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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 실패 후 다시 사는 천재 카이스트생-8화 (8/134)

#8. 중1 조기입학

#8. 중1 조기입학

뭐가 모르는 건지 알기 쉽게 별표가 처져 있었다.

별 세 개 중에 세 개 다 색칠돼 있는 심화 문제.

물론.

“별로 어려운 문제는 아니네.”

평범한 중학생 기준에서 그런 거였지만.

“2제곱에서 3제곱이 된 것뿐이지, 원리는 똑같아. 공식을 외울 생각하지 말고 원리를 외울 생각을 해. 그러면 이렇게 해서······ 자, 금방 쉽게 풀렸지?”

“어, 어······ 고, 고마워······.”

믿었던 전 아내에게 배신당하고, 황 교수에게 비참하게 갑질당하고.

그런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덕에 인간 불신에 가까운 기벽이 생겼다고는 해도.

아예 사회생활을 거부할 정도로, 마음을 닫았던 건 아니었다.

“나 예고 준비하고 있어서, 나중에 또 물어봐도 될까?”

양아치들이 많은 질이 안 좋은 중학교이긴 했으나.

그래도 강남 아래의 성남·분당 신도시이다 보니 이렇게 특목고를 준비하는 애들이 많았다.

“마음대로.”

“고마워! 역시 소미 말이 맞았네~!”

해맑게 웃으며 도도도 자기 무리로 돌아가는 그녀를 보았다.

눈길에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교복마의에서 ‘유은하’라는 명찰이 보였다.

“똑같네.”

그게 다였다.

딱히 느껴지는 감정은 없었고.

여전히 다른 타인들처럼 똑같은 잿빛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예고라.”

예고랑 정반대인 과학고.

며칠 전, 어머니께 이끌려 대치동의 페르마 학원에 갔었지.

물론 가벼운 1회차의 복수 겸, 엿이나 한 번 먹인 후 자리를 박차고 나왔었으나.

『괜찮은 다른 학원 엄마가 다시 알아볼 테니까. 다음부턴 그런 버릇 없는 짓 하지 마렴!』

아무래도 어머니는 그때 이후로 다른 학원을 또 알아보고 계신 것 같았다.

솔직히 학원 같은 거 안 다녀도 문제없다고 말씀을 드리긴 했으나, 어머니는 이렇게 반박하셨다.

『얘는?! 미적분 좀 할 수 있다고 과학고가 만만한 줄 아니?』

솔직히 만만하게 보고 있긴 했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진 말씀에 조금 마음이 동했다.

『수학뿐 아니라 물화생지 1·2까지는 다 떼고 가야지!』

맞는 말이셨다.

실제로 내가 할 줄 아는 건 물리뿐.

그리고 물리와 관련된 수학뿐이었으니까.

어쩌면 인제 와서 다시 KMO 책을 공부하는 것도.

그때 이루지 못했던 것을 다시 해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확실히 그때는, 떨어졌었지.”

한국과고, 1차 서류 통과.

2차 시험에서 탈락.

당시 물리는 어느 정도 공부해서 풀었었으나.

수학은 KMO를 제대로 준비했던 것도 아니라서, 반 정도밖에 못 풀었었고.

나머지 화학, 생물, 지구과학 같은 경우는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거의 사실상 다 찍고 나왔었다.

그러니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부족한 건, 화학·생물·지구과학.”

그리고 과학고 시험에 알맞은 중고등학교 과정과 대학교 1학년 과정의 복습.

대학원, 석박사급의 지식은 의외로 아래의 것과 큰 관련이 없기도 했으니까.

애초에 연구랑 문제 풀이는 전혀 성격이 다르기도 했고.

때마침 어머니께서도 더 좋은 학원 하나 알아본다고 하셨으니.

“한번, 제대로 준비해볼까.”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천재들만 간다는 한국과고.

그 입시의 준비를.

* * *

한국과고에 들어가기 위해 제일 중요한 건 단언컨대 선행이었다.

“단순히 사교육만 받은 주입식 교육의 선봉자들, 라고만 말할 수는 없지.”

합격하자마자, 공식 입학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들은 미리 학교 기숙사에 들어간다.

방학인데도 말이다.

거기서 두 달 동안 그들은 ‘홍지학교’라는 이름하에.

고등학교 10-가·나 과정을 순식간에 다 끝내 버린다.

그런 다음에 정식으로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다시는 뒤돌아가는 일 없이, 대학과정까지 일방통행.

“누구였더라······ 아, 새터 반의 김종원.”

다 해외로 빠져버려 카이스트에도 흔치 않은 한국과고 출신.

그는 학부 1학년 때 겁없게 학부 3학년 전공을 신청했고.

그리고 당당히 A+라는 학점으로 선배들을 학살하고 나왔다.

그럴 만했다.

나중에 듣기론, 이미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 AP로 대부분의 대학과정을 다 수강하고 왔던, 그야말로 괴물이었으니까.

“그랬던 애가 한국과고에서 하위권이라고 했었지.”

그래서 카이스트에 온 건지.

아니면 그냥 군대 해결하려고 온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하여튼 괴물인 것은 확실했다.

단순히 사교육, 선행의 괴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창의성이니 뭐니 하는 것도 결국엔 압도적인 지식 앞에선 무용지물일 뿐이니까.

게다가 직접 새터 반 때 이야기 나눠봤던 바로, 정말로 천재가 맞았고.

“예전의 나라면, 절대 못 이겼을 거야.”

【『한경준』의 상태창】

내가 가진 상태창의 능력.

그 스탯에는 총 3가지의 종류가 있었다.

【공부 계열】

【예체능 계열】

【보조 계열】

그중 현재 내가 관심을 보였던 계열은 단연코 공부 부분.

【공부 계열】

【▶기억 : 8(+7.7)  ▶계산 : 9(+7.6) ▶이해 : 9(+7.3)】

기억하고 이해해서 계산한다.

전생의 스탯 중 일부를 이어받아 세 스탯 모두 10이 넘는 수치를 기록하고는 있었으나.

원래는 이 나이대 중학 평균인 10을 하회하고 있었다.

“굳이 이걸 안 올리고 매력을 올린 이유가 있지.”

스륵.

책 한 권을 꺼냈다.

큼지막한 호랑이 얼굴에 표지에 새까만 배경의 하드커버.

그것을 펼치자 깨알 같은 영어 설명과 온갖 생물학 그림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었다.

일명 ‘호랑이책’이라고들 불리는 일반생물학 책.

카이스트 1학년 무학과생들이 공통필수로 무조건 보는 책인 동시에.

수많은 과학고 대비생들의 선행 학습 교재로 쓰이는 전공 서적이었다.

“학교에서 전력으로 뛰었더니 체력이 올랐어.”

반면 KMO나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는 스탯이 오르지 않았다.

전생의 지식을 다시 복습한 것뿐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1학년 때 일반생물학 학점이······ 분명 디플이었지.”

이것이 말하는 것은 한 가지.

촤라락!

곧바로 호랑이책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연필로 연습장에 끄적이는 것도.

입으로 되뇌는 것도 시간 낭비다.

오로지 눈으로만 해서.

주변 시야마저 전부 지워버린 채.

초점에 잡히는 것만을 마치 스캔하듯 순식간에 눈에 담고.

그 너머의 뇌리에 아로새긴다.

원하는 수준은 『사진 기억 능력』의 수준.

물론 ‘서번트 증후군’에 가까운 능력인 그것을 감히 재연할 수는 없겠지만.

“한 번 더.”

흉내는 가능했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두 번으로 안 되면 세 번.

【보조 계열】

【▶집중 : 16(+9.9) ▶끈기 : 16(+9.9) ▶창의 : 7(+2.7)】

내 유일한 재능인 집중과 끈기를 최대한 살려서.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건지, 왜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건지는 신경 쓰지 마.’

만물의 이치(理致)를 따지는 물리(物理)학적 사고방식은 전부 내다 버린다.

지금 필요한 건 눈앞의 지식을 있는 그대로 뇌리에 새기는 것뿐.

그 이상 그 이하도 필요없다.

‘외운다, 암기한다. 거기에 이해나 계산은 필요없어······!’

그렇게 얼마나의 시간이 지났을까.

창문 너머의 하늘에 벌써 어스름은 가고 황혼이 들이닥칠 때였다.

“이제 책은 됐어.”

하지만 아직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

그야 아직 해가 완전히 뜬 건 아니었으니까.

스륵.

호랑이 책을 덮고, 처음으로 펜과 연습장을 집었다.

지금도 수마가 태산같이 덮쳐왔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최대 98시간, 하루에 2시간씩만 자고 몇 달.’

카이스트.

그 천재들만 모인 곳에서 일반고 출신으로 어떻게든 대학원까지 가고, 물리학 박사를 따기까지.

그 알량한 머리로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밤새워가며 공부했는가.

게다가 젊은 몸으로 돌아와 체력과 정신이 말짱한 지금에 와서는.

수마와 싸우는 것쯤이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사삭!

연습장을 마치 깜지처럼 순식간에 채워나갔다.

쓸데없은 문장격은 필요없다.

중요한 키워드와 그림만 해서 빈틈없이 채운다.

폭력적으로 채워나간 사진의 기억을 실시간으로 압축하고.

눈과 손을 거쳐 목전의 용지에 그대로 붙여넣는다.

그렇게 추가로 몇 시간을 더 적어나갔을까.

분명 이제는 황혼마저도 가고 중천에 해가 떴을 즈음이었다.

“아들! 엄마가 다른 더 좋은 학원 찾았다! 초석 학원이라고, 서울대 미생물학과 출신에 물리학과 복수전공이라는데······!”

덜컹!

때마침 방문이 덜컥 열렸다.

“점심 먹고 바로 가볼 거니까 얼른 씻고 준비―”

마치 데자뷰처럼.

조금 다른 건 아침이 아니라 훨씬 지난 주말 점심이라는 거지만.

그때와 똑같이.

“어머나 세상에.”

어머니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전부 다······ 경준이 네가 한 거니? 안 자고······?”

대체 몇 장의 종이들이었을까.

아무리 압축했다고는 해도 수십 시간에 달하는 분량을 폭력적으로 담았다.

사방엔 널브러진 종이들 때문에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책상 주변 바닥은 마치 심연처럼 새까맣게 덮여 있었다.

사삭, 탁.

마지막 종이 한 장마저 까맣게 채운 직후였다.

[유례없을 지식량이 단숨에 머릿속에 새겨졌습니다.]

[공부 계열 스탯 『기억』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기억 : 8(+7.7) → 9(+7.7)】

[기억류 스킬 『사진기억』을 익히기 시작합니다.]

【┗스킬 『사진 기억』 : 미개방(숙련도······3%)】

[숙련도가 100%가 되면 완전한 스킬로서 개방됩니다.]

[밤을 지새우며 단 한 번도 집중력이 흩트려지지 않았습니다.]

[보조 계열 스탯 『집중』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집중 : 16(+9.9) → 17(+9.9)】

[집중류 스킬 『무아지경』을 익히기 시작합니다.]

【┗스킬 『무아지경』 : 미개방(숙련도······3%)】

[숙련도가 100%가 되면 완전한 스킬로서 개방됩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상태창을 목도한 후.

처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락.

새벽 내내 적었던 깜지들이 발에 밟혔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이미 종이에 쓰였듯.

내 머릿속에서도 똑같이 아로새겨졌으니.

“후우.”

떨리는 손과 다리.

이내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어머니.”

겨우 어머니를 불렀다.

“내일 갑시다.”

풀썩!

그대로 침대로 쓰러져서 쥐 죽은 듯이 잠을 청했다.

“겨, 경준아······?!”

드물게 꿈을 꿨다.

책 표지에서 봤던 호랑이가 나와 내게 생물학을 가르쳤고.

거기서 무아지경으로 오늘 배웠던 것을 복습하는 이상한 꿈.

어쩌면.

나중엔 잠자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스킬마저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네.

* * *

초석(礎石) 학원.

페르마 학원 건너편에 생긴 얼마 안 된 학원으로 이번에 처음 생겼다.

사실상 역사가 없는 수준.

“예?”

그곳에 한 남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찾아와서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중1, 조기입학이라고요······?”

초석 학원의 원장이자 유일한 선생이었던 김초석.

그가 눈앞의 남학생에게서 나온 말에 크게 당황했다.

“자, 잠깐만요. 아드님께서 중1이었어요?”

분명 보이는 체격과 얼굴로는 중3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남학생과 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분명 중1이라고 했다.

“겨, 경준아!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그렇지 중1 조기입학은······.”

오히려 그의 어머니도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눈앞의 남학생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김초석에게 되물었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김초석은 반박할 수 없었다.

남학생의 말대로,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그야 한국과학고는 과학고라는 이름과 다르게, 실제로는 과학‘영재’학교였으니까.

보통 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하는 과학고와 다르게.

영재고는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를 3년 풀로 채우는 대신, 조기입학이 가능했다.

실제로 약 100명가량의 입학생 중 10명 내외가 중3이 아닌 중2 때 입학하곤 그랬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중1은······.”

중1 입학생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뿐 실제로 거의 없을뿐더러.

학교 차원에서도 잘 안 뽑으려고 했다.

그야 가서 엄청 고생할 게 뻔한데, 학교도 보통 내년을 노리라며 가급적 탈락시키기 일쑤.

“그래, 경준아! 아무리 그래도 중1은 좀 그렇지. 3년이란 시간이 있는데 그렇게 급하게 굴지 않아도······.”

남학생의 어머니도 일단 말리는 추세였으나.

곧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안 되나요?”

그의 목소리에는 허세는커녕 장난기조차 없이 매우 진지했다.

그렇다고 괜히 객기를 부리는 느낌도 아니었다.

사람이 숨 쉬고 밥 먹는 게 당연한 행동인 것처럼.

그저 담담하게,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이미 정해진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경준.

그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중학교는 1년으로 마치고.

바로 내년부터는 한국과고에서 공교육 과정을 전부 끝내버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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