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곳에 내가 있었다-636화 (636/669)

#636.

“나 집에 갈 거야! 나 집에 갈 거라고.”

“가만히 좀 있어요.”

성진이 주사를 안 맞으려고 몸부림치는 수복을 온몸으로 세게 누르는 사이.

“됐습니다. CT실로 옮길게요.”

마스크를 쓰고 간호사 복장을 한 인혜가 수복의 팔에서 주사기를 뽑기 무섭게.

“네.”

커튼이 열리며 마스크를 쓴 남녀 간호사가 기다렸다는 듯 이동식 병원 침대를 끌고 들어왔다.

“이것들아, 풀어달라고…… 풀어…….”

서서히 퍼지는 약 기운에 몸부림치던 수복이 점점 조용해지며 눈이 슬며시 감기자.

“시작하죠.”

빠르게 수복의 상태를 확인한 인혜가 대기하고 있던 간호사들과 눈을 맞췄다.

“하나. 둘. 셋 하면 옮길게요. 하나. 둘. 셋.”

인혜와 두 간호사가 일사불란하게 기절한 수복을 이동식 침대로 옮겼다.

잠시 후.

병원 복도 천장에 [CT실] 팻말이 보이자 침대를 미는 두 간호사의 걸음도 빨라졌다.

이내 CT실 쪽 복도로 수복이 누운 이동식 침대가 꺾어 들어가자.

“여기요.”

먼저 도착해 있던 인혜가 문을 열어놓은 채 두 사람과 기절한 수복을 맞았다.

“네.”

하지만 침대가 들어간 곳은 CT실이 아닌 [비품실]이란 팻말이 적힌 옆 방.

“탁.”

이동식 침대가 방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성진이 문을 걸어잠그자 수복이 탄 침대를 밀었던 남녀 간호사가 동시에 마스크를 벗었다.

“후- 후-”

“하- 진짜 이 인간 때문에 별짓을 다 하네.”

“수고하셨어요.”

비품실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채린이 가쁜 숨을 내쉬는 주철과 나연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약효는 얼마나 갈까요?”

핸드폰 시간을 확인한 성진이 초조한 얼굴로 인혜를 바라봤다.

“일단 30분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하지만 너무 깊게 마취하면 최면 자체가 힘들 수 있어서 약간 가수면 상태로 만들어 놓은 거라 마지막으로 상태 한번 확인하고 바로 시작할게요.”

“네.”

“그런데 이 인간은 왜 아까 계속 ‘시간이 다 됐다’는 둥 시간 타령을 한 걸까? 거기다 보물찾기 하자는 등 헛소리나 하고 말이야. 사람 불안하게.”

인혜가 수복의 상태를 살피는 사이 침대에 누워있는 수복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나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도 그게 좀 불안해요. 분명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같은데…….”

“분명 좋은 계획은 아닐 테고. 뭘까?”

“후- 저도 잘 모르겠어요. 무슨 꿍꿍이인지 빨리 알아야 하는데…….”

채린이 심란한 표정으로 같이 고개를 갸웃하며 수복을 바라보던 그때.

“어! 이것 좀 보세요.”

수복이 차고 있던 시계에 우연이 눈이 간 채린이 놀란 표정으로 팀원들을 불렀다.

“왜?”

“무슨 일인데?”

모든 사람의 시선이 채린이를 향했다.

“이 시계요. 지금 보니까 거꾸로 가고 있어요.”

“거꾸로?”

“어! 진짜네.”

시계 쪽으로 몸을 숙인 나연과 주철이 동시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이거 잘 보면 시침은 멈춰있고 분침하고 초침만 거꾸로 가고 있어요.”

채린이 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눈가를 찡그렸다.

“그러네. 지금 시간하고 시간이 안 맞네. 이거 왜 이러지?”

핸드폰 시간과 수복의 시계를 번갈아 확인한 인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이 미쳤으니까 차고 있는 시계도 미친 건가보죠.”

성진이 못마땅한 얼굴로 미간을 찡그리던 그때.

“이거 꼭 무슨 타이머 같지 않아?”

시계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주철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타이머요?”

주철의 말에 한걸음 떨어져 있던 성진이 다시 수복의 손목시계 앞으로 몸을 당겼다.

“어. 지금 이 분침이 29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계속 뒤로 가고 있잖아. 정말 고장 난 시계를 그냥 차고 다니는 게 아니라면 그리고 아까 취조실에서 시간이 다 되어 간다고 말하는 게 그냥 헛소리가 아니라면…….”

“설마 이거 계속 뒤로 가다 12시 정각되면 끝나는 거 아녜요? 만약 진짜 그게 맞다면 이제 겨우 30분도 안 남은 거잖아요.”

성진이 주철의 말을 끊으며 불안함에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그런데 이 타이머의 끝이 정각이라는 보장은 없잖아. 몇 바퀴 뒤로 더 돌아야 끝나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생뚱맞게 5분 뒤에 끝날 수도 있잖아. 그리고 그냥 진짜 고장 난 시계 일수도 있으니까 너무 섣불리 장담하진 말자.”

“저희가 취조실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죠?”

나연의 반론을 듣던 채린이 다급히 성진에게 물었다.

“정 선생님이 경찰서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준비해주셔서 취조실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10분, 여기 와서 다 간호사복 갈아입고 준비해서 여기까지 오는데 한 15분 정도?”

“그럼 이 시계 시간이랑 거의 비슷하잖아요.”

성진의 말을 들은 인혜의 표정이 한순간 굳어졌다.

“진짜 정각에 타이머가 맞춰져 있고…… 지금 이 분침이 지나온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거라면…….”

채린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이미 예상되는 끔찍한 결말에 모든 팀원이 동시에 아연실색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안되겠어요. 그냥 깨워서 이 인간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직접 물어봐야겠어요. 그냥 뚜드려 패서라도 물어보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요.”

흥분한 성진이 수복의 멱살을 잡으려 하자.

“진정하세요. 지금 깨지도 못할뿐더러. 설사 깨어난다 해도 말할 리가 없잖아요.”

인혜가 다급히 성진을 말렸다.

“그럼 어떡해요. 이제 시간이 겨우 30분도 안 남았는데요. 언제 기억 속에 들어가서 증거를 찾고 반장님을 찾냐고요.”

성진이 괴로운 얼굴로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그때.

“10분 아니 5분이면 돼요. 그 안에 증거 찾고 반장님 찾으면 돼요.”

두 주먹을 힘껏 말아쥔 채린이 팀원들을 바라봤다.

“가능할까?”

“무조건 가능하게 해야죠.”

나연의 걱정에 채린이 비장한 눈빛으로 비품실 한쪽에 있던 간이 의자를 펼치며 인혜와 눈을 맞췄다.

“선생님 바로 시작해요.”

“혼자 들어갈 거야?”

“네.”

“나랑 같이 가.”

성진이 옆에 있던 간이 의자를 펼치며 말했다.

“아니요. 김 형사님은 여기서 대기하시다가 반장님 위치 확인하고 제가 안에서 알려드리면 바로 찾으러 가셔야죠.”

“그럼 나랑 같이 가.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낫잖아.”

“만약 반장님과 다른 인질들이 각각 다른 곳에서 따로 감금되어 있다면 팀장님도 법의관님도 나눠서 찾으러 가셔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저 혼자 할게요.”

나연의 말에 채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진짜 혼자 괜찮겠어?”

“네. 후- 시간 없으니까 빨리 시작해요.”

짧게 심호흡을 한 채린이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 살짝 긴장한 얼굴로 말하자.

“좋아. 그럼 시작할게.”

채린과 눈을 맞춘 인혜가 수복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내 말 들리죠. 이제부터 내 말에 온전히 집중하세요.”

***

“후-”

천천히 눈을 뜬 채린의 앞에 익숙한 골목이 보였다.

“다행히 시간은 늦지 않았네.”

저번 ‘사랑방’ 창고에서 최 반장을 만나기 전 시간.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채린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빠르게 ‘사랑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뒤.

저번에 기억 속에서 들어왔을 때와 다른 곳에 몸을 숨긴 채린이 다시 한번 두 사람의 만남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네. 그런데 할아버지는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나 저기 있는 폐지 가지러 왔어. 이 집 사장이 항상 저렇게 잘 챙겨 놔주거든.”

“급한 일이면 사장한테 연락해봐. 가게 문 앞에 전화번호 적혀 있을 거야.”

할아버지가 폐지 더미를 가지고 온 노끈으로 묶으며 말했다.

“나중에 해볼게요.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최 반장이 폐지 더미를 노끈으로 묶고 있는 할아버지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괜찮아. 손 더러워져.”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그냥 두세요.”

옅은 미소 띤 얼굴로 폐지 더미를 묶은 노끈을 확인한 최 반장이 순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

“어.”

“이거요.”

“응. 이거 뭐?”

폐지 더미를 가리키는 최 반장의 모습에 수복이 순간 긴장했다.

“이거 방금 할아버지가 묶으신 거예요? 아니면 원래 묶여 있던 거예요?”

“하나는 사장이 나 가져 가라고 미리 묶어놓은 거고 하나는 방금 내가 묶은 거지.”

“이 둘 중에 어떤 게 할아버지가 묶으신 건데요?”

‘그땐 여기까지 보고 튕겨 나갔는데.’

저번에 주철과 기억 속에 들어왔을 때 봤던 장면이 딱 여기까지.

‘이제 보인다.’

그때는 갑자기 깨어난 수복 때문에 튕겨 나가기도 했지만, 자리를 잘못 잡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처음부터 두 사람이 잘 보이는 곳에 몸을 숨긴 채린이었다.

“후- 그게 왜? 누가 묶은 게 뭐가 중요한데?”

수복이 최 반장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할아버지가 묶으셨나 해서요.”

“난 아니야.”

‘거짓말.’

천연덕스러운 수복의 거짓말에 채린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럼 이건 여기 가게 사장이 묶은 건가요?”

“그런 것 같은데.”

“흐음- 네.”

깊게 심호흡을 한 최 반장이 확신에 찬 얼굴로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김 형사님은 저 때 연락이 안 됐으니까 다른 형사분에게 전화해서 가게 사장님이 범인이라고 말하려고 하시던 것 같은데.’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던 채린이 최 반장의 행동을 유추하던 그때.

“저 미안한데 나 좀 잠깐 도와줄 수 있나?”

조금 전까지는 도와줘도 한사코 괜찮다하던 수복이 갑자기 미안한 얼굴로 통화버튼을 누르려던 최 반장의 시선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네?”

“미안하지만 나 좀 도와달라고. 내가 아침부터 허리가 좀 안 좋아서 말이야. 웬만하면 내가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수복이 허리를 두드리며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저 잠깐만 전화 한통화만 하고 도와드릴게요.”

“급한 거 아니면 지금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성격이 좀 급해서 말이야. 해야 하는 일은 바로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리거든.”

“네.”

수복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다시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꽂은 최 반장이 폐지 더미를 들고 창고 밖으로 나가자.

“아이고 고마워요. 그럼 저기 리어카 위에만 좀 실어줘요. 안 떨어지게.”

골목 밖으로 고개만 빼꼼히 빼놓고 빙그레 웃으며 최 반장에게 지시하던 수복이 허리에 차고 있던 가위 테이프 등이 꽂혀있는 낡은 전대 가방에서 작은 주사기 하나를 꺼내 슬며시 소매 안으로 숨겼다.

‘설마 저걸로.’

이제야 최 반장이 갑자기 연락이 안 된 이유가 짐작이 가는 채린이었다.

잠시 후.

탁. 탁.

손을 털며 창고로 들어온 최 반장이 다른 폐지를 보며 수복에게 물었다.

“이것도 옮기면 되나요?”

“나야 다 옮겨주면 고맙지. 아이고 그런데 미안해서.”

“괜찮습니다.”

최 반장이 다시 폐지 더미를 들어 옮기려고 몸을 숙이자 수복이 소매 안에 숨겼던 주사기를 꺼내 최 반장의 목을 찌르려던 순간.

“저기 창고 열쇠요. 가게 주인이 항상 가지고 다니나요?”

“어?”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최 반장의 모습에 수복이 다시 급하게 주사기를 등 뒤로 숨겼다.

“창고 열쇠 혹시 여기 어디 창고에 놓고 다니나 해서요.”

“그러게…… 잘 모르겠네.”

큰 잘못 하다 걸린 사람처럼 수복이 최 반장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얼버무리던 그때.

“그런데 뒤에 감추신 건 뭐예요?”

최 반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등 뒤로 숨긴 수복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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