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
“오셨어요.”
채린과 인혜 성진과 나연이 동시에 눈을 맞추며 원장실로 들어오는 최 반장을 반겼다.
“어디 좀 다녀오느라 늦었네. 별일 없었죠?”
최 반장이 자신의 전용 자리에 앉으며 분위기를 살폈다.
“네. 그런데 요즘 어디를 그렇게 맨날 바쁘게 다니세요?”
나연이 궁금한 얼굴로 최 반장을 바라봤다.
“사실 요즘에 국회하고 여기저기 좀 다니느라 바빴어요.”
최 반장이 앞 테이블에 있던 음료수 뚜껑을 따며 말했다.
“국회요?”
“거긴 왜요?”
“설마 국회 진출하시려는 건 아니죠?”
생각지도 못한 최 반장의 말에 모든 팀원들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진출은 무슨.”
헛웃음을 치며 손사래를 친 최 반장이 목을 축이며 입술을 움직였다.
“요즘 촉법 소년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있는 건 알죠?”
“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현직에 있는 경찰들의 의견도 수렴 중이라고 해서. 그쪽 일 좀 도와주고 다녔어요.”
“원래 그런 거 잘 참석 안 하시잖아요.”
승진하려면 그런 자리에 가서 인맥도 좀 쌓고 얼굴도장도 찍으라는 동료 형사들의 말에도 언제나 현장파라 외치며 한사코 거절했던 최 반장이 스스로 그런 모임에 참석했다는 사실에 성진은 놀랍기만 했다.
“요즘 경욱이 사건도 그렇고 촉법 소년 부분이 문제가 좀 많은 것 같아서. 그리고 이건 조금만 하면 뭔가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요즘 여기저기서 바꿔야 한다고 말은 많이 나오던데, 그래서 진짜 바뀌기는 하는 건가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더라고요.”
인혜의 말에 최 반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나이 몇 살 낮추는데 이것저것 걸리는 것도 많고, 이해관계도 있고 이게 생각보다 많이 복잡하더라고요.”
“아니 나이 몇 살 낮추는 게 뭐가 어렵다고.”
나연이 못마땅한 입을 삐쭉거렸다.
“괜히 고생만 하셨네요.”
인혜가 아쉬운 얼굴로 최 반장을 바라봤다.
“솔직히 말하면 당장 촉법 소년 연령이 하향되고 뭐 그런 걸 바라고 참여한 건 아니고, 이런 모임 나가다 보면 이 세 놈 어떻게 좀 잘 잡을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참여했던 건데. 이것도 쉽지가 않네요. 촉법 소년이란 방패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뚫기가 힘들다는 것만 절실하게 느끼고 왔네요.”
“그럼 역시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네요.”
최 반장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채린이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듯 나머지 세 사람과 눈을 맞추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방법? 무슨 방법?”
그러자 최 반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채린을 바라봤다.
***
“안 돼.”
마시던 생수병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최 반장이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지 마시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정도 반대는 당연히 있을 거라 예상한 채린이 최 반장 쪽으로 몸을 당겨 앉으며 다시 설득했다.
“지금 그 애들 잡을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어요.”
“채린아. 그놈들은 폭탄을 뒤에 싣고 달리는 브레이크 고장 난 덤프트럭이나 다름없는 놈들이야. 그놈들 잡다가 너까지 다칠 수 있어. 난 더 다치는 거 못 봐.”
재신과 목숨을 건 게임을 하기로 했다는 건 물로, 재신과 아이들을 잡기 위해 그 게임을 통해 자신이 미끼가 되겠다는 계획까지.
하나같이 위험천만한 채린이의 계획에 최 반장의 표정이 세상 심란했다.
“절대 다칠 일 없어요. 그리고 그런 위험한 애들이니까 지금 더 잡아야죠. 지금 잡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니 아이들이 피해를 볼지 불을 보듯 뻔하잖아요.”
“그놈들 잡겠다고 네가 위험해질 필요도 이유도 없어. 그리고 이 일은 나하고 김 형사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 네가 할 일이 아니야.”
최 반장이 다시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반장님과 김 형사님이 그 아이들 잡으세요. 전 그냥 미끼가 된다니까요. 그리고 반장님이 그러셨잖아요. 그 세 아이 무조건 다시 사고 칠 거라고요. 그런데 언제 사고 칠지도 모르는 애들 무작정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리고 만에 하나 사고 안 치면요. 그냥 여기서 끝이잖아요. 그럼 안 되는 거잖아요.”
채린이 차분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최 반장을 설득했다.
“후-”
채린의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딱히 부정할 수 없는 채린의 말에 최 반장의 고민이 깊어졌다.
“아까 저희끼리도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그놈들 진짜 약은 놈들이라 촉법 딱 끝나면 이제 진짜 사고 안 칠지도 모르긴 해요.”
그러자 타이밍을 보던 나연이 먼저 채린의 편을 들며 분위기를 만들자.
“지금까지 한 짓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애들이죠.”
“반장님 그리고 그놈들 생일까지 이제 딱 이틀 남은 거 아시죠? 이틀. 그 안에 무조건 잡아야 해요.”
인혜와 성진이 약속이나 한 듯 지원사격을 하고.
“흠-”
“어쩌면 이번이 그놈들 잡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요.”
마지막으로 채린이 다시 한번 최 반장과 눈을 맞추며 힘주어 말했다.
“뭐야. 이미 나 빼고 다 말이 끝난 것 같은데.”
어떻게 돌아가는 분위기인지 모를 리 없는 최 반장이 입꼬리를 내리며 성진과 인혜 나연을 번갈아 바라보자 세 사람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반장님. 전 진짜 그 세 놈 무조건 잡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후-”
정의감과 의욕에 반짝이는 채린이의 눈빛을 본 최 반장이 근심 많은 표정으로 긴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등을 기대 말을 이었다.
“진짜 할 거야? 아니 할 수 있겠어?”
“네.”
“항상 너한테 뭔가 기대는 것만 같아서 좀…….”
최 반장이 민망하고 미안한 표정을 짓자.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희 항상 팀으로 하는 거잖아요.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요.”
채린이 격하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럼 하나만 약속해. 절대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아니 위험한 일이 조금이라도 생길 것 같으면 이 계획은 바로 그 즉시 STOP이야. 알겠어?”
한번 마음먹은 걸 쉽게 바꿀 리 없는 채린이라는 걸 잘 알기에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그 세 놈에게서 채린이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계획을 짤 수밖에 없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약속할게요.”
채린이 최 반장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번 해보자.”
“고맙습니다.”
“고맙긴. 내가 미안하고 고맙지.”
꾸벅 고개를 숙이는 채린이의 모습에 최 반장이 멋쩍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계획은 있어?”
“일단 세 아이가 마음껏 날뛸 수 있게 두려고요.”
채린이 나연을 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날뛰게? 어떻게?”
인혜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계속 그 아이들이 절 노릴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주려고요.”
“그럼 당장 오늘부터 그 세 놈이 널 어떻게 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텐데.”
인혜가 걱정 가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채린이 옆에서 24시간 근접 경호라도 해야죠.”
성진이 소매를 걷으며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요. 의외로 눈치 빠른 애들이라 그러면 저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예요.”
채린이 성진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 무방비 상태로 널 위험에 빠트릴 순 없어.”
“그래, 채린아. 그건 김 형사 말이 맞아. 너무 위험해.”
최 반장도 성진의 말을 거들었다.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저에게 접근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잡을 기회도 생기죠. 그리고…….”
그때.
채린의 말을 끊은 최 반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아까 말했지, 너한테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 생기면 이 계획은 바로 다 끝이라고.”
“그래도…….”
생각보다 단호한 최 반장의 모습에 채린이 잠시 당황하자.
“좋아. 그럼 근거리에서는 안 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거로 할게. 그건 괜찮지?”
성진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중재안을 내놨다.
“네.”
무작정 고집만 피울 수는 없었기에 또 최 반장이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잘 알았기에 채린도 한발 물러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님도 괜찮으시죠?”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 생기면 바로 내가 들어갈 거니까 그런 줄 알아.”
성진의 의견에 최 반장이 에둘러 허락했다.
“네. 일단 그럼 전 평소처럼 할게요. 똑같이 편의점에 알바하러 가고, 도서관도 가고 운동도 하고요.”
“그래.”
“내가 항상 매의 눈으로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나 믿지?”
성진이 넓은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때리며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웃었다.
“네.”
“전 뭘 할까요? 저도 김 형사 따라서 채린이 따라다닐까요?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더 좋잖아요.”
나연이 팀원들을 보며 물었다.
“그것보다 혹시 지금 그 세 놈 어디 있는지 위치추적 같은 거 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해드려요?”
최 반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연이 덮었던 노트북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이게 일반 프로그램 돌리는 노트북이라 완전 정확한 위치까지는 안 나와도 그래도 대충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있어요. 물론 그것도 오차 몇백 미터 안이지만요.”
“일단 그럼 지금 그 세 놈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봐 주세요.”
“네. 잠시만요.”
최 반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노트북 위에 올린 나연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잠시 후.
“찾았어요.”
노트북에서 손을 뗀 나연이 노트북 화면을 팀원들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 세 놈 지금 어디 있어요?”
성진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어디서 작당모의 하고 있겠죠.”
인혜가 노트북 쪽으로 목을 쭉 빼며 입꼬리를 내렸다.
“여기 점 깜박이는 곳 보이시죠. 일단 지도상으로 보면 지금 여기에 있어요. 그런데 여기 위치 어디서 많이 본 곳 같은데. 아- 내가 이런 지도 쪽으로는 좀 약해서. 봐도 잘 모르겠네.”
나연이 모니터 안 지도 위에서 깜빡이는 세 점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어!”
“여기…….”
인혜와 최 반장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왜요? 여기가 어딘데 그렇게 놀라세요.”
나연이 두 사람의 반응에 불안한 얼굴로 묻자.
“이 위치…… 이 건물이에요.”
인혜가 굳은 표정으로 나연을 바라봤다.
“네? 그럼 그 세 놈이 지금 이 건물에 있다고요?”
화들짝 놀란 나연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 순간.
“이 새끼들 진짜.”
힘껏 주먹을 말아 쥔 성진이 이를 바득 갈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하자.
흥분한 성진의 팔을 잡아당긴 채린이 비장한 표정으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할게요. 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