말해.”

“아- 진짜 저거 성깔머리 하고는…….”

정미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쉰 남자가 마지못해 입술을 움직였다.

“별거 없다고. 그냥 언제부터 요양원에서 운전기사 일 했냐. 뭐 이런 것만 묻더라. 됐냐?”

“그게 다야?”

“그래.”

“홍 실장한테는 뭐 물어봤어.”

“네가 직접 물어봐.”

“뭐라고 했냐니까 옆에 있었잖아.”

호락호락 하지 않는 남자의 모습에 정미가 속이 터져 죽을 것 같단 얼굴로 이를 바득 갈며 물었다.

“하- 요양원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됐냐. 오늘 온 알바생들하고 아는 사이였나. 항상 돈은 같은 은행에서 뽑았었냐. 뭐 이런 거 물어보더라. 됐냐.”

“다른 건.”

“홍 실장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밖에 있을 거 아니야.”

남자가 사무실 밖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단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후- 아무튼 당분간은 요양원 일은 올 스톱이야.”

“네. 네. 너 마음대로 하세요.”

남자가 정미의 지시에 빈정거리며 말했다.

“젠장.”

정미가 새로 딴 맥주를 벌컥 들이켜며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삭였다.

“그런데 아까 보니까 그 짭새가 너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 너 잘못하면 꼬리 밟히겠더라.”

“밟히긴 누가 밟혀!”

남자의 말에 정미가 마시던 맥주 캔을 책상에 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그렇게 세상 분간 못하고 까불고 다녀도 회장님이 너를 지금까지 그 자리에 두셨던 건 그래도 네가 일 하나는 잘 해서였는데. 오늘 일을 회장님이 들으시면 어떻게 나오실지 진심 궁금하네. 하하하하.”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정미를 바라보는 남자가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로 호탕하게 웃었다.

“웃지 마라!”

인상을 종잇장처럼 구긴 정미가 손에 쥔 맥주 캔을 다시 남자에게 던지려던 그때.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리며.

요양원 직원 아니 일명 홍 실장이라는 남자가 굳은 얼굴로 들어왔다.

“왜?”

정미가 짜증난 얼굴로 묻자.

“회장님 오셨습니다.”

홍 실장이 불안한 눈으로 정미를 바라봤다.

“회 회장님이? 지금?”

정미가 손에 쥐고 있던 맥주 캔을 슬며시 내려놓으며 떨리는 입술로 홍 실장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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