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곳에 내가 있었다-651화 (651/669)

#651.

학교 교무실.

“지금 경욱이 담임 선생님이 출장 중이시라. 제가 부담임입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최 반장과 성진을 위아래로 빠르게 스캔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 경욱이에 대해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

“일단 앉으시죠. 지금 다 수업들 들어가셔서 앉으셔도 괜찮습니다.”

남자가 주위에 있던 동료 선생님들 의자를 끌고 와 두 사람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네.”

“경욱이가 정말 그런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해서 지금 학교도 난리가 났거든요. 아니, 사람을 치다니…… 그것도 훔친 차로. 하- 진짜 어떻게 이런 일이 저희 학교에서 일어났는지. 끔찍하네요. 끔찍해요.”

최 반장과 성진이 의자에 앉기 무섭게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죠. 학교 분위기는 많이 안 좋나요?”

“그럼요. 좋을 리가 있나요. 더구나 이번에 학교 평가가 있는데 이런 사건 터지면 치명적이거든요. 아- 그래서 위에서 얼마나 쪼는지. 후-”

성진의 말에 남자가 짜증 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네.”

“그나마 운영위원회에 계신 분들이 영향력이 있으신 분들이라 언론 쪽에 힘을 좀 썼는지 아직 언론에서 잠잠한 게 천만다행이죠. 아니었으면 기자들 찾아오고 여기 교무실 전화 불났을 거예요.”

남자가 주위를 살피며 두 사람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운영위원회가 그렇게 힘이 센가요?”

최 반장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네 뭐…….”

묘한 표정을 짓던 남자가 급하게 이야기를 돌렸다.

“그런데 그럼 경욱이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직 만 14세 미만이라 형사처벌은 불가능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그럼 촉법소년이라 그냥 풀려나는 건가요?”

“그건 두고 봐야죠.”

최 반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두고 본다는 말씀은 설마 소년원에 가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단 말씀인가요?”

남자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아직 조사 중인 사건이라 결과를 미리 예단하긴 어렵고요.”

최 반장이 말을 돌렸다.

“평소에는 어떤 아이였나요?”

“음- 그냥 공부 잘하는 조용한 아이였어요. 크게 눈에 띄지도 않고 또 띄고 싶어 하지도 않는 그런.”

“공부를 잘 했나 봐요?”

성진이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며 물었다.

“네. 사교육 하나 받지 않고 저희 반에서 항상 1등 하던 아이였으니까요.”

“아- 그래요. 여기 공부로 좀 유명한 것 같던데. 여기서도 1등 할 정도면 진짜 잘하나 보네요.”

“네. 열심히 해요. 목표가 뚜렷하거든요.”

“목표요?”

수첩에 이것저것 적던 성진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가정 형편이 좀 그래서 그런지. 자기는 꼭 의대 가서 의사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돈도 많이 벌고 가족들 위해서라도 꼭 의사 돼야 한다고.”

“아-네.”

“가정 형편이 많이 안 좋나요?”

최 반장이 질문을 이었다.

“저도 경욱이하고 직접 이야기해보지는 않아서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담임 선생님에게 듣기로는 좀 많이 힘들다고는 들었어요. 어머니는 어렸을 적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두 애들을 키우는데 지방에 일용직으로 자주 일하러 가셔서 주로 동생이랑 둘이서만 지낸다고 들었거든요.”

“네.”

“그래도 조용하긴 했어도 집안 사정 그렇다고 그렇게 막 어둡거나 그렇지는 않은 아이였어요. 나름 수업 시간에 잘 웃기도 하고요.”

“혹시 요 근래 좀 이상한 점이나 그런 건 없었나요?”

수첩에 남자의 말을 적던 성진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이상한 점이라면?”

“예를 들어 갑자기 말수가 줄어들었다거나, 아니면 폭력적으로 변했다거나.”

“지금도 원래 말수는 적은 아이라…… 어제 수업 들어가서 봤을 때까지도 특별히 이상한 점은 못 느꼈어요. 그리고 뭐 폭력적이고 이런 애도 또 아니라. 보셔서 아시겠지만, 체격도 좀 왜소하고 그러잖아요.”

“네.”

“교우관계는 어땠나요?”

최 반장이 의자를 끌어당기며 물었다.

“친구는 별로 없는 것 같았어요. 거의 밥도 혼자 먹고 그랬으니까요.”

“그래요.”

“그래도 친한 친구 한두 명은 있지 않았을까요? 혹시 누군지 아세요?”

최 반장의 말을 이어 성진이 질문을 던졌다.

“제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막 어울려 다니고 활발한 성격은 아니라 학교에서도 주로 혼자 다녔거든요.”

“네.”

“그리고 요즘 애들은 급으로 친구를 사귀어서 더 친구 사귀기 힘들죠.”

“급이요?”

성진이 궁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네. 집이 몇 평인지 어느 아프트 사는지 차는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지 부모님이 뭐 하시는지. 뭐 이런 걸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서로 보이지 않는 급을 만들어서 그 부류에 속한 애들끼리만 노는 경향이 많아요.”

“허- 참.”

이야기를 들은 최 반장이 기가 찬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저희 학교가 좀 사는 애들이 많이 오는 곳이거든요. 학군이 괜찮아서.”

“그런데 경욱이는 어떻게 이 학교에 들어온 건가요?”

“사회적 배려자 전형으로 들어왔을 거예요. 그래서 학비도 안 내는 걸로 알고 있고.”

성진의 말에 남자가 다리를 꼬며 말했다.

“아-”

“그러니 경욱이는 친구 사귀기가 더 쉽지 않죠. 말은 안 해도 누가 사회자배려로 들어왔는지 다 알고 그러니까 경욱이 같은 애들을 자기들과는 다른 부류라고 생각하는 애들이 꽤 많거든요. 일부러 거리도 좀 두고요.”

“그래도 공부 잘하고 그러면 애들이 무시하거나 그런 건 없잖아요. 모르는 것도 물어보려고 좀 친해지고 싶어 하지 않나요?”

“에- 그건 형사님 세대죠. 요즘은 모르는 거야 과외선생님이나 학원에 물어보면 되는데 뭐 하러 친구한테 자존심 상하게 물어보겠어요.”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남자가 세상 물정 모른다는 표정으로 성진을 바라보자.

“여기만 그런 거 아닌가요?”

살짝 빈정 상한 성진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물론 이 학교 분위기가 그런 게 조금 더 심한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요즘은 공부 잘하는 애보다 집에 돈 많은 애가 최고예요. 그런 애가 인기도 제일 많고요.”

“진짜 세상이 변하긴 했네요.”

성진이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변했죠. 그런데 어른들 세계도 돈 많은 사람 주변에 사람 꼬이듯이. 애들도 다 똑같아요. 애들은 사람 아닌가요. 다 똑같죠.”

“선생님 엄청 현실적이시네요.”

최 반장이 살짝 비꼬며 남자를 바라봤다.

“그런가요? 제가 수학을 가르쳐서 그런 가 좀 이성적이라. 평소에 현실 감각 있다는 소리는 말이 듣습니다. 하하하.”

이성적이지만 살짝 눈치는 없는 남자가 최 반장의 말에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요즘 애들도 노는데 돈이 꽤 많이 드니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그냥 만나서 공이나 차고 끝나면 떡볶이나 먹고 그렇게 노는데 애들이 돈이 많이 필요한 가요?”

알면 알수록 이해하기 힘든 요즘 애들에 성진이 또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여기 애들은 학원 때문에 바빠서 모여서 공 차고 잘 놀지도 않지만요. 공차더라도 학교 운동장에서 먼지 풀풀 날리면서 공 안 차고 시설 좋은 풋살장 빌려서 공차고 놀아요. 그리고 요즘 떡볶이값 얼마인 줄 아시죠? 예전 저희가 컵에 담아 먹던 그런 싸구려 떡볶이가 아니에요. 둘이서 이것저것 조금만 먹어도 금방 2~3만 원인데요 뭐.”

“하긴 요즘 떡볶이값이 비싸긴 하죠.”

“그러니까요. 그리고 코노(코인 노래방) 가고 인생네컷 찍고 뭐라도 사 먹고 쇼핑하고 하려면 다 돈이잖아요. 그럼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애들끼리 친구가 되고 또 그걸 혼자서 다 내줄 수 있는 돈 많은 애 주변에 친구들이 모이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그런 면에서 경욱이는 매력도가 제로인 거죠.”

“그럼 혹시 경욱이가 왕따를 당하거나 그랬나요?”

“왕따요?”

왕따라는 이야기에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네.”

“음- 학교에서 경욱이를 직접적으로 괴롭히거나 이런 애들은 못 본 것 같은데요.”

“확실한가요?”

최 반장이 남자와 눈을 맞추며 다시 되물었다.

“그렇게까지 물으시면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이게 제가 애들 사정을 다 아는 것도 아니라.”

슬며시 최 반장의 눈을 피한 남자가 말을 얼버무렸다.

“네.”

“그런데 제가 종례를 좀 하러 가야 해서.”

갑자기 핸드폰 시간을 확인한 남자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 네.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도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닙니다. 그리고 혹시 추가로 궁금한 게 있으시면 이게 경욱이 담임 선생님 전화번호니까 한번 연락해 보세요.”

남자가 급하게 쪽지에 핸드폰 번호를 적어 최 반장에게 건넸다.

“네. 감사합니다. 저 그런데 혹시 애들하고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애들이요? 어떤 애들.”

갑작스런 최 반장의 말에 남자가 살짝 당황했다.

“경욱이하고 같은 반 애들이요. 지금 종례하러 가신다고 하셔서 괜찮으시면 같이 따라가서 경욱이에 대해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네. 그러세요. 그럼 저랑 같이 교실로 가시죠.”

잠시 고민하던 남자가 두 사람에게 따라오라 하며 먼저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

“그래. 고마워. 가봐.”

“네.”

경욱이 반 마지막 아이까지 짧은 면담을 마치고 교실 밖으로 나가자.

“으- 이게 딱 왕따라고 하긴 뭐하지만 애들 사이에서 확실히 겉돌았던 건 맞는 것 같은데요.”

교탁에 기대고 있던 성진이 기지개를 켜며 의자에 앉은 최 반장을 바라봤다.

“그래도 경욱이가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건 다 의외라고 생각하긴 하네.”

“그러니까요. 그런데 또 한편으론 그런 조용조용한 애들이 한번 사고 치면 제대로 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한데요.”

“흠- 일단 나가자.”

“네.”

드르륵.

“난 여기서 택시 타고 경찰서 들어 갈 테니까 넌 경욱이 한테 가서 아까 말한 대로 핸드폰 가져와.”

교실 문을 연 최 반장이 먼저 복도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아니요. 제가 택시 타고 갈 테니까 반장님이 차 가지고 가세요.”

그러자 뒤따라 나온 성진이 자동차 키를 최 반장의 옷 주머니에 넣어주던 그때.

“어!”

최 반장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세…… 아 저것들.”

걸음을 멈춘 최 반장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든 성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맞아요. 저것들 이 학교였어요.”

저 멀리 복도 끝 시시덕거리며 까불거리는 재신 성민 우정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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