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9.
철컥.
원장실을 나와 병원 안을 빙 돌아 원장실 옆 대기실 문을 연 최 반장이 먼저 채린이부터 찾았다.
“채린이는 들어갔어?”
“아직이요.”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하고 있던 채린이 최 반장과 눈을 맞췄다.
“아직 최면 전이야?”
“지금 하는 중이요. 이제 곧 사인 떨어질 것 같아요.”
성진이 원장실과 연결된 CCTV 화면에서 고개를 돌리며 최 반장을 바라봤다.
“그런데 진짜 혼자 들어갈 거야?”
최 반장이 살짝 걱정된 표정으로 채린이를 바라봤다.
“네.”
그러자 걱정하는 최 반장과 달리 채린이 담담한 표정으로 짧게 대답하던 그때.
“그러지 말고 나도 같이 들어가. 아무래도 한 명이 보는 것보다는 둘이 보는 게 더 좋지 않겠어?”
나연이 옆에 있던 의자를 들고 채린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사무실에서 연락 올 것 있다고 하셨잖아요.”
갑작스런 나연의 행동에 최 반장이 살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처음에는 성진이나 나연 둘 중에 한 명과 같이 기억 속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둘 다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오는 업무 연락에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채린이 혼자 기억 속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생각해보니까 길어야 10분이면 끝나잖아요. 그 안에 무 무슨 일이 있겠어요. 괜찮아요.”
나연이 무음으로 한 핸드폰을 옆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빙그레 웃었다.
“그럼 저도 같이 가요.”
괜히 바쁜 척하며 안 들어가는 것 같이 되어버린 성진이 민망한 표정으로 다른 의자를 집어 채린이 옆에 앉으려 하자.
“무슨 소풍도 아니고 다 같이 들어가서 뭐 해. 여기서 기억 속에서 활약하는 채린이와 나의 케미나 잘 지켜보고 있어.”
나연이 옆에 앉으려는 성진을 가볍게 밀치며 윙크를 했다.
“기억 속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여기서 둘의 케미를 어떻게 봐요. 제가 들어가서 케미 봐 드릴 테니까 같이 가요. 같이 가자 채린아.”
헛웃음을 터트린 성진이 다시 채린이 옆에 앉으려 하자.
“그냥 업무 전화 받으면서 현실 세계나 잘 지키고 계세요. 이번에는 나랑 채린이하고 다녀올 테니까.”
“그래. 이번에는 그냥 있어. 넌 윤 법의관님께 연락받을 것도 있잖아.”
최 반장도 나연의 편을 들었다.
“네. 그럼 이제 곧 신호 떨어질 것 같은데 준비하시죠.”
“네.”
“OK.”
다시 CCTV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 성진의 말에 채린과 나연이 심호흡을 하며 마지막으로 기억 속에 들어갈 준비를 하던 그때.
“사인 떨어졌어요.”
CCTV 화면 속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보내는 인혜의 모습에 성진이 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시작하죠.”
최 반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채린과 나연을 바라봤다.
“네. 준비되셨죠?”
“응.”
“다녀올게요.”
그러자 옆에 앉은 나연과 눈을 맞춘 채린이 마지막으로 최 반장과 눈을 맞추며 질끈 눈을 감았다.
***
“눈 뜨세요.”
“후-”
귓가에 들리는 채린의 목소리에 짧게 심호흡을 한 나연이 천천히 눈을 뜬 곳은 도로 한복판.
“사건 현장이 여기야?”
사고가 났던 곳이라 생각할 수 없는 너무나 깨끗한 도로와 멀쩡한 가로수를 보며 나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사고 난 곳은 어디야?”
“저기 저 가로수요.”
채린이 아름드리 선 가로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직 사고 나기 전인가?”
“그런 것 같아요.”
주위를 둘러본 채린이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혹시 언제 사고 났는지 시간 알아?”
“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 한 2~30분쯤 뒤에 현장에 왔던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곧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채린의 말에 나연이 살짝 미간을 찡그린 채 다시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
부우웅- 부앙아-
“오는 것 같은데요.”
익숙한 자동차 배기음이 적막한 도로를 깨우자 채린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그럼 빨리 피하자. 사고 난 곳이 저 가로수니까 저 반대편에 가서 보면 될 것 같은데.”
“네. 그리로 가요.”
앞으로 일어날 사고 현장 반대편 인도에 설치된 큰 도로변 변압기 쪽으로 나연이 걸음을 옮기자 채린이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부아앙- 아앙-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저 멀리서 라이트를 켠 차량이 전속력으로 달려오자.
“왔다.”
“네.”
변압기 뒤에 숨은 채린과 나연도 일순간 긴장했다.
“호오- 오-”
“와- X발 졸라 재밌다! 우후-”
“저 새끼들 미쳤구만.”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한 팔을 걸친 채 거만한 표정으로 운전을 하는 재신과 뒷좌석 창문 밖으로 몸을 반쯤 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성민과 우정의 모습을 보는 나연의 미간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그런데 경욱이는 안 보이는 것 같은데요.”
눈 깜짝할 사이 빠르게 차가 채린의 앞을 지나갔지만 요란스런 세 명의 모습만 보일 뿐 경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부우우웅- 끼이익- 부아앙- 끼이익.
“그러게. 그런데 저 새끼들 진짜 미쳤네.”
채린의 말에 입꼬리를 내리며 고개를 끄덕인 나연이 이내 섰다 멈췄다 불법 유턴을 반복하며 마치 스프린턴 하듯 곧 일어날 사고 구간을 달리고 또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혀를 찼다.
“저래서 사고가 났나 봐요.”
마치 시한폭탄 같은 세 아이의 모습을 보며 채린이 저절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곧 사고 날 때가 된 것 같은데.”
변압기 뒤에 숨은 나연이 눈만 빼꼼히 밖으로 빼고 주위를 살피던 그 순간.
“어! 혹시 저 사람 아니야?”
사고 현장에서 100m쯤 떨어진 골목에서 나오는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 것 같아요. 저 오토바이 맞는 것 같아요.”
채린의 눈에 사고 현장에서 봤던 오토바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렇게 보면 사고 날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이들이 탄 차는 사고 현장보다 한참 떨어진 곳에서 여전히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고, 사고 오토바이 운전자는 규정 속도를 지키며 운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부아아앙-
다시 저 멀리서 자동차 굉음이 들리며 빠른 속도로 세 아이가 탄 차가 맹렬하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것들이 다시 돌아서 오는 중에 들이박았나 보네. 하- 눈 뜨고는 못 보겠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아는 나연의 미간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잠시 후.
부아아앙-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어느새 오토바이 바로 뒤에 붙은 차가 앞에 가는 오토바이를 향해 요란하게 클랙슨을 울렸다.
빵- 빵.
그러자 슬쩍 고개를 뒤로 돌린 오토바이 운전자가 요란한 클랙슨 소리에 살짝 옆으로 오토바이 핸들을 틀어 차에게 추월하라며 손으로 사인을 보내려는 순간.
부아아앙.
그새를 못 참고 풀 악셀을 밟으며 오토바이를 피해 칼 치기로 추월을 하려던 차는 재신의 운전미숙으로 그대로 오토바이의 뒤를 들이박았다.
쾅-
끼이익.
중심을 잃고 크게 휘청거린 오토바이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어떻게든 사고를 피해 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쾅-
다시 뒤를 들이박힌 오토바이는 그대로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끼이익.
그러자 급브레이크를 밟은 자동차는 중심을 잃은 듯 크게 출렁이다 방향을 잃고 그대로 가로수를 들이박았다.
“저렇게 사고가…….”
끔찍한 사고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채린이 말을 잇지 못했다.
“저런 때려죽일 새끼들.”
아이들의 치기 어린 실수로 한 가장을 죽음으로 몰았을 수도 있다는 분노에 몸을 떤 나연이 이내 옆에 있던 채린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저분은 저런 사고를 당하고도 진짜 안 죽은 게 천운이네. 천운이야. 채린아 네가 진짜 큰일 했다.”
“아니에요. 그런데 좀 이상해요.”
나연의 말에 고개를 가로젓던 채린이 도로에 쓰러진 피해자를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왜?”
“그때 제가 저 피해자분 발견한 곳은 분명 사고 현장에서 좀 떨어진 관목 사이였거든요.”
“그래? 그냥 차 바로 앞에 쓰러져 있는데?”
채린의 말에 나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쓰러진 피해자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래서 이상해요. 저기 없었거든요.”
피해자 혼자 사고 현장에서 몇십 미터를 기어가 관목 사이에 쓰러질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자신이 사건 현장에 왔을 때 발견한 피해자의 위치와 지금 눈앞에 보이는 피해자의 위치가 너무 달라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가끔 저런 큰 사고를 당하면 자기 정신이 아니라 아픈 줄도 모르고 갑자기 일어나서 걸어가는 경우도 왕왕 있기는 한데.”
“그런가요.”
나연의 의견에 채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뭔가 찜찜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그때.
“어! 나온다.”
운전석과 뒷좌석의 문이 열리자 나연이 옆에 있던 채린의 어깨를 다급하게 두드렸다.
“아-”
“X발. X라 아파.”
뒷목을 붙잡은 우정과 성민이 괴로운 얼굴로 뒷좌석에서 먼저 걸어 나왔다
“아 X발.”
그리고 곧이어 오른손으로 반대쪽 어깨를 잡은 재신이 욕을 하며 운전석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야! 양재신. X발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우정이 재신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쳐라.”
재신이 얼굴을 구기며 우정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그 시각.
“새끼들 완전 멀쩡하네. 어디 하나 부러졌어야 하는데.”
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연이 짜증 난 얼굴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에어백도 터지고 가로수에는 그렇게 세게 부딪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채린이 세 아이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아 머리 아파. X발 그런데 무슨 일이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성민이 혼란스런 얼굴로 이마를 짚으며 주위를 둘러보자.
“오토바이 뒤에서 들이박은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런데 그 오토바이 어디 갔냐.”
“몰라 새끼야.”
우정과 재신도 같이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
“야! 야!”
차 앞쪽을 살펴보던 성민이 호들갑을 떨며 두 아이를 불렀다.
“머리 울리니까 좀 조용히 해 새끼야.”
재신이 성민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차 앞으로 걸어가자 우정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X발. X됐다. 아! X발.”
차 앞에 반파된 오토바이와 그 옆에 얼굴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운전자를 본 우정이 절규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 사람 설마 우리가 친 거야? 그런 거야?”
성민이 겁먹은 표정으로 온 모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재신의 팔을 흔들었다.
“가만히 좀 있어 새끼야.”
재신이 성민을 밀치며 화를 냈지만 이 상황이 당황스럽긴 재신도 마찬가지였다.
“X발. 우린 망했어. X됐다고!”
“좀 닥쳐 새끼야!”
바닥에 주저앉아 세상이 무너진 듯 절규하는 우정을 재신이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어떻게 해. 우리 이제 어떻게 하냐고.”
성민이 다시 재신의 팔을 붙잡고 안달복달하자.
“아- X발. 조용히 좀 해. 생각 중이니까.”
난감한 얼굴로 머리를 헝큰 재신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눈알을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