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곳에 내가 있었다-654화 (653/669)

#654.

강상 중학교 교장실.

가운데 소파 상석에 앉은 교장을 중심으로 양옆 소파에는 교감과 경욱의 담임이 앉아 있었고, 그 가운데 마치 재판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경욱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50대 초반, 단정한 리젠트 헤어스타일에 목에 손가락 하나 들어갈 여유도 없을 만큼 넥타이를 바짝 맨 깐깐한 인상의 교감이 경욱을 경멸의 눈으로 노려봤다.

“…….”

“아니 말이야. 차량 절도도 모자라서 사람까지 치고. 네가 진짜 제정신이야!”

“…….”

교감의 호통에 화들짝 놀란 경욱이 움찔했다.

“지금 너 때문에 학교가 얼마나 곤란한지 알아? 네가 사회자 배려전형으로 들어와서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고 또 학교에서 얼마나 많은 배려를 해줬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 어!”

흥분한 교감이 침을 튀기며 경욱에게 삿대질했다.

“…….”

“별 거지 같은 새끼 때문에 진짜…….”

“교감 선생님 언행을 좀.”

빨간색 뿔테를 끼고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교감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교장이 찻잔에 묻은 빨간색 립스틱을 옆에 있던 티슈를 뽑아 닦으며 살짝 인상을 찡그리자.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흥분해서.”

교감이 교장의 지적에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기도 잠시.

“그런데 얘 보십시오. 지금까지 ‘죄송하다.’라는 말 한마디 없지 않습니까. 반성의 기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아주 파렴치한 아이입니다.”

다시 경욱에게 침을 튀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죄 죄송합니다.”

무겁게 입을 닫고 있던 경욱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마음에도 없는 사과는 필요 없어.”

“…….”

하지만 막상 사과하자 이젠 또 진정성을 문제 삼은 교감의 모습에 경욱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다시 입을 굳게 닫았다.

“교장 선생님 이제 곧 학교 평가도 있는데 이런 일이 언론에 알려진다면 진짜 큰일입니다. 학교의 위신이 바닥을 칠 겁니다.”

교장 쪽으로 몸을 돌려 앉은 교감이 세상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언론 쪽은 운영위원회에서 잘 처리해주신다고 하셨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운영위원장님께 다시 한번 연락을 드려보시는 게…….”

“잘 해결해 주실 테니 저희는 저희 일에만 집중하죠.”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은 교장이 도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이 아이인데.”

소파에 깊숙이 등을 기댄 교장이 빨간 뿔테를 밀어 올리며 고개 숙인 채 서 있는 경욱을 빤히 바라봤다.

“…….”

빨간색 뿔테 너머로 느껴지는 교장의 강렬한 시선에 경욱이 마른침을 삼켰다.

“부모님하고는 아직도 연락 안 되는 건가요?”

“네.”

교장의 질문에 잔뜩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던 경욱의 담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부모라는 사람이 애를 이렇게 방치한다는 게 정말 이해가 안 가네요. 하-이참.”

교감이 또다시 혀를 차며 경욱을 경멸의 눈으로 째려봤다.

“김 선생님께서 계속 부모님께 연락해보세요.”

“네.”

“김경욱.”

자세를 고쳐 앉은 교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경욱의 이름을 불렀다.

“……네.”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네가 촉법소년이라 직접적인 형사 처벌은 없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학교에서 내리는 징계까지 피할 수는 없어.”

내려놓은 찻잔을 다시 입에 가져댄 교장이 입술을 축이며 말했다.

“……네.”

“교육청에서 직접 관여하고 판단하는 학폭과 달리 이번 사건은 학폭이 아니라서 내일 열리는 생활교육위원회에서 네 징계가 결정될 거다.”

교장과 교감 그리고 각 학 년 부장과 학생부장, 인권부장 및 몇 명의 선생님들로 이루어진 생활교육위원회는 학교폭력을 제외한 학교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처리하는 기구였다.

“네.”

“학습권 보장 때문에 널 수업 중에 밖으로 빼서 조사하거나 징계 절차를 밟을 수도 없으니 생활교육위원회는 내일 모든 수업이 끝난 후 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고.”

교장이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앞으로 이어질 일정에 대해 경욱에게 설명했다.

“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중학교가 의무교육이라 우리가 널 퇴학이나 자퇴를 시킬 수도, 그렇다고 학교 규정상 이런 일로 강제 전학을 보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너에게 내려질 수 있는 가장 최대의 벌은 아마 출석정지 5일일 거야.”

“후- 네.”

교장의 말에 경욱이 긴 한숨을 내쉬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기쁘니?”

시종일관 덤덤한 표정이던 교장이 갑자기 썩은 미소를 지으며 소파 앞으로 몸을 당겼다.

“네?”

갑작스런 교장의 모습에 경욱이 당황했다.

“너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런 짓 한 거잖아.”

“아녜요.”

교장의 말에 경욱이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너처럼 머리 좋은 애가 자기가 촉법이라는 것도, 학교에서 아무것도 너에게 할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았겠지.”

“…….”

“차를 훔쳐서 사람을 반 죽여 놓은 죄가 학폭 처벌보다 훨씬 적은 고작 출석 금지 5일 이라니…… 흠-.”

자괴감에 빠진 듯 미간을 잔뜩 찡그린 교장이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래서 교권이 무너지고 학생들이 생활교육위원회에서 내리는 결정을 무시하고 무서워하지도 않는 겁니다. 정말 이딴 놈이 5일 뒤에 다시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듣고 아이들과 어울려 생활한다는 사실에 저는 정말 화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교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교감이 다시 얼굴을 붉히며 흥분하자.

“교감 선생님. 아직 제 말 안 끝났습니다.”

중간에 끼어든 교감을 향해 교장이 레이저를 쏘듯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아차 했단 표정으로 교감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다시 입을 꾹 닫았다.

“음-”

말이 끊겨 살짝 빈정 상한 듯 잠시 뜸을 들이며 헛기침을 한 교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솔직한 심정으로는 너를 계속 우리 학교에 두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슬며시 고개를 든 경욱이 교장의 눈치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는 거로 하자.”

“전학이요?”

경욱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응. 난 네가 우리 학교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하게 졸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솔직히 그렇게 두고 싶은 마음도 없고.”

“…….”

“아니 더 솔직한 심정을 말해줄까? 너 같은 아이 때문에 우리 학교의 명예와 내 커리어가 더럽혀지는 걸 난 용납할 수 없어. 그렇게 두고 보지도 않을 거고.”

“…….”

폭풍 전 고요였을까.

시종일관 덤덤하고 온화한 미소로 흥분한 교감을 말리던 교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 휘몰아치는 비난과 질책에 경욱은 어지러워 쓰러질 지경이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교감이 교장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너의 의견도 한번 들어보자꾸나.”

“……저 그런데 아까 강제전학은 불가능하다고…….”

경욱이 떨리는 입술로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강제전학이 불가능한 거지. 네가 스스로 가는 전학은 누가 말리겠니.”

“그럼 어디로…….”

경욱이 마른침을 삼키며 불안한 얼굴로 교장을 힐끔 바라봤다.

“이런 사건 이야기는 워낙 또 빠르게 퍼져서 이 근방 학교들은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게 될 테니. 아무래도 일반 학교는 어렵고 대안학교 쪽으로 가는 게 좋겠지.”

“대안학교요?”

경욱이 사색이 된 얼굴로 되물었다.

“응. 왜? 뭐 문제 있니?”

“문제는 아니지만…… 생각할 시간을…….”

“아니. 넌 생각할 필요도 다른 선택지도 없어.”

경욱의 말을 단칼에 끊은 교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

교장의 고압적인 분위기에 경욱이 잔뜩 어깨를 움츠리며 다시 고개를 떨궜다.

“내일 생활교육위원회가 열리고 너에 대한 처분이 내려지면 바로 전학을 준비하는 거로 하자.”

“저 그런데 아버지가 연락이 잘 안되셔서…… 이런 문제를 저 혼자 결정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신경 쓰지 말고. 그럼 일단 이번 일은 이렇게 처리되는 거로 알고 있어라.”

“…….”

이미 결론이 정해진 것 같던 결정.

경욱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가봐.”

“…….”

“뭐해. 어서 빨리 인사드리고 나가.”

교장의 말에도 엉거주춤 서 있는 경욱을 향해 교감이 무슨 파리 내쫓듯 손을 휘저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때.

“후- 저 그런데…….”

깊게 심호흡을 한 경욱이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한테는 왜 아무것도 안 물어보세요?”

갑작스런 경욱의 말에 교장과 교감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뭐? 물어봐? 너한테 뭘 물어봐야 하는데.”

하지만 이내 교감이 황당하단 얼굴로 경욱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치며 다시 한 소리 하려 하자.

“그래. 우리가 뭘 물어봐 줄까.”

교감의 말을 손으로 막은 교장이 다리를 꼬며 눈가를 찡그렸다.

“이번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저에게는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물어보시지 않았잖아요.”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경욱이 참아왔던 설움과 분노를 터트렸다.

“아니 눈앞에 결과가 뻔히 있는데 뭘 물어봐. 그리고 이게 뭘 잘했다고 감히 어디서 목소리를 높여!”

“경욱아. 뭐 하는 짓이야. 어서 빨리 교장 교감 선생님께 잘못했다고 사과드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교감과 담임 선생님의 질책뿐이었다.

“후- 죄송합니다.”

잠시나마 꿈틀했던 경욱이 긴 한숨과 함께 왈칵 차오른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빨리 나가.”

교감의 호통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교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경욱의 뒤로.

“어디서 저런 쓰레기 같은 게 우리 학교로 와서. 이래서 사배자들이 욕을 먹는 거야.”

교장의 날카로운 말이 등을 관통해 가슴에 꽂혔다.

***

[살인자 새끼.]

[사배자 꺼져!]

[죽어! XXXX.]

텅 빈 교실로 돌아온 경욱이 자신의 책상 위에 빼곡히 적힌 욕설을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후-”

짧은 탄식을 내 쉰 경욱이 심란한 표정으로 가방을 둘러매고 다시 교실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드르륵.

갑자기 교실 문이 벌컥 열리며 우정이 들어왔다.

“야.”

“…….”

잠시 우정을 원망의 눈빛으로 노려본 경욱이 우정을 무시하며 교실 밖으로 나가려 하자.

“너 어디 가냐.”

우정이 경욱의 어깨를 잡았다.

“집에 가니까 건들지 마.”

“안 어울리게 X라 가오 잡네. 너 나 한 대 치겠다.”

경욱의 반응에 우정이 콧방귀를 뀌며 헛웃음 쳤다.

“비켜.”

어깨에 올린 우정의 팔을 뿌리친 경욱이 다시 교실 밖으로 걸음을 옮기려 하자 우정이 앞을 가로막았다.

“야.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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